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04화 (104/301)

104화

* * *

익사공 프란시스 바르바로사가 그곳에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의 남자였다.

대륙 제일의 무적함대를 거느린 ‘제독’이자 해적. 프란시스에게 있어 처음부터 태생의 고귀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성씨조차 없는 뱃사람 출신이었으니까.

뱃일을 업으로 삼는 사해 군도(群島)의 뱃사람으로 태어나 특유의 카리스마를 갖고 세력을 확장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바다 위에서 적을 약탈하는 해적질이었다.

머지않아 프란시스는 대륙 국가 모두가 치를 떨 정도의 악명을 자랑하는, 바다 위의 무법자로 거듭났다.

그렇기에 제국이 통일 전쟁을 일으킬 당시, 일개 해적 출신의 ‘프란시스’에게 바르바로사의 성(姓)을 하사함과 동시에…… 프란시스 바르바로사를 제독으로 임명함으로써, 제국 함대 전체의 지휘를 일임시켰다.

‘합법적으로 적국의 배를 약탈할 수 있는’ 사략 허가증과 함께.

그 직후 바르바로사는 제국 함대의 제독이 되어, 당대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구 브리타니아 왕국’의 무적함대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다.

바로 그 전투의 대패가 구 브리타니아 왕국을 멸망시키는 직격타로 작용했고, 그 공을 통해 일개 해적 출신의 바르바로사는 사해 군도를 지배하는 ‘제국의 3대 공작’으로 거듭났다.

작센, 랭커스터, 바르바로사.

그러나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고 나서도, 바르바로사는 쉽게 그의 천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국의 공작이자 동시에 바다 위의 무법자가 되어 끝없이 해적질을 일삼았고, 그가 바다 위의 섬에 터를 잡은 이상, 적어도 ‘물 위의 세계’에서는 제국조차 감히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비로소 해적공(海賊公)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해적공 프란시스 바르바로사가, 느닷없이 다섯 척의 배를 이끌고 대륙의 동쪽 바다 너머로 나아갔다.

바다 너머에 있다는 ‘이 세계의 끝’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서.

아무도 그가 살아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국조차 해적공이 ‘세상의 끝’에 있는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여겼으니까.

그러나 프란시스 바르바로사는 살아서 돌아왔다.

다섯 척의 배 중에 네 척이 침몰하고, 오직 해적공이 직접 지휘하고 있는 하나의 배가 홀로.

죽음의 바다 너머에 있는 동대륙을 찾아내고, 나아가 그 동대륙조차 뛰어넘어 ‘최초의 세계 일주’를 성공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호사가들이 떠들어대는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그의 무용담을 장식했다.

가령 ‘악마의 삼각지대’에 빠져 함대 전체가 침몰하고 그 역시 익사할 위기에 처했을 때, 바다의 ‘악마’와 거래해 불사를 손에 넣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라거나.

그리고 지금 데일이 앞에 두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전설 같은 일화의 실체였다.

익사공 프란시스 바르바로사.

어느 때나 비 맞은 생쥐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대로.

“──어떻게 내 심장을 찾아냈나.”

익사공이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무겁고, 음습하며, 당장이라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무게감이 실려 있다.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영업 비밀입니다.”

《웃는 남자》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티 마스터가, 능청스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블랙마켓의 풍경 일대가 가라앉았다.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 아래, 심해(深海)의 어둠 속으로.

비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물속에 가라앉아 숨을 쉴 수 없는 것 같은 질식감이 엄습했다.

‘사상의 세계……?!’

그러나 익사공에게 마법의 조예가 있다는 것은 듣지도 못한 일이다. 나아가 그 세계를 ‘무기의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확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하나, 무엇이 달랐다.

데일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마법의 힘이 아니라, 조금 더 이질적이고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이다.

“……이대로 네놈들을 심해의 구렁텅이에 처넣어 수장시켜버릴 수도 있다.”

