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01화 (101/301)

101화

* * *

파이트 클럽의 결승.

대귀족의 대리자들이 파이트 클럽에 참가하는 것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하나라도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서, 대리자들 사이의 서열을 가늠하고자 강자들과 맞서고 싶은 순수한 투쟁심에 이끌려서…….

끝으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최후의 승리자에게 주어질 파이트 클럽의 ‘우승 상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다.

우승자에게는 블랙마켓의 상품 하나를 ‘즉석에서 확정 낙찰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그리고 길드 시티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우승을 거머쥐고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상품을 확실하게 손에 넣을 필요가 있다.

결의를 마친 데일이 결승 상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제국의 3대 공작 가, 랭커스터 가의 차남 미하일을 앞에 두고. 거의 띠동갑에 맞먹는 나이 차임에도 불구하고, 데일을 바라보는 미하일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일말의 방심이나 무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고결함을 갖고서.

“작센의 공자님을 뵙게 되어,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미하일이 예의를 표했다.

“부디 저에게 일수의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대륙 칠검’에 가장 가깝다고 일컬어지는…… 미하일 공자님의 검재를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것 참, 과찬이 심하네요.”

미하일이 짐짓 겸허하게 미소 지으며 웃었다.

“어느 누가 감히, 작센 가의 장남 앞에서 ‘재능’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요.”

스릉.

소드 벨트에 비스듬히 묶여 있는 혈화검이, 칼집 너머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의 칼날.

일찍이 그가 보여준, 신속의 쇄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데일이 레이 유리스에게 그러했듯, 미하일 역시 함부로 ‘작센 가의 후계자’를 죽일 수는 없으리라.

어느 세계가 그렇듯이, 이 세계는 평등하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의 가치 역시 동등할 리가 없다.

가령 항복을 부르짖는 일개 기사를 ‘실수로’ 죽이는 행위 정도는 헤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으나. 그것이 제국의 공작 가나 적색 마탑의 후계자일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피의 무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귀천(貴賤).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에 무작정 방심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미하일 랭커스터는 결코 함부로 여길 수 없는 강자니까.

심장을 따라 네 개의 서클을 가속하며, 기사 검에 피스메이커의 사상을 투영했다. 어둠의 호수가 깔리고, 동시에 데일의 데스나이트가 흑검을 고쳐 잡았다.

“슈브.”

마지막으로, 데일의 심장에 깃들어 있는 마도서의 이름을 불러냈다.

일찍이 모두의 앞에서 『검은 산양의 서』를 드러냈고, 이 이상 숨길 필요가 없는 최악의 마도서를.

─ 응, 오빠.

슈브가 생긋 미소 지었고, 미하일의 표정에 일순 감정이 깃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것을 보는 것 같은 혐오스러움.

용사의 검, 마도서, 4서클의 가속. 휘몰아치는 냉기와 어둠 속에서 임전 태세를 갖추고, 데일이 고개를 들었다.

미하일 랭커스터 역시 칼자루를 고쳐 잡고,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매의 자세(포스타 디 팔코네).

브레스트 플레이트 위로, 랭커스터 공작 가를 상징하는 백색과 적색의 장미가 드러났다.

그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잔혹한 고결함’.

작센 공작 가의 밤까마귀 문장(紋章)이 ‘죽음의 사자’를 의미하듯이.

도이셍 머릿속에서, 일찍이 데일이 흡수한 성 막달레나 기사의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전쟁터 속에서 활약하는 미하일 랭커스터의 검, 그의 아바타, 그 압도적 재능을 두고 느껴지는 절망감마저.

‘……보통 상대가 아니다.’

레이 유리스처럼 훗날의 위협으로 거듭날 상대 따위가 아니다. 이미 미하일의 검에 깃들어 있는 경지는, 스물 중순의 나이에 이룰 수 있는 성취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으니까.

타앗!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그대로 검이 세로로 내리꽂혔다. 검도의 기초 중 기초라 할 수 있는 머리치기.

‘……!’

어느덧 데일과 미하일 사이의 거리가 좁혀져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휘둘러지는 일검을, 데스나이트의 흑검이 맞받아쳤다. 어느덧 미하일의 검이 뱀처럼 미끄러지며 데스나이트의 육골 속으로 파고들었다.

촤아악!

그대로, 검을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어깨뼈 일대가 잘려나갔다.

물 흐르듯 매끄럽고 깔끔하게 뼈가 무너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잘린 데스나이트의 육골(肉骨)이 미하일의 코앞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흑마법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시체 폭발. 그러나 거기에 투영하고 있는 각종 수식의 살상력을 고려할 때, 그것이 갖는 살상력은 일개 사령술사의 수준이 아니리라.

