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8화 (18/301)

18화

2. 소년기

악사들의 흥겨운 음악 소리, 성 전체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는 온갖 사치품들, 요정의 등불처럼 빛을 내뿜고 있는 오색의 마석(魔石)들…….

데일의 열 살을 기념하는 공작성의 축제는, 작센 공작 스스로가 혐오해 마지않는 허례허식의 극치였다.

결코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서.

“호오, 역시 작센 공작 각하시구려!”

“어머나, 이 요리들 좀 봐요!”

황제의 사람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헤아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제국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거대한 세력. 다시 말해, 황제파의 핵심을 이루는 황도의 중앙 귀족들이다.

“황궁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나, 북부의 한복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마다 값비싼 벨벳이나 실크 따위로 몸을 휘감고서, 자기가 이 축제의 주객이라도 된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자들.

황제파 귀족들이 ‘황제의 이름’을 대행해서 이곳에 행차하고 있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곧 그들의 존재 가치이기도 했고, 설령 작센 공작이 상대라 할지라도 다를 것은 없다.

“동토의 벽지라기에 내심 걱정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제국의 중앙 귀족들은 늘 그 영토를 놓고 흑색공이 가지는 정치적 입지와 빗대길 좋아했다.

지나치게 광활하나 아무 실속도 갖지 못한 대지.

제국 대귀족의 하나이며, 동시에 북부 벽지에 고립을 자처하는 정치적 아웃사이더.

제국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자, 동시에 모두가 꺼리고 두려워하는 흑색 마탑의 수장.

그럼에도 여전히 그가 제국의 대제후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흑마법과 사령술을 천대해도, 그 어둠이 갖는 군사적 가치마저 천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 같은 견제와 외경(畏敬)의 줄다리기가 바로 작센 공작이 제국에서 갖는 입지의 실체였다.

흑색공은 옥좌에 앉아, 감정 없는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볼 따름이다.

자신의 공작성을 제집처럼 헤집으며 여흥에 빠진 귀족들.

물론, 이곳에 있는 귀족 대다수는 작센 공작에게 달리 위협이라고 부를 가치조차 없다. 작센 공작이 경계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의미 그 자체였다.

묵시(默示)의 경고.

성검사를 향한 모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황실의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가장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메신저’가, 작센 공작의 앞에 나타났다.

“삼가 작센 공작 각하를 뵙겠습니다.”

옥좌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적발의 남자. 그가 미소 짓자, 주위에 있는 귀족 여성들의 이목이 쏠린다.

“어서 오십시오, 유리스 후작님.”

데일 역시 아버지의 곁에서 기계적으로 예를 표하며, 조용히 입을 악물었다.

유하고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데일은 그가 가진 진정한 괴물의 초상을 잊지 않았다. 그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핏빛공(Lord Crimson)’의 이름을 가진 남자.

화염과 분노…… 힘에 의한 질서를 추구하는 적색 마탑의 수장.

적색 마탑주.

적탑의 마법사들은 황제의 뜻에 가장 가까이 결탁하고, 제국이 가진 야망의 집행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이 추구하는 ‘강자의 정의’가 곧 제국의 시대정신 그 자체였으므로.

──그들의 손으로 온갖 끔찍한 개조 시술에 시달려야 했던 전생의 자신을 떠올린다.

“이쪽이 데일 공자님이시군요.”

그리고 그 증오스러운 대상이, 자신을 향해 조용히 미소 짓는다.

“공작 가의 천재 신동…… 제국을 통틀어 감히 비할 바 없는 마도의 재능을 가졌다 들었습니다.”

일순, 유리스 후작의 눈빛이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이채를 품었다.

“호사가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가문의 기사를 지키기 위해 오크 무리를 일소했다지요?”

무대 위의 배우처럼 과장스럽게 두 팔을 벌리며.

“고작 아홉 살 나이에 그 정도의 성취라니!”

“사람들이 떠벌리는 이야기는 늘 과장되는 법이지요.”

작센 공작은 덤덤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고, 끝없는 겸손으로 일관했다. 그 역시 데일의 재능이 가진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까닭에.

“역시 공작 각하의 아들이십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과할 정도의 축복을 받은 아이지요.”

