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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4화 (24/301)

24화

* * *

그 후, 데일은 계층 수호자를 차례차례 돌파하며 ‘3서클의 완성’에 집중했다.

새 마법을 시험하고, 전생의 지식을 바탕으로 개량식을 추가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수식을 조합해보며, 3서클이 열어준 경지를 마음껏 뛰놀듯이.

맞물린 세 개의 서클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가공하며, 자신의 역량을 가감 없이 파악하는 것.

그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상대를 뒤로하고 20계층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데일의 격에 걸맞은 상대가 나타났다.

헤들리스 나이트(Headless Knight). 목 없는 기사.

칠흑의 갑주에 커다란 대검을 쥐고 있다.

지금까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적이고, 특히나 ‘보통의 마법사’와 기사가 갖는 상성이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너무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도 재미가 없지.’

데일이 미소 지으며 헤들리스 나이트를 향해 팔을 뻗었다.

후우웅!

그 끝에서 정제된 어둠의 마력이 실내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러나 객석 모두가 숨을 삼키고 기대하는 것처럼, 피 튀기는 혈투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싸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쿠웅!

“무, 무슨 일이지?”

“저것 좀 봐!”

객석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헤들리스 나이트가 데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

계층을 지켜야 할 수호자가 그 역할을 포기하고, 지키라고 명령받은 앞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치 진정으로 모셔야 할 주군 앞에서 신종(臣從)의 선서를 맹세하듯이.

그대로 무릎을 꿇고, 대검을 바닥에 세로로 꽂아 넣을 따름이다.

절대적 복종.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자결해라.”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듣기 무섭게, 헤들리스 나이트가 자신의 대검을 역수(逆手)로 움켜쥐고 힘껏 내리꽂았다.

자신의 흉갑을 향해 일말의 주저도 없이.

갑주에 보호받고 있는 육골이 부서지며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피 튀기는 결투를 기대하고 있던 객석의 이들에게는 다소 맥 빠지는 결말이었다.

그러나 이곳 흑색 마탑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자들의 경악이란 말할 것도 없었다.

비교적 덤덤히 데일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던 흑색 마탑의 장로들…… 흑의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그들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경악의 당사자이리라.

어둠의 존재를 굴복시키는 것은 그보다 더 커다란 어둠의 힘이다.

그리고 흑색 마탑의 장로가 제작한 피조물이 창조주를 배신하고, 데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 다시 말해 데일이 정제한 어둠의 마력이, 이미 흑색 마탑의 장로 레벨에 필적하고 있다는 뜻이다.

겨우 3서클의 어린 마법사가!

그것도 수(水), 암(暗)의 이중 속성을 다루며, 고작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흑색 마탑의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마법사는 누구나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으며, 마법사의 수행이란 바로 그 세계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그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데일이 가진 마력의 원천, 시린 냉기와 잿빛으로 가득 찬 공백의 세계를.

데일의 마력에 깃들어 있는 것은 그 겨울밤의 어둠이었고, 그 어둠 앞에서 헤들리스 나이트가 굴복하며 복종을 자처했다.

어둠의 존재를 굴복시키는 것은 ‘보다 커다란 어둠’이다.

그리고 감히 흑색 마탑의 장로조차 범접할 수 없는 시린 냉기와 어둠으로 가득 찬 세계.

그것이 바로 마법사로서 데일이 가진 진정한 힘이었다.

‘조금 도가 지나쳤나.’

그러나 헤들리스 나이트를 굴복시키고 나서, 데일은 내심 아차 싶었다. 이것은 이미 자신을 증명하고 어쩌고의 레벨조차 아니었다.

‘……올해는 이쯤하고 돌아갈까.’

소기의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데일이 치러야 할 시험은 여기까지다. 그렇기에 헤들리스 나이트가 몸소 열어준 다음 계층으로의 길을 뒤로하고, 데일이 등을 돌렸다.

“어, 어째서?”

“왜 돌아가려는 거지?”

객석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수군거림을 등지고, 시험의 포기를 알리는 장외(場外)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지금의 데일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 이상의 계층까지 탑을 오르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괴물의 영역마저 넘어서는 미지의 무엇이 되어버릴 테니까.

흑색공의 아들, 제국 제일의 천재란 명성으로도 이해시킬 수 없는 바로 그 영역에.

* * *

그로부터 얼마 후. 데일의 시험이 끝나고, 머지않아 탑의 시험 역시 끝을 맺었다.

흑색 마탑의 대회당.

“마탑주님의 행차시다!”

바로 그곳에서, 흑색공이 걸음을 옮겼다.

흑색 마탑의 정점에 군림하는 자로서, 끝없는 위엄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

마찬가지로 시험에서 자신을 증명한 ‘흑색공의 후계자’ 데일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공포 속에 군림하며.

그게 작센 공작 가의 방식이었고, 데일과 그의 아버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 부자를 향해 흑색 마탑의 장로들, 흑의위가 예를 표했다.

뒤이어 회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흑색 마탑의 마법사 일동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야말로 군대의 사열식을 방불케 하는 흑색 마탑 전체의 충성.

공식적으로 치러지는 데일의 데뷔식이자, 작센 가에 의한 후계 체제의 공고화.

귀족 가의 대물림과 달리, 실력 지상주의의 마도 세계에서 그 자리는 결코 핏줄 하나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누구도 흑색공과 데일 앞에서 감히 거스를 생각을 품지 못했다.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힘에 의한 질서를 추구하는 ‘적색 마탑’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 * *

열 살의 나이에 3서클의 경지를 이루고, 그것도 모자라 ‘탑의 시험’에서 20계층을 돌파했다.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데일의 압도적 무용담 역시, 제국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흑색공의 가장 정당한 후계자. 제국 제일의 천재.

