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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38화 (38/301)

38화

* * *

마족, 그리고 마왕.

동화처럼 들리는 그 존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 불리는 작명이다.

마족(German)이란 특정한 종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일정 이상의 지능을 가진 괴물의 총칭에 불과하니까.

오크, 고블린, 나아가 그 종명을 알 수 없는 이형의 괴물들까지.

그리고 마족들의 터전이라 알려진 북부 너머의 마왕령…… 다크 랜드(Dark Land)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일찍이 용사가 제국의 부대와 함께 ‘마왕’이라 불린 존재를 토벌했을 때, 대륙 사람들은 비로소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제국 수뇌부가 깨달은 것은, 마족 중 일부가 ‘다크 랜드’의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대이동을 감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그 까닭에, 마왕을 물리친 이후에도 그 같은 마족들의 대규모 남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통칭 ‘마족 대이동(Barbarian Invasions)’.

대규모 오크 군벌이 작센 공작령을 향해 남하를 시작했다는 것은 바로 그 의미였다.

“또다시 ‘마족 대이동’이 시작되려는 걸까요?”

“그렇겠지.”

데일의 말에, 작센 공작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와 비교를 불허하는 규모의 전장이 될 것이다.”

가장 두려운 자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다. 그 점에 있어 데일은 마족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교회가 말하는 것처럼, 마족들에게 세상의 악으로 물들이겠다는 거창한 사상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전쟁이란 결코 하루아침에 벌어지지 않는다.

“동맹이 필요하겠네요.”

“북부의 영주들과 흑색 마탑, 휘하 기사령 전체에 소집을 명령했다.”

“그 외의 도움은 없는 겁니까?”

데일의 말에 작센 공작이 침묵했다. 암묵의 긍정이다. 오히려 마족과의 전투로 피를 흘리는 행위야말로, 제국과 그의 경쟁자들이 바라마지 않는 일이니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작센 공작이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너에게, 전장에서 사령술을 활용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줄 때가 왔구나.”

* * *

“돌격!”

바스커빌의 베일 경을 필두로 하는 작센 가의 기병대가 소리를 높였다. 기병창에 달린 창기가 나부꼈고, 늑대 무리를 향해 중장기병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괴물과 짐승, 사람의 생존에 위협을 끼치는 점에서는 양쪽 모두 다르지 않다. 영지의 평화를 위해서 배제해야 할 존재란 사실도.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기사들의 창이 늑대 무리를 향해 내리꽂혔고, 늑대 무리 역시 그들 나름대로 저항하며 혈투가 펼쳐졌다.

“보다시피, 네게 작센 가의 기사들 같은 랜스 차지(Lance Charge)는 적합하지 않아.”

멀찍이 떨어진 구릉 위에서, 부하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데일이 입을 열었다. 데일의 곁을 지키는 ‘기사 샬롯’과 함께.

승마술과 창술을 이용하는 기병 돌격을 펼치기에 샬롯의 몸은 너무 작고 여리다. 그녀의 손에 작센 가의 대검이 들려 있는 것부터가 ‘오러의 힘’에서 비롯된 이능력에 가까우니까.

“……응.”

데일의 말에, 샬롯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그러나 네가 오러를 활용하는 이상, 설령 어린아이의 육체라도 장성한 기사와 대등한 싸움을 펼칠 수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이 말을 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최대로 끌어내야 해.”

“나의 재능을…….”

검의 재능. 신검의 딸로서 그녀에게 내린 축복이자 저주.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오러의 재능’이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알겠어.”

데일의 말에 샬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와 마력은 마나를 이용하는 힘이란 점에서 궤가 같다. 경지에 이르러 있는 기사의 검에 그 나름의 사상이 담기는 것 역시, 마법사와 같다고 할 수 있으리라.

“두 다리로 서서, 작센 가의 흑검을 휘두르는 데 집중해.”

작센 가가 자랑하는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에 의지하며.

“앞으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실전 경험을 쌓게 될 거야.”

마침 기병대와 늑대 무리의 전투는 끝자락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네게 어울리는 검식(劍式)을 찾아보자.”

“응, 고마워.”

데일의 말에 샬롯이 대답했다.

“나, 너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수행할게.”

소녀처럼 수줍게 뺨을 물들이고.

“천하의 ‘검은 공자’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기사가 될 테니까!”

그러나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결의였다.

* * *

그날 오후, 흑색공의 지하 공방.

비로소 전장에서 사령술을 활용하기 위한 첫 수업의 장이 열렸다.

“데스나이트(Death Knight)와 망자병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데스나이트, 죽음의 기사. 그리고 망자병.

“기사와 병졸의 차이가 아닐까요?”

데일의 물음에, 흑색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사와 병졸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이냐?”

“무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5할의 정답이다.”

그러나 작센 공작은 고개를 젓는다.

“강한 무력을 지녔다고 해서 모두 기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공방의 제대 위에 올린 시체를 향해 팔을 뻗었다. 살아서 작센 가를 위해 충성하고, 죽어서도 시신을 기증하기로 맹세한 밤까마귀 기사의 시체를 향해서.

“오러 블레이드의 여부입니까?”

“그렇다.”

흑색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어둠의 마력이 기사의 시체를 향해 깃들었고, 흑색 갑주와 기사 검으로 무장한 존재가 몸을 일으켰다.

