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95화 (95/301)

95화

* * *

작센의 ‘흑검’이자 동시에 용사의 ‘피스메이커’를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가 쇄도했다. 하나의 검에 두 개의 사상을 투영하며, 대륙 칠검의 일좌를 향해서.

비록 마스터 바로 역시 100%의 전력을 다해서 데일을 상대하는 것은 아니리라. 어디까지나 데일의 그릇과 역량을 가늠해볼 심산일 테니까. 당장 그의 ‘아바타’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방심할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살검.

그의 이름처럼, 그리고 그의 검에 깃들어 있는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사의 도리 따위에 개의치 않고, 비열할 정도로 철저하게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수의 검.

카앙!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와, 작센의 흑검이 맞부딪쳤다.

후웅!

맞부딪쳤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어느덧 손에서 십수 자루의 암기들을 부채꼴로 흩뿌리고 있었다.

암기 하나하나에 정교한 핏빛 오러가 실려 있는 결정타. 그 일격에 맞서, 데일이 다급히 ‘그림자 망토’의 방패를 형성했다. 튕겨내기 위함이 아니다.

“허미, 쉬이펄…….”

흩뿌려지는 일체의 암기를, 데일의 그림자 망토가 말 그대로 삼켜버렸다.

“캬, 금수저라 그런지 물고 있는 아티팩트도 아주 그냥 기가 막히네.”

동시에 용사의 검을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가, 마스터 바로를 향해 짓쳐 들었다.

“게다가 데스나이트의 검을 이 정도 레벨로 조종하다니.”

데스나이트와 검을 맞부딪치며, 마스터 바로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륙 칠검에 맞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호각에 가까운 검무를 펼치는 ‘용사의 대행자’를 보고.

“허허, 이거 아주 그냥 보통 애새끼가 아니었네.”

“…….”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삼류 양아치가 따로 없었으나, 적어도 그의 검은 격이 달랐다. 그렇기에 데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흑색 로브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펄럭이며, 어디까지나 후방에서 데스나이트를 엄호를 자처하며.

미친 듯이 펄럭이는 그림자 망토의 음영을 따라, 섀도우 불릿이 쏘아졌다.

흩뿌려지는 그림자의 총알들. 그 앞에서, 마스터 바로의 모습이 다시금 사라졌다.

“……!”

신속(神速)의 움직임? 아니, 아니었다. 너무나도 빨라서 좇을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동시에 데일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 즉시 그림자 망토 속에 깃들어 있는 《섀도우 러커》들이, 일제히 가시 촉수를 내뿜었다. 데일의 등 뒤를 잡고 일검을 휘두르기 직전의 암살자를 향해서.

촤아악!

성체로 거듭나 있는 ‘섀도우 러커’의 가시 촉수는 이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바로 그 가시 촉수들이 휘몰아쳤고, 데일이 재빨리 등을 돌렸다.

마스터 바로는 그곳에 있었다.

발밑에서 치솟는 가시 지옥 앞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미동조차 없이. 그리고 그를 향해 쇄도하는 가시 촉수들이, 마치 믹서기에 갈리듯 뒤틀리며 잘려나갔다.

‘섀도우 러커의 가시 촉수를…….’

마스터 바로 정도의 강자에게 그림자를 베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금 그가 보여준 것은 검(劍)이 아니었다. 주위 일대가 뒤틀리며,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처럼 가시 촉수를 갈아버린 것이다.

살검(殺劍) 마스터 바로는 전생의 데일과 직접 검을 맞부딪친 적이 없다.

적어도, 전생의 용사와 검을 맞부딪치고 살아남은 자 따위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의 이름, 그리고 그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바가 있었다.

검의 극의에 이르러 있는 기사가 투영하고 있는 사상(思想)에는, 그 자체로 마법과 구별할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꼭 아바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상 조작…….”

이 세계에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가령 텔레포트 같은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도의 규모가 아닐지라도, 일시적으로 좌표계의 위상(位相)을 조작함으로써 거리를 좁히거나, 그것을 무기로 삼아 상대의 육체 그 자체를 뒤틀어버릴 수 있다.

왜곡의 힘.

그가 대륙 칠검 중 하나에서, 대륙 제일의 암살자로 거듭날 수 있는 비의. 동시에 그것은 살검이 가진 능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호오.”

마스터 바로가 놀란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있었나?”

“움직임을 보고 직감했습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아주 그냥 소름 돋는 꼬맹이가 따로 없네.”

“칭찬이라고 받아들이지요.”

“이 이상 전력으로 싸웠다가는 대법정 꼴이 남아나질 않겠지.”

마스터 바로가 말했다.

“계시니 어쩌니, 솔직히 말해서 저기 있는 댁들의 이야기는 알 바 아니야.”

“…….”

“적어도 작센 가의 장남에 대해 떠들어대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겠네.”

그 말과 동시에, 마스터 바로의 검을 휘감고 있는 핏빛 오러가 사라졌다.

이 이상 싸움이 격해질 경우 여차할 때는 ‘피스메이커의 힘’을 발동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사태까지는 피해갈 수 있었다.

“바로 그 작센 공작 가, 그리고 ‘검은 공자’의 이름이 허명이 아니라고 할 경우…….”

마스터 바로가 검을 집어넣으며, 그를 따르고 있는 새 부리 마스크의 암살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을 나이에 이 정도의 경지를 손에 넣었으면서, 아직 그 재능이 제대로 꽃피지도 않았겠지.”

그림자 법정의 암살자들을 향해서.

“그럼 뭐, 깊게 생각할 것 있나.”

