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 *
고작 하나의 데스나이트가, 그곳에 있는 강도 동맹의 경비병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아직 부족하다.’
데일의 데스나이트는 결코 일개 흑마법사들의 조잡하기 그지없는 데스나이트가 아니었다.
과거, 대륙 제일검이라 불린 신검마저 쓰러뜨린 최강의 검식. 바로 그 검을 투영하고 있는 《검의 대행자》였으니까. 그렇기에 데일이 그의 데스나이트에게 목표로 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순수하게 용사의 검을 되살려, 진정한 의미에서 ‘검의 대행자’로 거듭나게 하는 것.
나아가 흡사 AI의 딥 러닝처럼, 자신의 데스나이트에게 끝없이 검을 휘두르게 해서 일체의 과정을 학습시키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자동화(Automatic) 수식」의 개발.
그렇게 해서 데스나이트들이 데일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용사의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을 때.
궁극적으로 공작성에 잠들어 있는 수천의 데스 오더에게, 일일이 조종할 필요가 없는 용사의 검술을 「자동화 수식」으로 투영시켜…… 수천 자루의 흑검에, 용사의 검을 덧씌우는 것이다.
그들의 검에 용사의 검을 투영함으로써, 수천의 데스 오더가 ‘궁극의 전투 형태’로 거듭나게 될 풍경을 떠올렸다.
사상의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데스나이트.
죽음의 신…… 아누비스의 군대.
그것을 위해 필사적으로 데스나이트의 검술을 가다듬고 가다듬어, 그 정보를 자동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천하의 신검마저 무릎 꿇게 할 정도의 데일이기에 가능한 행위였다.
뒤늦게 통행세 징수소의 경비들이 중무장을 갖추고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데일이 조종하는 데스나이트의 검 앞에서는, 그저 살아 있는 제물이자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한 희생양에 불과했다.
* * *
함부르크 시청사.
“로버트 백작을 필두로 강도 동맹이 앞서 부대를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테이블 위에 일대의 지형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펼치고, 시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울러 그들이 고용하고 있는 용병대 역시 강도 동맹과 함께 출정을 시작했다는 듯합니다…….”
“이쪽에서 앞서 통행세 징수소를 불태우고, 사슬을 모조리 치워냈으니.”
데일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조함을 느끼고 앞서 움직이는 거겠지요.”
싸움이 야전(野戰)이 아니라 성을 놓고 싸우는 공방전의 형태가 될 경우, 이점을 갖는 것은 수성 측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데일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아가 지금의 데일에게 중요한 것은 승리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깔끔하게 승리를 얻느냐 하는 점이었다.
용병이나 강도 동맹에는 마법사가 없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세계에서 마법사는 희소 전력이고, 그 희소 전력이 일개 용병이나 하급 귀족 따위에게 충성할 리가 없으니까.
상대로서도 경계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데일 하나이며, 이러니저러니 해도 데일의 경지는 3서클이다. 아무리 데일이 터무니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하더라도, 수적 우위로 능히 압도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거겠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국법의 영역을 벗어나, 일말의 규칙도 없이 벌어지는 다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투에서, 지금까지 데일이 쌓아 올린 성과를 시험할 때였다.
비록 흑색공이나 핏빛공, 성검사 정도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규격 외의 강자’로서 어디까지 전황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개개의 힘으로 어디까지 전장의 풍경을 뒤바꿔놓을 수 있을지.
데일이 펼치게 될 ‘대량살상마법’을 통해 어느 정도의 지옥도를 자아낼 수 있을까.
그저 그 사실이 궁금하고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 * *
블랙아머 컴퍼니에 맞서, 강도 동맹과 용병대가 취할 수 있는 전술은 하나였다.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를 포위하고 속전속결로 항복을 받아내는 것.
이 세계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보급 탓이다.
그렇기에 함부르크시의 성벽을 따라 포위하고 있는 적들을 보며, 데일이 덤덤하게 생각했다.
‘도시의 성벽을 이용해 공방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당장 블랙아머 컴퍼니의 부대 외에도, 함부르크시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병력 역시 적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상대측에는 마법사가 없다. 용병들을 비롯한 병사들의 질적 수준 역시, 일개 중소 영주들의 그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
‘살짝 무리해도 나쁘지 않겠어.’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덤덤하게 생각했다.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나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블랙아머 컴퍼니의 대장으로서 부하들을 신뢰하고 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요네스 경.”
“예, 대장.”
데일이 곁을 지키고 있는 부대장 요네스 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애들이랑 같이 바깥 구경이나 하러 가볼까?”
도시 바깥을 포위하고 있는 2,000명 남짓한 적의 대부대를 상대로. 고작 일백 명의 중장갑 보병대와 함께.
* * *
누가 봐도 자살 행위였다.
강도 동맹의 맹주이자 3대 용병대를 거느린 부대의 총사령관…… 로버트 백작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도시에 틀어박혀 수성을 펼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적의 최고 전력, 블랙아머 컴퍼니의 중장갑 보병대가 도개교를 열고 ‘정정당당하게’ 싸움을 자초할 줄이야!
고작 일백 남짓의 병력이고, 그들을 엄호해줄 것이라고는 성벽 위의 궁병들이 다다.
‘죽으려고 작정을 했나?’
아무리 그들이 밀집 대형을 통해 무적의 방어 태세를 자랑하고 있다 해도, 숫자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일백 명의 중장갑 보병대가, 밀집 대형을 통해 지키고 있는 존재. 바로 그 악명 높은 ‘검은 공자’가 그곳에 있었다.
