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90화 (90/301)

90화

* * *

노크 세 차례, 그리고 두 차례, 텀을 두고 다시 세 차례. 시프 길드 ‘컬라이더스코프’의 아지트를 찾은 사람이 왔다는 증거였다.

아마도 일의 의뢰를 하러 왔겠지.

실력 있는 범죄 길드는 그에 맞는 고가의 의뢰비가 필요하며, 그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이들을 위해 그들 같은 조무래기 길드가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급 시프 베이커가 고객을 마중하러 나왔다. 바깥에는 흑색 로브 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어쩐 일로 여기를 찾아오셨소?”

“의뢰를 하러 왔습니다.”

후드에 가려져 얼굴을 볼 수는 없었으나, 다소 애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참으로 잘 찾아오셨습니다!”

하급 시프 베이커가 미소와 함께 말을 잇는다.

“우리 ‘컬라이더스코프’는 고객의 바람을 이루어드리는 요정과 같지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까?”

“그렇고말고요!”

베이커가 소리 높여 말을 이었다.

“훔치고 싶은 것부터 죽여주길 바라는 사람, 내지는 그의 목을 졸라 바라는 정보를 얻는 일까지!”

어디까지나 그들이 감당할 역량 아래에서,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베이커가 친절하게 설명을 마치자, 로브 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길드의 살생부에 적혀 놓고 빠져나갈 수 있는 자 따위는 없지요.”

“참으로 믿음직스럽네요.”

끄덕이고 나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컬라이더스코프의 멤버 전부.”

일말의 바람조차 불지 않는 그곳에서, 그의 흑색 로브를 펄럭이며.

“그것이 제가 바라는 ‘살생부’입니다.”

“……?”

“너희들에게는 받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

데일이 일말의 감정조차 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하급 시프 베이커가 그 말을 미처 이해할 틈조차 없이…….

푸욱!

무엇이, 그의 목젖을 향해 내리꽂혔다.

“컥, 컥컥!”

칠흑처럼 어둡고 가느다라며, 시퍼런 서슬을 빛내는 그림자의 칼날이다. 그림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목을 찢고 나서, 흡사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의 체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자 기생충.

“키, 키에에에엑!”

이 세상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절규가 울려 퍼졌다.

* * *

시프 길드의 아지트. 목로를 따라 몇 명의 시프들이 술을 걸치고 있는 그 자리에서, 로브 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놈 뭐야? 여기를 어떻게…….”

고객이 여기까지 발을 들일 수는 없다. 그 직후, 남자의 로브 위로 묻어 있는 피를 보고 도적의 감(感)이 소리쳤다.

“적습, 적습이다!”

도적이란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는지, 일제히 암기 세례가 흩뿌려졌다. 터무니없을 정도의 신속이다.

카앙!

그러나 그 중 무엇 하나 남자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흑색 로브가 펄럭이며, 칠흑의 방패를 형성해 암기를 모조리 튕겨냈다. 칼날이 아니라 철저한 방패의 형태로.

4서클의 경지에 이르러 성장한 것은 데일 자신이 다가 아니었다. 그의 아티팩트, 그림자 망토 역시 예외일 수 없으니까.

“여기는 나의 영역이다.”

데일이 차갑게 중얼거렸고, 어둠의 호수가 아지트 일대를 수몰시키듯 퍼져나갔다.

“흐, 흑마법이다!”

그림자 위에서, 컬라이더스코프의 이들이 당혹과 함께 숨을 삼켰다.

“죽여, 당장 거리를 좁혀서 마법사 놈들을 죽여!”

몇 명의 중급 시프가 재빨리 결정을 내리고, 어둠의 호수 위에서 쇄도했다. 그 직후 호수 속에 잠복하고 있는 ‘그것’들이 침묵을 깨트렸다.

《섀도우 러커》.

푸욱!

