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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43화 (43/301)

43화

* * *

강이란 그 자체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천혜의 요새다.

강 너머를 지키는 상대를 돌파하기 위해 적전 도하를 강행할 경우, 다수의 부대가 좁은 여울목에 갇혀 병목을 유발한다. 발밑에 물살마저 쏟아지는 상황에서, 방어 태세를 굳히고 있는 상대를 돌파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흑색공의 주력 부대는 작센 강의 여울목 몇 군데를 사수하는 형식으로 전략을 굳혔다.

적들은 이미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산악 요새의 수비대를 상대로 치열한 소모전을 펼쳤으며, 보급 부족이 극에 달하는 이상, 울며 겨자 먹기로 강행 돌파를 시도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천지를 찢는 것 같은 우렁찬 굉음과 함께 오크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오크 워보스 휘하의 가장 거친 정예들로 이루어진 오크 기수(Orc Rider)들이 강물을 내달린다.

“절대로 괴물 놈들에게 뭍을 허락하지 마라!”

“궁수들, 조준!”

여울목 너머에서 수비를 굳히고 있는 작센 가의 기사들이 소리를 높였다. 말에서 내린 채, 오크 기수의 충격력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 대형을 구축하며.

도끼와 방패가, 늑대를 타고 있는 오크와 작센 가를 위해 충성하는 중장(重裝)의 보병들이 격돌했다.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쳤고, 철이 살점을 찢고 도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다수 여울목에서는 어렵지 않게 오크들의 진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비교적 부대나 병사의 질이 부족한 몇몇 도하 지점에서는, 일부 오크 기수들의 도하를 성공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가장 강력한 오크 정예병들이 뭍에 상륙하고, 그들이 활로를 뚫자 후속 부대의 도하에 가속도가 붙는다.

전황이 뒤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병사들의 사기가 빠르게 가라앉았고, 어느덧 빠르게 불어나는 오크 무리는 점차 이쪽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작센 가의 ‘검은 공자’가 지휘하는 기동 타격대가 등장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수세에 몰린 아군의 등 뒤에서가 아니라, 적전 도하를 시도하고 있는 강 너머의 오크 무리, 바로 적들의 등 뒤에서. 필사적으로 강을 넘고자 앞쪽으로 부대의 무게 중심이 쏠린 적들의 후위를 정확하게 저격하듯.

“돌격하라.”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공자님!”

데일의 명령에, 바스커빌의 베일 경이 소리를 높였다.

“차징!”

“작센 가를 위하여!”

“데일 공자님을 위하여!”

데일이 거느린 여섯 개의 기병대대, 작센 가가 자랑하는 ‘검은 기병대’가 그들의 전투마를 달리게 했다. 작센 공작 가의 기수들이, 포위 기동 끝에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는 오크 부대의 후위를 덮쳤다.

도륙이 시작되었다.

“데일 공자님이야!”

“검은 공자님이 나타났다!”

“작센 가의 ‘검은 기병대’가 적들의 후방을 치고 있다!”

바로 그 흑색공의 아들, 검은 공자와 함께하고 있다!

적에게 끝없는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되, 그 악명이 아군에게는 무엇보다 믿음직한 보증과 같다.

참으로 공포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으리라.

“데일 공자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시다!”

“검은 공자님의 기병대가 적들을 도륙하고 있다!”

“이쪽의 적들은 고립되었다! 방진을 무너뜨리지 마라! 공자님의 기병대와 함께 포위진을 굳혀라!”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내고, 불리한 전황을 뒤집는 묘수가 되어 상황을 뒤엎는다.

여섯 개의 기병대대.

고작 삼백 명에 불과한 숫자였으나, 적의 부대는 강을 향해 무게 중심이 쏠린 채다.

대량의 부대가 몸을 돌리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소모값이 필요했고, 그 지점을 정확하게 노린 데일의 기병대가 적의 약점을 향해 그들의 충격력을 내리꽂았다.

