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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37화 (37/301)

37화

* * *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천상의 아리아가 울려 퍼졌고, 니콜라이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은 승리와 희망의 찬송이었다.

여섯 장의 날개와 불타는 검을 가진 ‘전장의 천사’들이 쇄도했다. 백색 마탑이 자랑하는 찬가 마법으로 강화된 교회 기사들의 일격. 흡사 천상에서 지상을 향해 쇄도하는 듯한 급습에, 데일이 다급히 팔을 뻗었다.

“섀도우 불릿.”

펄럭이는 그림자 망토를 따라, 어둠으로 이루어진 총알 세례가 내리꽂혔다. 그러나 천사들은 공중에서 어렵지 않게 공격을 회피하고, 재차 데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빨랐다.

‘역시 나의 천사들이다!’

아무리 작센 가의 장남이 제국 제일의 천재라고 해도, 결국에는 3서클 익스퍼트의 풋내기에 불과하다.

아울러 『검은 산양의 서』가 제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마도서라고 해도, 아직 일개 3서클 풋내기 따위가 그 잠재력을 100% 끌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찬미하라……!”

가슴 깊이 울려 퍼지는 천상의 아리아가, 지옥 일대를 빛으로 휘감았다.

“찬미하라(Alleluia)!”

“……러워.”

그리고 니콜라이 추기경의 아리아에 화답하듯.

“시끄러워…….”

침묵하는 어둠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데일이 보기에, 검은 산양의 뿔을 가진 소녀가 소리쳤다.

“■■■■──!”

그러나 니콜라이와 그의 천사들이 보기에는, 그저 혐오스러운 존재가 괴성을 토해내는 풍경으로 보였으리라.

무수한 촉수들의 군체(群體)로 이루어진 이계의 흉물.

촤아악!

소녀의 치맛자락 밑으로 무수한 촉수 다발이 솟아났다. 데일의 섀도우 불릿조차 가볍게 회피하는 전장의 천사들을 향해서.

“……!”

천사들의 손에 들린 불타는 검이 휘둘러졌고, 신성한 성염(聖炎)이 휘몰아쳤다. 여신의 적들을 불사르는 성스러운 불꽃.

그 앞에서 촉수들이 맥없이 잘려나갔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잘린 촉수에서 흑색의 피가 울컥울컥 솟아났다.

천사들의 바로 코앞에서.

칠흑처럼 검고, 탁하게 물들어 있는 피. 아니, 그것은 혈액조차 아니었다. 콜타르처럼 검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천사들의 몸을 덮치듯 흩뿌려졌다.

“……?!”

우뚝.

천사들의 날갯짓이, 그대로 멎었다. 추락이 아니었다.

침묵 끝에, 천사들이 공중에서 몸을 돌린다. 그들이 지켜야 할 니콜라이 추기경을 향해.

“차, 찬미…….”

“차, 차차차, 찬미하, 라…….”

명백하게 광기에 뒤틀려 있는 중얼거림과 함께.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니콜라이의 피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천상의 아리아를 통해 무적의 전사로 거듭나야 할 여신의 기수들이…….

천사의 날개가, 흡사 수백 마리의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기괴하게 부풀어 있었다. 이목구비에서 콜타르처럼 검은 피를 줄줄이 쏟아내며, 흑색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 아아…….”

니콜라이 추기경의 희망이 덧없이 부서져 내렸다. 그들은 더 이상 천상의 여신을 섬기는 천사들이 아니었다.

어둠의 천사들이 그곳에 있었다.

검고 어두운 피눈물을 줄줄 쏟으며, 전신에 지렁이 같은 핏줄이 터질 듯 기괴하게 부풀어서. 이제는 ‘날개’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흉측한 무엇으로 뒤틀린 채.

촤아악!

바로 그 천사들을 향해, 다시금 촉수가 내리꽂혔다.

콰직!

사지를 부러뜨리고, 날개를 휘감아 찢고, 갑주를 터뜨리고, 두개골을 부수고, 촉수가 뇌까지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다. 흡사 악신(惡神)이 자신의 피조물을 희롱하듯이…… 니콜라이의 천사, 시스티나 여신교가 자랑하는 교회 기사들이 무자비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일개 6서클의 백마법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이었다.

“지옥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촉수에 무자비하게 유린당하는 천사들을 뒤로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던 ‘검은 공자’가 입을 열었다.