시프들이 땅을 박차며 쇄도하고 있는 그 상태에서, 정확히 그들의 발밑을 노리고 솟은 가시 촉수. 사타구니부터 시작해 뇌와 두개골에 이르기까지 가시 촉수가 내리꽂혔다. 흡사 블라드 체페슈의 말뚝형처럼.

시프들의 육체가 허공에서 그대로 고정되었다.

“컥, 커헉……! 케흑!”

그림자 속에 잠복하고 있는 ‘섀도우 러커’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도 4서클의 성장과 함께 더더욱 커다란 ‘성체(成體)’로 거듭나서.

가시 지옥.

그림자 속의 잠복자들이, 일제히 가시 촉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시프 길드의 아지트 전체를 휘감고 있는 어둠의 호수에서.

“사, 사, 살려줘!”

“아아아악!”

섀도우 러커들의 도륙. 무엇 하나 예외일 수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갈기갈기 찢겨 있는 고깃덩어리. 잘린 사지와 목, 창자가 어지럽게 널브러졌다.

흡사 삼류 스플래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피 칠갑 속에서,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히, 히이익……!”

명색이 ‘길드 마스터’랍시고,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아 있는 상급 시프 하나를 향해.

“우, 우리에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데일이 덤덤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처럼 울먹이며 시프 길드의 마스터가 되물었다. 그에게 이 이상 싸울 수 있는 투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격(格)이 달랐다. 자신 같은 조무래기는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압도적 강자.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어둠의 호수 속에서, 그로서는 영문조차 알지 못하고 벌벌 떨며,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몇 해 전, 너희 길드의 시프들이 작센의 동토를 찾아왔지.”

“…….!”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컬라이더스코프’에게 있어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의뢰였고, 그 말을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서, 설마, 작센 가의…….”

데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작센의 이름이 그토록 우습게 느껴졌나?”

작센 공작 가의 악명(惡名).

“우리 가문의 이름이, 일천의 금화 앞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정도로 우습게 느껴졌나?”

그 악명에도 불구하고 성검사가 제시한 재화에 맹목이 되어 의뢰를 받아들였다. 바로 지금이 되어서야,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하, 하하…….”

시프 길드 ‘컬라이더스코프’의 마스터가 벌벌 떨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 상대는 바로 그 ‘작센 공작 가’였다. 북부의 동토를 지배하는 어둠의 일족, 바로 그 괴물들의 수장.

“너희들은 그 의미를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니미랄 괴물 새끼…….”

컬라이더스코프의 길드 마스터가 체념한 듯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섀도우 불릿.”

데일 역시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림자 총알이, 일곱 개의 흑색 총신(銃身)을 따라 끝없이 쏟아졌다.

「블랙 배럴」, 「개틀링식」.

이계의 심상을 투영하는 일에 있어, 이 이상 거추장스러운 수식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듯.

* * *

그로부터 얼마 후.

시프 길드 ‘컬라이더스코프’의 아지트에서 벌어진 참상이 외부에 알려졌다. 그 지옥 같은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울러 그 참상 속에는, 흑색의 천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작센 공작 가를 상징하는 문장(紋章)…… 밤까마귀 자수가 새겨져 있는 천 조각이.

* * *

아르테 디 칼리말라의 시청사.

바로 그 관저의 일실에 데일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는, 그가 거느릴 수 있는 최대의 경비 병력을 데리고 데일을 맞이했다.

얼마 전, 뒷골목의 시프 길드에서 벌어진 참극을 기억하며. 그곳에 놓여 있는 흑색 천 조각의 의미를, 그 역시 모를 리가 없는 까닭에.

밤까마귀(Night Raven). 작센 공작 가를 상징하는 문장.

“너무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데일이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들에게는 일찍이 청산해야 할 빚이 있었으니까요.”

“처, 청산해야 할 빚입니까.”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말씀드렸듯이, 제 제의에 대해서는 충분히 숙고할 여유를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데일이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외부자가 듣기에는, 다소 껄끄럽지 않으실지.”

“…….”

길드 마스터의 표정에 일순 동요가 어렸다. 그러나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로서 갖는 가치가 일개 시프 길드 따위가 같을 수는 없으리라.

