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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62화 (62/301)

62화

* * *

벨로크가 의식을 차렸을 때, 그가 있는 곳은 악마의 천국이었다. 흑적 교도대의 생체 실험실. 바로 그 실험대에 팔다리가 쇠사슬로 묶여 있는 처지가 되어서.

그들 역시 그곳에 있었다. 무표정하게 ‘피험자’를 바라보고 있는 실험자들이.

“그럼 부패 정도에 따라, 피험자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병리적 과정을 기록하도록 하겠다.”

그 말과 함께, 벨로크의 발끝이 시커멓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냐, 아니야, 내가 아니야……!”

발끝에서 그의 몸으로 퍼져 나가는 부패 과정. 그러나 알기 쉬운 죽음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저 다음의 시험이 시작될 따름이었으니까.

“지금부터 사지를 자르고 나서, 피험자가 얼마나 오래 살아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장기를 적출해서, 짐승의 내장과 교체 이식하도록 하겠다.”

“치사량의 혈액을 추출하고, 닭의 생피를 주입하겠다.”

“염혈의 월터 공과 협력해, 피험자의 피를 산 채로 끓는점까지 가열하고 추이를 지켜보겠다.”

“아아아악, 아아악! 아파, 아파아아!”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희생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구도자의 모습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벨로크가 발버둥 치며 비명을 내질렀고, 그의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었다.

* * *

비로소 소녀가 그의 뇌를 희롱하는 촉수를 거두었다.

“히, 히히히, 흑, 흐으으윽!”

6서클의 흑마법사, 벨로크가 침을 질질 흘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고 나서는,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고 나서 아이처럼 매달리며 용서를 구걸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의 용서를 구걸하지?”

“제, 제발, 제발, 제발, 제, 제제, 제발……!”

“진리의 대의 앞에서, 희생자들의 고통 같은 것은 능히 감수할 가치가 있는 희생이 아니었나? 그것이 너희가 그토록 숭상하고 부르짖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아니었나?”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들이 그토록 숭배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고작 처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손바닥처럼 뒤집힐 정도로 덧없는 것이었나? 그럼 그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희생과 피를 통해서 굴릴 수밖에 없는 수레바퀴 따위, 차라리 부서져 버리는 쪽이 낫다.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표정으로.

“그날, 흑적 교도대가 자행한 실험을 낱낱이 밝혀라.”

데일의 말에, 벨로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대로 말할 경우, 여기서 목숨을 거두어주지.”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이대로 죽을 수 있다. 그 사실에 벨로크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입을 열었다. 제국의 통일 전쟁 당시, 일말의 가감조차 없는 흑적 교도대의 행적을.

“…….”

하나같이 구역질을 참을 수 없는 내용. 그러나 그날, 핏빛공 유리스 후작이 말해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국이 그토록 기를 쓰고 입막음하려는 흑적 교도대의 ‘진짜 목적’이 아니다. 고작 잔혹한 생체 실험 따위에 전전긍긍할 제국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데일이 다시금 되물었다.

“저, 저도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 그래?”

“저, 저, 정말로…… 정말입니다!”

“그럼 지옥 구경이나 마저 하셔야지.”

맥빠지는 대답에 데일이 예의 촉수를 내리꽂으려는 찰나.

“화살촉 프로젝트!”

벨로크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일순 데일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9, 9서클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9서클의 실험이라고?”

대륙 역사를 통틀어 아직 어느 마법사도 도달하지 못한 마도의 종착점. 마도의 정점, 그 너머의 영역.

사람의 손으로 도달할 수 있는 신의 영역. 마신(魔神).

“저, 저희 일개 부대장들은 실험의 자세한 상세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어디까지나 최, 최고 책임자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럼 꼭두각시로서 알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뱉어라.”

데일의 물음에 벨로크가 다급히 대답했다. 막힘 없이 줄줄이.

“그, 그저, 특정 장소 내에서 고통을 주어 피험자들의 부정적 감정을 자극하고, 특수한 결계 속에 밀집시킴으로써…….”

의도적으로 생지옥을 자아내고, 그 생지옥에서 비롯되는 절망과 고통, 부정한 사상(思想)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부정적 감정을 에, 에너지 삼아 ‘진리의 세계’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려 했다는 사실밖에…….”

