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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97화 (97/301)

97화

* * *

체내의 오러를 주천(周天)시켜 신체를 강화하는 것이 오러를 사용하는 첫째 경지, 오러 비기너.

그다음이 오러를 체외로 배출해 검에 두르거나, 방패의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오러 나이트.

그리고 그 마지막이, 오러로 검과 갑주, 육체를 덧씌워 ‘아바타’를 구사할 수 있는 오러 마스터다.

마법사의 기준으로 봤을 때, 탑의 장로가 될 수 있는 6서클의 경지와 비슷하리라.

오러 마스터에 도달하고 나서, 딱히 그다음의 경지를 지칭하는 말은 없다. 그저 아바타에 투영하는 사상이나 오러의 힘을 축적하고, 더더욱 갈고닦아 강해지는 것이 전부다.

──오직 일곱 명을 제외하고.

검의 정점, 오러의 극의를 다룰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최강의 기사들. 대륙 칠검(七劍).

통상 기사 무용담 속에 등장하는 ‘소드 마스터’의 모티브가 바로 그들이다.

엄밀히 말해 소드 마스터의 개념 자체는, 기사들 사이의 용어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륙 칠검의 무위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호사가들이 덧붙여준 조어(造語)였으니까.

그 말이 널리 퍼지고 퍼져, 대륙 칠검의 강함을 칭송하는 또 하나의 경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고 오색 마탑주처럼 극히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대략 ‘같은 경지’에 이르러 있는 기사와 마법사가 싸울 때. 평생을 전장에서 수행하는 전투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대개 기사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마탑의 골방에 틀어박혀 수행하는 학자와 전장의 살육자는 그 사상의 뿌리가 다르니까.

그리고…….

일평생에 걸쳐 헤아릴 수 없는 전장을 경험한 전투 마법사가 그곳에 있었다.

워 메이지(War Mage).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이계.

마법사가 ‘사상의 세계’를 펼치는 것은, 오직 두 가지 의미였다.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상대이거나, 전력을 다해 상대를 배제하기 위한 살육의 콜로세움이거나.

“네놈…….”

순백의 기사 역시 그곳에 있었다.

사람의 육체와 살가죽이 미스릴 금속으로 경화되어서, 마치 백색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생물처럼.

“이 풍경을 기억하고 있나?”

데일이 물었다. 희끗희끗한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겨울밤의 지평 속에서.

“네놈의 시시한 사상누각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순백의 기사가 차갑게 대답했다. 당장에라도 쇄도할 듯 칼자루를 고쳐 잡으며.

“그래, 유감스럽네.”

“뭐가 유감스럽다는 거지?”

“적어도 자기 묫자리가 어디가 될지 정도는 알기를 바랐는데.”

“처음부터 살아서 돌아갈 생각 따위 없었다.”

성 막달레나 기사가 대답했다.

“이 목숨을 바쳐, 주군의 적이 될 악의 씨앗을 배제하는 것.”

“그 돼지 놈에게 충성하는 네놈 꼴이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나?”

“네놈이 무엇을 알고서, 감히 나의 주군을 모욕하는 것이냐……!”

대화가 끝났다. 순백의 기사가 쇄도했다.

미스릴 갑주에서 그치지 않고, 흡사 규소 생물처럼 육체가 순백의 금속으로 경화되어서.

백색의 섬광이 내리그어졌고,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데일의 몫이 아니었다.

카앙!

데스나이트의 흑검이, 그의 일격을 맞받아쳤다.

그러나 상대 역시 아바타를 통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오러 마스터의 기사다. 검이 맞부딪쳤고, 일찍이 데스나이트가 보여준 호각의 기세는 사라지고 없었다.

데일의 데스나이트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아직 슈브나 오렐리아의 힘을 빌릴 때가 아니다.’

강자와의 싸움, 생사의 경계에서 목숨을 걸고 치러지는 외줄타기.

그 하나하나가 데일에게 있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고, 강함의 밑거름이다

그림자 망토가 펄럭였고, 발밑의 어둠을 따라 《섀도우 러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 막달레나의 빛이여!”

