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46화 (46/301)

46화

* * *

“공자님…….”

그 기사는 몸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저와 작센 가는 결코 그대의 헌신을 잊지 않을 겁니다.”

데일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부디…… 제가 죽어서도 밤까마귀 기사의 의무를 이, 이행할 수 있도록…….”

“경의 뜻은 잘 이해했습니다.”

힘겹게 이어지는 그 말에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 속에서 기사의 호흡이 차츰 희미해진다. 그렇게 하나의 생명이 타올랐고, 데일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악물며.

타닥타닥.

사방에서 불씨가 흩날리고 있었다. 곳곳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의 조각들.

그것은 데일에게 있어 무척이나 익숙한 ‘전장의 풍경’이었다.

“일백구십삼 명의 기사가 폭발에 휘말려 전사했습니다.”

데일의 곁에서, 바스커빌의 베일 경이 덤덤하게 피해의 보고를 올린다.

“오러 나이트 급의 기사는 다소의 화상을 제외하고, 모두 무사합니다.”

“…….”

베일 경의 말을 듣고, 데일이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고개를 돌린다.

“……데일.”

걱정스러운 듯 자신을 바라보는 세피아가 그곳에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린다.

데일의 아버지, 흑색공 역시 그곳에 있었다.

남아 있는 퓨리파이어들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고, 손짓 하나로 그들을 정리한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가.

“기사들의 시신과 잔해를 수습하라.”

“알겠습니다, 공작 각하.”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사무적으로 명령을 내린다. 어느덧 그의 곁으로 집결해 있는 흑마법사들을 향해.

“에리스.”

“예, 탑주님.”

“네크로폴리스의 탑으로 ‘저것’을 옮겨라.”

그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살덩어리를 가리키며, 흑색공이 말을 이었다.

“옮겨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낱낱이 밝혀내도록 해라.”

“탑주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흑색 마탑주의 비서, 흑색의 대행자 에리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내려야 할 명령들을 마저 내리고 나서 흑색공이 걸음을 옮겼다.

“데일.”

“아버지.”

데일이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피해가 제법 막심하구나.”

비록 적색 마탑의 퓨리파이어들이 ‘그들의 목적’을 이행하지 못했을지라도, 어느 의미에서는 데일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뼈저린 패배이자 손실이다.

“지휘관으로서 자신을 자책하고 있느냐?”

“제가 작센의 기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기사들을 물려야 했습니다.”

데일이 다시금 입술을 악물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란 듯이.

“너와 세피아 님, 두 명이서 수백의 오크 기수와 열두 명의 퓨리파이어를 상대할 셈이었느냐?”

흑색공이 되물었다.

아무리 데일과 세피아가 마법사로서 뛰어나다고 해도, 기사들이 그러하듯 마법사의 세계 역시 다르지 않다.

흑색공이나 ‘이계의 용사’에 준하는 규격 외 존재가 아니고서야 수적 우세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하물며 상대는 오로지 전투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적색 마탑의 기사’들이다.

그 차이를 압도할 정도로 아직 자신이 강하지 못한 까닭에, 작센의 기사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작센 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무력함이었다.

‘규격 외의 존재’로 거듭나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

“너무 자신을 자책하지 말아라.”

흑색공이 입을 열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아들을 격려하는 아버지의 자상함 앞에서.

“…….”

데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심장에 뿌리내린 칠흑의 촉수와 함께, 세 개의 서클을 회전시킬 따름이다.

그곳에서 전사한 밤까마귀 기사 하나를 향해 ‘흑색 마력’을 불어넣으며.

“작센의 기사들이…….”

흑색 마력이 기사의 몸을 따라 내달리고, 죽었어야 할 망자가 몸을 일으켰다.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기사로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자들. 그게 바로 작센 가를 위해 충성하는 밤까마귀 기사들이다.

“그리고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데일이 입을 열었다. 망설임 없는 결의를 담아,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를 휘감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거느린 채.

“부디 작센의 기사들이, 그들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지금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을 저 너머의 전선(戰線)을 향해.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목소리로.

* * *

북부의 사람들에게 있어,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아니, 어느 의미에서는 무엇보다 믿음직한 승리의 보증과 같았다.

그렇기에 끝없이 밀려드는 오크 무리 앞에서, 죽은 자들이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육골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북부군의 사기는 그 어느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비로소 ‘죽음의 신’이 자기들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므로.

* * *

전세는 빠르게 기울고 있었다.

대다수 도하 지점에서는 무사히 수비에 성공했고, 승리 끝에 역으로 여울목을 넘어 적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진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크들은 최후의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결코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그아아아아아!”

오크 워보스가 그의 거대한 양날 도끼를 휘둘렀고, 강철 갑주가 종잇장처럼 우그러진다. 그야말로 광전사라는 말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모습.

후우웅!

휘둘러지는 참격 앞에서 병사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지고, 누구도 섣불리 다가설 생각을 하지 못한다.

몇 미터의 거구에 어울리는 괴물 같은 파괴력. 강철의 도끼가 끝없이 휘둘러지고, 그럴 때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흩뿌려졌다.

