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9화 (19/301)

19화

* * *

소요가 진정되고 얼마 후. 황제의 사람들이 돌아가고, 작센 공작성에는 다시금 평온이 찾아들었다.

“공자님.”

그 평온의 증거로, 평소처럼 새벽 일찍 데일을 깨워주는 하녀 이브의 목소리가 들린다.

“데일 공자님, 일어나실 시간이에요.”

여느 때 이상으로 부드러운 음성에, 우모를 가득 채워 넣은 베개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새벽녘 햇살은 무척 가느다래서, 실내는 여전히 컴컴하다.

그러나 이미 공작성의 기사들은 기상을 마치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으리라.

“깨워줘서 고마워.”

“예.”

데일의 말을 듣고 이브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하녀로서 지금 당장 그녀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고 나서, 이브는 할 말이 있는 듯 자리를 떠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 의미를 헤아린 데일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그것이, 저기…….”

어린 하녀 이브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흐린다.

열일곱 살 소녀가 고작 열 살의 어린아이를 향해 존대하고, 데일은 그녀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놓는다. 출신이 다르니까. 여기는 그런 세계다.

사람에게 태생의 고귀가 정해져 있고, 누구도 그 같은 계급에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페트로 같은 자들에게 있어 그녀는 그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천한 것’에 불과하겠지.

“……고마워요.”

머뭇거린 끝에 이브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 같은 게 공자님을 섬길 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영광이에요.”

겨우 그 말을 하고자 이토록 망설이고 망설였던 것일까. 적지 않은 삶을 이 세계에서 보냈으나, 여전히 그런 사고방식은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작센 공작 가의 장남.

그 이름이 가진 무게를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이용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결코 제국을 무너뜨릴 수 없을 테니까.

“응.”

그렇기에 데일은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 * *

그날, 데일은 기사들과 검을 맞대는 대신 아버지의 호출을 받아 공작성의 집무실로 향했다.

성의 최상층, 아버지 작센 공작의 집무실.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을 했더구나, 데일.”

데일이 들어서기 무섭게, 아버지 흑색공은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황도 귀족과의 충돌. 자신을 질책하려는 것일까.

“……나는 네가 총명한 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어지는 흑색공의 말은 조금 달랐다.

“어째서 그 같은 행동을 택하였느냐?”

그것은 그저 순수한 물음이었다. 데일이 가진 그릇을 시험하기 위한.

‘드디어 때가 왔다.’

그 물음을 듣고 나서 데일은 주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던가.

──열 살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공작 가의 일원으로서 대우받게 될 때를.

그렇기에 데일이 대답했다. 그날, 자신의 행위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그게 다가 아닙니다.”

아울러 데일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마 ‘이계의 용사’가 신검 바델 경과의 싸움에서 죽지 않았을 경우.”

데일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전생을 제국의 사냥개로 사육되며 깨달은 ‘제국이란 나라’의 실체. 흑색공조차 깨닫지 못하는 진실을.

“다음으로 용사의 검이 휘둘러질 상대는, 이곳 작센 공작령이 되었을 테지요.”

“……!”

황실이 비밀스럽게 작센 가를 경계하며 세운 음모의 획책을, 전생의 데일은 똑똑히 들었으니까.

그러나 제국은 작센 공작 이상으로 용사의 힘을 두려워했다. 금제란 이름의 목줄이 끊어지고, 자신들의 사냥개가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사태를.

그렇기에 바델 경을 쓰러뜨린 직후 그 자리에서 토사구팽이 이루어졌고, 용사를 통해 흑색공을 제압하겠다는 제국의 이독제독(以毒制毒)은 결국 미수로 그치고 말았다.

“……무척이나 불경스러운 말을 하는구나.”

작센 공작이 짐짓 엄하게 되물었다.

“어찌하여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냐?”

다짜고짜 전생에서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이계의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마왕령의 어둠을 완전히 뿌리 뽑지 않았습니다.”

데일이 말을 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대부대를 물린 다음, 우리 작센 가에 일방적으로 출혈을 강요했지요.”

어디까지나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영역 내의 의심과 증거를 갖고서.

“마왕령을 제국의 영토로 개간하란 억지에 가까운 명령과 함께──.”

