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73화 (73/301)

73화

* * *

성검사가 그의 아들을 무리해서 전장에 참여시키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전공(戰功)이다.

그 명성이 제국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는 작센 공작 가의 ‘검은 공자’처럼……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백작 가의 명성을 제국에 울려 퍼지게 하고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필립은 성검사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자, 백작 가의 장남이었다. 그렇기에 성검사가 그의 성검에 어울리는 ‘최고의 그릇’을 낳고 그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형식적으로나마 자신과 더불어 백작 가를 지탱해줄 버팀목이 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랬어야 했다.

‘호부 밑에 개새끼도 그런 개새끼가 없다지?’

‘천하의 성검께서도 자식 농사에는 별수 없었나 보지!’

‘하하, 유서 깊은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도 이걸로 끝이로군.’

‘그에 비해 작센 가의 장남을 보라고! 세상 참 불공평하지!’

그러나 아들의 무능함을 아무리 감추고 감추려고 해도,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색이나 밝히고, 검의 재능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망나니 아들의 무능함을 두고 수군거리는 귀족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성검을 쥐지 못하는 이상,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가세가 땅에 떨어질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나아가 흑백 회전에서의 처참한 패배는, 귀족들의 수군거림에 쐐기를 박는 결과를 가져왔다. 귀족들은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몰락’이 기정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등 뒤에서 그를 비웃었다. 작센 가의 장남, 그 빌어먹을 ‘검은 공자’의 이야기를 끝없이 떠들어대며!

그렇기에 증명해야 했다.

누구도 함부로 백작 가의 장남을 모욕하지 못할 전공을 세우고, 감히 백작 가를 비웃는 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야 했다.

어느 의미에서 ‘검은 공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등감에 젖어 있는 것은 성검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 * *

루아르강. 브리타니아 섬 북쪽의 자칭 ‘신생 브리타니아 왕국령’과, 남쪽의 ‘제국령’을 가로막고 있는 경계.

독립군이 왕국의 수도를 되찾기 위해서는, 바로 그 루아르강의 교량(橋梁)을 넘어 제국령으로 향해야 했다.

그렇기에 제국군 역시 40,000명에 달하는 그들의 주력 부대를 쪼개, 20,000명에 가까운 대부대를 백작 가의 망나니 필립의 지휘 아래 교량을 지키는 핵심 요새 ‘벨 포트’에 주둔시켰다.

“너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다시금, 귀에 못이 박일 정도의 경고와 함께. 그저 그곳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아라.”

성처녀의 힘이 강력하다 할지라도, 이 정도 병력이 지키고 있는 요새를 함락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요새를 뚫지 않고서는 절대 왕국의 수도를 되찾을 수 없다.

설령 아무리 필립이 일말의 재능조차 없는 멍청이라고 해도 개의치 않았다. 필립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요새 ‘벨 포트’를 믿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벨 포트가 불락의 요새라고 불리는 게 아니니까.

그 후 ‘역적들의 군세에 맞서, 목숨을 걸고 요새를 수비한 백작 가의 장남’으로…… 벨 포트 공방전의 무용담을 부풀리고 퍼뜨리는 것은, 아버지 성검사의 몫이 될 것이다.

제국 전체가 백작 가의 장남, 필립의 무용담을 떠들어댈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자신과 백작 가, 그리고 망나니 아들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몸부림이었다.

* * *

그즈음, 데일의 처지는 무척이나 초라했다.

자신이 지휘하는 블랙아머 컴퍼니의 500명, 그리고 구색 맞추기에 가까운 500명의 제국군을 더해 겨우 일천 명의 부대를 쥐여주고, 핵심 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처박았으니까.

사실상의 좌천(左遷)이다.

사전에 ‘검은 공자의 활약’을 저지하고자 성검사 브란덴부르크 백작이 손을 쓴 것이다. 참으로 비열하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수법으로.

“아니, 그 머저리 새끼가 벨 포트를 지키겠다고?”

“그, 그렇다고 합니다.”

그 직후, 성검사가 그의 아들 필립을 핵심 요충지 ‘벨 포트’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고, 이것 참.”

데일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성검사의 저의를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호색한 필립이 역적 무리에 맞서 용감하게 요새를 지켜내고…… 그 활약을 있는 대로 부풀려 백작 가의 위신을 세울 셈이겠지.

