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41화 (41/301)

41화

* * *

“역시 데일 공자님이십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군요!”

데일의 승리를 앞두고, 영주들이 입에 발린 칭찬을 하기 바쁠 즈음.

‘이렇게 쉬웠나?’

짐짓 평정을 유지하는 데일 자신조차, 뜻밖의 압승에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스물 남짓의 어린(?) 기사라고 해도, 오러를 통해 전력을 다하는 자다. 그러나 그를 상대하는 데 있어, 마치 세상 전체가 느려진 것처럼 기이한 감각이 엄습했다.

오직 하나,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림자 망토의 검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촉수가 신체의 일부로 존재하고, 그 촉수를 이용해 그림자의 칼날을 조종하는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깨달았다. 자신의 심장에 ‘촉수의 형태로 뿌리내리고 있는 마도서’의 존재를.

자신의 육체와 융합한 흑마법의 정수, 『검은 산양의 서』.

마도서는 그 자체로 마법사의 경지를 높여주는 ‘마법사의 검’이다. 그 점에 있어서 『검은 산양의 서』는 그야말로 세상에서도 손에 꼽을 최악의 마검이리라.

그렇기에 서클을 회전시켜 흑색 마력을 생성할 때, 데일의 심장에 뿌리내린 마도서가 ‘또 하나의 흑색 원천(Source of Black)’으로 기동하며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나아가 고농도의 흑색 마력을 바탕으로 육체를 강화하고, 어둠의 아티팩트 ‘그림자 망토’의 힘을 몇 배로 끌어내고 있다. 아니, 몇 배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데일의 경지를 놓고 봤을 때, 오러 나이트급 이상의 강자와 맞서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으리라.

“겨우 이 정도입니까?”

그럼에도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데일이 요네스 경을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작센 공작 가의 장남이자 ‘검은 공자’로서, 감히 자신의 이름을 의심하고 시험하려는 자를 향해.

“섀도우 불릿.”

데일이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데일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어둠의 칼날들이, 일제히 부서져 내렸다. 잘게 부서진 그림자 칼날의 조각들을 총알의 형태로 세공하고, 악의로 이루어져 있는 총알 세례가 내리꽂혔다.

데일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요네스 경을 향해서.

흡사 중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섀도우 불릿’의 세례가 내리꽂혔다.

“……!”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직후. 요네스 경을 향해 쏘아진 어둠의 총알들은, 그저 그의 발밑 일대를 부수는 데서 그쳤을 따름이다.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작센 공작성의 대리석 바닥을 뒤로하고,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암묵의 경고. 비로소 요네스 경의 평정이 무너져 내린다.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그 모습을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검은 공자’가 보여준 검술은 어디까지나 여흥에 불과하다는 것을.

검과 더불어 ‘마법사로서 전력을 다할 때의 실력’ 앞에서…… 그림자의 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경악이나 놀라움이란 말로도 오롯이 형용할 수 없는 성질의 감정이, 장내를 휘감았다.

“…….”

외경(畏敬).

일찍이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다시 저에게 도전하고 싶은 자가 있습니까?”

누구도 그 모습을 앞에 두고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저의 이름을 의심하고,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진 자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데일이 되물었다. 장내에는 그저 고적한 침묵이 이어질 따름이었다.

쿠웅!

침묵 끝에, 리벳을 잇대 고정하고 있는 강판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무릎을 꿇는 소리였다.

저마다 갑주로 무장한 영주와 기사들이, 작센 가의 어린 장남 앞에서 일제히 검을 세로로 내리꽂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사로서의 충성.

무심코 그의 아버지, 흑색공의 입버릇과 같은 말을 떠올랐다.

공포는 충성을 보장한다.

참으로 그 말대로였다.

* * *

그날 밤.

영주들의 소집과 의례가 끝나고, 전투의 승리를 기원하는 축제가 열렸다.

귀족 가의 사람들을 위한 사교의 장과 더불어, 바깥 막사의 병사들 역시 술과 고기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데일에게 패배한 요네스 경은, 홀로 공작성을 빠져나와 그의 용병들이 있는 막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경솔한 행동에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와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대장, 얼굴이 좋지 않습니다.”

“…….”

자신을 걱정하는 부하의 말에, 요네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들이켰다.

“니미 시발, 세상 좆같네.”

취기가 돌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입이 술술 풀린다.

“검 졸라게 휘둘러 봐야 그 새끼 발끝도 못 따라가게 생겼는데, 내 얼굴이 좋아 보이더냐?”

“대, 대장……?”

“그래놓고 심지어 지는 기사도 아니고 마법사래요! 허허!”

멋대로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부하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11살 처먹은 애새끼한테 개같이 박살 났다고 말하는 중이다, 이 엿같은 새끼야!”

“자, 작센 가의 장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야 사람들이 말하길, 제국 제일의 재능을 가진 희대의 천재라고…….”

참으로 그 말대로다.

‘사람의 귀천이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감히 어느 누가 작센 가의 장남을 앞에 두고, 그깟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을까. 뼈저린 패배 정도가 아니었다. 절대 넘을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절망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이 세상의 불공평함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조리의 화신.

그 정도로 ‘검은 공자’의 존재가 보여준 벽이란 까마득한 것이었다.

“쒸이이이팔, 술맛 졸라게 조오타!”

