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53화 (53/301)

53화

* * *

고위 마법사가 의도적으로 ‘사상의 세계’를 현실에 투영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고위 마법사들 사이의 격돌을 일컬어 ‘세계와 세계의 충돌’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이니까.

그러나 레너드 월터의 경우는 아니었다. 무리하게 쌓아 올린 4서클이 제어를 벗어나, 의식이 폭주하며 멋대로 날뛰고 있는 결과물에 불과하다.

“네놈 따위가, 네놈 따위가 나보다 무엇이 그리도 잘났다는 것이냐……!”

말 그대로 질투와 열등감을 불태우는 ‘불꽃의 신’이 되어서.

“나를 우러러라, 다들 나를 존경하란 말이야……!”

사방에서 지옥의 업화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레너드 월터의 심상 풍경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불꽃의 세계. 이것이 바로 ‘레너드 월터의 세계’였고, 레너드는 바로 그 세계의 신이었다.

질투와 열등감의 화신(化身).

“작센의 데일…… 없어지고 패배하는 것은 네 쪽이다……!”

바로 그 화신이 데일을 향해 일그러진 악의의 불꽃을 내뿜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애새끼네.’

데일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고 나서, 펄럭이는 그림자 망토를 뒤로하고 의식을 다잡았다.

“나를 우습게보지 마라, 작센의 데일……!”

레너드를 휘감고 있는 불꽃이, 데일을 향해 폭발하듯 휘몰아쳤다.

콰앙!

“히익!”

함께 휘말린 4서클의 교수조차, 사상의 세계에서 폭주하는 레너드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꼴을 보아하니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하물며 일개 3서클의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데일이 혀를 찼다.

‘어차피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겠지.’

동시에 청색 마력으로 쌓아 올린 냉기의 방패가, 레너드의 일격을 막아냈다.

“다들 제 뒤로 물러나십시오.”

데일의 발밑에서 시린 냉기와 어둠으로 이루어진 지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끝없는 공백과 허무를 품고 있는 겨울밤의 세계가.

“──여기는 나의 영역이다.”

마법사는 누구나 저마다의 심상을 투영하는 세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마법사가 쌓아 올리는 사상의 토대이기도 하다.

레너드 월터의 세계는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질투의 불꽃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였다. 그야말로 지옥의 업화처럼 불타고 있는 세계.

그에 맞서 데일이 ‘사상의 세계’를 전개했다. 일찍이 레너드처럼 멋대로 폭주하는 것이 아니라, 고위 마법사의 그것처럼 철저한 통제 속에서 투영하고 있는 데일의 심상(心象).

사상과 사상, 세계와 세계의 격돌.

이글거리며 불타고 있는 레너드를 향해, 데일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세계를 거느린 채.

시린 냉기와 어둠의 세계가, 불꽃의 세계와 격돌했다.

두 개의 세계가 맞물린다. 그리고 두 세계의 경계 위에서, 데일이 땅을 박찼다.

심장의 서클을 가속하며 청색 마력을 생성하고, 일대의 열을 빼앗기 위한 냉기를 흩뿌렸다. 하얗게 얼어붙은 서릿발이 흩날린다. 휘몰아치는 서릿발이 주위의 열기를 흡수하고, 열평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수처럼.

이글거리며 불꽃의 마력을 폭주하고 있는 레너드 월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레너드 월터.”

다가서서, 데일이 입을 열었다.

“주위를 둘러봐라.”

이성을 잃고 불꽃의 그림자가 되어 있는 레너드를 향해서. 등 뒤로 시린 겨울밤의 어둠과 냉기를 거느린 채.

‘검은 공자의 세계’가,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

어느덧 데일이 펼치고 있는 공백의 세계가, 레너드의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질투와 열등감의 지옥을, 시린 겨울밤의 어둠과 냉기가 집어삼켰다.

마법사의 싸움이란 결국 사상과 사상을, 세계와 세계를 맞부딪치는 싸움이다.

그 점에 있어 아무리 마력을 폭주하며 날뛰는 레너드라 해도 ‘진짜 천재’ 앞에서 할 수 있는 발버둥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아, 아아아아아!”

레너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레너드의 육체 위에서 춤추고 있는 질투의 불꽃이, 데일을 향해 내리꽂혔다. 질투와 열등감의 불꽃. 그것이 바로 레너드 월터가 마법사로서 가지는 사상(思想)의 형태였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질투의 불꽃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데일이 거느린 ‘겨울밤의 냉기’를 녹이지 못하고, 불꽃의 세계가 얼어붙고 있었다. 불꽃이 사그라지고, 그 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무저갱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끝없는 어둠이었다.

“이것이 나의 세계다.”

데일이 입을 열었다. 레너드 월터에 맞서 펼치고 있는 ‘데일의 세계’를 뒤로하고.

“너에게는 이 세계를 짊어질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나?”

그날, 끝없는 허무와 공백으로 이루어진 겨울밤의 풍경을 투영하며.

“아직도 ‘내가 가진 재능’이란 게 그렇게 보석처럼 탐스럽고 빛나 보이나?”

어느덧 레너드를 집어삼키고 있는 질투의 불꽃이, 힘없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 아아…….”

데일이 걸음을 옮겼다.

레너드가, 뒷걸음질을 쳤다. 데일이 자신의 등 뒤로 거느린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지평으로부터.

“오, 오, 오지 마……!”

시린 냉기와 어둠으로부터 도망치듯이.

“왜 그러지?”

데일이 되물었다.

“여기 네가 바라는 것이 있다.”

데일이 가진 재능의 원천. ‘검은 공자’의 세계. 시린 냉기와 어둠으로 이루어진 공백의 지평.

“그토록 나를 질투하고 열등감에 젖어서, 내가 가진 재능을 바라마지 않았나?”

