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86화 (86/301)

86화

* * *

“나에게 아이스 볼트를 쏘아보거라.”

세피아의 말에 데일이 일순 주저했다. 자신의 아이스 볼트──아니, 아이스 불릿에 투영하고 있는 살상의 수식(修飾)을 떠올리며.

그 직후, 데일이 일부러 마법의 위력을 감소시켜 쏘려는 찰나.

“걱정할 필요 없이, 전력을 다해 쏘거라.”

세피아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데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거리를 벌린다.

“아이스 불릿.”

그대로 ‘네 개의 서클’에서 생성되는 청색 마력을 응집시켜, 얼음의 총알을 내리꽂았다.

타앙!

그마저 데일의 기준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가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3서클 시절과는 비할 바 없이 빠르고 신속하며, 그 살상력이나 파괴력 역시 비할 바가 아니다. 설령 엘프의 동체 시력이라 할지라도 잡아낼 수 없는 살육의 정수. 그랬어야 했다.

“──!”

그러나 얼음의 총알이 세피아를 향해 내리꽂히려는 순간. 아이스 볼트를 구성하고 있는 청색 마력의 직조가, 실이 풀리듯 맥없이 풀리며 흩어졌다.

“……!”

“네 청색 마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로 응축되는 지점을 느낄 수 있었다.”

데일의 아이스 불릿을 막아내고 나서, 세피아가 말을 이었다.

“아울러 냉기의 ‘화살촉이 가리키는 각도’로 미루어, 어느 방향으로 내리꽂힐지 예측할 수 있었지.”

마법이 발생하는 지점, 나아가 나아가는 경로를 예측했기에 가능한 무효화.

“마법이 생성되기 이전에…….”

마법이 아니라, 마법을 구성하고 있는 그 요소 자체에 집중한다.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여지 자체를 봉쇄하는 것. 그것은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추구하는 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였다.

“조금 더 강한 마법을 써보지 않겠느냐?”

세피아가 입을 열었다.

“……4서클의 전력을 말입니까?”

“마음껏 너의 역량을 펼쳐 보거라.”

세피아가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 직후. 데일이, 얼음의 벽을 세워 올렸다.

“「트리플 배럴」 · 「12게이지 벅샷」.”

얼음의 벽 그 자체를 ‘냉기의 총구’로 삼아서. 세열의 수식을 추가해 터뜨리고, 세 개의 총열에서 수십여 발의 산탄(散彈)이 흩뿌려졌다. 아니, 흩뿌려지려고 했다.

“……!”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멀쩡하게 솟은 얼음의 벽이, 그대로 고정되어 있을 따름이다. 데일이 투영하고 있는 수식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고.

“마력을 물과 같다고 생각해 보거라.”

그 모습을 보고, 세피아가 입을 열었다. 고위 경지의 수(水) 속성 마법사로서.

“마력 구조를 고정시켜, 수식의 투영을 저지한 겁니까?”

“이해가 빠르구나.”

세피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디스펠 마법의 개요를 설명했다.

마력이 물을 이루고 있는 ‘물 분자’에 해당한다고 가정할 경우, 마법은 물 분자가 모여 있는 물이다. 그 마법에 투영하는 수식은 물속에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물의 맛을 바꾸는 개성과 같다.

그러나 물 분자에 해당하는 마력 자체를 고정할 경우, 물 분자의 운동이 정지 상태에 가까워지며 물이 얼고──얼음 위에는 아무리 설탕을 쏟아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 마법사들이 그렇게 청색 마탑을 싫어하는지 알겠군.’

청색 마탑이 오색 마탑의 일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의미에서는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리라.

자신의 마법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대의 마법에 의식을 집중함으로써, 상대의 의도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청색 마탑의 장기. 스펠 카운터.

“자, 이제 네 앞에서 마력의 움직임을 보여줄 것이다.”

세피아는 곧바로 실전을 위한 가르침에 착수했다. 그녀의 서클에서 생성되는 청색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그녀의 주위를 휘감았다.

“청색 기류에 의식을 집중하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흐름의 정체(停滯)를 잡아내는 것이다.”

청색 기류가 정지하는 지점. 마력의 흐름이 멈추고 응집하는 지점. 그러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 마법사의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세피아는 데일이 파악하기 쉽도록, 다분히 과장되게 청색 기류를 요동쳤다.