다시금 유리스 후작의 시선이 데일을 향했다. 일찍이 엘프 마법사 세피아가 그랬듯이, 냉정하게 데일이 가진 재능을 살피고 그가 내포하고 있는 위협을 알아차리기 위해.

마법이란 결국 심상의 구체화다. 하물며 상대는 바로 화염 마법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일컬어지는 핏빛공.

따라서 열 살 아이의 가슴속에서 이글거리는 증오의 「불꽃」을 간파하는 것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

그러나 증오의 불꽃이 타오르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저 얼어붙을 듯 시리고 시린 냉기가 가슴속에서 퍼져나갈 따름이다.

“작센의 데일, 유리스 후작님을 뵙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질 듯한 냉기 속에서, 데일이 천진하게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진한 열 살 아이의 모습을 가장하고.

* * *

밤이 깊어도 축제의 불꽃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몰랐다. 무르익기 시작하는 생일 축제를 뒤로하고, 데일은 슬며시 공작성의 대회당을 빠져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보필하며 귀족들의 상대를 하는 시녀들을 등지고 홀로.

──적색 마탑주, 핏빛공이 직접 황도의 귀족들을 이끌고 공작성에 행차했다.

데일 역시 아버지 이상으로 그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고 나서, 결코 태평성대의 세상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황제파, 귀족파, 그리고 제국으로부터의 분리주의(Separatism)를 천명하며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망국의 레지스탕스들.

그 혼란 속에서 황제파의 심복, 성검사를 향한 아버지의 경고는 작지 않은 파문을 불러왔으리라.

‘혼자서 검이라도 휘둘러야 하나.’

공작성의 대리석 회랑을 가로지르며 데일이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샬롯이라도 불러서 검 상대를 하고 싶었으나, 공식적으로 샬롯은 엘레나를 보필하는 시녀였다. 그 같은 상황에서 ‘신검의 딸’이 검술의 수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더더욱 위험할 것이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곳에서 태어나고 보살핌을 받아왔는지를 실감한다.

“꺄악!”

바로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성의 앳된 비명이 들려왔다.

“얌전히 있어, 이 망할 몸종아!”

이어지는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회당 바깥의 으슥한 장소에서 일어날 일을 짐작하기란.

“제, 제발 부탁드려요! 저는 작센 가를 섬기는…….”

“어디서 천한 하녀가 공작 가의 이름을 들먹여?”

귀족 여성으로 이루어진 ‘시녀’와 천출의 ‘하녀’는 명백히 그 처지가 다르다.

“하! 공자의 생일이니 어쩌니, 다들 놀고 앉았네!”

대다수 귀족에게 하녀의 취급이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거기서 헛짓거리할 시간에, 계집이라도 하나 따먹는 게 건실한 일이지!”

그 같은 취급을 일상으로 여기는 자가, 남의 집에서 부리게 될 행패 역시도.

작센 공작 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제국에서 결코 드물다고 할 정도의 일도 아니다.

출생으로 귀천과 계급이 정해지고, 아랫사람들은 결코 귀족에게 거스를 수 없다. 여기는 그런 세계니까.

“더 저항했다가는 모가지를 그어버릴 줄 알아!”

스릉.

서슬 서린 날붙이 소리가 들린다. 스틸레토의 칼날 소리다.

“아아…….”

창백하게 질린 목소리를 따라, 데일이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회랑의 끝자락 모퉁이 너머, 공작성 바깥의 수풀이 있는 그곳으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데일 공자님……!”

데일의 목소리에, 담벼락에서 몸을 버둥거리고 있던 하녀가 소리를 높였다.

“……!”

여느 때처럼 데일의 일상을 챙겨주는 열일곱 살의 하녀, 이브다.

“데, 데일 공자님 아니십니까!”

억지로 그녀의 옷을 벗기려 들던 귀족이 당황하며 고개를 돌린다.

뒤뚱거리는 거구에 당장에라도 찢어질 것 같은 벨벳 코트. 엉거주춤하게 벗겨진 바지춤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구역질이 치밀었다.

돼지 목에 진주란 말도 아까울 정도의 추레함이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데일이 되물었다. 귀족이 당황하며 흘끗 몸을 물린다.