“생전에 ‘오러 나이트’로서의 경지가 높을수록…….”

죽음의 기사. 불사(不死)의 육체로 거듭나 생전에 밤까마귀 기사로서 벼린 오러를 내뿜고 있다.

손에 들린 기사 검의 서슬 퍼런 칼날을 따라, 작센 가를 상징하는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를 휘감으며.

“아울러 ‘오러와 마력의 상성’이 좋을수록 강력한 데스나이트를 일으킬 수 있지.”

“……!”

흑색공의 말에 데일은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어째서 작센 가, 북부 밤까마귀 기사들의 오러 블레이드가 ‘흑검(Black Blade)’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가. 흑색 마탑의 사령술사들이 가진 ‘흑색 마력’과 가장 적합한 상성을 가진 까닭이다.

어둠의 마력, 어둠의 오러.

다시 말해, 밤까마귀 기사들은 처음부터 ‘데스나이트’로 되살아날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검을 벼린다는 뜻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들이 긍지를 가진 기사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흑색공이 말했다. 자신의 손으로 되살린 죽음의 기사를 바라보며,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센의 흑검을 뒤로하고.

“……따라오거라.”

침묵 끝에, 흑색공이 공방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일으켜 세운 죽음의 기사와 함께.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담아서.

“예, 아버지.”

두 사람이 공방을 가로질러 도달한 곳은, 일찍이 데일이 어둠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곳이었다.

흑색공의 지하 공방. 그러나 흑색공의 걸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밑으로, 더욱 깊은 어둠을 품고 있는 지하를 향해 걸음을 옮길 따름이다. 그저 묵묵히.

‘어디로 가려는 거지?’

데일 역시 침묵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작센 가의 시조, 불사공 프레데릭에 대해 알고 있느냐?”

걸음을 옮기며 작센 공작이 되물었다. 그 말에 데일은 일순, 자신의 심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검은 산양의 서』를 떠올렸다. 지금도 ‘사상의 심연’에서 외롭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검은 산양의 뿔을 가진 소녀를.

“책에서 읽고,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이야기가 다입니다.”

데일은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을 흐렸다.

“그는 진리의 괴물이었다.”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고, 죽음의 장막 너머의 진리를 갈구하는 데 맹목이 되어버린 악마.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보여줄 것은…….”

우뚝.

비로소 흑색공의 걸음이 멈추었다.

“일찍이 그가 추구했고, 지금까지도 우리 작센 가가 빚을 지고 있는 ‘구시대의 어둠’이다.”

그가 멈춘 곳은 커다란 지하 공동의 출입구였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어둠의 벽. 데일로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도의 결계가 작동하고 있는 일실.

“이곳은 오직 작센의 피를 가진 ‘적통의 혈육’밖에 지날 수 없다.”

그 말과 함께, 아버지 흑색공이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데일 역시 망설이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후우웅!

형용할 수 없이 강력한 어둠의 결계가, 작센 가의 두 부자를 거부하지 않고 무저갱의 아가리를 벌린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피의 유대.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광경에, 데일의 숨이 멎었다.

불사의 기사들이 그곳에 있었다.

피라미드나 황릉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 흡사 진시황릉의 병마용갱(兵馬俑坑)처럼…….

하나가 아니었다. 두 명, 세 명, 열 명이나 백 명조차 아니다.

어림잡아 수천 명.

“이게 대체…….”

그 풍경 앞에서는 제아무리 데일이라 해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족히 수천의 데스나이트로 이루어진 ‘죽음의 군대’가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일국의 기사 전력 전부를 합친 그 이상의 숫자가, 그에 걸맞은 불사의 전투마들과 더불어서.

그러나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불사의 기사들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침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들에게 내려질 명령을 기다리며.

……누구의 명령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데일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을 훑었다.

“일찍이 불사공께서는 ‘지속해서 마력을 공급하지 않고도 망자를 기동시킬 방법’을 찾아냈고…….”

작센 공작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작센의 가주들은 대를 거듭해 ‘데스 오더(Death Order)’라 불리는 죽음의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데스 오더. 죽은 기사들의 수도회.

그제야 데일 역시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지.”

작센 가가 그토록 고집스럽게 고립주의를 천명한 이유를. 그리고 흑색공이 어둠의 힘을 다스림에 있어 그토록 ‘도덕’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것이 우리의 어둠이다.”

그것은 추악하다 못해 구역질이 날 정도의 위선(僞善)이었다.

“그리고 이 어둠이야말로 우리를 지켜줄 방패이기도 하지.”

외부의 적으로부터, 내부의 적으로부터.

방금 흑색공이 일으켜 세운 죽음의 기사가, 데스 오더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데일은 그 기사를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흑백 회전에서 자신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좌익 부대의 기사였으니까.

이렇게 또 하나의 기사가 ‘데스 오더’에 합류했다.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할 수 있고, 그러나 지속해서 마력을 공급할 필요도 없는 ‘영구동력’을 기동하며.

도대체 어떻게? 그것은 천하의 데일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너는 이 어둠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느냐?”

작센 공작이 덤덤하게 되물었다. 바로 그때, 데일의 심장이 격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세 개의 마나 서클, 나아가 데일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칠흑의 촉수’들이 꿈틀거린다.

“…….”

욱신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뒤로하고,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각오는 되어 있었습니다.”

망설일 이유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부정하고 사악한 힘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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