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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74화 (74/301)

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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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제국령 내에 진입한 브리타니아 독립군으로부터, 필립의 포로 협상을 위한 전령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필립의 몸값’은 결코 천금의 재화 따위가 아니었다.

식량, 그리고 병기.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수물자였다.

“어머나, 참으로 유감이네요, 백작.”

그 사실을 듣고 레이디 스칼렛이 조소하듯 입을 열었다. 브리타니아 독립군이 제시하고 있는 필립의 몸값.

군수물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사실상 전쟁에서 패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서서히 공세 종말점이 다가오고 있는 적들에게, 지속해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여기서 백작 가의 망나니 필립을 희생시킬 경우, 당장 자랑스러운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대(代)가 끊어지는 것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설령 ‘성처녀’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쳐도, 그녀에게 심게 될 ‘자신의 씨앗’이 제대로 기능할 거란 보장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필립이 일말의 재능조차 없는 망나니라 할지라도,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이유였으니까. 부자(父子) 사이에 남아 있는 일말의 정 따위가 아니라.

그렇다고 백작 가의 대를 지키고자, 군수물자를 내주고 필립을 돌려받을 경우…… 전쟁의 패배에서, 그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오롯이 성검사의 몫이 될 것이다. 제국 전체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겠지.

최악의 딜레마였다.

“…….”

성검사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악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몸값을 지불하고 필립 공자님을 돌려받지요.”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느닷없는 말에, 성검사는 일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했느냐?”

“보아하니, 백작 가의 대와 패배의 책임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데일이 말했다. 마치 성검사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야말로 정곡이었다.

“그러나 필립 공자님을 무사히 살리고,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을 방법이 있습니다.”

“뭐, 뭐라고……?”

일찍이 데일이 보여준 군사 전략의 천재성은, 성검사조차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이었다.

“당장 말해 보아라.”

그렇기에 성검사가 되물었다.

“아, 그럴 수는 없지요.”

그러나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를 흘렸다.

“일찌감치 전공을 독차지하기 위해 저를 구석에 처박아 놓고서.”

“……!”

“참으로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성검사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바라는 것을 말하라.”

그러나 지금은 앞뒤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고작 12살짜리 애송이에 불과하다 해도, 어쨌거나 ‘검은 공자’의 재능 앞에서는, 천하의 성검사라 할지라도 도리가 없을 테니까.

“저에게 두 가지를 약속해주십시오.”

“무엇을 약속하라는 것이냐.”

“하나, 추후 벌어질 일체의 전투와 작전 과정에서, 제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

다시 말해, 공식적으로 데일을 이 전투의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둘, 이 전투에서 사로잡게 될 포로의 처우 일체를, 전적으로 제 결정에 맡길 것.”

“하!”

그 말에, 성검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천하의 전쟁 영웅 앞에서, 그토록 무모한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감히 네깟 애송이 따위가 주제를 모르고……!”

도를 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작센 가의 장남이 ‘군사 전략의 천재’라 해도, 이토록 터무니없는 굴욕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데일이 아랑곳하지 않고 되물었다.

“이대로 백작 가의 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오롯이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미래가.”

마치 성검사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

“귀족들이란 참으로 교활하고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족속들이지요.”

“…….”

“당장 백작님을 제국의 위대한 전쟁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는 자들조차, 그 칭송이 조롱으로 바뀌는 데는 사소한 계기 하나로 족하니까요.”

정곡이었다.

“그러나 걱정하실 것 없답니다.”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백작님께서 제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저 역시 그에 걸맞은 ‘대가’를 감수할 예정이니까요.”

대가.

“설령 제 제의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이 패배로 돌아갈 경우.”

그 뒤로 이어지는 말 앞에서는 제아무리 성검사라도 웃어넘길 수 없었다.

“저는 제 심장을 걸겠습니다.”

심장. 일순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 그게 다가 아닙니다.”

“……!”

“심장과 함께, 이 전투에서 짊어지게 될 패배의 책임 일체는 오롯이 ‘제 몫’이 될 겁니다.”

성검사가 아니라, 자신이 패배의 책임을 짊어지겠다. 자신의 심장과 명예를 걸고 벌어지는 배팅. 레이디 스칼렛조차 데일의 말 앞에서는 웃을 수 없었다.

“…….”

처음으로, 데일 앞에서 그녀의 미소가 사라졌다.

“마침 백색 마탑의 장로들이 이곳에 계시지요.”

“설마…….”

바로 그 설마였다. 백색 마탑이 자랑하는 계약 마법, 기아스(맹약의 구속).

“어떠십니까?”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 못할 경우, 작센의 데일은 패배의 책임을 짊어지고 ‘자신의 심장’을 내걸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야 이길 수 있으니까요.”

일말의 주저도 없이 확신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것이 무엇이지?”

“승리의 영광을 오롯이 독차지하게 되겠지요.”

데일이 대답했다.

“브란덴부르크 백작님의 승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검은 공자의 승리’로서.”

“…….”

5할의 진실을.

“그러나 승리해도 패배해도, 대백께서는 나름대로 얻는 것이 있을 테지요.”

데일이 말을 잇는다.

“승리할 경우, 필립 공자님을 무사히 돌려받고 패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패배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백작 가의 장남을 무사히 돌려받고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은 데일이 될 테니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배짱.

“정말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냐?”

이미 필립에 의해 5할의 병력을 잃었다. 설령 제국이 성검사나 레이디 스칼렛 등의 ‘규격 외 강자’를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규격 외의 강자를 가진 것은 상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성처녀 오렐리아. 그리고 그녀를 따르고 있는 구 브리타니아 왕국의 강자들. 바로 그 강자들이, 제국의 폭정에 침묵하길 거부하고 독립군에 따르고 있었으니까.