블랙아머 컴퍼니의 용병대장이자, 흑색 마탑주의 후계자. 검과 마법, 심지어 군사적 재능에 있어 제국 제일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괴물이.
절대로 깨지지 않는 방어 태세 속에서, 마법사가 있는 의미를 그 역시 모르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3서클의 마법사에게, 고위 영주들의 다툼에서나 허락되는 ‘대량살상마법’을 영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데일이 블랙아머 컴퍼니의 대장으로서 보여준 활약 중에도, 대량살상마법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비록 데일이 보여준 ‘저격용 라이플’의 이치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들이 보기에 데일의 활약이란 그저 ‘강력한 살상력을 보유하고 있는 볼트 마법’ 정도에 불과했다.
대량살상마법이 아니라, 그저 일개 볼트 마법.
그것이 어디까지나 법의 제약 탓임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 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전투에서 데일이 보여줄 활약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결국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나.’
그 모습을 그저 어린아이의 무모함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로버트 백작이 소리쳤다.
“상대는 겨우 일백 명의 중장갑 보병이다!”
“놈들의 밀집 대형을 돌파하라!”
“제 발로 죽으러 나오다니, 참으로 어리석구나!”
용병들 역시 일제히 조롱과 격려의 소리를 높였다. 밀집 대형 속에 있는 블랙아머 컴퍼니의 대장, ‘검은 공자’의 존재를 애써 잊으려는 듯이.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3서클 마법사 하나의 활약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 하에 벌어진 전투였으니까.
“돌격하라!”
“블랙아머 컴퍼니 놈들을 박살내자!”
“황금사자 용병대를 위하여!”
강도 동맹과 용병 부대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 * *
“우리는 죽어도 제자리에서 죽는다!”
“블랙아머 컴퍼니를 위하여!”
그들의 구호를 외치며, 적들의 돌격 속에서 일백의 중장갑 보병대가 방어 태세를 굳혔다.
절대로 깨지지 않는 대형.
바로 그 대형의 보호 속에서, 블랙아머 컴퍼니의 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여느 때처럼 적들과 달라붙어 백병(白兵)의 싸움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마법사의 정석과 같이 중장보병들의 보호를 받으며, 냉정하게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다.
“대량살상무기(WMD).”
제국의 법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데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대량살상 ‘마법’이 아니었다. 무기. 어디까지나 머릿속의 이미지를 확실히 떠올리기 위한 자기 암시의 과정. 다시 말해, 그것은 그 자체로 마법사의 「주문」이었다.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메커니즘의 이해를 바탕으로 마법의 파괴력을 증폭시키기 위한 자기 암시의 행위.
대량살상무기. 대개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방사능에 핵무기를 비롯한 화생방 무기를 일컫는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그 말이 갖는 아키타입에는 또 하나의 형태가 있었다.
사람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사람의 역사는 오로지 전쟁의 수레바퀴로서 굴러가는 법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역사에서, 최초로 그들이 손에 넣은 대량살상무기.
“「개틀링식(Gatling-type)」, 「20mm」.”
이 세계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계의 수식이 영창되었다.
어느덧 데일의 등 뒤로, 그림자의 무리가 일렁이며 총열의 형태를 갖춘다. 흑색 총열. 그리고 그 총열의 숫자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바로 그 흑색 총열들이, 돌격하고 있는 적의 부대를 향해 아가리를 벌린다.
“내 앞에 있는 놈들.”
데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당장 좌우로 갈라져.”
“대장의 명령이다! 제1열, 제2열! 양옆으로 헤쳐!”
“양옆으로 헤쳐!”
대장의 명령과 동시에, 밀집 대형의 전열(前列)에 있는 중장보병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데일의 사람들. 그것이 갖는 의미는 크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병이란 것도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데일의 활약을 보조할 것을 전제로 움직이는 ‘맞춤형 병사’를 일컫는 것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데일의 전투 방식에 맞출 수 있는 조직의 형태.
데일의 명령에 따라, 앞열의 중장갑 보병들이 신속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 * *
‘저 새끼들이 미쳤나?’
기병 돌격 앞에서, 밀집 대형 제1열에 있는 중장보병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고?
그대로 대형 속에 있는 적장이 노출되었고, 로버트 백작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블랙아머 컴퍼니의 대장, 작센의 데일이 ‘고도의 살상력을 가진 투사 마법’을 사용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압도적 숫자의 기병 돌격 앞에서 고작 몇 명의 기병들이 죽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역병처럼 퍼지는 죽음의 공포이며, 그것을 각오하는 이상 블랙아머 컴퍼니의 대장을 겁낼 필요는 없다.
싸움에 앞서 로버트 백작은 병사들에게 그 사실을 끝없이 주지시켰고, 그렇기에 필사의 각오 아래에서 죽음을 불사하는 용병 기병대가 돌격하고 있다.
“결국 천하의 ‘검은 공자’도 세상 알지 못하는 애송이에 불과했나.”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게다가 상대의 자충수가 더해져, 그야말로 압승이 되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사람으로서, 데일이 중얼거린 「개틀링식」과 「20mm」가 뜻하는 의미를 알 턱이 없었으니까.
데일의 등 뒤에서 흑색 총열들이 아가리를 벌린다.
그리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대량살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어느 세계에서나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