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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66화 (66/301)

66화

* * *

전쟁 대행 주식회사. 고객보다 더 강력한 작전 수행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용병 조직.

그러나 그 정도 규모의 거대 조직을 쌓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가장 처음 수행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였다.

순수하게 용병대 그 자체로서의 명성과 값어치를 올리는 것.

최초의 고용주는 영지전을 위해 용병을 고용하려는 어느 귀족이었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거금의 의뢰비에 망설였으나, 머지않아 그곳에 있는 용병들의 대표자를 보고 숨을 삼켜야 했다.

“……!”

천하의 ‘검은 공자’가 그곳에 있었다.

장차 작센 공작 가를 이을 대제후의 후계자가, 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일개 용병대장 노릇을 하고 있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영지의 운명이 걸린 전투를 위해, 이 정도 금액을 지출하는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

그로부터 얼마 후.

영지전을 수행하는 두 귀족의 부대가 구릉지 위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아머 컴퍼니의 용병대장, 데일 역시 그곳에 있었다.

작센 공작 가의 밤까마귀 상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블랙아머 컴퍼니’의 흑갑 상징을 새겨넣은 부대기 밑에서. 맞춤 제작한 흑갑에 대검을 쥐고 있는 여기사를 부대기의 기수로 삼아.

블랙아머 컴퍼니가 지휘하는 것은 부대의 좌익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맞서게 될 적의 우익에는, 상대 귀족이 자랑하는 정예 기병대가 창끝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구릉지 위에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중장갑 보병대를 향해, 적의 기병대가 돌격을 감행했다.

“절대 방어 태세를 깨트리지 마라!”

“태세를 유지해라!”

작센 공작령의 동토 위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 성과를 보여줄 때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Barrett M98B」, 「8.58x70mm」.”

데일이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그림자 망토가 펄럭이며 총기의 형태를 모방하기 시작했고, 돌격하는 적 기병대를 향해 총열이 아가리를 벌렸다.

그것은 지금까지 데일이 보여준 일개 수식의 투영 따위가 아니었다.

그날, 6서클 흑마법사의 마력을 집어삼키고 더더욱 심연에 가까워진 흑색의 마력을 생성하며──.

지금까지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확실한 형태의 ‘그림자 무기(Shadow Weapon)’가 그곳에 투영되었다.

《섀도우 라이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계의 병기를 쥐고서, 중장갑 보병들 사이에서 총구를 겨누었다. 그대로 적 기병대장의 투구를 노리고 데일이 그림자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하나.”

저격용 총알이 내리꽂혔다. 투지를 불태우며 돌격하고 있는 적 기병대장이 말 위에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뭐, 뭐지?!”

“대장이 일격에 고꾸라졌어……!”

“화, 화살에 맞았나?”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해서 돌격을 멈출 수 없는 적의 우익 기병대에, 커다란 동요가 감돌기 시작했다.

“서, 설마.”

하급 영주들 사이의 다툼에 참전할 수 있는 3서클 마법사에게 기사의 중장갑을 뚫을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이 있을 리 없다. 그랬어야 했다.

“대장님이 기병대의 적장을 쓰러뜨렸다!”

“어, 어떻게? 저게 마법이야?”

“3, 3서클 마법사는 기사의 갑옷을 뚫을 수 없다고 들었는데!”

블랙아머 컴퍼니의 중장갑 보병들 사이에서, 경악에 가까운 환성이 터져 나왔다.

“재장전.”

좁혀지는 거리 속에서, 다시금 영창이 이루어졌다.

대상의 이미지를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떠올릴수록 그 파괴력은 강해진다. 즉석에서 무차별로 그림자의 총알을 쏟아부을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거리, 파괴력, 정확도, 그 하나하나의 파라미터가 수십 배 가까이 증폭되어 있다.

아무리 데일이 거리를 좁히고 싸우는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거리를 벌린 마법사의 장점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니까.

타앙!

“둘.”

데일이 《섀도우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며 중얼거렸다. 어둠의 총알이 내리꽂혔다. 총알이 내리꽂힐 때마다, 질주하는 기병 하나가 고꾸라졌다.

투구가 부서지고 두개골이 부서지고, 뇌가 터지고 뇌수가 흩뿌려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즉사였다.

“셋.”

타앙!

갑주의 보호를 받는 기병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공포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디에서 죽음이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 바로 곁의 동료가, 일발의 총알에 맞아 즉사하는 공포.

기병 돌격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용맹함이, 바로 그 공포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넷.”

냉정히 말해 데일의 총알이 앗아가는 기병들의 숫자 자체는 대수롭지 않았다. 고작 몇 명. 그러나 그 대수롭지 않은 죽음에서 비롯되는 공포는 그렇지 않았다.

공포가 역병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거리가 좁혀졌고, 기병들의 투구 속에 드리워져 있는 감정의 형태. 다음이 자기 차례일 수도 있겠다는 죽음의 공포가 빠르게 전염되고 있었다.

“다섯.”

탕!

평등하게 쏟아지는 죽음의 세례. 아무리 죽음을 각오하는 전투를 위해 수행을 거듭하고 용맹함을 갈고닦아도,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공포는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몇 차례의 저격 끝에, 양측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가 두려운 나머지, 적 기병대는 너무 빠르게 말의 전력 질주(Gallop)를 감행했고, 그 덕에 대열 역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오합지졸 기병대의 창이 블랙아머 컴퍼니의 중장갑 보병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나 기병들의 창날에 깃들어 있는 것은 역병처럼 퍼지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쐐기를 박아야 할 일격이 아니라.

“대장을 위하여!”

