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67화 (67/301)

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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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대륙을 통일했다고 해서 태평성대의 세상이 찾아올 리는 없다. 귀족과 영주들 사이에서,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세력 다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영지전. 속칭 밥그릇 싸움.

그러나 영지전이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 전부가 아니다.

대륙의 동쪽 끝, 칼레 해협 너머의 브리타니아 섬. 일찍이 브리타니아 왕국이자, 통일 전쟁에서 패배하고 나서는 제국의 속주로 전락한 그곳에서…… ‘성처녀’라 불리는 존재가 등장해 망국의 애국자들을 규합하고 봉기를 일으켰다.

고작 10,000의 병력으로 45,000명에 달하는 제국군을 격파했다는 전설 같은 무용담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일개 농노의 딸이 총사령관이 되어서, 네 배에 가까운 적의 대부대를 몰살하고 승리를 쟁취했다. 여신의 기적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기적.

시스티나 자매신의 계시를 받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구국의 성처녀.

여신강림.

브리타니아 독립 전쟁의 서막이었다.

* * *

블랙아머 컴퍼니의 주가는 착실하게 높아지고 있었다.

나아가 데일의 구상, 고객보다 더 강력한 ‘작전 수행 능력의 행사’ 역시 차츰 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울러 영지전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영주 몇 명이 데일을 제국 법정에 세우는 일이 발생했다.

전투에서 데일이 보여준 마법의 능력이, 절대 3서클 마법사의 그것이 아닐 거란 내용이었다.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했다. 데일이 전장에서 보여주는 마법사로서의 활약은 절대 3서클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아울러 제국법에 따라 4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하급 영주들 사이의 다툼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제국 법정에서 궁정 마법사들의 엄정한 검증 결과, 데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3서클 마법사가 맞았다.

세 개의 서클.

“저게 정말 3서클의 실력이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필시 수작을 부렸을 겁니다!”

“그날, 전장에서 데일 공자가 보여준 실력은 절대 3서클이 아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고,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로 3서클 맞대도 그러네.”

판결에 불복하며 손가락질하는 영주들 앞에서,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데일을 법정에 올린 영주들의 소송 역시 패배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영주들의 소송은 데일과 블랙아머 컴퍼니의 명성을 제국 전체에 알리는 광고 효과가 되었고, 광고비 겸 소송 비용을 지불하는 것 역시 패소한 영주들의 몫이었다.

그 후로도 전투에서 데일은 ‘3서클의 마법사’로서 자신의 역량을 가감 없이 펼쳤다.

이득을 볼 수 있을 때 갈퀴로 긁어모으고, 나아가 4서클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 수행의 하나로써.

블랙아머 컴퍼니의 명성에 이끌려, 조직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부풀어갔다.

동시에 작센 공작 가의 힘과 재력이…… 다시 말해 작센 공작의 투자가, 그들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즈음, 블랙아머 컴퍼니가 참전하는 것은 곧 승리의 보증 수표와 같았다.

그렇기에 두 영주 사이의 다툼이 벌어졌을 때, 승패의 결과는 오직 ‘블랙아머 컴퍼니를 고용하기 위해 적보다 비싼 값을 낼 자금이 있느냐’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즈음, 블랙아머 컴퍼니의 활약에 맞서 졸지에 실직자 신세가 되어버린 용병대가 하나둘씩 규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블랙아머 컴퍼니는 ‘상도덕도 없는’ 깡패이자 공룡 기업 그 자체였으니까.

* * *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

통칭 ‘호박의 길’이라 불리는 교역의 시작점이 되는 곳으로, 뱃길을 타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호박 무역의 시작점.

그러나 그즈음,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를 위협하는 뜻밖의 세력이 등장했다.

무역을 통해 함부르크시가 쌓아 올린 재산을 노리고, 제국 중부 일대의 귀족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중부 영주들이 힘을 합쳐 ‘강도 동맹(Robber League)’을 결성하고, 강 하류를 점거하고 쇠사슬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엘베강의 수로를 폐쇄하고, 통행세를 빌미로 배와 화물을 모조리 약탈하기 시작했다.

무역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수로가 막혀버렸고,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로서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하물며 중부 일대 귀족들이 힘을 합치고 있는 이상, 그들로서는 감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압박 속에서 그들이 해마다 ‘터무니없을 정도의 상납금’을 정기적으로 바치지 않을 경우, 이대로 무역 봉쇄를 유지하고, 도시를 고사 상태에 빠트릴 거란 협박이 이어졌다.

제국 중부는 질서를 잡아줄 대귀족이 없다. 그 덕에 중소 영주들이 제멋대로 전횡(專橫)을 휘두르는 사실상의 무법 지대로 거듭나 있는 것이다.

그 까닭에,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였다.

얼마 후. 함부르크시의 밀사(密使) 하나가, 강도 동맹의 영지 사이를 가로질러 무사히 작센 공작령으로 향했다.

강도 동맹에 맞서 ‘블랙아머 컴퍼니’를 고용하기 위해서였다.

고객보다 더 강력한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춘 용병 조직. 아울러 함부르크시가 데일에게 제의한 것은, 데일로서도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강도 동맹을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일체의 작전 수행 과정을, 블랙아머 컴퍼니에 일임한 것이다.

* * *

그즈음.

“볼바르 남작, 바젤 남작, 페테르 경…… 그 외 동맹의 영주들 다수가 소식이 끊겼습니다.”

하나같이 강도 동맹을 구성하고 있는 강도 귀족, 그리고 도적 기사들의 이름이다.