그것은 재능 따위의 시시한 것이 아니었다. 부조리의 화신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나는 이미 대가를 치렀다.”

자신의 가슴팍을 뚫고 솟은 성검의 칼날을 기억하며.

“너에게는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나?”

데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여기 네가 바라는 것이 있는데, 어째서 도망치려고 하지?”

레너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가진 것들이 축복처럼 느껴지나?”

데일이 물었다.

“제, 제발……! 다가오지 마, 이 이상 다가오지 말아줘……!”

겁에 질린 레너드가 벌벌 떨며 애걸하고 있다. 무릎 꿇고 비참하게. 감히 데일이 짊어지고 있는 세계를 응시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어느덧 일대에 타오르고 있는 질투의 불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흩날리고 있는 불씨가 모조리 사그라졌다.

그저 살을 에는 것 같은 냉기와 서릿발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어둠 속에서, 어느덧 레너드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따름이었다.

폭주 끝에 불타고 있어야 할 레너드의 심장과 네 개째의 서클이, 싸늘하게 얼어붙어서.

딱.

데일이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일대를 휘감고 있는 겨울밤의 세계가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은 실기 마법을 위한 황립 아카데미의 강당 내부였다.

“도, 돌아왔다…….”

경악 속에서 교수가 중얼거린다. 데일이 그대로 고개를 내렸다.

“아, 아아아…….”

레너드 월터가 그곳에 있었다. 마치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미치광이처럼 벌벌 떨며,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아직도 데일의 세계와 접촉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서클의 엘프 마법사조차 감히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 겨울밤의 어둠이니까.

직접 노출되지 않은 교수와 학생들의 경우는 무사하다고 쳐도, 레너드 월터는 그렇지 않았다.

‘검은 공자의 세계’는 일개 수재 마법사의 그릇이 감당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평생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치광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아니,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알 바 아니지.’

데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사태를 자초한 것은 어디까지나 레너드의 몫이었고, 데일은 그저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었을 따름이니까.

* * *

그 후.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폭주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일이 되었다.

진실을 아는 자들에게는 적색 마탑의 함구령이 내려졌다.

레너드 월터는 어디까지나 일신의 이유로 자퇴했으며, 모종의 이유로 그의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다는 학생들 사이의 이야기가 나돌았다.

‘작센 가의 장남에게 덤볐다가 패배하고 머리가 이상해졌대.’

‘그 레너드가 11살짜리 애송이에게 패배했다고?’

‘역시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사실이었나봐.’

‘천하의 레너드 월터가 그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듣자 하니 흑마법의 저주를 받아서 고통 끝에 미쳐버렸대!’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정신을 파괴하는 마법이랬어!’

데일의 이름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이야기란 과장에 과장을 거듭하는 법이다.

게다가 하필 적색 마탑으로서도 진실을 드러낼 수 없어 침묵을 지키는 탓에, 데일의 악명(惡名)은 날이 갈수록 끝을 모르고 부풀어갔다.

레너드가 ‘검은 공자’의 사악한 흑마법에 저주를 받아 미쳐버렸다는 둥.

그 까닭에, 황립 아카데미의 누구도 감히 데일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데일의 비위를 맞추는 데 필사적이었다. 학생을 지도해야 할 교수들조차 예외일 수 없었다.

오히려 ‘흑색공’과 작센 가의 위명을 오롯이 이해하고 있는 그들의 공포는, 어느 의미에서 학생들 이상이었으니까.

어쨌거나, 데일로서는 무엇 하나 나쁠 것이 없는 일이었다.

* * *

장남 레너드가 미치광이가 되어 지하에 유폐되고, 얼마 후.

적색 마탑.

탑의 장로이자 6서클 마법사, 염혈의 월터는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뼈가 사무치는 것 같은 슬픔 속에서 통곡하며.

“월터 가의 핏줄이……!”

장남 레너드를 향하는 아버지로서의 슬픔이 아니었다. 월터 가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고, 가문의 유지를 이어야 할 핏줄이 그 기능을 잃었다는 귀족으로서의 슬픔.

자랑스러운 월터 가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는 그 수치심이, 서럽고 또 서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염혈이란 그의 이명처럼, 월터 백작의 피가 체내에서 불꽃처럼 끓기 시작했다.

“작센의 데일…… 그 빌어먹을 작센 가의 애송이 놈이!”

염혈의 월터. 적색 마탑의 장로이자, 제국의 통일 전쟁 당시 ‘흑적 교도대의 제6부대장’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생체 실험을 자행하며 ‘학술적 성과’를 쌓아 올린 적마법사.

“용서할 수 없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노호가 어디로 향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아, 월터 공.”

바로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일순,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그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타, 탑주님……!”

어느덧 기척조차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적발의 미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삼가 탑주님을 뵙습니다!”

핏빛공, 유리스 후작이었다.

“참으로 마음의 고통이 크시겠습니다.”

유리스 후작이 짐짓 과장되게 상심의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적색 마탑주 앞에서, 월터 백작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소, 소, 송구합니다!”

마치 공포의 대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두려움.

마탑의 장로가 탑주를 향해 경외의 마음을 갖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핏빛공을 향하는 월터의 감정에 알기 쉬운 경외 같은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괴물을 보는 것 같은 공포심이 있을 따름이다.

누구보다 ‘핏빛공’이란 남자를 가까이서 이해하고 있는 까닭에.

“저, 절대로 탑주님께서 초청하신 작센 가의 장남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아,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부, 부디 오해를 거두어 주십시오!”

“흠, 그것참 유감이네요.”

유리스 후작이 의외란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어디까지나…….”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월터 공의 복수를 도와드리고자, 이 자리에 왔는데 말이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