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30화 (30/301)

30화

* * *

“작센 가를 위하여!”

“브란덴부르크 가를 위하여!”

제국에서도 손에 꼽을 무위를 가진 두 기병대가 격돌했고, 거기에 얕은 잔꾀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밀바스 경은 직접 기사단 내 최정예 부대를 이끌고…… 측방의 전선 돌파와 포위 기동을 목표로 하는 우익(Right-wing)에 섰으며, ‘공식적인 최고 지휘관’ 필립을 백작 가의 배너가 있는 부대 중앙에, 끝으로 퍼커 남작의 병력을 좌익에 배치해, 적 우익의 발을 묶는 역할을 맡겼다.

우수한 화력과 기동력을 가진 정예 병력을 우익에, 그 외 보병과 보통 전력을 중앙 및 좌익에 배치.

강력한 우익이 적의 측방을 공략하는 사이, 중앙과 좌익이 적의 공세를 저지하는 정공법이다.

그리고 양측 부대가 서로를 식별할 정도로 거리가 좁혀질 즈음, 밀바스 경이 이끄는 우익 ‘정예 부대’를 맞이한 적의 좌익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의 갑주 위로 잿빛 서코트를 걸친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 ‘검은 기병대’다.

‘호오.’

게다가 흑색의 기병대를 이끌고 최전선에 서 있는 자 역시, 후방에서 명령을 내려야 할 적의 최고 지휘관…… 작센 가의 어린 장남이었다.

‘처음부터 주력 부대끼리의 격돌로 승부를 지을 셈이로군.’

자신이 직접 전투의 최전선에서 미끼를 자처함으로써.

후방에서 명령을 내려야 할 최고 지휘관이 직접 전선에 나섰다는 것은, 그 정도로 해당 날개의 무게가 막중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쭙잖은 과감함이나 배짱으로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가 아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러나 달리 거절할 이유가 없는 승부였다. 아니, 오히려 이 같은 상황은 밀바스 경으로서도 더더욱 바라 마지않는 구도였다.

성 막달레나 기사단 내에서도 최고의 정예들로 꾸린 우익 기병대.

자신의 결의를 수행하기에 이 이상 더 적합한 상황은 없을 테니까.

──트리앙의 밀바스 경.

성 막달레나 기사단의 고위 기사, 그리고 백작 측의 실질적인 최고 지휘관. 그는 성검사의 곁을 지키며 무수한 전투를 경험한 역전의 기사였고.

10년 전, 자신의 주군이 용사의 등에 성검을 찔러넣은 그날의 목격자 중 하나였다.

* * *

“차징!”

우익 기병대를 이끌고 적의 좌익으로 돌진하며, 밀바스 경이 우렁차게 소리를 높였다.

저 멀리서, 흑색 투구 밑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적의 지휘관…… 작센의 데일을 향하여.

성 막달레나 기사단이 자랑하는 쐐기꼴 밀집 대형 대신,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산개할 수 있는 여러 겹의 횡대(橫帶)로.

“성 막달레나를 위하여!”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를 위하여!”

백작 가의 기사들이, 일제히 수호성녀 막달레나의 이름을 외치며 돌격을 시작했다.

전투의 개시를 알리는 기병대의 선제 돌격.

돌격과 동시에, 밀바스 경과 일부 기사들의 랜스가 이형의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천사의 깃털처럼 새하얀 순백의 오러. 성 막달레나 기사단의 상징.

바로 그 눈처럼 새하얀 오러를 자신의 랜스에 휘감고, 순백의 기병대가 빠르게 가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이쪽을 향해 질주하는 작센 가의 기사들, 검은 기병대를 향해서.

“작센 가를 위하여!”

“데일 공자님을 위하여!”

제국에서도 손에 꼽을 무위를 가진 두 기병대가 격돌했고, 거기에 얕은 잔꾀가 개입할 여지 따위는 없어 보였다.

창과 창이, 전투마와 전투마가, 강철과 살점이 부딪쳤다. 비명이 울려 퍼졌고, 피와 뼈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이 전투에 참여한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기사 중, 오러 블레이드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은 오십여 명 남짓. 얼추 하나의 기병대대를 이룰 수 있는 숫자다.