바로 그 심해 속에서 익사공이 입을 열었다. 물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태평하게. ──아무리 그 위에 마법으로 사상의 힘을 덧씌우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당장 목구멍 속으로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는 바닷물 덕에,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다.

바로 그때였다.

촤아악!

일대의 풍경이 뒤집히며, 질식감이 사라졌다. 데일을 비롯해 일대에 있는 모두가 블랙마켓의 대리석 위로 돌아와 있었다.

“컥, 콜록!”

목구멍 속으로 쏟아지고 있는 물이 토해졌고, 몸 전체가 비에 젖은 생쥐 꼴이었다.

그것은 《웃는 남자》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티 마스터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마스크가 벗겨지고, 그 밑으로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그럴싸한 상처나 흉터 같은 것은 없다. 딱히 개성이라고 할 것도 없는 흐릿한 이미지의 남자였다.

익사공이 물에 젖은 제복의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시티 마스터의 목을 낚아챘다.

“컥, 커헉……!”

목구멍 속으로 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질식감이 엄습했다.

“다시 묻겠다.”

익사공이 말을 잇는다.

“어떻게 ‘그 상자’를 찾아냈고, 그것을 어디에 숨겨놓고 있지?”

목을 조르고 있는 상황에서 대답 같은 것이 돌아올 리 없다. 협박 끝에 익사공이 내동댕이치듯 그를 팽개쳤고, 시티 마스터가 호흡을 되찾으며 미소 지었다.

“허억, 헉! 이것 참……. 이래서야, 공작 각하의 심장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네요.”

옷맵시를 가다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웃는 남자》의 마스크를 뒤로하며.

“말씀드렸듯이, 공작 각하의 심장을 담고 있는 흑요석 상자는 ‘블랙마켓’의 절차에 의해 거래될 겁니다.”

무대 위의 배우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그리고 거래가 끝나는 이상, 아무리 제 목을 쥐고 조르셔도 대답을 얻을 수는 없겠지요.”

“……감히 내게 협박을 하려는 것이냐.”

“저는 그저, 어디까지나 ‘경매 중개자’의 의무를 다할 따름입니다.”

시티 마스터가, 데일을 향해 팔을 뻗으며 말을 잇는다.

“방금 말했듯이, 경매의 시작가는 ‘블랙 칩 하나’입니다.”

이곳에 있는 경매의 참여자는 데일이 다가 아니다.

레이 유리스, 미하일 랭커스터. 그러나 그들과 맞서 파이트 클럽에서 승리를 손에 넣은 것은 오직 하나, 작센의 ‘검은 공자’였으며…… 데일의 손에는 블랙마켓의 상품 하나를 즉석에서 낙찰시킬 수 있는 특전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상품의 시작가는 고작 칩 하나.

“파이트 클럽의 우승자로서, 특전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침묵 끝에, 데일이 흘끗 고개를 돌렸다. 감히 마주할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을 풍기며, 데일을 노려보고 있는 익사공이 보였다.

“우승자의 특전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데일이 입을 열었다.

블랙 칩 하나의 시작가.

“아, 참으로 탁월하신 결정입니다.”

시티 마스터가 즐겁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럼 칩 하나에, 데일 공자님에게 공작 각하의 심장을…….”

“아니요.”

바로 그때, 데일이 시티 마스터의 말을 가로막았다. 흑색 로브 속에 감춘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며.

즉석에서 낙찰받고자 하는 상품의 값을 불렀다.

“팔백삼십하고, 아홉 개.”

“호오.”

고작 칩 하나로 시작가를 지정한 ‘익사공의 심장’을 두고, 데일이 가진 전부를 내걸었다. 시티 마스터가 흥미롭다는 듯이 숨을 삼켰다.

데일과 시티 마스터, 그리고 익사공.

세 사람 사이의 공기가, 당장에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레이 유리스와 미하일 랭커스터, 그리고 ‘그림자 법정’의 암살자들은 그저 이 무대의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네깟 애송이가 감히.”