그와 동시에 성 막달레나 기사가, 수호성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자매신의 자애와 자비가 나와 함께할지니!”

그야말로 광신(狂信)에 차 있는 십자군처럼 우렁찬 외침. 그 외침에 따라, 빛이 휘몰아쳤다.

어둑새벽의 어둠을 몰아내는 여명의 빛.

「키에에에엑!」

그 빛 앞에서, 데일의 《섀도우 러커》들이 일제히 절규를 내질렀다.

흡사 데일의 세계가 가진 어둠을 몰아내겠다는 듯이, 찬란하기 그지없는 빛이 휘몰아쳤다.

“일어나라.”

데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지평을 따라서, 데일의 명령에 따라 ‘그것’들이 몸을 일으켰다.

사상의 세계에서, 마법사는 자신의 역량에 따라 신(神)과 같은 힘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고위 전투 마법사는 적을 배제하기 위해 ‘세계 그 자체’를 무기의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죽은 기사들의 수도회》.”

그날, 데스 오더의 군세를 떠올리며 데일이 영창을 입에 담았다.

죽음의 영토에서, 그들의 주군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순백의 밑바닥 속에 파묻혀 있는 시체들을 향해.

어느덧 작센의 흑검을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군세가,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

끝없이 검과 사령술을 갈고닦고, 그 토대를 쌓아 올린 수행의 결과물.

「자동화(Automatic)」 수식을 투영하며, 하나하나에 용사의 조각이 깃들어 있는 불사의 군세. 사상의 힘으로 쌓아 올린 불사의 기사들.

데일의 세계가, 전력으로 그의 적을 배제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악의로 가득 차 있는 세계.

고위 흑마법사가 펼치는 압도적 물량 그 자체.

“이것이 대체…….”

저것이 정녕 일개 4서클의 마법사가 펼칠 수 있는 모습이라고?

아바타를 두르고 있는 성 막달레나 기사가, 경악 속에서 숨을 삼켰다.

휘몰아치는 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사의 기사들이 질주했다. 코앞에서 터지는 섬광을 피해, 섀도우 러커들이 어둠의 호수 밑으로 잠복했다.

어둠의 호수를 따라 섀도우 러커의 가시 촉수들이 치솟았고, 데스나이트의 군세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성스러운 빛에 휘감겨 있는 기사가 있었다.

성 막달레나 기사.

“저에게 절대 굴하지 않을 용기를 주소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군세를 앞두고,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영웅이 빛의 검을 고쳐 잡았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고결함과 함께.

* * *

푸욱!

빛의 일검이 내리꽂혔다.

성검사의 숙적이자 바로 그 작센의 ‘검은 공자’를 향해서. 가슴팍을 뚫고, 데일의 등 뒤로 여명의 칼날이 우뚝 솟아나 있었다.

상처를 따라 피가 울컥울컥 솟구쳤다.

“나의 승리다……!”

희열 속에서, 순백의 기사가 소리를 높였다.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죽음의 군세를 돌파하고 손에 넣은 승리.

미스릴의 기사가 소리 높여 웃음을 터뜨렸다.

* * *

“나의, 나의 승리다……!”

순백의 기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망막이 찢어져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슈브의 가느다란 촉수가, 그의 이목구비를 가로질러 뇌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데일은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4서클의 경지에 이르고 나서, 성장하는 것은 데일 하나가 아니었다.

데일의 애장(愛裝)이라 할 수 있는 ‘그림자 망토’와…… 마도서 『검은 산양의 서』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니까.

순백의 기사를 유린하고 있는 촉수와 별개로, 또 하나의 촉수가 데일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외이도에서 고막을 거쳐, 청신경을 가로질러 뇌가 있는 곳으로.

4서클이 되고 나서 손에 넣은 ‘슈브’의 새 능력.

지금, 데일은 성 막달레나 기사의 뇌를 흡수하고 있었다.

860억 개의 신경세포와 150조의 시냅스로 이루어져 있는 정보 처리의 중추.

