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 *
레너드의 심장을 휘감고 있는 세 개의 서클이 회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레너드가 쏟아내고 있는 핏빛 마력의 기류를 보며, 데일이 숨을 삼켰다.
그야말로 둑이 터진 댐처럼 쏟아내고 있는 적색 마력의 폭포. 저것은 절대로 3서클 마법사가 생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적어도 데일 정도의 재능을 갖고 있지 않고서야.
‘오버클럭(Overclock)…….’
마법사가 자신의 서클 회전률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 가속하는 행위. 마법사로서 뒤가 없는 배수진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레너드의 팔목에 차고 있는 루비 수정으로 이루어진 팔찌.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레너드 월터에게는 저 아티팩트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아티팩트의 폭주가 더해져서 제정신이 아니다.’
애초에 레너드의 상태가 이상한 것에는 저 아티팩트의 존재가 적잖이 영향을 끼치고 있겠지.
데일이 혀를 차며 심장의 서클을 가속했다. 흑청의 마력이 결합하며, 데일의 발밑에서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오버클럭을 통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레너드의 적색 마력을 압도하며.
“어떻게……!”
그 모습을 보며 교수를 비롯한 학부생들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마법사들의 경우, 생성하는 마력의 양을 토대로 서클의 RPM(회전체의 분당 회전수)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작센 가의 장남이 정말로 3서클의 경지를 이루었는지, 설령 3서클이라고 해도 그것이 정말 착실하게 수행을 통해 쌓아 올린 것이기는 할지, 나아가 서클의 회전수가 100rpm을 넘기는 할지……. 규격 외의 재능 앞에서 그러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들에게, 데일이 비로소 그들의 의심을 종식시키고 있었다.
통상 마법사들의 평균적인 서클 회전률은 300rpm.
레너드처럼 재능이 있다고 여겨지는 자들의 경우, 1,000rpm 남짓. 오버클럭을 통해서 무리하게 서클을 회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rpm을 채 넘지 못한다.
그러나.
3,000rpm. 그것이 데일이 가진 제1서클이 회전하며 마력을 생성하고 있는 속도였다.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양의 마력’이 데일의 발밑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것도 청색과 흑색의 이중 속성이 뒤섞여 있는 흑청(黑靑)의 마력을.
시린 냉기와 정제된 어둠의 정수.
그 모습을 보고, 그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다.
작센 가의 장남, 데일을 두고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명성이 결코 거짓이 아니란 것을.
“대체 어떻게……”
오버클럭을 통해 서클의 가속을 거듭하며, 레너드가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포기하고 당장 ‘아티팩트’를 버려라.”
데일이 말했다.
“그 이상 무리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릴 테니까.”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그 표정이, 참을 수가 없었다.
“돌이킬 수 있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제국 궁정백 ‘염혈의 월터’…… 자랑스러운 적탑 장로의 장남으로서, 주위 모두가 그를 두고 제국 제일의 재능을 가진 마법사라며 칭송했다.
‘아, 이것 참. 마법사로서의 장래가 무척 기대되네요!’
심지어 천하의 유리스 후작마저 레너드를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적색 마탑주, 바로 그 핏빛공마저 자신의 재능에 기대를 품고 있다! 그것이 레너드의 긍지이자 자부심이고, 나아가 그의 에고 그 자체이기도 했다.
적색 마탑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힘의 법칙이고, 레너드에게는 바로 그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고, 나아가 적색 마탑의 엘리트로서 출세 가도를 보장받았다.
──그랬어야 했다.
이 세상은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다. 그리고 레너드는 그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항상 ‘승리하는 쪽’이었다.
레너드의 앞에 ‘작센 가의 어린 장남’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부조리의 화신(化身).
“웃기지 마라!”
오버클럭을 통해 과잉 생성되고 있는 마력을, 자신의 팔찌에 불어넣는다. 염혈의 월터가 가진 아티팩트 ‘염옥(炎獄)의 사슬’.
“나다, 내가 바로 제국 제일의 천재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격랑 속에서 레너드가 소리쳤다. 팔찌가 빛을 뿜었고 일대에 휘몰아치는 적색 마력이 비로소 ‘마법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채찍처럼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화염의 사슬이었다.
불꽃의 쇠사슬. 심장이 터질 것처럼 뜨겁다. 그러나 레너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재능이 있다. 그리고 이 아티팩트를 다룰 수 있는 역량도 있다. 이곳에서 무너질 내가 아니다. 그렇게 자기를 세뇌하며, 불꽃의 사슬이 일제히 휘둘러졌다.
그러나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불꽃의 사슬이, 그대로 소멸했다. 데일의 발밑에서 소용돌이치는 흑청의 마력에 가로막혀서 덧없이.
“적마법사가 그렇게 쉽게 자기 불을 꺼트려서야 쓰나.”
“……!”
데일이 남의 일처럼 조소했다.
일대의 ‘분자 운동’을 정지 상태에 가깝게 고정해, 불꽃이 타오르기 위한 전제 조건 자체를 봉쇄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 있는 청마법사라 해도, 적마법사의 불꽃을 꺼트리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계의 지식’을 바탕으로 확실한 심상(心象)을 가진 데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열이란 것은,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 운동의 격렬함’을 나타내는 척도에 불과하니까.
“……네놈 따위가 감히!”
