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70화 (70/301)

70화

* * *

“대장을 위하여!”

“블랙아머 컴퍼니를 위하여!”

“대장에게 개처럼 처발린 부대장도 위하여!”

“시끄러, 이 새끼들아!”

강도 동맹과 용병들을 상대로 이 이상 있을 수 없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 후 통행세 징수소를 비롯해 수로를 막고 있는 사슬을 걷어내고, 블랙아머 컴퍼니를 기다리는 것은 뜨거운 축제의 열기였다.

대륙 무역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바로 이곳,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의 모두가 블랙아머 컴퍼니의 승리를 축하하고 칭송하며, 그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블랙아머 컴퍼니의 용맹함, 나아가 그들의 대장 데일이 보여준 터무니없는 활약까지.

‘검은 공자’의 악명과 잔혹함. 그 명성이 무역상들의 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 제국 전체로 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축제의 열기 속에서, 데일은 나직이 생각에 잠겼다. 저마다 여자를 두셋씩 끼고, 술과 고기를 뜯는 데 여념이 없는 부하들을 뒤로하고서.

그날, 자신의 전투가 갖고 온 결과를 냉정하게 복기했다.

‘수식의 조합이 제법 나쁘지 않다.’

전투에서 추가한 수식…… 「블랙 배럴」, 「개틀링식」, 「20mm」.

기병 돌격을 상대로 몇 세기가량 앞서 있는 무기나 다름없었고, 고위 서클의 마법사조차 그 정도의 파괴력을 쉽사리 보여주지는 못하리라.

나아가 거기에서 비롯되는 그림자 기생충의 활약까지 더해졌다.

비록 진정한 의미에서 ‘규격 외 강자’들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나, 데일이 보여주고 있는 성장세 역시 규격을 아득하게 벗어나 있는 성질의 것이었으니까.

바로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대장, 술 마시는 모습을 못 봤네요.”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는 요네스 경이, 데일을 향해 되물었다.

“야, 내가 몇 살로 보이냐?”

그 말에 요네스 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무 살 전까지 술은 입에 대지 않기로 약속했다.”

“어, 뭐 달리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그냥.”

이쪽 세계의 사람에게 저쪽 세계의 규칙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허허, 그것참.”

요네스 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재차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마저 술을 들이켰다.

“크하아! 내가 이 맛에 살지! 캬아아아!”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다.

“술이 사람을 마시고 있네.”

* * *

있을 수 없는 패배였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승리를 약속한 용병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줄행랑을 쳤다. 게다가 줄행랑을 치는 와중에 영지 곳곳을 털어먹고 약탈을 자행하며, 그의 땅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마저 입히고 말았다.

강도 동맹의 맹주, 로버트 백작으로서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이었다. 강도 동맹의 구심점이 무너지고 와해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설마 고작 백 명의 용병대 따위에게 패배할 줄이야. 아니, 아니다. 그가 패배한 것은 고작 백 명의 용병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그 괴물이다. 호사가들이 떠들어대는 ‘검은 공자’의 악명은 무엇 하나 거짓이 아니었다.

로버트 백작이 입술을 깨물며, 패잔병 무리를 이끌고 영지로 들어설 바로 그때였다.

“어머나, 이것 참.”

뜻밖의 그림자가 로버트와 그의 병사들을 가로막았다.

“레이디를 기다리게 하다니, 이래서야 귀족의 이름이 울겠네요.”

핏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묘령의 여성이었다. 몸에 고혹적으로 달라붙는 핏빛 로브에, 핏빛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적색투성이의 여성.

“여기까지 와서 헛걸음을 하나 싶었는데, 마침 잘 왔어요.”

그 모습을 보고 로버트 백작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기다리다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지 뭐예요, 정말이지!”

핏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생긋 미소 짓는다.

“서, 설마…….”

로버트 백작이 흘끗 고개를 돌렸다. 비록 패잔병이기는 해도, 아직 말 위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병대가 보였다. 궁사들 역시 아직 화살이 남아 있다.

“……라.”

그렇기에, 말 위에서 로버트 백작이 중얼거렸다.

“적탑의 마녀다, 당장 저 마녀를 죽여라!”

일말의 주저도 없이 소리쳤다.

그녀의 정체를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필시 ‘중앙 정부’의 토벌대다. 제국의 집행자, 적색 마탑의 적마법사가 틀림없을 테니까.

“당장 공격해! 마법을 쓰기 전에 죽여버려!”

로버트 백작이 소리쳤다. 고작 몇 미터 남짓의 거리였다. 기사들이 말을 달리고, 궁수들이 화살을 내리꽂았다.

“마녀라니, 레이디에게 실례되는 말씀을.”

적발의 여성이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뻗었다. 동시에, 그녀의 발밑에서 적색 마력이 휘몰아쳤다.

동시에,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세상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버트 백작의 망막이 터지고,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악, 아아아악!”

고통 속에서 로버트 백작이 비명을 내질렀다.

“앞이, 앞이 보이지가 않아!”

“뜨거워, 뜨거워! 제발 살려줘!”

사방에서 혈루(血淚)가 쏟아지고 있었다. 망막이 터지거나 불타서, 일제히 고통에 발버둥 치고 있다.

“아아, 오라버니도 정말이지.”

그 모습을 보며 적발의 여성이 남의 일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이깟 버러지를 처리하자고 저를 보내시다니, 참으로 너무하네요.”