“…….”

산맥을 넘어 끝없이 약탈을 거듭하는 괴물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부활의 때를 기다리는 고위 마족들.

“그 땅에 깃들어 있는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의 출혈은 그치지 않을 겁니다.”

마왕령(魔王領)이라 불리기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편의로 부르는 이름에 불과하다.

그 땅에는 조금 더 깊은 어둠이 깃들어 있다.

자신이 쓰러뜨린 마왕조차 그 어둠의 일부에 불과할 정도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실은, 그렇기에 비로소 마왕령을 아버지에게 하사했습니다.”

그 이상으로 황실이 작센 가를 경계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으리라.

“아울러 북부 바깥의 사람들은, 우리 공작 가를 일컬어 ‘어둠의 일족’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어둠의 일족. 그 말에 작센 공작이 씁쓸하게 웃었다.

“제국과 북부 바깥의 사람들은 명백하게 우리의 힘을 두려워합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데일은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그렇기에 일찍이 용사를 버린 것처럼, 자신들을 위협할 ‘내부의 리스크’를 배제하려 들겠지요.”

“용사를 버렸다고……?”

그 말에 흑색공이 놀라서 숨을 삼켰다. 물론 작센 공작은 ‘용사의 진실’을 알고 있는 몇 없는 이들 중 하나다. 용사의 말로가 그저 제국의 토사구팽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자.

그러나 데일은 아니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그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공식적으로 용사는 제국을 위해 신검 바델 경과 동귀어진을 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날의 진실은, 제국이 절대로 드러낼 수 없는 가장 비밀스러운 치부 중 하나였다.

“어디까지나 서고의 책들을 읽고 생각한 제 추측입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자신의 경험을, 역사의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으로 가공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알지도 못하는 세계에 끌려와,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검을 들어야 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끔찍한 육체 개조를 받아가며.

그 같은 처지에서, 정말 제국을 향해 애국심을 느낄 일말의 여지 따위가 존재할까?

“다행히 용사는 죽었고, 제국은 아직도 통일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후유증의 여파는 당초 제국이 상상한 이상으로 심각하지요.”

데일에게 내려진 검과 마법의 재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제국은 그들이 바라는 야망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나라를, 이토록 정확히 통찰하는 능력은 별개의 이야기다.

‘이 아이에게는, 재능으로도 메꿀 수 없는 세월의 지혜마저 주어져 있다는 것일까.’

침묵 끝에 흑색공이 되물었다.

“제국의 정의를 부정하려 드는 것이냐?”

“아버지께서는 제국이 추구하는 정의가 정말로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데일이 역으로 되물었다. 과거, 자신의 손에 죽어 나가야 했던 무수한 이들을 떠올리며.

“…….”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데일이 ‘작센 공작의 아들’이듯이, 작센 공작도 ‘데일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열 살이 되도록 지켜본 그의 아버지는, 결코 제국의 정의를 긍정할 남자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서고에서,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무수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데일이 입을 열었다.

“제국의 정의란 결국, 폭력을 앞세워 힘없는 나라를 빼앗고 짓밟는 압제자의 정의입니다.”

전생의 자신이 겪은 경험을, 책에 써진 ‘역사의 기록’으로 교묘하게 바꾸어서.

흑색공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는 자다. 과거 작센 가는 마왕령에 맞서 제국의 방패란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용사에 의해 마왕이 쓰러지고, 방패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 지금에 이르러, 흑색공과 흑색 마탑이 보유하고 있는 힘은 제국에게 너무나도 위험하다.

군세를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자의 힘이니까.

강력한 마법사는 홀로 군대 하나를 쓸어버린다.

같은 경지의 사령술사는 홀로 능히 군대 하나를 일으킬 수 있다.

하물며 바로 그 사령술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일컬어지는 흑색공은…….

“그럼 네가 생각하기에, 우리 작센 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냐?”

그렇기에 흑색공이 입을 열었다.

“우리 작센 가는 결코 제국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작센 가는 제국이 내포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위험’이니까요.”

흑색공 역시 모르지 않으리라. 아니, 오히려 작센 공작이야말로 그 사실을 제국에서 가장 진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다.