그저 그것이 흑적 교도대의 진짜 목적이며, 그 외에 벌어지는 생체 실험은 어디까지나 부가적 목표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저희가 받은 명령은, 어, 어디까지나 실험을 위해 필요로 하는 부정적 감정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진짜 목적을 위해 필요로 하는 살아 있는 제물.

그것이 흑적 교도대의 일개 부대장, 벨로크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데일 역시,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전쟁 당시 이계의 용사는 어디까지나 제국의 집행자에 불과했다. 흑적 교도대의 목적을 비롯해, 제국의 목적이나 의도 따위는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사냥개.

그러나 데일은 알 수 있었다. 일개 하급 부대장이 아니라, 악마의 부대의 책임자 중 하나로서 일체의 진실을 알고 있는 남자를. 그렇기에 더더욱 동요를 감출 수 없었다.

그저,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국의 야망으로부터, 무고하다 믿어 의심치 않은 남자의 모습. 흑색 마탑의 옛 어둠과 결별하고 생명의 무게를 역설하며, 절대로 제국의 정의를 긍정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남자가.

“아버지…….”

데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흑적 교도대의 제2부대장, 흑색공.

종전 이후에도 제국이 비밀리에 부대를 존속시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일의 아버지는 자신의 의지로 부대를 해체했다.

제1부대장이자 부대의 총책임자, 핏빛공 유리스 후작에 맞서 흑적의 유대에 종지부를 찍고…… 그의 말마따나 알량하기 그지없는 도덕 따위에 휘둘리며.

그러나 그것이 결코 용서의 이유가 될 수는 없으리라.

─ 있지, 오빠.

바로 그때였다.

─ 나, 조금 더 갖고 놀아도 돼?

소녀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치맛자락 속의 촉수를 꿈틀거렸다. 데일이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제발 죽여달라고 애걸하는 남자를 향해.

“아, 아, 아아아……! 아니, 아니, 아니야, 아니에요, 놀지 말아 주세요, 제발, 제발……!”

“질릴 때까지 마음껏 갖고 놀아도 돼.”

데일이 대답했다. 정말로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목소리였다.

푸욱!

슈브의 촉수가 내리꽂혔고, 그 촉수가 흑마법사 벨로크의 심장에 있는 여섯 개의 서클을 휘감았다.

“커헉, 컥!”

어린 뱀파이어가 흑색 장로의 피를 집어삼키고 흑적의 마법사로 거듭났듯이, 그러나 적의 힘을 흡수하는 것은 결코 뱀파이어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흡혈귀가 사람의 피를 탐하듯, 슈브의 촉수를 타고 벨로크의 체내에 존재하는 어둠의 마력이 흡수되었다.

6서클 흑마법사가 일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마도의 정수.

데일의 발밑에서 휘몰아치는 흑색 마력이, 지금까지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흑색 마탑의 상층.

7서클의 흑마법사 에드거가 그곳에 있었다.

목이 잘리고, 사지가 찢어지고, 복부가 갈라져서 그의 내장을 줄줄이 쏟아내며. 애초에 그것은 싸움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일방적 압살이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죽음의 천사가 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은 까닭에.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는 육골들 속에서, 칠흑의 날개를 가진 남자가 있었다. 갈까마귀의 그것처럼 검고 어두운 여섯 장의 흑색 날개에 휘감겨서.

“……어떻게.”

“내가 일찍이 그 세계에서, 정말로 아무것도 손에 넣지 않고 돌아왔다고 생각하나?”

그 세계.

흑색 마탑의 흑마법사들이 그토록 갈구해 마지않는 진리의 세계. 죽음의 장막, 그 너머에 있는 신역(神域).

“하, 하하.”

흑색공의 말에, 에드거가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고통이나 체념에서 비롯된 웃음이 아니었다. 이대로 전투에서 패배하고 죽을 거란 사실조차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자기의 어리석음이 우습고 또 우스워서.

“그래, 역시 그래야 자네답지.”

에드거가 웃었다. 여섯 장의 흑색 날개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죽음의 천사를 바라보며.