애초에 전장에서 경험을 축적한 적마법사는 절대 자신의 불꽃을 쉽게 꺼트리지 않는다. 설령 데일처럼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어느 상황에서도 불꽃을 유지하기 위한 열의 유지를 소홀히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상대는 적색 마탑의 정식 마법사나 퓨리파이어도 아니다.
우물 속의 세계에서, 입에 발린 칭찬에 쓸데없이 에고가 부풀어 있는 일개 애송이에 불과하니까.
하물며 마법사는 전장에서 활약하는 것을 전제로 수행하지 않는다. 마법을 수행하는 행위와 ‘전장에서 마법을 활용하기 위한 수행’을 쌓는 것은 별개의 일이니까.
그 점에 있어 레너드는 결코 데일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렇기에 데일이 말을 이었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아티팩트를 버려라.”
딱히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거란 기대는 없었다.
“슬슬 아파서 못 버티겠지?”
그러나 지금도 오버클럭 끝에, 레너드의 심장은 불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이상 고집을 부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으리라.
“큭……!”
실제로도 데일의 예측은 정확했다. 레너드의 심장은 불타버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으니까.
그저 데일의 유일한 착오는, 레너드의 프라이드란 것이 데일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란 점이었다.
세뇌에 가까운 적색 마탑의 사상, 힘에 의한 질서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의 실체. 그들에게 있어 힘이 약하다는 것은 결국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풀 액셀러레이터 속에서, 서클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는 마나가 레너드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일순, 세계가 정지했다.
“……!”
그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레너드는 그곳을 알고 있었다.
마법사는 누구나 사상(思想)으로 쌓아 올린 심상 세계를 갖고 있고.
──이곳은 바로 ‘레너드의 세계’였으므로.
깨달음의 세계. 사상의 무저갱.
“하, 하하…….”
나아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렇기에 레너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대며, 심장 주위에서 느껴지는 ‘또 하나의 고리’를 감지하며.
네 개째의 마나 고리. 4서클의 증표.
“해냈다, 내가 해냈어!”
자신의 세계에서, 레너드가 참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스물의 나이에, 4서클의 경지를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제국 제일의 재능’이 아니고서야 무엇이란 말이냐! 그렇게 생각하며 레너드가 끝없이 광소했다.
바로 그때였다.
화르륵!
레너드의 세계가, 화염에 휩싸여 불타기 시작했다.
흡사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지옥불이, 그의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 *
“……!”
뜻밖의 상황에 데일이 경악과 함께 숨을 삼켰다.
레너드 월터의 육체가 불타고 있었다. 그의 심장에 새로 덧씌워진 네 개째의 마나 서클과 함께.
그것은 데일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일찍이 데일이 3서클의 경지에 도달할 때 그랬듯, 전력으로 자신을 부딪쳐 ‘벽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 그러나 레너드에게는 그 곡예를 감당할 역량이 없었다.
그렇기에 무리해서 4서클을 쌓아 올린 여파로, 사상(思想)의 세계가 폭주를 일으키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레너드에게 ‘재능이 있는 까닭’에 벌어진 참사.
마법이란 상상을 현실에 덧씌우는 힘이고, 그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를 일으킬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사상 세계의 현실 침식’.
일대의 풍경이 레너드가 가진 ‘사상의 세계’와 융화되며 뒤틀리고 있었다.
세계가 불타고 있었다. 마치 결계 속에 갇혀서 괴리되어 있는 것처럼. 3서클 최고 학부의 학생들과 교사마저 휘말린 채.
‘일이 골치 아프게 됐다.’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내심 혀를 찼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겠지.’
슬쩍 흑색 서코트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보며 생각했다. 멋대로 폭주를 일으켜 위협하는 것은 저쪽이었고, 데일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니까.
바로 그때였다.
‘그 빌어먹을 애새끼에게 보여줘야 해.’
‘이 내가, 레너드 월터가 바로 제국 제일의 천재란 사실을.’
일찍이 데일이 세피아와 세계의 공명을 일으켰듯이, 폭주하고 있는 레너드의 목소리와 감정이 데일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데일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감각.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이 심장을 옥죄었다. 레너드 월터의 처지에서 느껴지는 ‘검은 공자’의 무게감에.
그것은 지금까지 데일의 적수들이 데일의 앞에서 느끼는 절망이었고, 그 감각에 데일이 나직이 입술을 악물었다.
세피아가 그러했듯이, 평정을 잃을 것 같은 동요가 데일의 의식을 덮쳐왔다.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데일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타자(他者)의 입장에서 느껴보는 ‘데일의 벽’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지나친 그 사실들이, 역으로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내리꽂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이 정도였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절망의 벽을 앞에 두고, 데일은 싸늘하게 조소했다.
“천하의 ‘검은 공자’도 생각보다 별거 없네.”
일찍이 전생의 자신이 쓰러뜨린 적들을 떠올렸다. 강자(强者)란 말로도 오롯이 형용할 수 없는 규격 외의 괴물들을. 그리고 제국의 사냥개로서, 바로 그 무수한 규격 외의 괴물들을 사냥한 그였다.
바로 그 괴물들의 무저갱 같은 세계를 오롯이 마주한 데일이기에, 고작 이 정도 공명에 동요할 데일이 아니다.
그대로 그의 앞에서 불타고 있는 ‘레너드 월터’와 그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무엇 하나 달라질 것은 없다. 바라보고 나서,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알 게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