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 * *
콰아앙!
퓨리파이어가 자기 육체를 제물 삼아 터뜨리는 자폭 공격. 휘몰아치는 폭발 속에서, 데일과 세피아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냉기의 갑주’를 영창했다.
분자 결합을 극도로 강화하며, 휘몰아치는 화염 속에서 결코 그 ‘정지 상태’를 깨트리지 않을 정도의 빙각(氷殼). 비록 폭발의 충격 자체를 완전히 흡수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 제일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데일과 청색 마탑의 장로, 세피아의 수계 마법이니까.
그러나 일개 ‘강철의 갑주’ 따위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는 작센의 기병들은 그렇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열기가 그들의 강철을 녹이고, 살과 피와 뼈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퓨리파이어의 자폭에, 작센 가가 자랑하는 수십 명의 밤까마귀 기사들이 일소되었다.
열두 개의 폭발물 중에서 고작 하나가 터졌을 따름이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화염의 폭풍 속에서 나머지 ‘폭발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임무를 끝마치고자, 불꽃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퓨리파이어’들이 데일을 향해 쇄도했다.
세피아의 불협화음에 방해받지 않는 즉발 영창, 화염의 불줄기를 뿜어내며.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러나 데일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역전의 용사다.
쇄도하는 불줄기 앞에서 데일 역시 발밑의 ‘그림자’를 움직였다. 펄럭이는 그림자 망토를 따라 어둠의 칼날을 생성하고, 어렵지 않게 땅을 박차며 퓨리파이어의 불줄기를 피해냈다. 피하고 나서, 역으로 적을 향해 쇄도하며 그림자의 칼날을 내리꽂았다.
푸욱!
‘이걸로 둘.’
촤아악!
그림자의 칼날이 퓨리파이어의 가슴팍을 향해 내리꽂히기 무섭게, 하나의 칼날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며 그의 체내를 갈가리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파쇄기의 칼날처럼, 심장과 내장을, 어깻죽지와 사지와 목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 직후, 퓨리파이어의 육체가 터지며 폭사가 일어났다.
아까와 달리 비교적 그 위력이 감소한 폭발이었다. 터져야 할 ‘폭발물의 형태’가 온전하지 못한 까닭에.
이걸로 두 개째의 폭발물이 터져 나갔다.
‘어차피 대화 따위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휘몰아치는 화염 속에서, 데일이 평정을 집중했다. 흘끗 등 뒤에 있는 세피아를 바라보며.
“조심하세요.”
적어도 그녀를 걱정할 필요 따위는 없으리라.
“조심해라, 데일.”
다시금 몇 명의 퓨리파이어들이 사방에서 쇄도하기 시작했다. 일개 공격 마법 따위를 사용하려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들이라 할지라도, 청색 불협화음이 울려 퍼지는 이곳에서 두 명의 수 속성 마법사가 일으키는 방패를 뚫기는 어려울 테니까.
“……!”
콰아앙!
그저 여러 개의 폭발물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일제히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폭발로 그 정도의 화력을 발휘할 정도였고, 다수의 퓨리파이어가 일제히 터뜨리는 폭발의 규모는 그것과 감히 비교를 불허하는 것이었다.
죽음을 겁내지 않고 자신을 불사르는 일격.
굉음이 울려 퍼졌다. 지옥의 겁화(劫火)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데일과 세피아, 그리고 데일이 거느린 삼백의 기병 모두를 집어삼킬 정도의 폭발.
두개골 속의 뇌가 어질어질해질 정도의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휘몰아치는 폭발 속에서, 데일의 육체가 실체를 잃고 그림자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림자 망토의 능력, 망령화(Wraith Form).
아울러 세피아 역시 그녀 나름의 마법을 사용해 자신의 육체를 지키고 있다. 방어를 장기로 하는 청색 마탑의 장로가, 고작 이 정도의 자폭에 당할 리 없을 테니까.
“……!”
그러나 데일과 세피아를 제외하고, 그 외의 기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이 그들의 육체가 덧없이 불타고, 스러진다.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기사 수십에서, 어느덧 그 피해는 백 명 이상으로 아득하게 불어나 있다.
끝없이 휘몰아치는 화염의 폭풍 속에서, 그림자 무리의 일부가 되어 있는 데일이 망령화를 해제했다. 얼음의 갑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퓨리파이어 하나의 등 뒤에서.
푸욱!
그대로 그림자의 칼날을 내리꽂고, 파쇄기처럼 어둠의 칼날을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찢고 또 찢어서, 그 육체의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살과 피와 뼈가 흩뿌려졌다.
‘아직도 몇 명이 남아 있다.’
하나의 육체를 다진 고기처럼 잘게 저미고 나서,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일말의 감정조차 없이.
냉기의 결계로 몸을 지키고 있는 세피아. 그 뒤로 녹아내린 철편(鐵片)과 육체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이 엉망으로 부서진 육체의 잔해.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데일을 위해 충성을 맹세한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
“…….”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악물었다.
“너희들의 임무는 실패했다.”
남아 있는 퓨리파이어의 숫자는 셋. 그들을 보며, 데일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결국 나를 죽이지 못할 테니까.”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와 희생을 뒤로하고…… 그럼에도 확실하게 손에 넣은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며.
“히, 히히히.”