브리타니아 섬의 대주교이자, 백색 마탑의 7서클 고위 장로 ‘토마스 베켓’도 그중 하나였다.

그 상황에서 필립을 돌려받고 대량의 군수물자를 제공할 경우, 천하의 성검사라 할지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리라.

“정말로…… 이 상황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못 이길 것도 없지요.”

바로 그 상황에서, 데일이 ‘자신의 심장’과 패배의 책임 일체를 기아스의 제물로 내걸었다. 일말의 의심조차 없는 승리를 자신하며.

추후 제국에 있어 그 무엇보다 커다란 위협으로 거듭날 자. 바로 그 존재가, 자신의 심장을 내걸고 있다.

그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승리를 확신하고서.

데일의 말처럼, 승리해도 패배해도 얻을 것이 있는 거래였다.

“제의를 받아들이지.”

브란덴부르크 백작에게는 무엇 하나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의였다.

그저 정말로 이 불가능에 가까운 승리를 데일이 손에 넣을 경우, 다시 말해 승리의 영광을 바로 그 ‘검은 공자’가 홀로 오롯이 독차지하게 될 경우.

그 행위가 갖고 올 여파에 대해서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 * *

그 직후.

포로가 되어 있는 백작 가의 망나니 필립을 돌려받고 몸값을 지불하고자, 제국군의 ‘새로운 총사령관’이 독립군이 제시한 포로 협상의 테이블로 향했다.

구국의 기수, 성처녀 오렐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적의 심장으로.

* * *

“작센의 데일 공자님.”

고결하고 기품이 있는 여기사였다.

순백의 갑주에,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금발이 흩날리고 있다. 소드 벨트에는 금빛 자수를 수놓은 칼집에 검을 넣고, 비스듬히 묶고 있다.

도무지 농노의 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하며, 귀족 가의 영애조차 그녀의 기품과 격식을 형용하기에 부족할 정도였다. 일국의 공주? 황녀? 아니, 아니다.

그녀를 형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말이었다.

“성처녀(La Pucelle)…….”

데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에 압도되어, 꿈속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은 잠시였다.

이내 차갑게 머릿속을 식히며, 데일이 고개를 숙였다.

“성처녀 오렐리아 님을 뵙습니다.”

“제국의 사람이 저를 ‘성처녀’라고 부르다니.”

성처녀 오렐리아가 의외란 듯이 대답했다.

“참으로 뜻밖이네요.”

“오렐리아 님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전쟁이니까요.”

데일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마지막에 피를 흘리는 쪽이 결정되기 전까지, 달리 그 주장을 부정할 이유가 없지요.”

이 섬에서 흘리고 있는 피를, 오롯이 그녀의 책임으로 돌리며.

“…….”

일순, 성처녀 오렐리아가 침묵을 지켰다.

“저희의 요구를 들어줄 준비는 되셨습니까?”

“이대로 랭스까지 진격하실 셈입니까?”

데일이 역으로 되물었다.

“유감스럽게도, 공자님의 물음에는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랭스를 수복하고, 그곳에서 샤를 7세를 왕으로 대관(戴冠)하고…….”

데일이 말을 잇는다.

“그 후에는 어쩔 생각입니까?”

일방적으로 대화의 화제를 주도하며.

“그것은 오롯이 국왕 전하의 뜻에 달려 있지요.”

오렐리아가 대답했다.

“저는 그저 시스티나 자매신의 계시를 수행하는 종에 불과합니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시니, 여쭙고 싶은 게 있네요.”

“말씀하십시오.”

데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 하늘 위의 전지전능하신 여신께서, 일개 세속 국가들 사이의 다툼에 그토록 신경을 쓰시는 이유가 뭡니까?”

“…….”

“자매신께서는…… 여신의 나라가 멸망했을 때조차 침묵을 지키셨지요.”

갸웃거리고 나서, 덤덤히 말을 잇는다.

“브리타니아 왕국이라고 해서 달리 특별하게 여길 이유가 있습니까?”

오렐리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제국이란 나라 역시, 결국 무수하게 태어나고 사라지는 국가 중 하나가 아닙니까.”

그러나 데일이 모독하는 신성(神聖)은 오렐리아의 믿음 하나가 아니었다. 오렐리아의 믿음, 제국의 믿음, 양대 세력의 신성 모두를 부정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말.

“오렐리아 님께서 여신의 뜻대로 샤를 7세의 대관식을 마치고 나서는, 누구의 명령을 따를 생각입니까?”

데일이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신생 브리타니아 왕국의 국왕, 샤를 7세의 명령을 ‘여신의 계시’처럼 떠받드실 겁니까?”

“……생각하는 것은 저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저 여신의 검이자 구국의 기수를 자처하는 자로서, 어디까지나 자신의 미덕은 집행에 있다는 듯이.

“아니요, 오렐리아 님께서는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사담은 이 정도로 하지요.”

오렐리아가 차갑게 데일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디까지나 이 자리는 ‘필립 공자’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한 협상의 장이다. 상대의 노림수에 휘말릴 수 없다는 듯이.

“아, 두말할 것 없이 몸값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데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는다.

“지금에 와서는 사소한 이야기에 불과하지요.”

“무엇이 사소하다는 겁니까?”

오렐리아의 물음에, 데일이 대답했다.

“대대로 왕가의 적통이 대관식을 올린 구 브리타니아 왕국의 수도…….”

랭스. 브리타니아 독립군의 궁극적 목표. 바로 그 도시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데일이 미소 지었다.

“저는 바로 그 랭스를, 성처녀 오렐리아 님에게 바칠 생각입니다.”

“……!”

자신의 심장에 새겨져 있는, 패배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기아스’를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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