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61화 (61/301)

61화

* * *

괴물의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일찍이 흑적 교도대의 부대장으로서 그가 자행한 무수한 악업의 결정체가.

“아아악, 내 발! 내 발이 썩고 있어!”

“제발 살려주세요, 배 속에 아이가, 배 속의 아이가……!”

6서클의 흑마법사, 벨로크의 심상을 투영하고 있는 사상의 세계. 흑적 교도대의 생체 실험실.

발가락부터 썩어들어가는 고통에 발광하는 남자가 있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발끝부터 부패하고 있는 자신의 다리를 보다 못하고 톱으로 제 다리를 자르기 시작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모성애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괴물이 말했다.

“실험 대조군의 남자는 제 몸이 썩어들어가는 와중에도 감히 톱을 쥘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흑마법사 벨로크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업적을 떠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임신한 여자는 그렇지 않았지요!”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 다리를 잘랐다.

“…….”

“어머니의 모성이란 참으로 위대하지 않습니까?”

벨로크가 두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정말로 경이롭다는 듯이.

“그렇기에, 어머니로서 어디까지 자식을 위해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지…….”

데일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아울러 그 모성애를, 어머니의 사상(思想)을, 어떻게 해야 병기의 형태로 활용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 고심을 거듭했지요.”

벨로크의 장광설 앞에서, 데일은 덤덤히 침묵을 지킬 따름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을 자행한 흑적 교도대의 부대장. 괴물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세계.

데일조차 그 풍경 앞에서는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계의 용사로서 흑적 교도대의 정체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저 알고 있는 것과, 직접 실체를 목격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사실상, 이계의 용사와 흑적 교도대 사이에는 일말의 접점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들 손에 ‘몇 가지 고통스러운 실험의 희생양’이 되었을 따름이지.

어머니 엘레나와 여동생 리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당장 위장의 내용물을 게워내고 싶었다.

“……곱게 죽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데일이 입을 열었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악물며.

“내가 너에게 진짜 생지옥을 보여줄 테니까.”

“아, 그것참 기대되는 말이네요.”

“…….”

“역시 ‘검은 공자의 악명과 잔혹함’이란 허명이 아니었나 봅니다.”

벨로크의 조롱에 데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림자 망토를 펄럭이며, 일대의 풍경에 어둠을 덧씌울 따름이다. 어둠의 물결이 홍수처럼 일대로 퍼져 나갔다.

“검은 공자가 자랑하는 어둠의 아티팩트, 그림자 망토!”

그러나 일대를 잠식하는 어둠의 호수 위에서, 벨로크는 당황하지 않았다.

“벌써 ‘섀도우 러커’를 소환하는 레벨까지 아티팩트의 형태를 확장하다니.”

흑색 마탑의 6서클 장로. 그에게 있어 데일이 가진 어둠의 아티팩트는 결코 미지의 개념이 아니었으므로.

“그날, 탑의 시험에서 보여준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참으로 ‘검은 공자’의 명성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입니다.”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벨로크가 말했다.

“이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의 마법사를 죽일 수밖에 없다니……! 부디 흑색 탑주님의 나약함을 탓하십시오.”

아버지의 나약함. 그 말에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저 말없이 손가락을 튕길 따름이다.

푸욱!

어느덧 ‘섀도우 러커’의 가시 촉수가 벨로크의 그림자 밑에서 솟아났다. 그러나 발밑에서, 사방에서 쇄도하는 가시 촉수가 그에게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벨로크의 육체가 흐릿한 어둠의 무리가 되어 데일을 향해 질주했다.

망령화(Wraith Form).

6서클의 흑마법사란 것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그날, 지옥의 도서관에서, 데일이 『검은 산양의 서』를 통해 6서클 백마법사 니콜라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정한 사념과 사악한 사상으로 뒤틀린, 지옥의 지리적 이점을 살린 승리였다. 그리고 이곳은 그렇지 않다.

‘하루가 멀다고 일취월장하는 제국 제일의 재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람들이 작센 가의 검은 공자를 두고 떠들어대는 명성이다.

그것은 결코 아무 까닭 없이 부풀려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울러 니콜라이를 쓰러뜨리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사이 데일이 보여준 성장세는 어느 정도일까. 그 자신조차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마 6서클의 일개 흑마법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리라.

세 개의 마나 서클을 가속하며, 그의 발밑으로 공백의 지평이 펼쳐진다.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세계.

시린 냉기와 정제된 어둠의 마력이 흑청(黑靑)의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쳤고,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 드디어 나랑 놀아주러 왔구나?

어느덧, 데일의 곁에 소녀가 있었다. 칠흑의 드레스를 휘감은 어린 소녀였다.

흑발 사이로 검은 산양의 뿔, 두 개의 양각(羊角)이 우뚝 솟은 채.

─ 나, 무지무지 기다리고 있었어.

치맛자락 밑으로, 무수한 촉수 다발을 꿈틀거리며.

* * *

망령화.

섀도우 러커의 공격 일체를 흘려넘기고, 벨로크가 데일과 거리를 좁혔을 찰나였다.

“……!”

어느새 데일의 곁에 있는 ‘그 존재’를 보고, 벨로크가 경악과 함께 숨을 삼켰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무수한 촉수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흉물. 천하의 괴물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혐오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칠흑의 촉수를 따라, 콜타르처럼 검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저 콜타르처럼 검은 액체에 깃들어 있는 형용할 수 없는 악의를.

‘저게 대체 뭐지……?’

그리고 바로 그 칠흑의 촉수가 일제히 내리꽂혔다. 망령화, 그림자 그 자체로 거듭나 있는 벨로크를 향해서.

저것은 망령화 상태의 자신조차 피할 수 없는 성질의 일격이다.