기병대를 지휘하는 데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제1차 기병 돌격을 마친 베일 경의 기병대가 물러나고, 축차(逐次)로 투입되는 제2차 돌격조에 데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 위에서, 자신의 흑색 서코트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펄럭였다.

“섀도우 불릿.”

질주와 동시에, 오크 무리를 향해 무수한 그림자의 총알이 내리꽂혔다.

살아 있는 악의로 꿈틀거리는 총알 세례. 그야말로 중기관총을 쏟아붓는 것 같은 화력 앞에서는, 가죽 갑옷을 방불케 하는 오크들의 육질(肉質)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최고 지휘관이 앞쪽에서 활약하는 것은 적지 않은 리스크를 짊어지는 행위다.

그러나 대가는 확실하다.

“데일 공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신뢰. 작센 가 기사들의 충성심에 불을 지피는 행위.

데일과 함께 전열에 서 있는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은, 광기와 같은 투지를 불태우며 그들의 기병용 창을 내리꽂았다.

아울러 ‘검은 공자’의 곁을 보좌하며, 샬롯 역시 말 위에서 작센 가의 중검을 휘둘렀다.

흑색의 검영이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오크들의 몸을 향해 흑색의 칼날이 휘감겼다.

촤아악!

팔과 다리와 목이, 어깻죽지가 레고 조각처럼 떨어져 나갔다.

“내게 맡겨두라고!”

흑색의 투구로 얼굴을 가린 샬롯이 소리쳤다.

“데일, 이 이상 지체하다가는 오크들의 부대가 포진을 돌릴 것이다.”

이윽고 세피아가 침착하게 덧붙이자,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이 포위 기동을 시작하기 전에 빠져나갈 겁니다.”

뭍 너머에서는, 이쪽의 활약을 보고 사기가 올라 있는 아군이 적들을 몰아내고 있다. 데일의 이름을 외치며, 작센 가의 검은 기병대를 칭송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 외 비교적 방어 태세가 확실한 대다수 여울목에서는 적의 도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데일이 신경을 써야 할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몇몇 곳, 비교적 약한 병력과 영주들이 배치된 여울목들.

“오크 라이더들이 기수를 돌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부하의 경고에,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퇴각하자.”

치고 빠지기(Hit and Run).

꼭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할 필요는 없다. 적을 모조리 몰살시킬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데일 휘하의 기동 타격대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수를 돌렸다.

그들 앞에 끝없이 펼쳐진 오크들의 시산혈해를 뒤로하고.

* * *

오크 기수들의 추격대가 따라붙었고, 거기까지는 예상 범위 이내였다.

적의 기병 전력을 흩어지게 하는 것은 이쪽도 마다할 이유가 없으며, 설령 추격을 허용해도 어렵지 않게 격퇴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데일은 그대로 거리를 벌리며, 이쪽을 추격하고 있는 오크 기수들의 모습을 살폈다.

후속 부대의 도움이 닿지 않는 데까지 적들을 끌어들이고, 곧장 기병대의 기수를 돌려 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그러나 ‘뜻밖의 복병’은 바로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말……?”

거대 늑대가 아니다. 추격대의 모습을 흘끗 살피고 나서, 데일은 일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오크들은 좀처럼 말을 타는 법이 없다. 그러나 자신을 추격하고 있는 ‘오크 기수’ 사이에 섞여 있는 몇몇 마족들이, 말을 타고 있었다. 그것도 수상쩍은 로브로 몸을 휘감고.

마족이란 일정 이상의 지성을 가지는 괴물의 총칭이며, 그것이 꼭 오크 하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그들 부대 대다수가 오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그 외의 마족 몇몇이 섞여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으리라.

그러나 질주하고 있는 말 위에서, 로브를 걸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팔을 뻗었다.

그들의 팔에서 일렁이는 ‘핏빛 마력’은 결코 이형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것이다.

“데일! 조심해라!”

“……!”