“그리고 이제 나의 차례가 되겠어.”

죽음의 천사를 앞두고, 에드거가 덤덤하게 웃었다. 그를 향해 다가올 죽음의 장막 앞을 뒤로하고.

“나 역시…… 드디어 자네가 닿은 것과 같은 세계에 도달하겠지.”

설령 그것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는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은 언제나 죽음 속에 있는 법이니까.”

“…….”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앨런.”

“잘 가게나, 나의 친우여.”

작센의 앨런이 대답했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여섯 장의 흑색 날개를 펼치며.

“──네버모어(Nevermore).”

죽음의 천사가 입을 열었고, 까마귀의 깃털이 흩날렸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곳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에드거의 육체가, 비로소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 침묵이 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적이 깃털처럼 내려앉았다. 갈까마귀의 깃털처럼, 무척이나 검고 어두운 침묵이었다.

* * *

새벽녘의 어둠 속. 샬롯 오르하르트의 흑검이 휘둘러졌다.

작센 가를 지키는 검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데스나이트라고 해서 다 같은 데스나이트가 아니다. 설령 6서클 사령술사의 흑색 마력을 통해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하는 죽음의 기사라 할지라도, 그들의 검에 투영되고 있는 무위(武威)란 조잡하고 덧없는 것이었다.

일찍이 데일이 구사하는 데스나이트의 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데일의 그거랑은 비교도 되지 않아.’

이 존재들은 기사가 아니다. 기사의 긍지나 명예조차 없이, 그저 불사의 육체 하나에 의지하는 잡병에 불과했다.

“작센 가를 위하여.”

“데일을 위하여!”

그렇기에 샬롯이 주저 없이 검을 휘둘렀다. 스스럼없이 ‘주군의 이름’을 외치며, 작센 가를 수호하는 검으로서. 설령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사의 맹세를 이행하고자.

“방어 태세를 무너뜨리지 마라!”

“대장을 위해 싸우는 거다!”

마찬가지로 데일을 위해 충성하는 용병대, 일백의 중장갑 보병대가 필사적으로 대형을 유지했다.

바로 그때였다.

맞부딪쳐야 할 데스나이트의 흑검이, 그대로 우뚝 정지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쿠웅!

침묵 속에서 데스나이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그들의 검을 세로로 내리꽂았다.

“뭐, 뭐지……?”

당혹 속에서 밤까마귀 기사 하나가 중얼거렸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잘 싸워주셨습니다.”

“데, 데일!”

흑색의 후계자가 그곳에 있었다.

일찍이 흑색 마탑의 장로들이 조종하는 데스나이트를 그의 것으로 되돌리며, 그들이 잊고 있는 기사의 긍지와 명예를 되살린다.

“샬롯, 그리고 작센의 검들이여.”

데일이 입을 열었다.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샬롯과 기사들을 향해서.

“설령 죽어서도 살아서도, 우리는 작센에 충성하는 검들의 명예와 긍지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장로들의 습격에 맞서 공작성 곳곳에서 벌어지는 혈투에 종지부가 찍혔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작센의 ‘검은 공자’가 데스나이트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렇기에 그들의 명예를 더럽히려는 자들에게, 우리는 일말의 용서나 자비도 베풀지 않으리라 약속드립니다.”

일말의 감정도 없는 냉혹함을 갖고서.

* * *

작센 공작성.

새벽어둠을 몰아내고, 동틀 녘의 어스름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희끗희끗한 어둑새벽 속에서, 작센 가의 ‘검은 공자’가 공작성 대회당의 옥좌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나아가 작센 가에 충성하는 검들을 거느린 채. 감히 작센 공작 가에 대적하려 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북부 최강의 기사, 광검 헬무트 블랙베어 경.

흑색의 대행자 에리스, 엘프 마법사 세피아. 샬롯을 비롯한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

나아가 침묵 속에서 검을 휘두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작센 공작 가 직속 최고 친위대 《그레이브 가드》들 사이에서.

옥좌 위에 앉아 성내의 상황을 수습하고,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그 모습을, 누가 고작 11살 남자아이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곳에 있는 ‘검은 공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작센 공작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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