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0화 (20/301)

20화

* * *

“제가 네크로폴리스에서 ‘탑의 시험’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네크로폴리스의 탑. 그 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었다.

흑색 마탑이다.

그리고 데일이 말하는 ‘탑의 시험’이란, 마탑의 계층 수호자(Floor Guardian)들과 맞서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시험의 장이자…….

더 나아가서는, 마탑의 마법사들 사이에서 서열을 정리하는 일종의 랭크 게임이다.

첫 시험에 응시하는 풋내기들은 고작 몇 층을 돌파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지고, 상위 계층의 수호자를 쓰러뜨리거나 거듭나는 자들은 비로소 ‘탑의 장로’가 될 자격을 손에 넣는다.

──끝으로 오직 한 사람, 탑의 정점에 서는 자에게 ‘마탑주’의 이름이 허락된다.

데일의 눈앞에 있는 남자…… 흑색공(Lord Black)이 그러하듯이.

아울러 오색 마탑 중에서도 ‘죽음’과 맞닿아 있는 흑색 마탑의 시험은, 적탑과 더불어 가장 험악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탑의 시험이라 하였느냐.”

그 말에 데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데일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흑색 마탑의 정점에 군림하는 자로서, 흑색공이 말을 이었다.

“아직 3서클도 채 완성하지 못한 너에게는 너무 이르구나.”

열 살을 맞은 데일의 경지는 수(水)와 암(暗)을 통틀어 2서클 마스터.

그리고 마법사들이 탑의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은 최소 3서클의 도달이다. 다시 말해, 탑의 시험을 받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하거나 그와 동등한 수준의 역량이 필요하다.

“곧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데일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범재(凡才)가 마탑 부속 아카데미에 입학해, 졸업에 해당하는 3서클에 도달하는 평균 나이는 20대 중순. 그러나 아홉 살에 2서클에 도달한 데일은, 그로부터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다음 경지’를 자신하고 있었다.

3서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어엿한 정식 마법사를 자청할 수 있는 경지.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아버지와 작센 가를 위한 결정입니다.”

“어느 점에서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제가 3서클에 도달하고 나서, 그 후 ‘탑의 시험’을 통해 저 자신을 증명할 경우.”

데일이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저란 후계자를 통해 탑주(塔主)로서 아버지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탑주로서의 입지.

마탑주가 되는 것은 결코 핏줄의 대물림이 아니며, 그렇기에 ‘후계자의 계승’이란 절대로 가볍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데일이 공작 가의 신동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알량한 자기 과시욕의 발로가 아니었다.

“저 역시 호사가들의 실체 없는 떠벌림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형태의 명성을 손에 넣겠지요.”

정식으로 마도의 세계에 데뷔해 ‘공작 가의 신동’이란 이름을 증명하는 것.

“저의 증명은 곧 아버지의 증명이 될 겁니다.”

끄덕이고 나서 말을 잇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증명은 곧 우리 ‘작센 가의 증명’이 되겠지요.”

작센 가의 증명.

“그것을 위해 탑의 시험을 자청한 것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말에, 작센 공작이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요사이의 일들을 계기로 데일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제국 제일의 대제후, 작센 가가 거느린 세력이란 데일의 상상을 아득히 웃도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물속에서 숨을 죽이는 것은 결코 좋은 결정이 될 수 없다. 데일의 침묵과 별개로 공작 가를 향한 제국의 야욕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제국이 선수를 치기에 앞서, 전력으로 작센 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설령 황실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위협할 수 없는 커다란 위명을 손에 넣는 것.

이제 시작일 따름이었다.

* * *

그날 밤.

데일은 자신의 침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두 개의 서클, 2서클 마스터. 여기에 다시금 하나의 마나 고리를 생성하고 쌓아 올리는 것.

쉽게 말해서, 서클의 확장이란 결국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다.

‘그러나 3서클부터는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그런 것과 달리, 3서클 이후의 벽을 넘는 것은 재능이나 기교의 영역이 아니다.

깨달음이다.

마도의 이치를 깊이 음미하고 이해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영역.

통상 3서클이 아카데미의 졸업 자격이자 한 사람의 어엿한 마법사라고 구별 짓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참선이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지.’

세상의 길이란 게 정도(正道) 하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데일이 선택한 것은 수백 배로 위험하고, 그러나 보다 확실한 결과가 보장되는 사도(邪道)였다.

전생의 자신이 취했던 방식.

깨달음을 통해 3서클에 도달하는 게 벽을 뛰어넘는 행위라고 가정할 경우, 데일이 택하려는 방법은 전력으로 자신을 부딪쳐 벽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목숨을 담보 삼아, 마나 폭주를 통해 마법사로서 자신의 극한을 초월하는 행위.

후우웅!

마력의 소용돌이가 실내에서 휘몰아치며, 서릿발이 되어 흩날린다.

통제와 폭주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펼치기 시작하는 마나의 격랑.

‘다시 해보자.’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데일이 재차 정신을 다잡았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축적한 마나를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시켜 방출한다.

그러나 태엽처럼 맞물린 두 개의 서클이 제곱의 성능을 발휘하며, 마나의 폭주를 저지한다.

‘……2서클이라고 해서 다 같은 2서클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과 지금의 배움을 토대로 쌓아 올린 서클의 완성도는, 전생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정교해지고 있는 서클의 완성도. 보통의 2서클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정교함 및 회전력.