냉정하게 데일의 격을 가늠하고,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뭐하냐, 느그들 새 보스 앞에서 대가리 박지 않고.”

“……!”

마스터 바로의 말에, 새 부리 마스크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이 세계의 마지막 불꽃을 거두고, 그림자의 제국을 가져올 자.”

어느덧 흑색 붕대를 두르고 있는 그림자 성녀가 입을 열었다.

“흑색의 사도이자, 그림자 군주시여.”

데일의 앞에서, 그림자 법정의 모두가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부디 불과 빛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당신의 제국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세요.”

그들 앞에서,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의 믿음은 보답받을 것입니다.”

그들의 말처럼, 불과 빛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하고, 그저 그게 다였다.

신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데일 자신의 의지로.

데일이 신을 믿고 믿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필요에 따라서는, 기꺼이 그들의 신이 되어줄 각오가 되어 있었으니까. 설령 그것이 덧없는 허신(虛神)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 대가로 충성을 얻기 위하여.

그림자 법정.

일찍이 백색 마탑을 피해 음지 속으로 몸을 감춘 ‘그림자 교회’의 후신(後身). 그들이 데일의 뜻대로 움직이는 이상,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였다.

“머지않아 블랙마켓이 열리고, 차기 시티 마스터를 결정하는 투표가 시작되겠지요.”

길드 시티의 사법 집행자, 나아가 대륙 제일의 암살자 조직.

“제 손으로 차기 시티 마스터를 결정하는 데 있어, 그림자 법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흑색의 사도이자 그림자 군주가, 그의 새로운 수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 * *

칼리말라 길드의 도시. 길드 마스터의 시청사 앞.

그곳에 ‘작센의 데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드 마스터 암살 미수 사태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

“당장 무릎을 꿇어라!”

도시의 위병(衛兵)들이 데일을 향해 창날을 향했고,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대답했다.

“고작 그깟 창 몇 자루로 저를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

노골적이기 그지없는 겁박 앞에서, 위병들의 표정이 움츠러들었다.

데일의 말이 맞았다. 당장 데일의 뒤에서 작센 가의 흑검을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 미풍조차 불지 않는 곳에서 펄럭이고 있는 ‘그림자 망토’의 어둠. 그 앞에서, 일개 도시 경비병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란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데일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말을 잇는다.

“다행히도 ‘그림자 법정’이 저의 결백과 무고함에 대해 판결을 내렸고…….”

품속에 있는 서류 하나를 꺼내며.

“이것이 바로 그들의 보증입니다.”

서류에는 길드 시티의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그림자 법정’의 판결과 서명이 쓰여 있었다.

‘무죄(Innocence)’.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들의 서명이다. 적어도 길드 시티 내에서, 함부로 ‘그림자 법정’의 이름을 사칭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저의 결백과 함께, 작금의 상황에 대해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에게 알리고자 하는 무척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데일이 말을 잇는다.

“부디 길을 비켜주십시오.”

일순 도시 경비병들 사이에서 당혹 서린 망설임이 돌았고,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 * *

예의 ‘검은 공자’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경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명색이 일곱 대 길드의 마스터 중 하나다. 황금이 일체의 것들을 정당화하는 이 무법지대에서, 자신의 목숨이 노려지는 일 정도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겪어 왔으니까.

게다가 바로 그 ‘그림자 법정’이 그의 무죄를 보증해주고 있지 않나. 그렇기에 몇 명의 믿을 수 있는 호위를 데리고,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가 데일을 맞이했다.

“사태가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데일이 입을 열었다.

“제국과 적색 마탑의 대리자가, 앞서 움직였지요.”

“제국과 적색 마탑이……!”

그 이름을 듣기 무섭게,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가 숨을 삼켰다. 설마 이 다툼에 바로 그 제국과 적색 마탑이 참가할 줄이야. 체급이 다르다.

“이미 일곱 대 길드 중 하나에 접촉을 마친 모양입니다.”

“……설마 일이 그렇게까지 커질 줄이야.”

칼리말라의 길드 마스터가 조용히 입술을 악물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이득의 저울추를 움직이고 있었다. 시티 마스터의 자리가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욕망은 밑바닥 뚫린 항아리와 같고, 그것은 설령 일곱 대 길드의 마스터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제국과 적색 마탑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것.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길드 마스터가 말을 잇는다.

“우리의 동맹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시금 재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령 천금의 재화가 있다 해도, 목숨보다 소중할 리는 없다.

그리고 제국의 대행자, 적색 마탑이 직접 움직이고 있는 이상…… 일곱 대 길드 마스터의 처세로서, 이 이상 욕심을 부리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과욕이다.

그 점에 있어서 레이 유리스의 경고는 참으로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목숨을 빼앗는 이상으로 그는 공포의 힘을 알고 있었다.

“두려우십니까?”

그렇기에 데일이 입을 열었다.

“제국의 대행자, 적색 마탑이 뒤를 봐주고 있는 길드 마스터와 맞서는 것이.”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레이 유리스의 손에 놀아날 수는 없는 까닭에.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께서는, 차기 시티 마스터가 되실 겁니다.”

데일이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부탁이나 요청이 아닙니다.”

일찍이 레이 유리스가 그러했듯이.

“어디까지나 결정 사항이지요.”

거스를 수 없는 힘.

적색 마탑이 흑색 마탑의 ‘공포’를 카드로 사용하고 있는 이상. 데일 역시, 기꺼이 적색 마탑의 방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적색과 흑색의 격돌.

그 고래들의 싸움 앞에서, 칼리말라 길드 마스터의 장고(長考)나 이득의 저울추 같은 것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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