천하의 ‘검은 공자’가 이곳 구석에 처박혀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사이에.

‘다들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쁘다, 바빠.’

기실,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누구 하나 ‘제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성처녀 오렐리아가 기적 같은 승리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전투가 곧 전쟁의 승리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제국은 결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국군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은, 하나같이 얼마나 승리의 파이를 차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따로 없어.’

어느 의미에서는 독립군과의 전쟁 이상으로 치열하게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

“요네스 경.”

“말씀하십시오, 공자님!”

“나랑 내기 하나 할까?”

태평하게 말을 잇는 데일의 모습에, 요네스 경이 일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내기요?”

“벨 포트 요새가 며칠 사이에 함락될지.”

데일의 말에, 요네스 경이 놀란 듯 숨을 삼켰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요새에는 20,000명의 제국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거기에는 적의 광역 마법을 저지할 수 있는 마법사 전력도 포함되어 있다.

“천재(天才)가 왜 천재라고 불리는 줄 아나?”

“그, 글쎄요.”

“하늘이 내린 재능, 범재로서는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을 보는 능력.”

느닷없이 자기 자랑이라도 하려는 걸까.

“그 점에 있어, 필립 공자님께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재가 따로 없지.”

아니었다.

“그럼 오히려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닙니까?”

“아니, 패배의 천재라고.”

“…….”

그 말에 요네스 경이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우리 같은 범재가 어찌 감히 천재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겠나.”

데일이 남의 일처럼 말을 잇는다.

“그저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천재의 힘이고…….”

솔직하게 말해서, 데일의 기준에서 벨 포트 요새가 함락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천재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자. 적어도 그 점에 있어 데일은 ‘필립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성검사 따위가 필립 공자님의 천재성을 이해할 리가 없지.”

그렇기에 데일이 말을 잇는다.

“그래서, 요새 함락까지 며칠에 걸래?”

“이, 일주일에 걸겠습니다.”

“나는 3일에 걸란다.”

* * *

3일 후, 벨 포트 요새.

“역적 놈들이 퇴각하고 있다!”

브리타니아 독립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수비대장 필립의 가슴을 메우는 것은 벅찬 감동이었다.

수성에 성공했다. 승리였다.

“나다, 이 브란덴부르크의 필립이 승리했다!”

작센 가의 장남이 아니라, 바로 이 필립이!

이 승리를 두고 제국의 호사가들이 떠들게 될 무용담을 상상했다. 일찍이 ‘검은 공자’가 그러했듯이.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역적들의 공세를 저지하며, 요새를 수성한 백작 가의 장남!

훗날 제국 사람들이 노래하게 될 위대한 승리의 서사시. 그 영웅전기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무용담이 되리라.

‘아니, 이걸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제국 전체에 울려 퍼지게 될 무용담의 첫 장을 장식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겨우 이 정도 승리로, 내 서사시의 첫 장을 장식하게 둘 수는 없다.’

다시금 작센 가의 어린 장남을 떠올렸다. 제국 제일의 천재. 그가 손에 넣은 무수한 승리의 일화들을.

그렇기에 필립의 승리는 그보다 더 멋지고, 더 화려하고, 더 위대해야 했다.

결코 ‘검은 공자’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영웅적 승리. 제국 제일의 천재가 보여주는 활약 앞에서, 빛이 바래지 않을 정도의 승리.

“이대로 놈들을 살려 보내주지 마라!”

그렇기에 필립이 소리를 높였다.

“출정을 준비하라! 요새의 도개교를 내리고 나가 놈들을 추격할 것이다!”

“하, 하오나 필립 공자님!”

“시끄럽다! 감히 백작 가의 장남에게 네놈 따위가 거스를 셈이냐!”

그 말에 성 막달레나 기사 하나가 깜짝 놀라 필립을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데일의 말처럼 성 막달레나 기사들은 ‘필립의 그릇’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내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즉결 처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필립이 소리쳤다.

“모두 출정을 준비하라! 도망치는 역적 놈들을 모조리 소탕할 것이다!”

악몽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검은 공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비로소 빛나는 승리를 손에 넣기 위해.

“모두 내 뒤를 따르라!”

