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 *
다음이 자기 차례일 수도 있다겠는 공포 따위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것은 공포조차 아니었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 사방에 흩뿌려지고 있다.
「개틀링식(Gatling-type)」, 「20mm」.
데일이 부하들의 보호 속에서, 마법의 영창에 의식을 집중하며 펼치는 살육의 정수.
개틀링포. 최초의 대량살상무기(WMD).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이 세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대량살상마법’ 그 이상의 것이었다.
다수의 흑색 총열이 끝없이 흩뿌리고 있는 어둠의 총알들. 섀도우 불릿. 총알 숫자 따위에 아랑곳할 필요조차 없다. 데일의 발밑을 따라, 끝없이 휘몰아치는 그림자들이 수백 발의 총알로 세공되어 끝없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20mm 구경의 그림자 총알 세례가.
“아아아악!”
“아파, 아파아아!”
총성이 울려 퍼졌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뇌수가 흩뿌려지고, 뼈가 부서지고, 갑주가 부서졌다. 창자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혈우(血雨)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하는 경우는 차라리 다행이리라.
두 다리가 사라진 채 바닥을 질질 기고 있는 자가 있었고, 갑주 위로 총구멍이 뚫려, 흘러나오는 내장을 억지로 틀어막는 자가 있었다. 엉엉 울며 엄마의 이름을 부르짖는 자도 있었다.
핏빛의 강.
블랙아머 컴퍼니의 밀집 대형을 확실하게 돌파하고자 기병대가 포진하고 있는 쐐기꼴 대형이, 역으로 데일의 확실한 표적을 자처한 것이다.
그리고 사격이 그쳤을 즈음, 블랙아머 컴퍼니를 앞두고 있는 2,000명의 적병 중 누구도 감히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찰나였다.
기병대가 타고 있는 말이 수백 미터 남짓의 거리를 좁히기까지, 그 찰나에 부대 전체가 일소되었다.
이것을 일컬어 ‘대량살상마법’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대량살상마법을…….”
“제, 제국 법정에서 그랬어! 작센 가의 장남이 가진 서클의 개수는 세, 세 개라고…….”
“웃기지 마! 저게 어딜 봐서 3서클의 마법사란 거냐!”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고위 서클의 마법사가 전쟁터에서 펼치는 대량살상마법 그 자체였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블랙아머 컴퍼니의 대장이자 ‘검은 공자’의 활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데일이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발밑을 따라 펄럭이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향해.
“일어나라, 나의 아이들이여.”
나아가 20mm 구경의 총알이 되어, 사방 일대에 흩뿌려져 있는 ‘그림자의 총알’을 향해.
「키에에에엑!」
데일의 명령에 따라, 기병들의 육체 속에 박혀 있는 ‘섀도우 불릿’들이 광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저 일개 총알이 아니었다. 끔찍한 악의를 갖고 살아 있는 그림자의 무리.
살아 있는 어둠의 총알들이, 기병들의 육체 속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림자 망토의 제2형태. 그림자 기생충(Shadow Parasite).
차라리 죽어 있는 자들은 운이 좋은 경우였다.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의 경우, 체내의 내장이 뜯어먹히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으니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아아아!”
죽어 널브러져야 할 기병들의 시체가, 이 세상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절규를 내뿜으며 몸을 일으켰다.
섀도우 불릿에 벌집이 되어 죽었어야 할 기병들의 시체를 숙주 삼아, 그림자가 기생하며 어둠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끝없는 기아와 어둠에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망자가 되어서.
데일이 걸치고 있는 그림자 망토가, 미풍조차 없는 곳에서 펄럭이고 있다.
‘제법 거리가 벌어져 있는데도 그럭저럭 통제가 되네.’
곳곳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그림자 기생충의 숙주들을 보며 생각했다.
일말의 감정조차 없이, 데일이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고 있다.
‘여기에 수식도 추가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마법의 개성과 형태’를 유도하기 위한 의식의 편향.
제법 거리가 벌어져 있고, 그림자 기생충의 숙주는 족히 백여 명 남짓이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데일이 다시금 의식을 집중했다.
콰직! 콰직! 콰직!
망자들의 육체가, 호러 영화의 그것처럼 기이하게 뒤틀렸다. 죽은 자에게는 내장을 보호할 필요가 없고, 그렇기에 갈비뼈 일부를 즉석에서 움직였다.
콰직!
망자들의 팔을 따라 서슬 퍼런 백골검이 솟아났다.
육체의 곳곳에 뼈의 갑주를 세워 올리고, 부드럽게 기동할 필요가 없는 육체 곳곳에 사후경직을 촉진함으로써, 즉석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생체 갑주’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망자들에게는 일일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들의 목구멍 속에, 나아가 심장에 깃들어 있는 ‘살아 있는 그림자’가 있었으니까.
그림자 기생충. 바로 그 기생충들의 숙주가 되어서, 망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죽은 자들의 군세. 끝없는 기아 속에서 굶주리며 먹잇감을 갈구하는 망자들.
설령 상대가 방금까지 농담을 주고받은 전우라 할지라도, 무엇 하나 예외일 수 없었다.
데일의 ‘대량살상무기’가 기병들을 일소하고…… 기병들의 육체에 쏟아진 그림자 총알들이, 기생충으로 거듭나 망자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덤덤하게 헤아렸다.