사람이 낙엽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쏟아지는 피와 내장을 뒤집어쓰며 오크 워보스가 다시금 포효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정예 오크병들이 질세라 고함을 높였다.

전투는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사(決死)의 투지를 불태우는 오크들을 상대로 종지부를 찍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러나라.”

그렇기에 머뭇거리며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흑색 갑주의 기사가 걸음을 옮겼다.

“내가 저들을 상대할 것이니.”

광검(狂劍)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었다.

그리고 헬무트 경이 자신의 허리춤에서 자신의 애검…… ‘광기(Madness)’를 뽑아 들려는 찰나.

“──헬무트 경.”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일 공자님?”

헬무트 경이 고개를 돌렸고, 그대로 숨을 삼켰다. 데일이 그곳에 있었다.

작센의 흑검을 쥐고 있는 죽음의 기사들을 거느린 채.

“물러나십시오.”

데일이 말했다.

“저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저와 제 기사들의 몫입니다.”

발밑을 따라 그림자 망토를 펄럭이며.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표정을 하고서.

“공자님!”

그 모습에 헬무트 경이 일순 숨을 삼켰다. 삼키고 나서는 자신의 검을 도로 칼집에 집어넣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로 작센의 데일에게 갖는 신뢰란 보통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헬무트 경이 묵묵히 걸음을 물린다. 그 후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오크 워보스를 향해, 데일이 고개를 들었다.

“작센 가의 검들이여.”

자신이 거느린 죽음의 기사들과 함께.

“그대들의 의무를 이행하십시오.”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를 휘감고, 데일이 거느린 데스나이트들이 땅을 박찼다. 그들의 흑검에 실린 무위(武威)를 마음껏 펼치며.

“저것은 대체……!”

그 모습을 보고, 헬무트 경이 경악과 함께 소리를 높였다.

데일의 데스나이트들이 펼치는 검무는, 결코 일개 어중이떠중이 흑마법사의 그것이 아니었다.

흡사 고도의 경지를 가진 검객이, 그들의 검식을 펼치는 것 같은 검무.

데스나이트의 검이란 결국 사령술사의 조종에서 비롯되는 법이고, 두말할 것 없이 보통의 사령술사에게 검의 조예가 있을 턱이 없다. 그 까닭에 데스나이트가 펼치는 검술은 투박하고 조잡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데일이 거느린 데스나이트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생전에 그들이 가진 경지 그 이상을 보여주는 터무니없는 검술과 기교. 그 검무 앞에서 투사의 종족이라 일컬어지는 오크의 도끼가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물 흐르듯 오크들의 도끼를 비껴내고, 작센의 흑검이 휘둘러졌다. 굶주린 검이 적들의 피를 갈구하듯이.

푸욱!

오크의 피가 흩뿌려진다. 일방적으로 펼쳐지는 도살. 보고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데일 공자님의 검재(劍才)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검의 재능이 어쩌고 하는 레벨조차 아니었다.

‘그러나 저 터무니없는 검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저것은 이미 재능이라고 부를 영역조차 아니다. 데일의 데스나이트들이 펼치고 있는 검식. 그 검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검’이었다.

광검 헬무트 경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지금 그들의 칼끝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일찍이 대륙을 평정한 ‘용사의 검’이란 사실을.

그 앞에서 일개 오크 무리의 저항이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발버둥에 불과했다.

“그어어어!”

투사의 종족으로서 결사의 의지를 각오한 최후의 발악을 감행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투지나 포효 따위가 죽음의 기사들에게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도륙이 있을 따름이었다.

흑검이 휘둘러졌고, 그때마다 정예 오크병들의 시체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바로 그때, 일방적으로 펼쳐지는 도륙의 장 속에서 오크 워보스의 양날 도끼가 휘둘러졌다.

콰아앙!

그야말로 지축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비로소 데스나이트 하나의 육골이 부서져 내렸다.

‘오크 워보스’의 이름이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마족 대이동,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의 투쟁을 지속하는 오크 무리의 리더.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손가락을 튕겼다.

기사들의 흑검이 일제히 정지했다. 불사의 기사들을 물리고, 그들 사이로 ‘검은 공자’가 걸음을 옮겼다.

흑색 서코트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나부끼며, 그의 손으로 이 전투에 종지부를 찍고자.

“고, 공자님!”

데일의 모습에 기사 하나가 당혹과 함께 소리를 높였다.

“걱정할 것 없다.”

그러나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 나직이 팔을 뻗어 그의 부하를 제지했다.

데일이 자신의 ‘데스나이트’를 통해 보여준 검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100%의 힘이다.

그렇기에 제국 제일의 천재로서 보여줄 ‘검은 공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기대돼서 참을 수 없었다. 설령 그 상대가 작센의 기사 몇 명쯤은 우습게 짓밟아버릴 수 있는 오크 워보스라 할지라도 말이다.

오크 워보스가 강철의 도끼를 고쳐 잡았다. 직감적으로 데일의 존재가 가진 위압감을 이해하고서.

데일 역시, 그림자 망토를 따라 어둠의 칼날을 생성했다.

짤막한 대치가 이어졌다.

대치 끝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삭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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