브란덴부르크의 필립.

“나의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의 영웅전기(英雄傳記)는 이제 막 시작일 따름이었다.

* * *

그로부터 1주일 뒤. 벨 포트 요새가 함락되고, 필립이 사로잡혔다.

브리타니아 왕국령과 제국령을 가로막고 있는 천혜의 장벽, 불락의 요새. 루아르강의 도하를 저지하는 제국군 핵심 요충지가, 독립군 측의 이렇다 할 희생도 없이 손쉽게 무너졌다.

아울러 요새를 지키고 있는 제국군 전부가 몰살당하고, 요새의 수비대장 필립 역시 브리타니아 독립군에 손에 떨어져…… 거액의 몸값을 요구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결과적으로 벨 포트 요새의 장기 수성을 통해 브리타니아 독립군의 체력을 소모하게 하고, 지지부진한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성검사 휘하의 주력 부대가 후방으로 우회 기동을 감행해──.

브리타니아 독립군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계획 역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 * *

벨 포트 요새의 함락 후.

루아르강을 넘어, 브리타니아 독립군이 파죽지세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독립군의 목표…… 제국령 내 거점이자 옛 브리타니아 왕국의 수도 랭스에서, 재차 제국군 수뇌부가 집결했다.

오직 하나, 적에게 사로잡혀 포로 신세가 되어버린 백작 가의 망나니를 제외하고.

“이것 참, 호랑이 아버지 밑에 개새끼 없다는 말이 무색하네요.”

졸지에 좌천 신세에서 복귀한 데일이 차갑게 조롱을 내뱉었다.

“흑백 회전에서 오백 명의 성 막달레나 기사들을 몰살한 것도 부족해…….”

콩가루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성검사를 향해 조롱을 이어갔다.

“20,000명에 가까운 제국의 아들들을 사지로 몰아넣다니.”

“…….”

“지는 것도 재능이라더니, 보통 재능으로 될 일이 아니지요.”

성검사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악물었다.

“필립 공자님의 역사적 패배를 두고 ‘제국의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댈지 궁금하네요.”

역사적 패배. 그 말대로다. 백작 가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되어, 후대까지 두고두고 기억될 경악스러운 패배.

성검사의 입술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당장이라도 성검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듯이.

‘데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의 결말.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도대체 어떻게 함락을 당했답니까?”

“첫 공방전이 시작되고, 얼마 후에…….”

데일의 말을 받아, 레이디 스칼렛이 입을 열었다.

“요새 함락에 실패하고 도망치는 적들을 향해, 필립 공자님께서 주력 부대를 보내 추격을 시작했다네요.”

“아니, 주력 부대를 요새 밖으로 내보냈다고요?”

“뭐, 그렇다네요.”

“그럼 매복에 걸려서 다 죽었겠네.”

“후후, 역시 데일 공자님이세요.”

레이디 스칼렛이 남의 일처럼 태평하게 미소 지었다. 도무지 웃어넘길 수 없을 정도의 대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전투에서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것은 그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 후 브리타니아 독립군이 제국군의 갑주로 위장하고, 생포한 필립 공자님을 앞세워 무혈로 진입했지요.”

도망치는 적을 추격 끝에 섬멸하고, 위풍당당하게 돌아온 것처럼.

“그래서 순순히 요새에 들여보내 달라고 했답니까?”

“그렇다네요.”

“…….”

“듣자 하니, 참으로 늠름하고 위풍당당하게 승리를 소리쳤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목숨 하나가 아까워서. 다시금 성검사의 이마 위로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요새가 함락되었고, 필립 역시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불락의 요새라 일컬어지는 벨 포트를 사실상의 무혈(無血)로 손에 넣은 것이다.

브리타니아 독립군의 책략을 칭찬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토록 속이 보이는 수작에 넘어갈 줄이야.

“하도 기가 차서 할 말도 없네요.”

브리타니아 섬에 제국군의 대부대가 상륙하고 나서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 40,000명의 대부대, 그 5할이 몰살당하고…… 루아르강의 핵심 요새와 도하 지점을 적에게 넘겨주는 치명적 손실을 입었다.

필립의 활약은 그야말로 전황 자체를 뒤바꾸는 ‘규격 외의 강자’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망했네.”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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