“그, 그것이──.”

물리고 나서,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 혹시 여자 경험을 해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미소를 짓고 나서 역으로 어처구니없는 제의를 내밀었다.

“성숙한 처녀의 몸을 맛보신 적은 아직 없겠지요?”

손에 쥔 스틸레토가 이브의 옷자락 위, 봉긋 솟은 젖가슴 사이로 내리그어졌다.

“이 페트로가, 데일 공자님에게 상상도 못 할 즐거움을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그저 데일을 열 살의 어린아이라고 치부하는 것이겠지. 자신의 입맛대로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어느 쪽이라도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추악함이다.

“…….”

데일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고, 공자님…….”

하녀 이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걱정할 것 없어.”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를 이쪽으로 보내십시오.”

미소 짓고 나서 데일이 말했다.

“제 말이 들리지 않습니까? 페트로 공.”

페트로가 머뭇거리며 이브를 데일 쪽으로 돌려보내자,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주저 없이 손가락을 뻗었다.

손끝을 따라 시린 냉기의 마력이 휘몰아친다. 그 의미를 헤아린 페트로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나의 행동이…….’

타앙!

그러나 데일의 아이스 불릿은 그대로 그의 뺨을 스치며, 성의 석벽을 향해 내리꽂혔다.

“히, 히이익!”

귀족 페트로가 자신의 육중한 거구를 무너뜨리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손에 쥔 스틸레토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작센 공작 가에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어설프게 물러날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황제의 사람’에게 얼음의 총알을 박아 넣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무릎 꿇으십시오.”

그렇기에 데일이 말했다. 일찍이 자신의 아버지가 성검사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무릎을 꿇고, 이브 양에게 그 행위를 사과하십시오.”

“무, 무엇을!”

“제 말이 들리지 않습니까?”

데일이 되물었다.

“공자님! 이 이상 저를 신경 써주실 필요는……!”

그 모습에 당황하며 하녀 이브가 데일을 제지한다.

“이브 양이 말했듯, 그녀는 우리 ‘작센 가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데일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페트로가 숨을 삼켰다. 그러나 삼키고 나서는, 순순히 굴복할 수 없다는 오기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 새끼가……!’

상대는 고작 열 살의 어린아이다.

아무리 공작 가의 귀하신 장남이라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수치와 모욕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자님, 유감스럽게도 저는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째서입니까?”

데일이 되물었다. 감정 없는 목소리로 덤덤하게.

“저는 제국의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이곳에 와 있는 몸입니다!”

페트로가 자신의 거구를 뒤뚱거리며 소리를 높였다.

“아직 세상 경험이 일천한 공자님께서! 그 막중한 의미를 이해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철부지 어린아이를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하기 위해서.

“천한 계집의 명예 따위를 지키기 위해! 제게 모욕을 주신다는 것은 곧……!”

“황제 폐하께서는, 남의 집 하녀를 겁탈하는 취미라도 가지고 있으십니까?”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차갑게 조소했다.

“지, 지, 지금 감히 무슨 말을!”

페트로의 표정이 경악으로 뒤틀렸다.

“페트로 공께서 ‘황제 폐하를 대신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 같은 의미가 아닙니까?”

태평하게 데일이 되물었고, 페트로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바로 그때였다.

“이쪽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자님!”

그즈음, 소란을 감지한 공작 가의 사람들이 이쪽을 찾는다. 대회당에 있을 아버지와 ‘핏빛공’이 소란을 깨닫고 다가오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귀족 페트로가 재차 숨을 삼켰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데일이 입을 열었다.

“무릎 꿇으십시오.”

어느덧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페트로를 바라보는 데일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 * *

아버지 흑색공과 어머니 엘레나, 그리고 작센 가의 기사와 시녀들. 황제의 귀족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황제파 귀족 페트로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데일을 향해서, 그리고 데일의 등 뒤에 있는 하녀를 향해서.

“흠, 이것 참 진풍경이네요.”

그 모습을 보고 ‘핏빛공’ 유리스 후작이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마치 즐거운 구경거리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데일, 이것이 무슨 소란이냐.”