“제1기병대대는 내 뒤를 따라라!”

바로 그 50명의 ‘오러 나이트(Aura Knight)’들로 이루어진 대대를 이끌고, 밀바스 경이 적진 사이를 질주했다.

제일선의 기병 돌격에는 참여하지 않고, 저 후열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데일을 향해.

일점 돌파를 통해 적장을 제압하고, 신속하게 전투의 종지부를 찍는다.

속전속결. 질주하는 밀바스 경의 오러 랜스가, 밤까마귀 기사 하나를 꼬치처럼 꿰뚫었다. 피와 내장이 줄줄이 쏟아져 내렸다. 그대로 기병 하나를 고꾸라뜨린 밀바스 경이, 창을 놓고 허리춤의 기사 검을 뽑았다.

순결검(Innocent Sword) 밀바스 경.

시퍼런 칼날을 따라, 자신의 이명에 걸맞은 순백의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촤악!

순결한 칼날이 새하얀 궤적을 그리며 다시금 적병의 목에 휘감겼다. 비명이 울려 퍼질 새도 없이, 잘린 목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뭐지?’

다시금 두 명의 기병을 제압하고 나서, 밀바스 경이 희미한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이끄는 성 막달레나 기사단의 우익 기병대가…… 맞부딪치는 밤까마귀 기사단의 좌익 기병대를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일방적이다.

상대는 전장의 파괴자, 바로 그 ‘검은 기병대’가 아니었나.

“퇴각! 기수를 돌리고 퇴각하라!”

“후퇴하라! 후퇴하고 전열을 재정비하라!”

고작 한 차례의 격돌 끝에, 어느덧 적의 기병대 전체가 도망치듯 말의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기병들 사이의 전투는 결코 한 차례 격돌로 끝나지 않는다. 그 까닭에 제2열, 제3열의 축차 돌격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 밀바스 경으로서는, 참으로 맥빠지는 결말이었다.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을 이끌고, 고작 우리의 발이나 묶으려는 것인가?’

양측의 전력 차가 명확할 경우, 열세한 측이 시간을 벌기 위해, 교전을 회피하고 퇴각을 위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는 작센 가가 자랑하는 ‘검은 기병대’였고, 그들의 진가는 알량하기 그지없는 속임수나 교란 기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최대의 강점마저 포기하는 자충수에 불과하다.

그 증거로, 뒤늦게 기수를 돌려 도망치기 급급한 적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부산스러웠다.

전열이 엉망으로 뒤엉키고, 말에서 낙마하고, 그야말로 수라장이 따로 없다.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고, 도망치는 부대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후열 부대의 축차 투입조차 없다.

흔들림 없는 일사불란함과 강철 같은 규율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전장의 파괴자, 천하의 ‘검은 기병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진 모습.

이래서야 그린벨트 남작이 거느린 오합지졸 병사들과 다를 게 없는 수준이리라.

‘그린벨트 남작의 오합지졸……?’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밀바스 경의 심장이 일순 철렁했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이 위화감의 정체에.

‘설마.’

위화감이 아니었다.

적으로서, 때로는 믿음직한 아군으로서. 적지 않은 전장을 ‘밤까마귀 기사단’과 함께한 밀바스 경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작센 가의 장남, 적의 지휘관은 처음부터 이쪽에 정예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것은 함정이었다.

* * *

밀바스 경이 이끄는 우익의 반대편.

퍼커 남작이 이끄는 좌익 부대와 마주한 것은, 그린벨트 남작의 문장을 새겨넣은 오합지졸 부대였다.

‘그린벨트의 머저리들을 쓸어버리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내심 전투에서의 피해를 걱정하던 퍼커 남작은, 그 모습을 보고 커다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린벨트 남작이 직접 지휘하는 머저리 기사들의 창끝에서……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 그것도 ‘오러 나이트’를 상징하는 칠흑빛 오러가 휘감기기 전까지는.

* * *

“퍼커 남작이 이끄는 좌익 부대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작센 가의 ‘오러 나이트’들이 빠르게 퍼커 남작의 좌익을 돌파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밀바스 경이 말씀하시길, 분명 적의 주력은 작센 가의 장남이 있는 우익이라고…….”