그 모습을 보고 퓨리파이어 하나가 웃음을 터뜨린다. 광기에 젖어 있는 비틀린 웃음이었다.
“이, 이, 이 광경을 보고도 ‘승리’란 말이 나오나?”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는 작센 가의 기사들을 가리키며.
“너, 너희 흑색 마탑이 ‘죽음’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부서진 갑주와 흩뿌려진 육체의 조각들을 가리키며.
“우, 우, 우리가 그깟 ‘죽음’ 따위를 두, 두려워할 것 같으냐!”
광기에 찬 목소리와 함께, 다시금 퓨리파이어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주,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 앞에 기꺼이 우리의 육체를 불사를 각오가 되어 있다!”
그야말로 광신자의 그것처럼.
“하일 엠파이어(Hail Empire)!”
땅을 박차고 질주하며, 그들이 다시금 자신의 육체를 폭발시키려 할 바로 그때였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했나?”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이나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남아 있는 퓨리파이어들의 육체가 일제히 폭발했다.
자폭(自爆).
화염이 휘몰아쳤고, 데일과 세피아는 다시금 냉기의 갑주를 생성하며 자신들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폭염(暴炎)이 비로소 잦아들 즈음,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데일이 숨을 삼켰다.
자신의 육체를 터뜨리는 자폭 마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사 끝에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아야 할 퓨리파이어들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너무나도 멀쩡하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동시에.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지.”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말로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행위는 달리 있다.”
남자가, 있었다.
흑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는 남자였다.
“죽지 않을 각오다.”
아울러 자폭 속에서 어떻게 자신이 살아남았는지…… 살아있는 퓨리파이어들이 일순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폭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붙어 있는 자신의 육체. 그것은 결코 그들의 의도가 아니었으므로.
“네놈들에게는 ‘죽지 않을 각오’가 있나?”
남자가 다시금 퓨리파이어들을 향해 물었다.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 바로 그 흑색 마탑의 정점에 서 있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퓨리파이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주저함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그대로, 데일의 아버지를 향해 질주했다.
다시금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불꽃의 육체를 폭발시키기 위해.
콰아앙!
재차 폭발이 일었다. 일대를 집어삼킬 정도의 커다란 폭발. 지옥의 업화가 휘몰아쳤다.
그러나 이상했다.
폭발이 있었고, 그러나 그 폭발은 ‘아무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심지어 폭발의 당사자들조차 멀쩡하다.
흑색공이 다시금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그들을 뒤집어쓰고 있는 ‘불꽃의 그림자’가 꺼져 들었다.
촛불을 꺼트리듯 맥없이.
퓨리파이어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흑색 로브 차림의 남자를 향해서.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 ‘흑색공(Lord Black)’을 앞에 두고.
“아직도 깨닫지 못했나?”
흑색공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네놈들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퓨리파이어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이곳에서, 네놈들에게 ‘죽음에 도달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 너머의 진리를 파헤치는 흑색 마탑의 흑마법사들, 바로 그 정점에 서 있는 남자가…… 그들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저주 : 혐오스러운 융합(Abomination).”
흑색공이 말을 잇는다. 여덟 개의 서클을 회전시키며 흑색 마력을 생성하고, 저주의 말을 담아 내리꽂았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어둠의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강력한 중력이 퓨리파이어들을 덮치듯 에워쌌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석처럼 이끌리고, 육체가 흐물흐물 녹아내려 ‘하나의 형태’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어, 아, 어……?”
몸이 무겁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시야가 뒤틀린다.
“어, 으, 으어, 아아…….”
“어, 어으, 으, 으어아…….”
바로 곁에서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곁에서? 아니, 곁이 아니었다. 더 가까웠다. 가깝다? 아니, 아니다. 그것은 가깝다는 수준조차 아니었다.
그제야 퓨리파이어 하나가 깨달았다.
동료들의 목소리가, 그의 내부에서 들리고 있었다.
그대로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고 나서 이해했다. 자기 몸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커다란 살덩어리였다. 남아 있는 세 명의 퓨리파이어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둥글게 빚어진 살덩어리의 집합체.
그 이름처럼 ‘혐오스러운 융합’이었다.
여섯 개의 눈알들이 빙글빙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세 개의 입에서 기이할 정도로 뒤틀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섯 개의 귀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삼십 개의 손가락들이 멋대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공 모양의 살덩어리에, 아무 규칙성도 없이 마구잡이로 달라붙어서.
그것을 정녕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흡사 창조주가 사람을 빚기 위해 준비해 놓은 재료들의 뭉치 같았다.
“살아가는 행위란.”
그 살덩어리를 향해, 흑색공이 말을 잇는다.
“죽음을 각오하는 일 따위보다 몇 배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일이지.”
덤덤하게.
“다시 묻겠다.”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목소리로.
“너희에게는 ‘죽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나?”
그 남자는 결코 사신(死神)이 아니었다. 알기 쉬운 형태의 죽음을 가져다줄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흑색공의 앞에서 ‘죽음’이란 사치에 불과하다.
죽음 이상의 고통. 데일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흑색공이란 이름의 진정한 모습을 목격한 까닭에.
살덩어리들이 무어라 필사적으로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들의 얼굴에 광신이 사라지고, 공포와 두려움의 기색이 드리워졌다. 비록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죽음을 각오한 그들조차 ‘죽지 않을 각오’는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