‘이들을 통해 전황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블랙아머 컴퍼니의 밀집 대형 속에서, 오로지 마법에 전력을 집중할 때의 역량. 나아가 흑색 마탑의 장로급에 필적하는 규모의 사령술.
데일 역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적들은 그저 데일의 역량을 시험하기 위한 제물에 불과했다.
실험의 희생양. 무심코 흑적 교도대의 어둠이 떠올랐다.
“…….”
떠올리고 나서 이내 고개를 젓는다. 이곳은 전쟁터다. 죽고 죽이고, 죽거나 죽이거나.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 전쟁에 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데일의 망자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쇄도하기 시작했다. 비록 ‘데스나이트’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 망자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몇 명의 보병들이 달라붙어야 할까.
“막아, 절대로 대형을 무너뜨리지 마!”
“아아아악, 내 목을 물었어! 내 목! 아아아악!”
사자와 생자가 격돌하고 있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데일의 망자들이 갖는 전술 가치를 헤아렸다.
‘중갑으로 무장하고 있는 망자 하나에, 보병 일곱.’
‘갑주가 없는 망자 하나에, 보병이 셋.’
‘백골검으로 갑주를 뚫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일말의 감정조차 없이, 마치 실험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마법사로서 역량을 파악하고 갈고닦으며, 그다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사고를 거듭했다.
바로 그때였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죽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이, 이길 수 없어! 다들 도망쳐야 해!”
“저리 비켜!”
끝없이 몰려들고 있는 망자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역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일찍이 데일의 저격용 라이플이 흩뿌린 것과 같은 역병이었다.
공포. 죽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역병처럼 퍼지고 있었다. 고작 백여 명 남짓의 망자 앞에서, 그 배에 해당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병사들이 일제히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 도망치지 마라!”
“전열을 유지하라! 등을 보이지 마라!”
“탈주자에게는 즉결 처형이 기다릴 따름이다!”
부대의 사기가 떨어지고, 규율이 흐트러지고, 그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탈주.
독전대(督戰隊)가 뒤늦게 그들의 목을 치려 검을 휘둘렀으나 무너지기 시작한 사기는 되돌릴 수 없다. 나아가 블랙아머 컴퍼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겠다고 결의한 용병대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하나같이 등을 돌리고 도망치고 있다.
그러나 부대가 일제히 등을 돌리고 움직이는 것은, 생각 이상의 소모값을 필요로 하며…… 그 과정에서 적에게 그대로 후방을 노출하는 것과 다름없다.
부대의 무게 중심이 쏠리고, 병력의 과밀을 통해 우왕좌왕하고 있는 그들에게 망자들이 쇄도했다.
어느덧 그것은 싸움조차 아니었다. 일방적 학살이었다.
독사 용병대, 황금사자 용병대, 브라더후드 용병대. 그들의 이름과 명성이 무색하게, 그저 도망치기 바쁘다.
‘애초에 이 정도로 밥그릇에 위협을 느낄 상대가 그렇지 뭐.’
당장 제국 제일의 용병대로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두 조직…….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와 ‘라이슬로이퍼(Reisläufer)’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그 증거다.
마지막 하나가 죽을 때까지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신뢰의 상징.
그들 역시 블랙아머 컴퍼니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터이나, 적어도 지금 데일의 앞에 있는 것은 위협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우리가 이겼다.”
데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에도, 누구 하나 쉽게 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규격 외의 존재가 갖는 압도적 위압감 앞에서 경악을 삼키며, 침묵을 지킬 따름이다.
데일이 재차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림자 기생충들이,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적병들의 추격을 멈추었다.
그대로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함부르크시의 성벽, 그리고 블랙아머 컴퍼니의 중장갑 보병대를 향해서.
묵묵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망자들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삼키며 침묵하고 있다.
“우리가 이겼대도 그러네.”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고, 망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 목소리에 비로소 공포가 사라졌다.
“우리가 승리했다!”
뒤늦게 함성이 울려 퍼졌다.
“블랙아머 컴퍼니의 승리다!”
“대장님께서 적들을 쓸어버리셨다!”
“역시 데일 공자님이야!”
귀를 찢을 것 같은 함성. 도시 내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여, 데일의 승리를 칭송했다.
고작 일백의 중장갑 보병대가, 스무 배 가까운 격차의 적 부대를 물리친 것이다. 그것도 홀로 전황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규격 외의 힘을 통해서.
승리가 그곳에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데일과 블랙아머 컴퍼니의 승리였고, 나아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질 ‘검은 공자’의 악명과 잔혹함이었다.
* * *
그즈음, 브리타니아 독립군 역시 파죽지세로 왕국의 옛 영토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구국의 기수 ‘성처녀 오렐리아’의 지휘 아래 몇 배의 전력 차이를 극복하고, 수없이 대승을 손에 넣었다.
제국을 상대로 하는 독립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직후, 성처녀 오렐리아는 브리타니아 왕실의 적통 ‘샤를 7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왕정복고와 더불어, 브리타니아 섬 내에 있는 제국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제국으로부터 그들의 요새와 도시, 영지를 수복하고 브리타니아 왕국은 공식적으로 ‘왕국의 영토’를 지도 위에 그었다.
제국의 통일 이래, 누구도 감히 성공하지 못한 최초의 영토 수복이었다.
뼈저린 패배를 뒤로하고, 제국이 다시금 유례없는 대규모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하나의 독립이 성공할 경우, 그 뒤로 다가올 후폭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