세열(細裂)을 가하고, 동시에 흩뿌려지는 뼛조각 끝을 날카롭게 깎아 가공함으로써.

그 앞에서 미하일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수십 마리의 고기들을, 일제히 끌어 올리기 위한 그물처럼 촘촘하게.

이어, 슈브의 촉수들이 일제히 내리꽂혔다. 《섀도우 러커》의 가시 촉수들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사방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파상공세.

동시에 그림자 망토를 따라, 흑색 총신에서 ‘어둠의 총알’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재차 미하일이 검을 휘둘렀다.

사방에서 내리꽂히고 있는 일격을, 360도의 형태로 커버하며, 칼날의 바람이 소용돌이처럼 흩뿌려졌다.

‘칼날의 바람……?’

아니었다. 그가 흩뿌리고 있는 것은 일개 풍압이 아니라, 검에서 방출되는 오러였다. 투사체 형태로 검기(劍氣)를 흩뿌려, 팔방위에서 쏟아지는 공격 하나하나를 일제히 저격하고 있다.

그러나 미하일 랭커스터가 쥐고 있는 혈화검에는 일말의 색도 깃들어 있지 않다.

오러가, 보이지 않았다.

무형, 무색의 오러.

그리고 그 오러가 비로소 미하일 랭커스터의 ‘검’에 휘감겼다.

무형검(無形劍).

랭커스터 가의 ‘장미십자 기사’를 상징하는 오러의 색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미하일 랭커스터가 가진 고유의 오러다.

“보이지 않는 검이 가장 무서운 법이지요.”

바로 그 무형의 검을 쥐고서, 미하일 랭커스터가 미소 지었다.

“설마 제 검이 벌써 북부의 동토까지 알려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처럼 숨기기 어려운 것도 없지요.”

데일이 짐짓 시치미를 떼며 평정을 가장했다.

성 막달레나 기사의 뇌를 흡수하지 않았을 경우, 자칫 치명적 일격을 허용할 수도 있었을 일격. 전생의 기억을 가진 데일이라고 해서, 결코 이 세계의 전부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보이지 않는 오러’ 같은 것은 데일조차 경악을 감출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으니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혈화검의 칼자루를 빙글 돌리며 고쳐 잡았다.

촤르륵!

“……!”

검을 이루고 있는 핏빛 칼날 마디마디가 철편(鐵片)으로 쪼개져, 와이어로 고정하고 있는 채찍으로 거듭났다.

혈화검. 그 칼날 마디마디가 적의 육체를 도륙할 때마다, 핏빛 꽃이 피는 것 같다며 붙어 있는 이름.

데일 역시 그 검의 악명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핏빛의 사복검(蛇腹劍)이…….

보이지가, 않았다.

불가시의 오러에 휘감겨 칼날의 채찍이 그 형태를 감추고 있다.

후웅!

어디까지나 미하일의 손을 보고 그 움직임을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다시금 그의 검에서 흩뿌려지는 무형의 오러, 보이지 않는 검기가 휘몰아쳤다.

하나하나 시야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데일이 그 공격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상, 피스메이커의 능력 《평화의 강제》도 의미가 없다.

《평화의 강제》가 효력을 갖는 것은 술사가 명확하게 공격을 의식하고 있을 때니까.

처음으로 느끼는 초조함이 데일의 심장을 옥죄었다.

“슈브.”

동시에, 데일이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을.

“마음껏 날뛰어줘.”

─ 응.

슈브의 드레스 자락 밑에서, 흡사 심해의 바다 괴물을 보는 것 같은 거대 촉수들이 솟아올랐다.

콰앙, 쾅!

거대 괴수가 일방적으로 도시를 짓밟듯, 초대형 촉수들이 경기장 일대를 마구잡이로 부수기 시작했다. 어둠의 호수를 펼치고 《섀도우 러커》 역시 일제히 가시 촉수를 내뿜었다.

헤아릴 수 없는 촉수들의 엄호 속에서, 데일이 고개를 들었다.

후웅!

그와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살기가 휘몰아쳤고, 데일이 그림자 망토로 방패를 세웠다.

카앙!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그림자 방패가 무엇에 부딪히며 쇳소리를 냈다. 그러나 데일의 그림자 방패를 마주하는 것은 보통의 검이 아니었다.

칼날 채찍이 부딪치고, 뱀처럼 휘둘러질 경로를 예측하고 또 하나의 방패를 세워 올렸다.

카앙!

채찍의 끝자락에 달린 칼날의 마디가, 또다시 데일의 방패에 막혀 들었다.

