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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42화 (42/301)

42화

* * *

그로부터 얼마 후, 작센 공작성의 회의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러가는 전황의 보고를 받으며, 작센 공작이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마왕령과 작센 공작령 사이에는 커다란 산맥이 존재하고, 나아가 산맥의 협로 곳곳에 걸쳐 여러 겹의 요새가 빼곡한 종심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레인저 부대 ‘겨울 파수꾼’이 주둔하고 있는 산악 요새들.

그리고 설령 치열한 전투 끝에 산악 요새를 뚫고 산맥을 넘어도…… 다시 공작령 내에서 수 킬로미터 거리로 축성한 요새들이, 도하 지점이나 교통 요지 등 전략적 요충지를 가로막고 있다.

“앞서 출정한 북부 영주들과 겨울 파수꾼의 수비군이, 제9 산악 요새에서 퇴각을 시작했다는 보고입니다.”

“퇴각에 앞서, 미처 수송하지 못한 물자를 모두 불태웠다고 합니다.”

“슬슬 야전군(野戰軍)을 투입할 시기로군요.”

헬무트 경이 지도 위를 가리키며 말을 올렸다.

이미 작센 공작이 소집한 일부 영주와 병력은 요새 수비군에 합류했고, 지금도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영주 흑색공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지긋지긋할 정도의 축차 수비 및 청야 전술을 통해, 적의 공세와 체력을 착실하게 갉아먹는다. 그 후 강력한 타격력을 가진 주력 부대가 최후의 지점에 이르러 적을 섬멸하는 정공법을 취하기 위해서.

종심 방어.

최후의 최후까지 때를 기다리고, 결정적 타격으로 적들을 궤멸시키는 것. 그리고 비로소 방아쇠를 당길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작센 강 상류에서 적 주력 부대의 도하를 저지하고, 그들을 섬멸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공작 각하.”

그 점에 있어 작센 강 상류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과 같았다. 적들이 강을 넘고 흩어져 공작령 전역으로 약탈을 감행하는 시점에서, 그 피해를 걷잡을 수 없게 돼버릴 테니까.

“영주들에게 출정의 준비를 알려라.”

일찍이 일천의 오크 무리를 그곳에서 저지했듯이, 그러나 그때와는 비교할 바 없는 규모가 되어서.

* * *

다가올 출정에 앞서, 작센 공작의 집무실.

“주력 부대와 별개로, 밤까마귀 기사들 삼백 기로 이루어진 기동 타격대를 너에게 일임할 것이다.”

그곳에서 작센 공작은 ‘검은 공자’에게 막중한 중책을 하사했다. 주력군과 떨어져 별개로 행동하는 분견대(分遣隊)로서, 사실상의 독자적 지휘 체계를 일임한 것이다.

“아울러 세피아 님께서 너의 곁을 보좌하기로 하셨다.”

“……!”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세피아. 뜻밖의 말에 데일이 놀라서 숨을 삼켰다.

“속세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청색 마탑의…….”

“그녀는 이미 우리 작센 가의 ‘최고 자문관’이다.”

흑색공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아울러 마족과 맞서 인류의 영토를 수호하는 행위를 ‘세속의 다툼’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그것은 세피아 선생님의 의지입니까?”

데일이 물었고, 작센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측 전선의 대규모 충돌이 시작되고 나서, 오롯이 너의 결정으로 부대를 움직이게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흑백 회전’의 대승을 바탕으로, 데일의 전략안을 향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결정.

“믿어주세요, 아버지.”

그렇기에 데일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신뢰에 부응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끝으로 하나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데일이 입을 열었다. 작센 가의 흑검을, 그 누구보다 능숙하게 구사하는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린 신검(神劍)을…… 제가 지휘할 부대에 넣어 주십시오.”

* * *

흑색의 갑주로 전신을 꽁꽁 무장한 소녀가 있었다.

일찍이 데일의 그것처럼, 샬롯의 체구에 맞춤 제작한 밤까마귀 기사의 갑주. 그러나 손에 들린 것은 레이피어가 아니라, 작센 가의 양손 중검(重劍)이다.

“참으로 믿음직하네.”

“그야 천하의 ‘검은 공자’님을 곁에서 지켜줄 호위 기사니까.”

샬롯의 말에, 데일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흑색의 투구로 가린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녀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러나 샬롯은 이 이상 일방적으로 지켜져야 할 소녀가 아니었다.

작센 가의 비호 아래 성장하고 있는 어린 천재는 데일 하나가 아니다. 스승 헬무트 경과 함께 수십여 차례에 걸쳐 혹독한 실전 경험을 치렀고, 어린 나이에 작센 가의 ‘오러 나이트’와 함께 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경지를 이루었다.

오러의 힘을 바탕으로, 자기 체구보다 커다란 작센 가의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검의 신동.

적어도 ‘검’에 있어 그녀의 재능은 데일의 그것을 상회하는 것이었다.

먹물처럼 검게 물들어 있는 작센 가의 흑검이, 바로 그 증거다.

칠흑빛 오러 블레이드.

살아서도 죽어서도, 작센 가를 위해 충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오러의 형태.

“……하나 약속하자.”

그녀를 보며 데일이 입을 열었다.

“응.”

“죽지 마라.”

“……뭐라고?”

그러나 그 말에, 샬롯이 일순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기사의 의무라고?”

데일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기사의 진짜 의무를 가르쳐줄까?”