공작령의 사람들은 흡사 제 아들 자랑이라도 하듯 ‘데일 공자님’의 이름을 떠들고 다녔다.

아울러 작센 가의 가신 · 봉토(封土) 기사들이 데일을 향해 갖는 충성심이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끝을 모르고 부풀려지는 데일의 활약은, 서서히 북부 전체를 결집하기 시작했다.

* * *

탑의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다시 얼마 후.

제국 북부, 작센 공작의 광활한 공작령.

히이잉!

새하얗게 펼쳐진 지평을 따라, 칠흑의 갑주에 잿빛 서코트를 걸친 기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50명 편제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병대대.

지금, 데일은 자신의 이름으로 바로 그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아버지 작센 공작의 명령으로, 공작령 내 소규모 오크 무리와의 일전을 앞두고서.

어디까지나 경험을 쌓기 위해 종군했던 과거의 일전과는 다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전투의 공과에 오롯이 책임을 짊어져야 할 전투.

물론 귀족 가의 후계자로서 병사를 거느리고 부대를 지휘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고작 열 살 어린아이가 맡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중책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있는 어느 기사도 감히, 데일이 가진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의심하지 않았다.

‘작센의 데일’에게 있어 나이란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했으므로.

오히려 데일이 기사들에게 주는 자부심과, 거기에 그들이 보내는 충성심은 무엇과도 비할 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데일을 향해 작센 가의 기사들이 갖는 신뢰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매일 새벽 일찍부터, 기사들과 직접 검을 맞대며 배움을 청하는 공작 가의 후계자. 오크 무리에 맞서 자신의 기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린 무용담까지.

어느 귀족 가의 높으신 자제가 그처럼 ‘귀족답게’ 행동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자신들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또 하나의 주군.

부하들의 신뢰를 얻는 것은 지휘관의 가장 커다란 덕목 중 하나다.

그 까닭에, 데일의 기사들이 일제히 기병창을 꼬나쥐었다. 장창 방진을 갖추고 있는 오크 무리를 앞두고, 여느 때 이상으로 불타는 전의와 함께.

“데일 공자님을 위하여!”

“작센 가를 위하여!”

“차징!”

데일의 기병대가 오크 방진을 향해 돌격을 시작했다.

창과 방패가 격돌했고, 방패가 부서졌다. 오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녹색의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전차처럼 돌격하는 검은 기병대 앞에서…… 그것은 싸움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일방적 도륙이었다.

작센 가의 기사들은 결코 데일이 지켜야 할 자들이 아니라, 오로지 데일을 위해 휘둘러지는 검이었으므로.

* * *

“데일 공자님이 돌아오셨다!”

작센시.

작센 공작 가의 기사들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토벌의 증표로, 보란 듯이 오크 무리의 목을 잘라 줄줄이 매달고서.

“공자님께서 또 영지 내의 괴물들을 소탕하셨군!”

데일과 그가 지휘하는 기병대가 공작성으로 돌아오자, 이내 공작령의 사람들이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직속 기사들을 이끌고 영지 내의 괴물을 소탕하길 벌써 몇 차례. 착실하게 쌓이는 데일의 전공(戰功)에, 공작령의 사람들은 끝없이 데일의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역시 데일 공자님이야!”

영지 내에서 범람하는 괴물 소탕에 앞장서는 공작 가의 후계자.

그것은 귀족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의무이기도 했으나, 이 세계의 귀족에게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의무’란 그다지 통용되는 상식이 아니었다. 아니, 어느 세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겠는가.

그 점에 있어 ‘귀족의 의무’를 솔선수범하는 데일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 * *

작센 공작성.

공작의 집무실.

“오크 일백사십오 마리의 수급을 취했음을 공작 각하에게 보고합니다.”

“아군 기병들의 피해는?”

“경미한 부상자가 셋, 그 외에 피해는 전무합니다.”

데일이 덤덤하게 결과를 보고했고, 작센 공작이 냉정하게 되물었다.

“달리 그들을 지키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였느냐?”

“오롯이 작센 가의 검들이 활약한 결과입니다.”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자, 그제야 작센 공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린다.

“잘 해주었다, 데일.”

“공자님, 벌써 대대 규모의 기병들을 지휘하는 일에도 익숙해지신 모양입니다!”

두 부자의 이야기가 끝나고, 비로소 곁에서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 입을 열었다.

“모두 헬무트 경께서 가르쳐주신 덕이에요.”

헬무트 경이 가르치는 것은 검술이 다가 아니었다.

데일의 검술 스승이자, 동시에 전략과 전술…… 병법의 스승이기도 했으니까.

군사를 지휘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

가령 기병 50명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대대를 다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명령은 신속하게 전달되고, 내려야 할 선택지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복수의 기병대대가 모여 하나의 기병연대(Regiment)를 이루고, 거기에 둘에서 셋의 연대가 모여 기병사단(Division)을 이룰 경우.

천 명이 넘는 기사들의 대부대를 지휘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성질을 가진 작업이 된다.

하물며 북부 제일의 대제후가 총력전을 위해 소집할 기병들의 수는, 고작 천 명 수준에서 그치지 않으리라.

게다가 전쟁이란 결코 기사 하나의 병종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공자님께서 배우시는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이 이 세계의 전법을 흡수하는 속도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기실, 데일의 ‘전략안’이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사령관으로서의 자신. 군세를 다루는 능력.

그 전략과 전술이 사령술의 힘과 합쳐질 때의 시너지를 헤아렸다.

“이 기세로 곧 영지전을 수행하실 날도 머지않았군요!”

바로 그때, 헬무트 경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지전이라.’

뜻밖의 말에 데일은 내색하지 않고, 나직이 미소 지었다. 자신을 증명할 새로운 무대는 언제나 환영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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