그 지점을 향해, 데일이 의식을 집중했다. 상대의 마력을 ‘물 분자’라고 가정하고, 어디까지나 그 분자를 고정하기 위해.

바로 그때, 세피아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정체되었고 그 지점을 저격하듯, 데일이 자신의 ‘청색 입자’를 날렸다. 일찍이 세피아가 보여준 《청색 불협화음》을 기초적 레벨에서 모방한 것이다.

‘저격 마법과 융합하는 것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겠어.’

데일이 덤덤하게 이 마법의 활용을 생각하고 있자니.

“……!”

데일의 모습에 세피아가 놀란 듯 숨을 삼켰다.

‘꼭 해킹 같군.’

상대의 마력이 구조화하기 직전에 침투해, 그 구조를 어그러뜨린다.

“잘했다.”

세피아가 생성한 마력의 흐름이, 데일의 개입을 받아 탁류(濁流)가 되며 엉켰다.

타앙!

그러나 데일의 《청색 불협화음》이 하나의 마법을 저격하는 동시에, 소용돌이 속에서 또 하나의 마력이 응집되었다.

‘……!’

볼트 마법이 쏘아졌고, 데일이 재차 의식을 집중했다. 마법의 형성 레벨에서 저지하지 못할 경우, 그다음 쏘아지는 마법 자체를 봉쇄하는 것. 세피아가 가르쳐준 대로 데일이 다시금 의식을 집중했다.

그녀가 날린 것은 기초 레벨의 아이스 볼트다.

볼트가 형성되는 지점 ─ 화살촉이 향하는 방향으로 미루어 경로를 예측하고, 볼트 마법이 쏘아지는 경로에 ‘마력 구조를 깨트리는 덫’을 설치한다.

이계의 수식 ─ 「용해」를 더함으로써.

타앙!

세피아의 볼트가 쏘아지고, 예상대로 데일의 디스펠 트랩이 그녀의 볼트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의 볼트가 쏘아졌다.

“……!”

둘, 셋, 일제히 쏘아지기 시작하는 볼트 세례 앞에서 데일이 이를 악물었다. 하나하나 감당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다.

“템포(Tempo)를 놓쳤구나.”

데일의 분투 앞에서, 세피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상대를 봉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템포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세피아 선생님이 《청색 불협화음》을 흩뿌린 것처럼요?”

“그것도 템포를 잡는 행위의 일종이지.”

템포를 잡는다. 그것은 마법사들 사이의 싸움에서, 주도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속도의 우위를 의미했다.

“그럼 템포를 잡는 가장 기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상대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항상 유리한 교환비를 가져가는 것이다.”

세피아가 말했다.

“나는 빠르게 볼트 마법을 날려 낮은 코스트(Cost)의 마법으로 공세를 취했지.”

낮은 코스트. 빠르고 쉽게 영창할 수 있는 하위 마법들. 그 하나하나를 모조리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역량이, 데일에게는 없었다.

“가령 디스펠 마법에 드는 코스트를 5라고 가정했을 때, 볼트의 코스트는 1에 불과하다.”

가장 쉽고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기초 마법.

“이 5:1의 교환이 거듭해서 이루어질 경우, 어느 쪽이 유리하게 될까?”

대답할 것도 없는 물음이었다.

“네가 보여준 《청색 불협화음》은 훌륭했다.”

세피아가 대답했다.

“그러나 일개 볼트 마법 따위를 막기에는 그 가치가 너무 크지.”

“확실히…….”

마법 하나하나가 갖는 가치의 값을 이해하고, 마법의 상호 작용 속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점에 대해. 나아가 ‘템포를 잡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 그 깊은 깨달음에는 데일조차 경이를 감출 수 없었다.

“상대보다 앞서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이어지는 세피아의 설명은 그야말로 ‘순수한 마법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사도(邪道)라고 할 수 있는 데일과 달리, 철저하게 마법의 정도(正道)를 걷는 세피아의 깨달음.

“그럼 지금부터.”

세피아가 입을 열었다.

“가장 낮은 코스트의 무효화 마법부터, 고위 마법사의 영창을 막아내는 데 이르기까지.”