그렇기에 술을 들이켜고 또 들이켜며, 요네스 경이 소리쳤다.

“암, 그럼요! 세상에 술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들이킵시다, 대장!”

허례허식으로 가득 차 있는 성에서, 어울리지 않는 귀족의 격식 따위를 차리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그렇기에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부하들과 함께 있는 것이, 요네스 경으로서는 유일의 낙이었다.

“하이고,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다시금 술을 들이켜며 요네스 경이 입을 열었다.

“그 11살 애새끼한테 들러붙는 귀족 계집들을 너희가 봤어야 해.”

“어떻길래 그럽니까?”

“캬, 아주 그냥 뒷골목 창부들이 따로 없더라고!”

그깟 애송이 마음에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양을 떨고 있는 꼴이라니!

“그럼 지금쯤 어디의 레이디랑 실컷 뒹굴고 있겠네요!”

“하나가 아닐지도 모르지!”

“역시 공작 가 장남쯤 되니 스케일도 끝장나네!”

“야, 11살 거시기에 털이 나기는 했을까?”

“났습니다.”

“아, 그래?”

그 대답에 요네스 경이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 주위에 내려앉은 정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뭐야, 너희들. 왜 말이 없어?”

“대, 대, 대장…….”

부하 하나가 창백하게 질린 채 말을 더듬거렸다.

“혹시 저, 저기 들어온 아이가 대장께서 말씀하신…….”

이곳에 있는 용병들이 ‘작센의 데일’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작센 가의 밤까마귀 문장(紋章)을 새겨넣은 화려한 의복과 흑색의 서코트로 미루어…… 나아가 그것을 입고 있는 자가, 11살 남짓의 남자아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뭐, 그 애새끼가 여기 나타났다고?”

취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는 요네스 경이,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의 ‘그 애새끼’가 대답했다.

“…….”

흑색의 서코트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펄럭이며.

침묵이 깃털처럼 내려앉았다.

“…….”

“…….”

참으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침묵이었고, 침묵 끝에 데일이 요네스 경의 곁에 걸터앉는다.

“……술 받아라.”

직접 공작성에서 갖고 온 포도주를 그에게 넘기며.

“세상이 저주스럽지?”

“그, 그렇지 않습니다.”

요네스 경이 떨리는 손으로 데일이 주는 술을 받았다.

“원래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거야.”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말을 이었다. 까마득한 삶의 후배를 향해 말하듯이.

“불공평하고 부조리하고, 사람의 손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 따위는 하나도 없지.”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태어날 때부터 가진 천부(天賦)의 재능, 주위 환경, 몸에 흐르는 핏줄과 가문…….”

데일이 물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무엇 하나 우리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있나?”

“어, 없습니다.”

요네스 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 손으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나?”

“…….”

데일이 다시금 되물었다. 일순 요네스 경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오늘, 자신의 앞에 있는 ‘검은 공자’를 보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라.”

“…….”

“이 세상에,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는 운명 따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당사자에게 그 같은 말을 들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웃고 나서는, 비로소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 * *

처음에는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저 술에 너무 취해서 헛것을 봤거나.

‘데일 공자님께서 찾고 계시다.’

이튿날 아침,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이 직접 그를 찾아올 때까지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작센 공작성의 일실.

“어젯밤 일은 기억이 나십니까?”

“데, 데일 공자님…….”

평소처럼 존댓말을 내뱉는 데일의 정중함에, 요네스 경은 조용히 숨을 삼켰다.

‘역시 꿈이었나?’

“술에 그렇게 취해서, 이제부터 날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었는데.”

“……서, 설마.”

“새벽 내내 서로가 참 뜻깊은 대화를 나눴지.”

그 후 데일의 입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란 사실을 확신했다.

“케넷 남작 가의 차남, 요네스 경.”

어젯밤의 결투와 패배, 그리고 새벽의 그 소란까지.

“태어날 때부터 장남을 위해 희생하고, 검 하나로 방랑 기사가 되어 일백의 용병대를 쌓아 올린 자.”

모두가 하룻밤의 덧없는 백일몽 같았고, 이것이 그가 보게 될 삶의 마지막 풍경이 되리라.

머지않아 그의 모가지는 밤까마귀 기사들의 검에 잘려나갈 테니까.

요네스 경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을 때, 뜻밖의 말이 데일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네가 마음에 들었다.”

“……예?”

“너와 너의 용병대 모두.”

그리고 이어지는 말 앞에서 요네스 경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작센 가를 위해, 내 밑에서 검을 휘둘러볼 생각이 없나?”

“그, 그것이 도대체…….”

“다가올 전투에 앞서, 나의 기사들이 너와 네 부하를 가르칠 것이다.”

데일의 기사들.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이 직접 검을 가르치겠다니!

“검을 쥐는 법부터 오러 심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기회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저 자신의 검 하나에 의지해 세상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훗날의 일보다는, 코앞의 전장에서 살아남을 생각부터 하는 게 중요하겠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요네스 경에게 그 무엇보다 세상의 불공평함을 가르쳐준 자가…….

감히 누구도 주지 못한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요네스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이 11살의 애송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마침 내 사람이 필요했고…….”

요네스 경의 물음에, 데일이 아무래도 좋다는 듯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 자리에 네가 있었으니까.”

정말로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세상일이 다 그런 법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