가로막고 나서, 데일이 물었다. 샬롯이 묵묵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주군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거야.”

데일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아.”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목소리로.

“여기는 네가 죽을 전장이 아니야.”

샬롯은 일순 숨을 삼켰다. 그러나 동요는 길지 않았다.

“응.”

그렇기에 주군을 위해 충성하는 기사로서, 샬롯은 데일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대로 작센 가의 흑검을 세로로 내리꽂는다.

투구 밑으로 가려진 자신의 표정이 들키지 않아, 정말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 * *

남하를 시작하는 오크 군벌에 맞서, 작센 공작이 이끄는 주력 부대의 출정이 시작되었다.

마왕령의 혹독한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거듭하는 이형의 종족. 그것이 마족이다. 달리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겠다는 사악하고 거창한 대의가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골치가 아프지.’

비록 과거에 ‘마왕’이라 불린 존재가 이끌었던 전례 없는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 후로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마족 대이동은 종종 일어났다.

그때마다 작센 공작은 북부 영주들을 소집했고, 그러나 결정적 타이밍에 출혈을 최소화하고자 ‘흑마법의 힘’을 사용했다.

흑색 마탑주의 정점에 서는 8서클의 흑마법사로서.

그리고 바로 그 ‘흑색공’이 직접 주력 부대를 거느리고 출정했다는 것은 오직 하나의 의미였다. 데일에게 기동 타격대의 중책을 맡기기는 했어도, 결국 자기 손으로 이 싸움을 결정짓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제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자의 힘을 사용함으로써.

* * *

작센 강 상류.

‘작센 공작’이 지휘하는 주력 부대 진지에서 몇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지점.

그곳이 바로 데일과 삼백 기의 밤까마귀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동 타격대가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여느 때처럼 데일을 보좌하는 바스커빌의 베일 경, 호위 기사 샬롯,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세피아와 함께.

그러나 적어도 이곳에서 세피아는 데일의 ‘스승’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데일의 명령을 따라는 부관(副官)으로서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새벽, 데일 휘하 기동 타격대의 막사.

밤이 깊었으나, 엘프 마법사 세피아는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저 천막을 나와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들을 보며.

대륙 제일의 재능을 가진 아이의 스승이 되고, 어느새 공작 가의 사람으로 거듭나 속세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다. 어디까지나 데일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한 결정이었고, 그것이 그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세피아 님.”

그리고 마찬가지로 잠이 들지 못한 데일이, 그곳에서 세피아의 이름을 불렀을 때.

“데일.”

세피아는 어느덧 데일을 ‘사명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이 오지 않느냐?”

“어째서 아버지의 제의를 수락하셨나요?”

데일이 되물었다.

“나는 그저 나의 사명을 수행할 따름이란다.”

세피아가 대답했다.

이 아이는 자신이 경험한 그 무엇보다 뛰어나며, 동시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재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데일의 스승으로서 이 아이를 올바르게 이끌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세피아의 사명이었다.

그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이 아이의 세계는 시린 냉기와 고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없는 공백과 허무의 지평으로 가득 찬 사상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가 그녀를 갈망하고 있었다.

뼈가 시릴 정도의 고독 속에서 홀로 외롭게.

그 사실이, 너무나 가엾고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아이의 공백을 깨달은 것이, 나아가 그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오직 그녀밖에 없다는 사실이.

“……네 곁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고마워요.”

세피아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데일이 나직이 미소 지었다.

밤하늘이 무척이나 검고 어두웠다.

* * *

첫 전투는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되었다.

여울목을 앞두고 주력 부대의 적전(敵前) 도하에 앞서, 소규모 오크 부대가 십수 킬로미터 가까이 강을 거슬러 도하를 시도한 것이다.

숫자가 많지 않을 경우, 뗏목이나 임시 부교를 가설하는 것으로 소규모 병력을 도강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소규모 오크 부대를 정확하게 요격한 것은 데일이 이끄는 ‘기동 타격대’였다.

“차징!”

오십 명으로 이루어진 4개 기병대대의 지휘를 ‘바스커빌의 베일 경’에게 일임하고, 데일이 직접 지휘하는 2개의 기병대대는 후위대로 남겨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다.

그러나 적들은 십수 킬로미터의 강행군 끝에 강을 넘었고, 도와줄 후속 부대조차 없다.

고립 상태의 소규모 오크 보병들을 향해 내리꽂히는 기병 돌격. 말 그대로의 학살이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상대를 교란하기 위한 오크들의 소규모 도하가 이어졌으며, 그것을 저격하는 것은 데일이 이끄는 기동 타격대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교란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센 공작의 주력 부대가 지키고 있는 주요 도하 지점에서, 수천에 달하는 오크 무리의 강행 돌파가 시작되었다.

‘오크 워보스(Warboss)’의 지휘 아래, 부족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거친 정예들로 이루어진 돌격대가.

북부의 전투마들을 조랑말로 보이게 하는 거대한 늑대 위에 올라타서.

“그어어어어!”

천지를 찢을 듯한 오크 기수들과 늑대들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비로소 전투의 막이 올랐다.

그 후 두 개의 전선이 맞붙고 치열한 싸움이 시작될 즈음…… 데일이 이끄는 삼백 기의 기병대는, 역으로 오크들의 주력 부대가 있는 북안(北岸)으로 도하를 마친 직후였다.

강행 돌파에 정신이 팔려,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적 부대의 등 뒤를 향해서.

그러나 그곳에 있는 복병의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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