일평생에 걸쳐 검을 갈고닦은 ‘오러 마스터’의 생애가, 데일의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적의 뇌를 삼키는 것.

데일 역시 보통의 각오로 감당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 속에서, 데일의 자아를 유지하기란.

성 막달레나 기사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사상을 집어삼키고, 그것을 자신의 것을 손에 넣는다.

──어린 시절, 그의 검재(劍才)를 칭찬하는 성검사의 모습이 보였다.

──오러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는 그의 피와 땀이 느껴졌다.

“드디어 아바타를 손에 넣었습니다, 주군!”

성 막달레나 기사가 잠꼬대하듯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오러 마스터가 되어 아바타를 손에 넣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감정이 흘러들어왔다.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일말의 동요조차 없이.

성 막달레나 기사로 그가 쌓은 일체의 기억.

그들이 수행하는 오러 심법의 상세부터, 그가 기억하고 있는 온갖 정보들이 흘러들어왔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수영하며, 필요로 하는 것들을 손에 넣는다.

“그럼 시험 삼아서.”

거두고 나서,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작센의 흑검을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칠흑빛 오러 블레이드 위로,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성 막달레나 기사의 오의를 투영하고자.

데일의 세계에서 사상으로 쌓아 올린 데스나이트가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체내에 있는 오러를 억지로 뒤틀고, 성 막달레나 기사의 사상을 덧씌워 그 색을 역전시켰다.

후우웅!

작센의 흑검이, 찬란하게 빛나는 순백의 오러 블레이드가 되어 빛나기 시작했다.

성 막달레나 기사들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백검. 그러나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카앙!

이내, 오러의 뒤틀림을 이기지 못하고 데스나이트의 육골이 산산이 폭파되었다.

아바타의 형태로 거듭나는 것은 둘째 치고, 당장 오러 블레이드조차 유지할 수 없다. 흑과 백, 상극의 오러를 추구하는 기사에게 무리해서 덧씌운 탈일까.

“…….”

애초에 딱히 커다란 기대를 품은 것은 아니다. 뇌를 집어삼켰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을 100%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이토록 짧은 시기에 이 정도의 성취를 얻는 방법 같은 것은,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이게 슈브의 힘…….”

─ 후후, 마음에 들어?

슈브가 아이처럼 순진하게 미소 지었다.

드레스 자락 밑의 촉수로 무자비하게 범하고 있는 기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스럽다는 듯이 두 팔과 촉수로 데일의 목덜미를 휘감으며.

고작 4서클이다.

대륙 제일의 마법사라 불리는 8서클의 경지, 거기까지 아직 네 개의 서클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이제 막 4서클이 되어 해금(解禁)되기 시작하는 슈브의 능력은 이게 다가 아니리라.

옛 어둠의 어머니.

마도서를 마법사의 검이라고 가정할 때, 그야말로 천하의 명검이란 말이 부족하지 않다.

‘3서클 시절에 흡수하지 못한 마법사들이 아쉽게 됐네.’

생각하고 나서, 이내 고개를 젓는다. 이제 막 4서클이 되었고, 앞으로도 상대해야 할 강자들은 끝도 없으리라. 당장 그의 앞에 있는 성 막달레나 기사가 그러하듯이.

* * *

사상의 세계를 해제하고 나서, 그곳은 파이트 클럽의 경기장 위였다.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해설자들의 웅얼거림과 함께.

새 부리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남자들이, 어느덧 데일의 급소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살검을 필두로 하는 그림자 법정의 ‘고위 암살자’들.

“칼끝을 겨눌 상대를 잘못 고르셨습니다.”

데일이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다행히도, 파이트 클럽의 규칙을 깨트린 자에게는 그에 맞는 처벌이 내려졌지요.”

그의 앞에 널브러져 있는 기사를 보며.

내용물이 사라지고, 힘없이 널브러져 있는 성 막달레나 기사의 모습이 있었다.

두개골 속의 뇌(腦)가 텅 비어버린 껍데기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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