그리고 데일의 말에, 익사공이 입을 열었다.

“그깟 수작으로 내 마음을 사려 하는 것이냐.”

말 하나하나에 바다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무게를 담아서.

“익사공 각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나 그의 위압에 주눅들 정도로, 데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힘 있는 자의 목숨줄을 손에 쥐는 거래를 마다할 자가 없다는 것을.”

“그러고도 네깟 애송이가 감히 무사히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나?”

“그러는 익사공께서는, 무사하십니까?”

데일이 태평하게 되물었다.

“네놈들이 그 상자에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거렸다가는.”

익사공이 입을 열었다.

“적어도 이 도시에 있는 개미 새끼 하나까지, 무사하지 못할 거란 사실은 보증해주마.”

당장에라도 이 일대의 모두를 바닷속으로 수장시킬 것 같은 기세로.

그의 말대로 바로 그 ‘익사공’이 자랑하는 무적함대가 길드 시티의 바다를 에워쌌고, 지금쯤 뭍에 상륙을 마친 그의 부하들이 도시 일대를 포위하고 있으리라.

“아직 제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데일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익사공께서 무사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네깟 애송이가, 지금 나를 협박하려는 것이냐?”

익사공이 되물었다.

적어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 남자가 니콜라이 추기경처럼 자기 목숨 하나가 아까워 벌벌 떨 겁쟁이가 아니란 것이다.

일개 해적으로 시작해, 머지않아 일대 해적들을 거느린 바다의 왕으로 군림했으며, 제국의 제독이 되어 당대 브리타니아 왕국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최초의 세계 일주와 더불어 바다의 악마와 거래를 맺은 남자.

그 정도의 거물이, 고작 자기 목숨 하나로 벌벌 떨 리가 없다.

“익사공께서는 필시, 이깟 협박에 굴복하느니 목숨을 포기할 생각이시겠지요.”

“그럼 네놈들이 그 길동무가 될 거란 사실도 잘 알고 있겠지.”

“저는 공작 각하의 목숨을 갖고 협박 따위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데일이 말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셨습니까?”

“무엇을 말이지?”

“익사공 각하께서는 필시 ‘누구도 찾지 못할 바닷속’에 그 상자를 숨기셨겠지요.”

데일이 말을 잇는다.

“그러나 그 상자가 지금, 이 남자의 손에 의해 경매에 올라 있습니다.”

시티 마스터를 가리키며.

“저도 어떻게 그가 그것을 찾아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무엇을 말이지?”

“아무리 그것을 이 세계 어디에 꼭꼭 숨겨도 이 자는 기어코 그것을 찾아낼 것이고, 공작 각하께서는 염려를 떨치지 못하겠지요.”

데일이 말했다.

“잘 알고 있구나.”

익사공이 차갑게 대답했다.

“내가 그 심장을 이제 다시는 내 곁에서 떼어놓지 않으리란 것도.”

“아, 마음 같아서는 저도 공작 각하에게 심장을 돌려주고 무사히 떠나고 싶네요.”

“그럼 그 심장을 내놓아라.”

데일이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여기 있는 모두가 물귀신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특별히 네놈의 목숨 정도는 살려줄 수 있다.”

“아니요.”

데일이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비밀을 알아버린 이상, 공작 각하께서는 ‘절대로’ 절 살려두지 않으실 겁니다.”

일말의 의심조차 없는 목소리로.

“그리고 저 역시, 이대로 순순히 죽어줄 마음은 없지요.”

아주 일순이나마, 익사공의 표정에 흥미가 깃들었다.

“그래서 제의를 하고 싶습니다.”

“말해보아라.”

“심해(深海)는 익사공 각하의 심장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

“그러나 저는 공작 각하의 심장과 제 목숨, 두 가지를 지킬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지?”

익사공이 물었고, 데일이 대답했다.

“작센의 심연(深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