아버지 흑색공이 싸늘하게 경직된 표정으로 다가섰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사태에 하녀 이브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린다.

“이 자는 우리 작센 가의 하녀를 겁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데일은 조금도 주눅 드는 일 없이, 일의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데, 데일!”

엘레나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무어라 입을 열려는 찰나. 작센 공작이 조용히 손을 뻗어, 엘레나를 제지했다.

“고작 그 정도 일로, 황도에서 몸소 행차하신 페트로 공에게 이 같은 무례를 준 것이냐?”

제지하고 나서 작센 공작이 되물었다.

고작 그 정도 일. 그것이 이 세계에서, 귀족과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입지의 실체다.

데일의 기세에 짓눌려 무릎 꿇고 있던 페트로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그, 그렇습니다! 공작 각하! 철없는 공자님께서──.”

“누가 당신에게 일어서라고 말을 했습니까?”

그대로 몸을 일으키려는 페트로를 향해, 다시금 데일이 손을 뻗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데일……!”

흑색공조차 그 태도에 놀란 듯 숨을 삼켰다.

“황도에서 오신 귀족 여러분께서는.”

그렇기에 데일은 주저하지 않았다.

“모두가 황제 폐하의 의지를 대행하는 중책을 맡고 계십니다.”

데일은 자신의 행동이 작센 가에 불러올 결과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자는, 폐하의 대행자라는 막중한 책무를 망각하고 ‘천한 일개 하녀’ 따위를 겁탈하려 들었습니다.”

“…….”

“따라서, 저는 감히 폐하를 욕보이는 페트로 공의 추태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데일의 대답에 작센 공작이 숨을 삼켰다.

“황제 폐하의 이름을 모욕하고 먹을 칠한 이 같은 자를.”

데일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하!”

침묵을 깨트린 것은 ‘핏빛공’ 유리스 후작의 웃음이었다.

“이거 정말이지.”

유리스 후작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뒤틀었다.

“어린 공자님의 총명함이, 무척 걸작이군요.”

입꼬리를 뒤틀며 유리스 후작이 말을 잇는다.

“공자님의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유, 유리스 공……?”

“감히 폐하의 이름을 대행하는 몸이 되어, 천한 일개 하녀 따위를 겁탈하려 들다니.”

데일의 주장을 긍정하는 그 모습에, 페트로가 당황하며 숨을 삼키기 무섭게.

“──타올라라, 버러지 같은 놈.”

핏빛공의 손끝에서 일렁이는 핏빛 마력이, 빠르게 지상을 내달렸다.

화르륵!

“……!”

페트로의 뒤뚱거리는 거구에 이글거리는 불길이 휘감겼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엄습하는 작열감에 페트로가 바닥을 나뒹굴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파, 아파, 아파아아!”

불꽃의 혀(Flame Tongue).

전투에서의 실용성은 극히 미미하나, 이 마법의 진가는 달리 있었다.

피부의 껍질을 벗기고, 육체 곳곳을 애무하듯 훑고, 결코 쉽게 고통을 끝내주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화염.

“──감히 황제 폐하를 욕보이는 어리석은 자를, 못 본 체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대로 유리스 후작의 시선이 데일과 작센 공작을 향했다.

“황실과 제국을 능멸하려는 버러지 같은 자들을 소각하는 것이, 저의 일이니까요.”

고통에 발광하며 울부짖는 페트로에게는 눈길조차 두지 않고, 작센 가의 두 부자를 향해서.

“후작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말에 흑색공 역시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바로 우리 제국과 황제 폐하의 방식이지요.”

마찬가지로 바로 곁에서 이글거리는 불길과 비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지 않으냐, 데일?”

아버지의 물음에 데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느덧 고통에 몸부림치던 페트로의 비명이 그쳤다. 진피(眞皮)와 뼈와 내장이 녹아내리고, 그곳에는 말 그대로 뼛가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밤바람에 몇 줌의 잿더미가 덧없이 흩날린다.

정적 속에서, 핏빛공의 시선이 데일을 향했다.

“공자님의 미래가 참으로 기대됩니다.”

자신을 향하는 그 눈빛을 마주하며, 데일이 대답했다. 열 살 어린아이의 순진한 미소와 함께.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