“……!”

그 모습을 보고 미하일이 숨을 삼켰다.

일개 마법사가, 보이지 않는 칼날 채찍을 육감 하나에 의지해 튕겨냈다고? 그것도 사복검이 휘둘러질 경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서?

데일의 모습에서, 결코 ‘기사에게 거리를 내준 마법사의 초조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시에 미하일의 사방에서 헤아릴 수 없는 촉수들이 내리꽂혔다. 어느덧 사복검, 칼날 채찍을 회수하며 사방으로 검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무형의 오러를 호신강기의 형태로 경화시켜, 슈브의 촉수와 흑색의 점액을 막아내는 동시에…… 오러를 투사체 형태로 날리며 촉수를 제거하고 있다.

경악을 금할 수 없는 공방 일체의 기예.

촤아악!

그리고 바로 그 무형의 칼날 채찍 ‘혈화검’이, 비로소 그 이름처럼 피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데일의 어깻죽지에서 혈화가 피어올랐다.

아슬아슬하게 칼날 마디가 스치며 가슴팍을 베었고, 또다시 데일의 가슴팍에서 피의 꽃이 피었다.

끝없이 휘몰아치고 있는 칼날의 채찍이, 데일의 육체가 피로 물들었다.

육체가 갈가리 찢기고 있는 고통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치명상을 피해가며, 데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돌아버리겠네.’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뭐해도, 레이 유리스 같은 풋내기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상대다.

‘항복해야 하나.’

생각하고 나서,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흑색공이 탐을 낼 정도의 상품이란 것이 허풍이 아닐 경우.

그 상품에 욕심을 갖는 자는 흑색공 하나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작센 공작 가가 제국 제일의 대제후라고 해도, 재력(財力)마저 제국 제일의 것은 아니다.

당장 3대 공작 가의 일좌, 랭커스터 가의 풍요와 비옥함 앞에서 작센의 동토는 고개조차 내밀지 못할 테니까. 서로가 출혈 경매로 갈 경우, 제아무리 작센이라 해도 100%의 입찰 성공을 보증할 수 없다. 애초에 미하일 랭커스터가 우승자로서 그 상품을 손에 넣을 경우에는, 경쟁조차 성립하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손에 넣어야 했다. 파이트 클럽의 우승자가 갖게 될 우승 상품을.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적어도 무형의 오러를 깨트릴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슈브의 힘을 이 이상 폭주시킬 할 경우, 파이트 클럽의 보호 결계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아울러 어느 하나가 패배를 외치기 전에 보호 결계를 깨트리는 것은, 그대로 실격 처리다.

슈브가 가진 100%의 전력을 끌어낼 수 없고, 사상의 세계를 펼칠 수도 없다.

“마법사에게 있어 썩 좋은 상황은 아니지요.”

데일의 고뇌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미하일이 입을 열었다.

“아니, 어느 의미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겠지요.”

“…….”

“애초에 마법사가 기사에게 거리를 허용하고…… 백병전에서 이 정도의 호각을 유지하는 것조차.”

일말의 거짓조차 없는 경외를 담아서.

“이미 보통의 마법사가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

“솔직히 말해서, 데일 공자님의 재능에는 저 역시 경이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말했다.

“애초에 이 경기장의 거리는 마법사에게 있어 기사와 너무 가깝고, 상황이 저에게 너무 유리했습니다.”

그의 말이 옳다. 냉정하게 말해서 일체의 상황이 ‘보통의 마법사’에게는 턱없이 불리했고, 당장 파이트 클럽에 참가한 마법사가 데일과 유리스, 오직 두 명이란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너무 부끄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패배를 부끄러워할 것 없다.

“이것은 애초에 마법사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니까요.”

프라이드를 과시하는 동시에 상대의 존중을 잊지 않는 기사의 모범.

“그러니 부디 이쯤에서 항복하시지요.”

미하일이 검을 거두며 되물었다.

“이미 데일 공자님께서는 그 이름의 무게를 능히 증명하셨습니다.”

“…….”

“설령 저에게 패배해도 ‘검은 공자’의 명성에 흠집이 날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요.”

미하일 랭커스터가 말했다. 그의 비열하기 짝이 없는 검술과 달리, 그야말로 기사도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한 고결함을 갖고서.

데일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미하일 공자님께서는, 저에게 패배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침묵 끝에 데일이 역으로 되물었다. 대답을 들을 것도 없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 말에 일순 미하일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저는 절대로 항복할 생각이 없습니다.”

데일이, 다시금 흑청의 마력을 소용돌이치며 말을 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보통의 마법사’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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