“제국의 야망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전쟁 다음에는 내부의 위험 요소들을 숙청하려 들 겁니다.”

이 순간을 위해 10년이란 오랜 세월을 감내하고 또 감내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소리로 바로 이 말을 내뱉기 위하여.

“──우리는 제국을 멸망시켜야 합니다.”

오싹.

“…….”

순간, 주위의 공기가 일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어둠의 마력이 실내를 내달린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작센 공작이 경직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데일의 말을, 어린아이 특유의 무모함이라 넘겨짚고서.

“지금 당장 우리 손으로 군대를 일으켜 반란을 꾀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데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10년입니다.”

젓고 나서 데일이 말했다.

“10년?”

“제국이 통일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우리 작센 가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 때까지.”

지금도 대륙 각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리주의를 천명한 레지스탕스들.

작센 공작처럼, 제국이 자신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제후들.

경제는 위축되고, 백성들은 전재(戰災)에 고통받고, 터전을 잃고 약탈을 거듭하는 도적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대륙 통일이 끝나고 적지 않은 햇수가 지났음에도, 전쟁의 후유증은 오히려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제국에 맞서 가문을 지킬 힘을 기를 겁니다.”

──이것이 정말로 열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일까.

“각지에서 암약하는 저항군 세력을 돕고, 귀족들을 결집하고, 나아가 도시 부르주아들을 포섭해 제국의 경제를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데일은 자신의 구상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새벽녘 어스름이 중천에 걸린 정오의 햇살로, 나아가 서녘 하늘로 저물어갈 때까지. 젖먹이의 몸을 가진 바로 그날부터, 이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구상을.

제국의 마수에 맞서 작센 가를 지킬 방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야기 끝에 데일이 물었다. 창밖에는 어느덧 보랏빛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짙은 밤이었다.

작센 공작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참으로.”

침묵 끝에, 작센 공작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가진 재능의 끝은 헤아릴 수가 없구나.”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이.

“너에게는 나조차 보지 못하는 저 너머의 풍경이 비치는 모양이구나.”

일말의 희열조차 비치며.

“네가 나의 아들이란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구나.”

아버지의 흐뭇함을 숨기지 않고.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니까요.”

데일 역시 나직이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너는 그저 공작 가의 장남도, 열 살의 일개 어린아이도 아니다.”

작센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나는, 장차 작센 가를 이끌어갈 가주(家主)로서 너를 예우하마.”

작센 공작이 말했다.

“너의 나이도, 심지어 네가 공작 가의 장남이란 사실조차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그저 우리 가문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동등한 한 사람의 가주로서 너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할 것이다.”

그 말의 무게를 깨닫고 데일이 고개를 숙였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가주 대 가주로서, 아버지 작센 공작과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격.

“따라서 너의 말은 곧 작센 가의 말이 될 것이며.”

바로 이날을 기다린 것이다.

“너의 행동은 곧 작센 가의 행동이 될 것이고.”

열 살의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공작 가의 후계자로 두고 대할 날을.

“너의 의지는, 곧 작센 공작 가의 의지가 될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센 공작 가의 힘을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을.

그것을 위해 신동(神童)이란 간판을 내걸고 끝없이 자신의 재능을 펼쳐왔다. 자신의 활약, 자신의 행동, 자신의 말들, 모두가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린 포석이었다.

그러나 설마 그 시기가 이토록 빨리 찾아올 줄이야.

“망설이지 말고 말해보아라, 데일.”

멈추어 있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 같은 감각이, 등줄기를 훑었다.

“바로 이 순간, 우리 가문을 위해 너는 무슨 결정을 내릴 것이냐?”

“아버지께서 저를 동등한 한 사람의 가주로서 대우해주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기에 망설임의 여지 따위는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담 제가 네크로폴리스에서 ‘탑의 시험’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탑의 시험.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린 작센 공작의 표정에, 가벼운 동요가 스쳤다.

“작센 공작의 아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흑색공의 업을 잇는 수제자’로서──.”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가, 자신의 맹약을 깨트리고 제자로 맞이한 어린 천재.

“제가 ‘흑색공의 영지’를 계승할 가장 정당한 후계자란 사실을, 모두의 앞에서 증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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