* * *

그 후로도 축제의 열기는 며칠 가까이 떠들썩하게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게, 도시째로 고사할 위협에서 벗어났다. 그렇기에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시가 블랙아머 컴퍼니의 용병들을 향하는 예우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용병들 역시,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호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공작 가의 장남에게 있어 일상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라 해도, 용병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 그 까닭에 데일이 축제의 열기를 벗어나, 홀로 도시의 밤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어머, 세상에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이나 낯이 익고, 불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설마하니 데일 공자님이 아니세요?”

데일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강의 다리 위에서, 핏빛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여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고혹적으로 몸에 착 달라붙는 핏빛 로브, 핏빛의 머리카락. 핏빛투성이의 여자였다.

‘레이디 스칼렛(Lady Scarlet)…….’

스칼렛 유리스. 적색 마탑주이자 핏빛공 ‘유리스 후작’의 여동생이다. 그 악명 높은 이름과 정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레이디의 성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어머나, 귀여우셔라.”

그러나 데일이 시치미를 떼며 정중하게 되물었고, 레이디 스칼렛이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천하의 스노우 엘프가 남자에게 홀려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즐겁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누가 엘프 아니랄까봐, 설마 이런 어린아이가 취향이었을 줄이야.”

“…….”

“그야말로 범죄가 따로 없네요.”

그 말에, 일순 데일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달리 용무가 있으십니까?”

“후후, 그럼요.”

레이디 스칼렛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설마 작센 가의 어린 공자님을 보게 될 줄이야.”

노골적으로 색기를 감추지 않고, 로브의 옷자락 사이를 풀어헤치며.

“그 고지식한 스노우 엘프를 홀린 테크닉이, 저 역시 참으로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답니다.”

“…….”

“역시 남자의 가치는 겉보기로 알 수 없는 걸까요?”

흘끗 데일의 하복부를 바라보며, 스칼렛이 요염하게 미소 지었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밤의 기술이라거나…….”

“하고자 하시는 말씀의 저의를 모르겠네요.”

데일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머, 작센 가에 아양을 떨고 있는 ‘청색 창녀’가 달리 또 있었나요?”

“……그 이상.”

이어지는 레이디 스칼렛의 도발에 비로소, 데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세피아 선생님을 모욕했다가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세피아 선생님이라…….”

그 말에 레이디 스칼렛이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세상에 스승과 제자처럼 불타오르기 쉬운 사이도 없지요.”

“입을 조심하십시오.”

“후후, 도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그러나 데일의 경고에도 레이디 스칼렛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듣자 하니 블랙아머 컴퍼니를 이끌고, 홀로 강도 동맹의 주력 부대를 무찔렀다지요?”

레이디 스칼렛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 레이디라도 홀딱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늠름하고 멋진 무용담이에요.”

그 오빠에 그 여동생이라는 듯이.

“…….”

“그러니 그녀가 그토록 정신 못 차리고 홀리는 것도, 이해가 가지요.”

거리를 좁히며 레이디 스칼렛이 데일의 뺨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교태를 부리듯, 뱀처럼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춤추듯 움직였다.

“누가 누구를 일컬어 ‘창부’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그 움직임에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후후, 어느 여자라도 작센 가의 공자님 앞에서는 뒷골목의 창부가 되는 법이랍니다.”

레이디 스칼렛이 아양을 떨며 웃었다.

“레이디의 기품이나 프라이드 따위는 팽개치고…… 공자님 앞에서 암캐의 표정을 짓고, 기꺼이 가랑이를 벌리겠지요.”

데일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며 스칼렛이 말을 이었다.

“어떠신가요? 청색 창녀 따위와 비교를 불허하는 하룻밤의 열락을──.”

그러나 대화가 그 이상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시린 냉기의 바람이, 데일의 발밑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어느덧 레이디 스칼렛의 뺨을 향해, 데일이 냉기의 서슬을 들이밀고 있었다.

“어머, 차가우셔라.”

그러나 레이디 스칼렛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남자는 싫지 않답니다.”

오히려 그녀를 향해 들이밀고 있는 냉기의 칼날을 향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뺨을 내리그었다.

“……!”

상처를 따라 핏방울이 흘렀고, 데일이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레이디 스칼렛이 황홀함에 젖어 교성을 흘렸다.

“……밤이 깊었으니,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이상 저 여자와 말을 섞어봐야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말을 끝으로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기척에 의식을 집중하며, 차츰 거리가 벌어졌다. 멀어지고 나서 흘끗 고개를 돌리자 레이디 스칼렛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비로소 깊이 숨을 내쉬며, 데일이 생각했다.

“……저 미친년이 여기는 왜 왔대?”

일말의 가감도 없는 팩트를 입에 담으며.

* * *

그로부터 얼마 후. 블랙아머 컴퍼니가 함부르크시에서 대승을 거두고, 무사히 작센 공작령으로 돌아올 즈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블랙아머 컴퍼니를 고용하기 위해, 그것도 ‘황실의 특사’로 작센 공작성을 찾은 사자였다.

“브리타니아 섬의 소문은 들으셨나요?”

바로 그 특사가, 나긋나긋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잇는다.

“성처녀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작센 공작의 되물음에, 특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성처녀라니. 가랑이도 벌려보지 않고 어떻게 그 사실을 믿어야 할지.”

핏빛 고깔모자를 쓰고, 고혹적으로 미소를 흘리고 있는 여성이었다.

“아울러 우리의 황제 폐하께서는, 그 걸레 같은 창부에게 ‘대가’를 치러주고자 하신답니다.”

적색 마탑의 고위 장로, 7서클의 적마법사. 레이디 스칼렛.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저 미친년이 여기는 왜 왔대?’

또다시, 일말의 가감도 없는 팩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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