“계약의 당사자들은 일절 책임지지 않는다.”

데일과 니콜라이의 거리가 차츰 좁혀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그것이 고작 열한 살의 어린아이란 사실조차 잊고. 니콜라이 추기경은 그야말로 졸도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벌벌 떨었다.

공작 가의 신동이자, 흑색공의 아들. 제국 제일의 천재.

아니다.

‘검은 공자(Black Prince)’를 형용하는 것은 그 같은 시시한 수식어 따위가 아니었다.

악마의 자식이다.

‘여신의 적…….’

자매신의 그림자가 잉태한 악의 씨앗.

“살고 싶습니까?”

데일이 물었다. 끔찍한 촉수 덩어리, 혹은 산양의 뿔을 가진 소녀를 곁에 두고.

“제, 제발…….”

니콜라이 추기경이 필사적으로 목숨을 애걸했다.

“살려드리지 못할 것도 없지요.”

데일이 말을 잇는다.

“그 대가로 저에게 무엇을 바칠 수 있습니까?”

“무, 무엇을…….”

겁에 질린 니콜라이가 되물었다. 되묻고 나서는, 생각나는 대로 내뱉기 시작했다. 자신의 직위와 재물, 거느린 교회의 세력, 나아가 6서클의 백마법사이자 주교급 추기경으로서 가진 것들을. 필사적으로 내뱉고 또 내뱉었다.

“마음에 드네요.”

“무, 무엇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니콜라이가 겁에 질린 채 되물었다.

“당신이 가진 전부를.”

데일이 대답했다.

“서, 설마……!”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린 니콜라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절망이 엄습했다. 데일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으므로.

“아무래도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할 것 같네요.”

기아스(맹약의 구속)를 통한 절대복종.

이 시점에서, 니콜라이에게 돌이킬 수 있는 여지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악마에게 그의 영혼을 파는 거래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 * *

“오빠랑 노는 거, 엄청 즐거웠어!”

소녀가 즐거운 듯이 웃었다. 마치 나들이를 마친 것 같은 아쉬운 표정을 하고서.

“나, 오빠의 세계가 아주 마음에 들어.”

드레스 자락 밑으로 무수한 촉수를 꿈틀거리며. 냉기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공백의 지평, 데일의 세계에서.

“그러니까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데일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마력이 고갈되어, 당장에라도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심장의 고통을 뒤로하고.

마도서란 말 그대로 사상이 담겨 있는 그릇이며, 그 자체는 결코 책의 형태가 아니다. 그렇기에 『검은 산양의 서』는 지금, 데일의 세계 속에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 그의 심장에 촉수의 형태로 뿌리를 내림으로써.

“오빠는 내가 무섭지 않아?”

시린 벌판 위에서, 소녀가 데일을 향해 물었다.

“무섭지 않아.”

“응, 그렇구나.”

그 말에 소녀가 다행이란 듯이 미소 지었다.

“또 오빠랑 이렇게 놀 수 있겠지?”

미소 짓고 나서는, 걱정스러운 듯이 되물었다.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가 천진하게 웃었다.

“응, 다행이다!”

6서클의 백마법사, 니콜라이 추기경을 압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서 직감할 수 있었다. 함부로 꺼내기에 그녀의 존재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그리고 데일은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검은 산양의 서』를 통제할 수 없다.

작센 가의 뿌리 깊은 어둠이자 ‘불사공 프레데릭’의 사상을 담고 있는 그릇.

아무리 제국 제일의 천재라고 해도, 흑색공의 아들이란 이름조차 감당할 수 없는 금기의 영역.

‘게다가 함부로 자랑하고 다닐 능력도 아니지.’

무턱대고 휘두를 힘이 아니라, 최후의 카드로서 갖고 있어야 할 비장의 일수(一手).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녀를 사상의 심연(深淵)에 유폐하는 것과 같았다. 소녀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으리라.

“약속할게.”

그러나 이것이 결코 그녀와의 끝은 아니다.

“머지않아, 또다시 나랑 마음껏 놀 수 있을 거야.”

“응, 기대하고 있을게!”

소녀가 웃었고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린 냉기와 고독으로 가득 차 있는 공백의 세계 속에, 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 * *

지옥에서의 소란이 끝나고…… 작센 가의 장남은 니콜라이 추기경의 이름으로 성대한 ‘죄 사함’을 받았다.