부하의 보고를 듣고, 강도 동맹의 맹주(盟主) 로버트 백작이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중앙 정부의 토벌대가 왔나?”

“정체를 밝히지도 않고, 교섭을 시도하려는 여지도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명색이 중앙 정부에서 오는 자라고 할 경우, 응당 그에 맞는 격식과 절차가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함부르크시의 밀사가 작센 공작령에 도달했다는 이야기가…….”

부하가 말했고, 그 말에 로버트 백작이 숨을 삼켰다.

“설마 그들이 블랙아머 컴퍼니를 고용했다고……?”

“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블랙아머 컴퍼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추측에 불과하다며 지나치기에는 너무 사항이 중대했다.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

쾅!

그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로버트 백작이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당장 동맹의 영주들에게 전서를 날려 경고하고, 휘하 병력을 모두 소집해라.”

내리치고 나서 로버트 백작이 말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대비책을 세워뒀지.”

그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수를 꺼내 들며.

“용병 길드에,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알려라.”

* * *

블랙아머 컴퍼니가 전과를 올리고 승승장구할 때마다, 그 역풍을 고스란히 맞는 것은 그 외 용병대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에 맞서, 규모 있는 용병대 여럿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제국 중부에서, 제국 자유도시와 강도 동맹 사이의 다툼에 ‘블랙아머 컴퍼니’가 참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용병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다수의 용병대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상도덕도 없는 깡패들에게 비로소 이 바닥의 도덕을 가르쳐줄 때였다.

* * *

제국 자유도시 함부르크의 시청사.

“앞서 강도 동맹의 세력 몇 곳을 사전에 와해시켰습니다.”

그곳에서 블랙아머 컴퍼니의 용병대장, 작센의 ‘검은 공자’가 입을 열었다.

“강도 동맹이 수로를 가로막고 있는 지점, 나아가 동맹의 맹주가 있는 로버트 백작령이 주요 전장이 되겠지요.”

지도를 펼치고, 냉정하게 상황을 헤아리고 있다.

“어차피 상대가 범법을 저지르고 있는 이상, 이쪽도 ‘제국의 법’을 준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국의 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가감 없이 마법사로서 데일의 진짜 전력을 펼칠 수 있는 싸움.

“드, 듣기로 로버트 백작 역시 용병 길드를 통해 다수의 용병대를 소집했다고…….”

“블랙아머 컴퍼니의 명성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세력이지요.”

함부르크시의 시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다수의 용병대가 집결할 경우…… 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블랙아머 컴퍼니의 명성이 자자하다 해도 상황이 상황이다.

“말씀했듯이, 이것은 제국의 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는 싸움입니다.”

강도 동맹이 일방적으로 자유도시의 무역을 봉쇄하는 것은 명백하게 제국법을 거스르는 행위다. 그러나 제국 중부는 질서를 잡아줄 대귀족이 없고, 그들의 범법을 제지하기에 중앙 정부는 너무 멀다.

법이 멀고 칼이 가까운 세계. 그것이 이 세계였고, 적들이 믿는 것은 바로 그 ‘법이 멀다’는 사실이다.

“법에 호소할 수 없는 적들을 상대로 승리를 얻는 것처럼 쟁취하기 쉬운 승리도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데일이 노리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란 사실을, 그들로서는 알 턱이 없으리라.

“도시 전체에 징집령을 내리십시오.”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며, 블랙아머 컴퍼니의 용병대장이 입을 열었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바로 그 ‘검은 공자’의 악명과 잔혹함을 떠올리며.

“아, 알겠습니다.”

함부르크시의 시장은 등줄기를 훑는 소름에, 무심코 몸을 떨었다.

* * *

독사 용병대, 황금사자 용병대, 브라더후드 용병대.

대륙에서 손에 꼽는 용병대의 주력 부대가, 강도 동맹의 맹주 로버트 백작의 영지를 향해 집결했다.

3대 용병대 내에서도 최고의 정예로 꾸려져 있는 용병들. 나아가 영지를 오가는 이들을 털어먹는 것을 가업으로 삼는 강도 동맹.

나날이 커지는 블랙아머 컴퍼니의 위세에 맞서, 그리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공공의 적을 앞두고 두 세력이 힘을 합친 것이다.

강도 귀족과 도적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는 중소 영주들, 그리고 대륙에서 손에 꼽는 용병 전력. 이것은 이미 일개 하급 영주들 사이의 다툼이 아니었다.

제국법의 영역을 벗어나, 일말의 규칙도 없이 벌어지는 다툼.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쟁이었고, 그것이야말로 데일이 바라마지 않는 전투였다.

하급 영주들 사이의 다툼에서, 제국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대량살상마법(MMD)……. 그것이 뜻하는 것은 결코 적을 몰살시키는 파괴 마법이 전부가 아니었다.

흑색 마탑이 자랑하는 어둠의 마법.

전쟁터에서 흑마법사가 펼치는 사령술 역시, 제국이 규정하는 대량살상마법의 정의에 부합하는 금기였으니까.

아울러 ‘제국의 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은, 바로 그 어둠의 마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므로.

* * *

엘베강 하류. 강 양쪽에 커다란 쇠사슬을 엮어, 배의 통행을 가로막고 있는 로버트 백작의 요새.

속칭 통행세 징수소.

새벽어둠이 깊은 그곳에서, 요새를 지키는 경비병 하나가 고개를 돌린다. 돌리고 나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흑색 갑주를 걸친 기사가 있었다. 그것도 보통의 기사가 아니었다. 갑주 밑의 육골에는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았으니까.

“데, 데, 데스나이트…….”

작센의 흑검을 쥐고 있는 불사의 기사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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