그에 비해 기병대를 상대로 맞서는 것은, 사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는 일백의 중장갑 보병대다.

중장보병들 사이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요네스 경이 소리를 높였다.

“블랙아머 컴퍼니를 위하여!”

“우리는 죽어도 제자리에서 죽는다!”

블랙아머 컴퍼니가 우렁차게 그들의 구호를 소리쳤다. 말 그대로, 깨지지 않는 대형이었다.

* * *

“세상사, 수저 잘 무는 새끼가 장땡이지.”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다.

그날 밤. 루스벨트 남작성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승리의 주역, 블랙아머 컴퍼니의 활약을 축하하고자.

술과 고기, 여자. 일개 용병으로서 좀처럼 누릴 기회가 없는 호사가 그들에게 펼쳐지고 있었다.

“역시 대장입니다!”

“살다 살다 성에서 귀족 나리의 대접을 받게 될 줄이야!”

여자를 끼고, 용병 하나가 호탕하게 소리를 높였다. 상 위의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용병들에게 있어 이 이상의 천국이 있을까.

“앞으로 질리게 볼 풍경이니까, 너무 퍼지지 마라.”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남의 일처럼 덧붙였다.

“어머나, 역시 데일 공자님이세요!”

“오늘 전투에서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활약을 들었어요!”

“적 기병대를 공자님의 재치 하나로 일망타진했다지요?”

그의 곁에서, 필사적으로 아양을 떨고 있는 루스벨트 남작의 영애들을 뒤로하고.

“너무 멋지고 늠름하셔요!”

“어디까지나 제 부하들의 활약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야말로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은 공작 가의 장남이다. 하급 귀족의 영애로서는 평생 말을 걸 기회조차 얻지 못할 테니까. 루스벨트의 영애들이라고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이 세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처세였으니까.

귀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 나아가 그 계급의 격차는 설령 귀족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생의 세계라고 해서 무엇이 다를까. 아마 어느 세계를 가도 똑같을 것이다.

참으로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이었다.

* * *

이튿날 아침.

요네스 경이 숙취에 비틀거리며 일어났을 때, 그의 앞에 그들 용병대의 어린 대장이 앉아 있었다.

“대, 대장!”

어젯밤의 축제 속에서 진창이 되어 퍼질러진 그곳은 루스벨트 남작성의 홀이었다. 요네스 경을 비롯한 용병들 모두가 테이블 위에 대가리를 처박거나, 돌바닥에 널브러져 엎어진 채였다.

“너네들이 개냐 사람이냐.”

“다, 당장 애들 모두를 깨우고 집합시키겠습니다!”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고, 요네스 경이 다급히 소리를 높이려 할 때였다.

“아니, 됐다. 얘네들이 살다 살다 이런 호사를 누려봤어야지. 좀 더 퍼져 있게 놔둬.”

데일이 나직이 고개를 젓는다.

“너에게 따로 용무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저에게 말입니까?”

“그래.”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센 공작성으로 돌아가고 나서, 너를 가르칠 사람 몇 명을 붙여줄 생각이다.”

“저, 저를 가르칠 사람이요?”

뜻밖의 말에 요네스 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훗날 우리가 지금 이상의 명성을 쌓고, 아울러 작센 가의 장남이 이 조직의 수장으로 있는 이상…… 그 신뢰를 바탕으로 귀족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병력과 작전 수행의 일체를 일임하겠지.”

“그, 그렇겠지요.”

고용주보다 더 강력한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춘 조직. 그것이야말로 블랙아머 컴퍼니의 존재 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당장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자리를 비울 때 누가 이 용병대를 이끌고 전쟁의 승리를 손에 넣겠냐?”

“그, 그야 제가 부대장이니, 제 몫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배워야지. 어떻게 해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고,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싸울지, 어디서 싸워야 할지. 나 없이도 블랙아머 컴퍼니가 ‘전쟁의 승리’를 보증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데일이 말을 잇는다.

“돌아가는 즉시 작센 가의 고위 장교들이 밤낮으로 굴려줄 거다. 우리 기사들 밑에서 검 수행도 빼먹지 말고.”

“……어째서 저입니까?”

데일의 말을 듣고, 다시금 요네스 경이 되물었다.

일개 하급 귀족 출신의 차남이, 감히 우러러볼 수조차 없는 대귀족의 군사 조직을 대행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갖는 무게를 모를 리가 없었으므로.

“마침 네가 거기 있었으니까.”

아버지와 형들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출세 가도가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정말 그게 다입니까?”

“그럼 뭐 우리가 사랑의 실로 엮여 있는 줄 알았냐?”

데일이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그때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럼 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아무라도 개의치 않으신 겁니까?”

그러나 요네스 경이 다시금 되물었고, 데일이 대답했다.

“너 말고 그 자리에 누가 있을 수 있었겠어?”

“그야…….”

말을 이으려다 말고 요네스 경이 숨을 삼켰다. 비로소 데일이 말하는 진의를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마족 대이동에 맞서 작센 공작이 휘하 귀족들을 소집했을 때, 요네스 경 역시 그곳에 있었다.

열여섯 나이에 집을 나서 방랑 기사로 이름을 알리고, 밑바닥부터 시작해 일백의 용병대를 꾸린 대장이 되어서.

갖지 못한 자도 가진 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생각하며 작센의 ‘검은 공자’를 향해 도전했고 패배했다. 동시에 그것이 비로소 요네스 경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까닭이었다.

“대장…… 아니, 데일 공자님.”

데일의 말뜻을 헤아린 요네스 경이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충성심 속에서 고개를 숙이며.

“블랙아머 컴퍼니의 부대장, 케넷의 요네스. 절대 데일 공자님을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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