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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7화 (27/301)

27화

* * *

“그대가 거느린 이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누구입니까?”

어린 데일이 소드 벨트에 비스듬히 매달린 기사 검을 뽑았다. 검 끄트머리의 칼날이, 쏟아지는 햇빛에 비치며 시퍼런 서슬을 빛냈다.

이 전투의 핵심은 결국 두 명의 대제후…… 흑색공과 성검사가 거느린 기병 전력의 격돌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 남작이 가진 병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데일의 부름에, 장신의 기사 하나가 성큼 다가서며 대답했다.

남작의 가장 가까운 곁을 지키는 기사. 입에서는 희미하게 술 냄새가 풍기고 있다.

“…….”

데일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말에서 내린 데일이, 칼자루를 빙글 돌리며 자신의 검을 바닥에 내리꽂는다.

동시에 데일의 서코트 자락이 어지럽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린벨트 공께서는 필시.”

정확하게는 흑색 서코트의 모습으로 의태(擬態)한 아티팩트 ‘그림자 망토’가.

“제가 가진 역량을 의심하고 계실 테지요.”

망토 자락을 나부끼며 데일이 말을 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전투를, 일말의 상의도 없이 고작 열 살의 어린아이에게 일임하다니.”

“그, 그것이…….”

뜻밖의 말에 그린벨트 남작이 당혹을 숨기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정곡이었다.

“그러나 공께서 거느린 병사들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데일이 냉정하게 내뱉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노골적으로 모욕에 가까운 도발.

“서로의 의심을 풀기에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겠죠.”

스릉!

“알겠습니다, 공자님.”

그 도발에 응하듯 남작의 곁을 지키는 기사가 검을 뽑았다.

“저 하버크가, 기사의 명예를 걸고 남작 가의 검을 증명하겠습니다!”

“좋아요, 하버크 경.”

데일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즉석 대결.

이윽고 하버크 경의 단전에서, 심법을 통해 가공된 오러(Aura)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어쨌거나 기사로서 전력을 다해 임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데일 역시, 심장의 서클을 회전시키며 체내에서 마력의 기류를 생성했다.

기사들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나, 마법사 역시 ‘마나의 힘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방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데일의 애검은 결코 바닥에 꽂아 넣은 기사 검이 아니었으므로.

“제 검에 대해서는 들어보신 적이 있겠죠?”

“하하! 공자님의 ‘기묘한 검’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데일이 물었고, 하버크 경이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대답했다.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에 데일이 일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애초에 데일이 ‘정통파 기사’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차라리 잘됐다. 마음 놓고 전력을 다할 수 있겠어.’

타앗!

대결이 시작됐고, 앞서 땅을 박찬 것은 하버크 경의 쪽이었다.

빨랐다. 그러나 칼날에 오러의 힘을 깃들게 할 경지는 아니다. 아니, 애초에 그 같은 경지의 기사가 대륙 전체를 통틀어 얼마나 되겠는가.

당장 데일이 거느린 기사 중에서도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할 수 있는 고위 기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설령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할 수 있다고 쳐도, 전장에서 일기당천으로 적들을 도륙하는 소드 마스터의 이미지는 이 세계에서도 허황한 ‘기사 문학’에 가깝다. 기사들의 진정한 힘은 일개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라, 철저한 조직력에서 비롯되는 전술적 파괴력이니까.

그러나 그 철저한 조직력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돌고 돌아 기사 개개의 무력이다.

카앙!

코앞에서 휘둘러지는 하버크 경의 일격을, 데일의 발밑에서 솟은 ‘그림자 칼날’이 가로막았다.

아무리 모의 대결이라고 해도 상대는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기에 데일 역시, 그에 부응하고자 칼끝에 살기를 벼렸다.

철저하게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살검(殺劍).

“……!”

하버크 경이 데일의 살기 어린 칼날을 다급히 튕겨냈고, 데일의 발밑에서 재차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망토의 음영을 따라 십수 자루의 그림자 칼날이 생성되어, 데일의 주위를 공전하기 시작했다.

검의 크기와 형태, 나아가 칼자루의 숫자에 제약을 받지 않고 휘몰아치는 어둠의 칼날.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이론상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데일에게는 결코 허황한 탁상공론이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공세를 지속하며, 데일이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실력은 그냥 그런데.’

애초에 남작령의 일개 기사에게 얼마나 커다란 기대를 품겠냐마는.

‘도대체 뭘 믿고서…….’

아울러 시종 냉정함을 지키는 데일과 대조적으로.

‘이, 이럴 리가 없다!’

사방에서 쇄도하는 그림자 칼날의 세례에, 하버크 경의 움직임이 점차 초조해졌다.

고작 열 살 어린아이란 이유로 방심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방심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러의 힘으로 전력을 다하는 이상, 아무리 그래도 열 살짜리 애송이를 상대로 ‘패배의 가능성’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러의 힘을 통해 전력을 다하는 기사가, 순수하게 검의 대결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

설령 그게 어둠의 아티팩트에서 비롯된 불길한 검이라 할지라도, 고작 열 살 애송이에게 평생 검을 갈고닦은 자신이 ‘검’으로 압도당하고 있다니!