“모두 물러나라.”

생각 끝에 길드 마스터가 말했다. 그를 지키고 있는 호위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날, 작센 가의 대리자로서 데일이 제의한 것.

작센의 이름으로 자신이 시티 마스터가 될 수 있도록 돕되, 그 대가로 시티 마스터의 ‘장부’를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미 그 이득과 손해의 저울추에 대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셈을 마친 뒤였다.

그리고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가 내린 결정은 하나였다.

“제의를 수락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 장부…… 적어도 작센 가와 공자님께서는 그 의미에 대해서 모르지 않으실 테지요.”

시티 마스터의 장부.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합법적 · 비합법적 사업 자금의 흐름. 나아가 길드 시티에 부채(負債)를 짊어지고 있는 귀족 리스트의 일체. 나아가 몇 자루의 검이 어디로 팔렸고, 어디로 팔릴 예정이며, 어디서 몇 자루의 검을 사기 위해 채무를 짊어졌나.

장부의 페이지를 흘끗 보는 것 하나로, 어디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길드 시티의 진짜 힘은 바로 그 정보를 쥐고 있는 것에서 비롯되며, 데일이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정보와 신뢰의 심장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요.”

데일이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도대체 작센 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일순, 데일이 침묵을 지켰다.

“흑색을 다시 위대하게.”

침묵 끝에, 데일이 대답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입니다.”

다시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갈등이나 망설임의 침묵이 아니었다.

“작센 가의 제의를 수락하겠습니다.”

각오 끝에, 칼리말라 길드의 마스터가 말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데일이 미소와 함께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길드 시티에서, 데일의 여정은 이제 막 일부 능선을 넘었을 따름이다.

* * *

시티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일곱 길드 마스터 중 4명의 동의를 손에 넣어야 하며, 결코 자기 자신에게 투표할 수 없다. 그렇기에 길드 마스터는 자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 명 중 하나에 ‘의무적으로’ 표를 넣어야 했다.

그렇기에 시티 마스터를 결정하는 것이 ‘블랙마켓’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는 것은…….

그곳에 모여 있는 대귀족의 대리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길드 마스터를 ‘차기 시티 마스터’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써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암투(暗鬪).

‘아마 나 하나가 아니겠지.’

그러나 감히 작센 가의 이름에 필적할 수 있는 상대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제국 유수의 대제후들, 기껏해야 그 숫자는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리고 그중에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자. 그것은 바로 제국 그 자체였다.

제국과 황제, 나아가 적색 마탑의 이름을 뒷배 삼아 그들의 ‘대리자’ 역시 접선을 하고 있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 당장 생각할 일은 아니다. ‘칼리말라의 도시’를 떠나, 어느덧 데일은 ‘라나의 도시’를 향하고 있었다.

‘아르테 델라 라나’.

일곱 대 길드 중 하나이자, 길드 시티의 일곱 도시 중 하나. 바로 그곳에 있는 뒷세계의 상징을 향해.

파이트 클럽(Fight Club). 목숨을 걸고 펼쳐지는 지하 투기장.

천하의 귀하신 공자님이 그곳에 나서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일찍이 그가 ‘컬라이더스코프’를 통해 칼리말라 길드에게 그의 악명을 과시했듯, 차기 시티 마스터를 결정하는 데 있어 대리자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그 점에 있어 무규칙의 지하 투기장처럼 적합한 자리는 없으리라.

그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데일 하나가 아닐 것이며, 파이트 클럽에서 벌어지게 될 경기 역시 일개 조무래기들의 싸움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블랙마켓의 초청장을 받고 대륙 각지에서 대귀족의 대리자들이 집결하는 자리이자, 4서클의 역량을 가감 없이 펼칠 수 있는 시험의 장. 그들을 꺾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확실하게 작센 공작 가의 이름을 증명할 기회가 될 것이다.

제국과 황제…… 적색 마탑의 대리자를 쓰러뜨림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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