뛰어넘어야 할 ‘자신의 한계’는 상정 이상으로 까마득히 높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또다시!’

2서클의 수용량을 웃도는 마나를 뿜어내기 위해, 심장의 마나를 억지로 펌프질하는 악순환 끝에.

끝없이 공급되는 마나를 수용하기 위해 두 개의 서클이 극한의 가속과 회전을 거듭했다.

‘아직 부족하다.’

더 빠르게 서클을 가속하고, 회전시켜서, 극한의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했다. 흡사 자동차의 엔진 RPM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처럼.

“……!”

바로 그때.

비로소 서클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폭주하는 마나가 데일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쩌적, 쩍!

숨이 멎었다.

일대의 마나가 비명을 내지르며, 주위 열에너지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유리창을 따라 희끗희끗한 성에가 끼고, 실내가 얼어붙으며, 살을 에는 것 같은 냉기가 휘몰아쳤다.

그리고──.

푸욱!

“……?!”

느닷없이, 등 뒤에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싸늘한 쇠붙이의 감촉. 가슴을 찢고 툭 튀어나온 칼끝이 시퍼런 서슬을 빛내고 있다.

‘성검 뒤랑달의 칼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데일이 서 있는 곳은 어느덧 새하얀 대지의 한복판이었다.

아늑한 공작성의 일실이 아니라.

희고 어두운 겨울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데일은 차갑게 조소했다.

세피아가 말했듯이…… 마법이란 마음의 거울이다.

그리고 지금 데일은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는 거울 속에 있었다.

깨달음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발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

사상의 심연(深淵).

희고 어두운 겨울밤.

밤의 밑바닥이 새하얗고, 그러나 하늘은 무척이나 검고 어둡다.

마법사는 누구나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고, 마법사의 수행이란 바로 그 세계를 완성하는 과정이며.

마법사의 이상(理想)이란 바로 그 세계를 현실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고위 마법사들의 격돌을 일컬어 ‘세계와 세계의 충돌’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결코 과장이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데일이 가진 진정한 세계였다.

희끗희끗한 잿빛의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끝없이 펼쳐진 공백의 지평을 따라서.

이곳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동생 리제도, 세피아와 샬롯도.

‘처음부터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마음속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시린 냉기가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쨍그랑!

환상이 깨지고, 추위가 사라진다. 고개를 내린다.

거창한 깨달음 따위는 없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세 개의 서클’이 심장을 중심으로 태엽처럼 맞물리며 작동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바친 것은 그저 자신의 진정한 세계를 마주하는 일.

1서클에서 2서클이 되었을 때, 십수 배로 강해진 자신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3서클의 경지를 손에 넣은 바로 이 순간.

그것이 ‘보통의 3서클’이 아니란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당장 시험해보고 싶은 병기의 투영이나 주문의 개량, 추가 수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혼자뿐인 성의 실내에서, 데일은 감히 자신의 마법을 시험해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 * *

이튿날 아침, 작센 공작의 집무실.

“3서클이 됐어요.”

데일이 덤덤하게 보고했고, 아버지 작센 공작이 놀란 듯이 숨을 삼켰다.

“……그것이 정말이냐?”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삼아 심장을 중심으로 고정된 세 개의 서클을 태엽처럼 회전시키며.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세 개의 서클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마력의 형태로 가공한다.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기억과 함께.

흑색과 청색, 어둠과 냉기의 마력이 데일의 손끝에서 휘몰아친다.

정제된 어둠, 시린 냉기의 이중 속성.

그제야 데일은 비로소, 자신이 수(水)와 암(暗)의 마법 계통을 선택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처음 세피아가 스승이 되었을 때, 그녀의 가르침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데일의 세계’가 그것을 택한 것이다.

“보고도 믿기가 어렵구나.”

아버지 작센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탑에서 저의 능력을 증명할 일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 말에 아버지 작센 공작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는 미소였다.

흑색공 역시 모르지 않으리라. 데일이 가진 재능은 이미 천재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데일은 주저하지 않았다. 설령 괴물이라고 해도 사랑스러운 것이 제 자식일 테니까.

게다가 무엇보다도, 어린아이란 이유로 침묵하며 때를 기다릴 시기는 지나버렸다. 데일의 침묵과 별개로 제국과 황실, 그리고 이 세계는 끝없이 움직일 것이다.

탑의 시험을 받고 전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일.

“저를 믿어주세요, 아버지.”

그렇기에 설령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라도, 지금은 그저 나아갈 때였다.

* * *

얼마 후. 죽음의 도시, 네크로폴리스.

그리고 도시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칠흑의 첨탑. 바로 그 흑색 마탑을 향해, 귀족의 마차와 기사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흑색 갑주로 무장하고, 밤까마귀 자수를 새겨넣은 잿빛 서코트 차림의 ‘검은 기병대’.

그 모습이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하나였다. 작센 공작의 친위대, 밤까마귀 기사단.

그리고 저 마차에 타고 있는 남자는, 이 죽음의 도시와 탑, 나아가 북부 일대의 정점에 군림하는 자였다.

제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찬란한 재능을 가진 그의 어린 아들과 함께.

‘탑의 시험’은 마탑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험이자 의례이며, 설령 탑주라 해도 예외일 수 없다. 끝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데일 하나의 몫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둠의 마법을 업으로 삼는 두 부자가, 네크로폴리스의 가도를 가로질렀다.

저마다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시험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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