칠흑의 촉수. 섀도우 러커의 ‘가시 촉수’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사악하고 끔찍한 악의의 결정체. 그대로 다급하게 거리를 벌렸다. 벌리고, 그가 자랑하는 부패 마법을 영창했다.

발밑 일대에서 데일을 향해 휘몰아치는 죽음의 바람을.

《사멸의 파도》.

생명의 소멸을 응축한 죽음의 바람이 쇄도했고, 데일 역시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흑색 서코트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펄럭이며,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어디까지나 『검은 산양의 서』에 100% 의존하는 전투 방식이 아니었다.

칠흑의 촉수가 뒤에서 데일을 엄호 사격하고, 어디까지나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데일 자신의 몫이다.

제국 제일의 재능을 자랑하는 검사이자 마법사로서 ‘검은 공자’가 벨로크를 향해 쇄도했다.

역으로 데일을 향해 휘몰아치고 있는 어둠의 바람을 앞두고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죽고 싶어서 작정이라도 했나?’

그 모습을 보고 벨로크가 의아함을 품었다. 6서클 흑마법사가 자랑하는 죽음의 바람. 비록 그것이 ‘부패 박테리아에 의한 유기질소 화합물의 해체 과정’임을 알 턱이 없었으나, 시체가 썩고 부패하는 것은 어느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어디까지나 이계의 지식을 바탕으로 데일이 흑청의 마력을 가공했다. 죽음의 바람으로부터 데일을 지키기 위한 흑청의 갑주가 휘감겼다.

두 개의 마법이 충돌했고, 벨로크가 자랑하는 소멸의 바람이 덧없이 사그라졌다.

“……!”

어느덧 데일이 질주하며, 그림자 망토를 따라 어둠의 칼날을 생성했다.

‘어떻게 부패의 마법을 상쇄시켰지?’

아무래도 좋다. 지금 당장 생각할 일이 아니다. 벨로크는 당황하지 않았다.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는 데일의 앞에서, 재차 양자 사이를 가로막는 ‘부패의 장벽’을 형성했다.

직후, 데일의 육체가 바로 그 부패의 장벽과 접촉했을 때.

‘이겼다!’

비로소 벨로크가 쾌재를 불렀고, 그와 동시에 부패의 장벽과 접촉하며 썩어들어가야 할 데일의 육체가…….

예의 ‘흑청색 갑주’에 휘감겨 그대로 벨로크의 코앞을 향해 짓쳐 들었다.

아무 피해도 없이, 너무나도 멀쩡하게.

“……!”

그 모습에 벨로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기사에게 거리를 허락해준 일개 마법사의 심정이 되어서.

어느덧 데일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그림자의 칼날이, 일제히 그를 향하고 있었다.

“어, 어, 어떻게 부패의 장벽을……!”

생물의 부패, 그 표상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벨로크로서는 알 턱이 없으리라.

부패. 박테리아에 의한 유기질소 화합물의 해체 과정.

그리고 부패 마법이란 ‘사상의 힘’으로 그 행위를 가속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데일에게, 부패 마법을 막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마법의 주체가 되는 부패 박테리아의 소멸.

‘살균(殺菌)’이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존재는 없다. 설령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푸욱!

그와 동시에 뒤늦게 저항하는 벨로크의 움직임을,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칠흑의 촉수가 봉쇄했다.

직후 그림자의 검이 내리꽂혔다.

“아아아악!”

상대를 죽이기 위한 치사의 일격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쐐기를 박는 일격이다. 팔다리의 힘줄을 자르고, 고통스럽되 죽지는 않을 정도의 핏줄들이 내리그어졌다.

“아아악, 아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이고, 엄살도 심하셔라.”

울려 퍼지는 비명을 뒤로하고 데일이 차갑게 조소했다. 생각 이상으로 맥없는 결말에.

마법사의 싸움이란, 결국 어느 쪽의 마법이 더욱 정교하고 강력한 로직(Logic)을 투영하고 있느냐의 승부다.

그렇기에 사상과 사상의 싸움에서, 이계의 지식이 갖는 ‘로직의 정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설령 그 상대가 6서클의 흑마법사라 할지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동일 속성을 공유하는 마법사끼리의 싸움이기에 더더욱 일방적으로 승부가 나버린 것이다.

‘마도서의 힘을 빌릴 것도 없었나.’

마도서가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도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데일이 『검은 산양의 서』를 호출한 진짜 이유는 달리 있었다.

“내가 말했지.”

비명을 내지르며 벨로크가 무릎을 꿇었고, 그를 향해 데일이 감정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에게 진짜 생지옥을 보여주겠다고.”

“아, 아아…….”

“이제 좀 검은 공자의 악명이 두렵게 느껴지나?”

어느덧 데일의 곁에 있는 소녀가, 치맛자락 밑으로 재차 촉수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흑색 마탑주의 후계자란 이름이, 아직도 우습게 느껴지나?”

아울러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벨로크가 보기에는, 혐오스러운 촉수들의 군체가 스멀스멀 칠흑의 촉수를 내리꽂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무척이나 작고 가느다란 촉수였다.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외과 수술용 나노 와이어처럼.

“……!”

가느다란 칠흑의 촉수들이 일제히 내리꽂혔다.

벨로크의 두 귓구멍과 콧구멍, 입속, 나아가 망막을 찢고 그의 머릿속을 향해서.

두개골 속에 있는 그의 뇌(腦)에 도달하기 위해.

“아아아악!”

찢어진 망막에서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벨로크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매도 일찌감치 맞는 게 낫다고.”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덤덤하게 내뱉었다.

“어차피 떨어지게 될 지옥이니……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지옥 구경이나 좀 시켜주마.”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시린 증오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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