고위 청색 마법사가 전투에 임하는 방식은 무척 알기 쉬웠다.

“천천히 나와 함께 알아보자꾸나.”

“네, 세피아 선생님!”

철저하게 전투의 템포를 손에 틀어쥐고, 절대 적의 페이스에 넘어가지 않는다. 막고, 막고, 막고, 막고, 또 막는 것이다. 상대의 입에서 ‘청색 XX’라는 쌍욕이 나오며 정신이 무너질 때까지.

‘어느 의미에서는 참으로 악랄하지.’

그러나 제대로 활용할 경우,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있어 그야말로 천적과 같은 상성이리라. 동시에 청색 마법을 이해하는 것은, 청색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데일에게 있어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최고의 배움.

“네 배움의 성과가, 벌써 기다려지는구나.”

세피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직 배울 것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는 듯이.

청색 마탑이 쌓아 올린 마법의 정수. 그것은 3서클이나 4서클의 어린 마법사들이 따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재능의 여부와 별개로 ‘무효화 마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그 이상의 깨달음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그 고도의 마법을, 그저 보는 것으로 카피해 자신의 것으로 손에 넣었다.

“역시 나의 제자다.”

“최고의 스승을 두고 있으니까요.”

세피아의 말에, 데일이 남의 일처럼 웃었다. 데일이 4서클의 경지를 얻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각별했다.

데일이 지금껏 보통의 3서클 마법사가 아니었듯이, 거기서 다음 경지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결코 ‘보통의 깨달음’이 아닐 테니까.

재능이나 기교를 넘어, 마도의 깨달음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

비록 데일이 사도를 추구하는 마법사라 해도, 결과적으로 그가 손에 넣은 4서클의 깨달음은 그렇지 않았다.

4서클의 경지가 되었기에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는 청색 마탑의 비의. 다시 말해, 천하의 데일조차 4서클이 되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임을 의미했다.

바로 그 미지의 영역을 손에 넣은 데일이, 새 깨달음과 함께 얻게 될 경지는 무엇일까. 데일이 보여주는 경이적 재능 앞에서, 다시금 세피아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은 열정이었다.

흑마법사가 보조 속성으로 습득한 청색 마법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이 아이가 청색 마법의 정수(精髓)를 손에 넣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피아는 더 이상 일개 풋내기를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아니었다. 일찍이 흑색공이 데일을 ‘그의 정당한 후계자’로 받아들였듯이, 청색 마탑의 장로가 가진 정신을 이어받는 ‘어엿한 후계자’가 그곳에 있었다.

* * *

카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그림자 칼날의 검이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검객으로서.

데일의 기사 검이, 대륙 칠검이라 일컬어지는 남자와 부딪치고 있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비록 헤이스트 등의 가속 마법으로 육체를 강화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오러를 사용하는 대륙 칠검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공자님! 슬슬 항복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휘둘러지는 일검 하나하나가 터무니없이 무겁고, 동시에 빠르다. 속도와 중량. 일정 이상의 경지를 가진 기사들에게, 속도와 중량은 양자택일의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데일은 착실하게 자신의 검에 ‘사상’을 투영하고 있었다.

용사의 검, 피스메이커. 바로 그 ‘검의 기억’을.

비록 검의 형태를 직접 투영할 수는 없어도, 검을 이루고 있는 것은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칼날의 소재, 깃들어 있는 마법, 그 검신(劍身)에 깃들어 있는 역사. 바로 그 검을, 남몰래 투영하며 검과 용사의 기억을 더듬어 깨우고 있었다.

지금, 데일의 손에 들린 기사 검을 통해서.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헬무트 경의 일격을 데일의 검이 가로막았다.

‘……!’

기교나 비껴내기가 아니었다. 정통으로 내리꽂히는 대륙 칠검의 세로 베기를, 오러조차 없이 자신의 검 하나로 막아냈다.

‘이제 좀 알겠네.’

비록 전력을 싣고 휘둘러지는 일검이 아니라 해도, 그 무게는 결코 폄하될 수 없으리라.

“어떻게……!”

헬무트 경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헬무트 경.”

거리를 벌린 데일이, 씩 웃으며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마법사의 검’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않는 게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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