나아가 작센 가와 교회의 우호를 상징하는 가교(架橋)로서, 교회 측의 파격에 가까운 의전과 함께.

공작령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데일과 기사들은 더 이상 정체를 감춘 순례자가 아니었다.

그 까닭에, 누구도 감히 ‘검은 공자’와 그가 거느린 작센 가의 검을 가로막지 못했다.

* * *

몇 개월 후.

칼날을 따라 칠흑의 빛이 휘감겼다. 북부 밤까마귀 기사들이 계승하는 심법을 바탕으로, 중검(重劍)의 육중한 검신에.

체내에서 가공한 오러를 외부로 끌어내고, 검기의 형태로 휘감는 것. ‘오러 나이트’란 그 같은 경지에 도달한 기사들을 일컫는다.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 작센 가의 상징과 같은 흑검을 고쳐 잡고, 검희 ‘샬롯’이 고개를 들었다.

“됐어요.”

그 당당한 모습에, 샬롯의 스승 ‘헬무트 블랙베어 경’은 너무나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함께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작센 가의 기사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규격 외 재능의 소유자’가, 이 세상에 데일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 나이에 이 정도로 완성된 경지의 오러 블레이드라니!’

그리고.

“오르하르트의 샬롯.”

그 속에서 유일하게 평정을 지키는 작센 가의 장남, 데일이 입을 열었다.

“작센의 데일이 그대에게 물을지니.”

무릎을 꿇고, 작센 가의 흑검을 내리꽂은 샬롯을 향해.

“주군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그대의 명예를 위해, 아울러 그대가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의 손에 들린 기사 검으로, 샬롯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기사의 서약을 준수하며 검을 휘두르겠는가?”

“맹세합니다.”

샬롯이 고개를 숙였다.

“사욕에 휘둘리지 않고, 약자를 수호하고, 악한 자를 벌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겠는가?”

“맹세합니다.”

“……그대의 검에 참된 기사의 고결함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데일이 말했다.

“작센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샬롯 경’을 나의 기사로 서임하겠다.”

샬롯의 기사 서임식.

비록 밤까마귀 기사 몇 명의 입회와 함께, 조촐하게 치러지는 의식이었으나. 샬롯의 입지를 고려할 때, 데일과 작센 공작 가로서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리라.

그렇기에 샬롯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비로소 ‘그녀의 주군’을 지킬 수 있는 검이 되었다는, 벅차오르는 감동과 함께.

* * *

서임을 마치고 나서, 작센 공작성의 중정.

“정말 그걸로 되겠어?”

데일의 물음에, 그의 기사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작센 가의 검이 좋아.”

북부 기사들의 검이 추구하는 교리. 그 상성을 생각해 머뭇거린 데일이었으나, 샬롯의 의지는 강경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검이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의지로 밤까마귀 기사의 검을 받아들이고, 레이피어 대신 작센 가의 ‘대검’을 쥐기 시작했다. 대륙 칠검, 광검 헬무트 블랙베어 경의 수제자로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작센 가의 흑검,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를 완성한 것은 덤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샬롯이 새삼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고마워, 데일.”

수줍은 듯한 소녀의 미소.

“모두 네 덕이야.”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오히려 샬롯의 재능을 과소평가하고 있던 것은 데일 자신이었다고.

“……마왕령 너머에서, 대규모의 오크 군벌(軍閥)이 결집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어.”

그렇기에 결의를 마친 데일이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오크 워보스’가 직접 군세를 이끌고 있다는 모양이야.”

“……!”

“아버지께서 직접 공작령의 전력과 북부 영주들을 소집하고, 나 역시 그 전투에 참전하겠지.”

데일이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전투에서, 네가 내 곁을 지켜주길 바라.”

“…….”

“어디까지나 나의 기사로서.”

너무나도 뜻밖의 말에 샬롯이 숨을 삼켰다. 아무리 ‘오러 나이트’의 경지에 도달한 기사라고 해도, 그녀 역시 11살의 어린 소녀에 불과했으므로.

“응, 알겠어.”

그러나 샬롯은 당황하는 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의 검은 어디까지나 주군을 위해 휘둘러지는 것이고, 그녀의 주군이 자신의 검을 바라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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