상대는 기껏해야 ‘열 살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수행을 게을리하고, 매일같이 흥청망청 주색에 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당장 오늘 아침에도 검술 수행을 빼먹고, 부하들과 술 몇 잔을 거나하게 걸쳤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하버크 경의 기준에서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푸욱!

‘어?’

그리고 뜻밖의 소리가 났다.

“아아악!”

뜻밖의 비명과 함께.

“아아악, 아아아악!”

“하, 하버크 경!”

그린벨트 남작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

‘어?’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은 재차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까닭에.

데일의 ‘그림자 칼날’이 하버크 경의 견갑과 어깻죽지를 찢고, 그 너머로 솟아나 있었다.

‘아니.’

그린벨트 남작이 거느린 이들 중 ‘최강의 기사’란 자가, 고작 몇 합을 받아치지 못하고 패배해 버렸다.

‘이걸 못 피해? 진짜로?’

그것도 모자라 전투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과 함께, 기사의 이름이 울고 갈 추태와 비명까지 더해져서.

참으로 믿을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럼에도 믿을 수밖에 없다.

“……이거 실화냐.”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데일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별 기대를 걸지 않았다고 해도, 설마 이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탓에.

* * *

“데, 데일 공자님!”

이 이상 전투를 속행할 수 없게 된 ‘최강의 기사’를 두고서.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그린벨트 남작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

“이런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저희 남작 가의 정예 기사가 전투불능이 되지 않았습니까!”

마치 데일의 행동을 질책하듯이.

‘돌아버리겠네.’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데일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아무리 그래도 오러 심법을 구사하는 어엿한 정식 기사가, 고작 이 정도도 감당하지 못하고 박살이 날 줄이야.

“아무리 공자님이라고 해도 이런 행위는……!”

바로 그때였다.

“감히 누구의 앞에서 소리를 높이는 것이냐!”

데일을 보좌하는 칠흑의 기사 하나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작 가의 장남에게 끝없는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지휘 아래 결집한 기사 오백 명과 함께.

북부 제일의 대제후, 작센 공작이 자랑하는 밤까마귀 기사단.

“히, 히이익!”

지축이 울리는 노호에 그린벨트 남작이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데일은 말없이 팔을 뻗어 자신의 기사들을 제지했다.

“그린벨트 공.”

제지하고 나서, 데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습니까?”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기 급급한 그린벨트 남작을 향해,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우리 작센 가의 이름 하나를 믿고, 그대의 검이 이토록 녹슬고 이가 빠지는 것을 손가락이나 빨며 구경하신 겁니까?”

그 목소리에서 일전과 같은 상냥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그것이…….”

“고작 열 살짜리 꼬맹이 앞에서 이토록 무력하게 패배하는 자가, 그대가 자랑하는 ‘최강의 기사’입니까?”

자조에 가까운 조소를 머금고, 데일이 말을 잇는다.

차라리 데일이 가진 ‘재능의 차이’에서 비롯된 패배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버크 경의 패배는 결코 검의 재능 하나에서 비롯된 패배가 아니었다.

평생에 걸쳐 전투의 경험을 갈고닦은 데일이기에 알 수 있었다.

“우리 작센 가는, 충성하는 가문을 위한 방패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린벨트 남작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돌았으나, 데일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 땅의 영주로서 그대의 의무를 소홀히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

“그렇기에 전투가 다가올 때까지, 우리 공작 가의 기사들이 그대들의 검을 벼려줄 겁니다.”

등 뒤에 있는 작센의 기사 오백 명을 뒤로하고,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 당장 대가리 박으십시오.”

그 앞에서 일개 소영주와 휘하의 오합지졸 기사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 * *

그날 밤, 남작성의 일실.

‘답이 없다.’

그것이 그린벨트 남작 휘하의 병력을 점검한 데일의 첫 감상이었다.

‘……내가 우물 속 개구리였다.’

그리고 우물 바깥의 세상이 얼마나 형편없는 곳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엄격하고 높은 기준을 가진 이들 속에서 성장했는지를.

기사 작위를 받고, 오러 심법을 터득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당장 데일이 공작성에서 매일 새벽 작센 가의 기사들과 검을 맞부딪치듯이,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검을 벼리는 것은 기사의 의무다.

그러나 북부의 기사 모두가 작센 공작 가의 기사들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하버크 경 하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머지 기사들도 예외일 수 없다. 하나같이 기사란 이름이 부끄러울 오합지졸이다.

패거리를 이루어 하루가 멀다고 수행을 빼먹고, 주색에 빠져 흥청망청하고 있다는 보고까지.

하물며 영지의 농노들로 이루어진 징집병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아무리 이 전투의 핵심이 양측 대귀족의 기병 전력이라 해도, 남작령의 병력 모두를 버림패로 돌릴 수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이내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상대의 노림수란 사실을. 적어도 성검사는 사전에 이곳 영지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린벨트 남작령을 지목한 것이리라.

북부의 이름 아래 ‘가장 결속이 약한 고리’를 노린 것이다.

성검사의 함정.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전쟁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상대는 결코 바보가 아니니까. 격돌을 시작하기도 전에 음모와 노림수가 교차하고, 늘 의도치 않은 상황과 맞닥뜨린다.

적어도 산전수전 다 겪은 데일에게 있어, 그것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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