“퍼커 남작의 상대는 그린벨트 남작의 오합지졸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떻게 작센 가의 ‘오러 나이트’들이 그쪽에 있는 것이냐!”

백작 가를 상징하는 커다란 배너 아래. 두 개의 전선이 치열하게 맞물리며 시계의 역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는 와중, 호색한 필립은 중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 전투를 책임지는 진정한 의미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

질식할 것 같은 중압감이 심장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압감 다음으로 심장을 옥죄이는 것은, 자신을 향한 열 살 어린아이의 차가운 조소였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결국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지휘관 밀바스 경’이 아니라.

──무능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작 가의 장남이 될 텐데요.

‘그렇게 놔둘까 보냐!’

그 말대로다. 이 전투를 지휘하고 작센 가의 장남을 꺾는 것은, 처음부터 밀바스 경이 아니라 자신의 몫이어야 했다.

공작 가의 신동이자 제국 제일의 천재를 쓰러뜨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제국 모두의 앞에서 증명할 것이다.

브란덴부르크의 필립이란 이름을!

결의를 다진 필립이 나지막이 고개를 들었다.

“밀바스 경의 전언입니다! 중앙과 후위 기병대를 퍼커 남작의 좌익에 합류시켜 수비를 강화하시란…….”

바로 직후, 우익에서 상황을 알아차린 밀바스 경이 급하게 연락병을 보내 ‘정확한 행동지침’을 하달했으나.

“시끄럽다!”

데일을 향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백작 가의 장남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내용이었다.

* * *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밀바스 경에게 있어 데일의 속임수는 흔해 빠진 위장 전술에 불과했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고, 실제로도 그랬을 터였다.

“피, 필립 공자님께서 직접 후위 기병대를 이끌고 이쪽에 합류하신다는 보고입니다!”

그러나 급히 달려온 연락병의 전언을 듣고 나서, 밀바스 경은 그야말로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진짜 주력’과 맞서는 퍼커 남작의 좌익에 병력을 합류시키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그것이 공자님께서 하도 완고하게 나오시는 나머지…….”

‘그 빌어먹을 애새끼가……!’

이미 밀바스 경이 이끄는 우익 병력은, 적의 열세한 좌익을 상대로 우세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이미 유리한 상황’에 추가로 병력을 투입해봐야, 불필요한 병력의 과밀을 초래해 날개의 기동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밖에 갖고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적의 최고 지휘관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 하나에 눈이 멀어, 그 같은 오판을 내린 것이다.

정작 수세에 몰린 아군의 도움 요청을 내팽개치고!

신속한 기동을 바탕으로 적의 날개를 돌파해야 할 우익이, 그 역할을 상실하고 우왕좌왕하게 될 사이. 그린벨트 남작의 오합지졸 기사들로 위장한 ‘적의 진짜 주력’은, 별 탈 없이 이쪽의 날개를 꺾고 포위 기동을 감행할 것이다.

이 시점에 이르러 전투의 향방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아니, 아직이다.’

그러나 이내 밀바스 경이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고, 저 너머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적의 최고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흑색 투구에 가려져, 일말의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작센 가의 어린 장남을.

“제1기병대대.”

다음으로 자신과 함께 적들을 도륙하고 있는, 그 누구보다 믿음직한 50명의 오러 나이트들을 떠올렸다.

“이대로 나와 함께 적진을 돌파해, 곧바로 적장을 추격할 것이다.”

달라질 것은 없다. 아군 전열이 완전히 뒤엉키고 무너지기 전에, 일점 돌파를 통해 적의 최고 지휘관을 제압하고──신속하게 전투의 종지부를 찍는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성 막달레나의 이름으로, 순백의 검에 축복이 있기를.”

수호성녀의 이름을 읊조리며, 순결검 밀바스 경과 휘하의 기사들이 성호를 내리그었다.

“시스티나 여신의 보살핌이 함께하기를.”

“자매신의 자애와 자비가 함께하기를.”

결의를 다지고 나서, 그들의 전투마에 박차를 가했다.

흡사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불길함을 애써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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