시종 침착을 유지하고 있는 세피아가, 비로소 평정을 깨트리고 소리를 높였다. 데일도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세피아의 손끝에서 청색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마법이란 주위의 기후에 밀접한 영향을 받고, 그 점에 있어 작센 가의 동토(凍土)는 세피아의 마법에 커다란 축복을 제공했다.

쿠웅!

그러나 그 사실을 고려해도, 세피아가 세워 올린 얼음의 벽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솟아나, 데일의 기병대와 적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러나 그 이후, 세피아의 빙벽을 향해 내리꽂히는 ‘핏빛 마력의 결과물’은 더더욱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화염이 휘몰아쳤다. 보통의 화염이 아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의 마법사들이 힘을 합치는 합동 영창이 이루어졌다.

지옥의 불꽃이었다.

수 속성 6서클 마법사의 빙벽을 아이스크림처럼 녹여버리고도, 열기의 잔재가 남아 이쪽으로 내리꽂힐 정도의 화력.

“아아아악!”

휘몰아치는 불꽃의 잔재에, 작센 가가 자랑하는 밤까마귀 기사 몇 명이 그대로 타올랐다. 작센의 동토가 가지는 냉기마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미처 손쓸 틈조차 없이, 시체는커녕 뼛조각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몇 줌의 잿더미가 덧없이 흩날릴 따름이다.

일소(一消).

“설마…….”

데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기수를 돌려라, 일제히 산개하라! 절대로 기동을 멈추지 말고 뭉치지도 마라!”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한 행동지침을 하달했다.

“──지금 우리는 적마법사(Pyromancer)들을 상대하고 있다!”

흑탑의 마법사들을 일컬어 흑마법사(Necromancer)라 칭하듯이. 백탑의 백마법사(Cleric)가 그러하듯이.

적탑의 마법사들을 일컫는 이름.

어째서 적색 마탑의 마법사가 이곳에 있는지 따위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어째서 마족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역시도.

그럼에도 자신의 예측이 맞을 경우, 말 위에서 이토록 정확하게 화염 마법을 구사하는 자는 적마법사 중에서도 ‘보통 마법사’들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결코 전장에서 활약할 것을 전제로 수행하지 않는다.

고위 마법사들조차, 평범한 기사에게 거리를 내주고 패하는 일이 드물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저들이 보여주고 있는 기마술, 일찍이 데일이 보여준 것과 같은 정확한 승마 사격까지, 저것은 마도를 갈고닦는 수행자의 솜씨가 아니다.

처음부터 전장에 서는 것을 전제로 철저하게 자신의 마법을 갈고닦는 존재들.

“조심해라. 적탑의 ‘퓨리파이어(Purifier)’들이다.”

데일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세피아가 대답했다.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청색 마탑의 장로란 직책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으므로.

퓨리파이어(정화자).

오로지 제국과 적색 마탑의 적을 불태우고, 그들의 시대정신을 집행하기 위해 육성되는 전투 마법사.

바로 그 퓨리파이어들이, 마족들의 틈에 섞여 데일의 기병대를 노리고 있었다.

데일의 기병대를? 작센 공작이 지휘하는 주력 부대를?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데일은 깨달을 수 있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데일 공자님입니다!”

바스커빌의 베일 경이 다급히 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놔두지는 않겠어.”

샬롯이 흑검의 오러 블레이드를 가다듬고,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데일.”

수 속성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청색 마탑의 장로 세피아가 말했다.

“스승으로서 나의 의무를 이행하게 해다오.”

심장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서클을 회전시키며 ‘청색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싸우는 것은 데일 하나가 아니다. 그렇기에 흑색 서코트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가, 미친 듯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발밑의 음영을 따라, 무수한 숫자의 그림자 총알을 세공하며.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적이 있고, 적을 쓰러뜨린다. 설령 그 상대가 적색 마탑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으리라. 아니, 오히려 이 이상 바라는 바가 있을까.

지금, 데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적’을 마주하고 있었다.

제국이란 이름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자신의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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