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5화 (15/301)

15화

* * *

그날 새벽.

데일은 홀로 공작성의 중정으로 나와, 심장을 타고 자신의 마력을 회전시켰다.

“일어나라, 얼음의 벽이여.”

시험 삼아 아이스 월을 세우고,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손가락을 겨냥한다.

“아이스 불릿, 「12게이지 00벅샷」.”

영창과 동시에 데일의 손끝에서 생성된 얼음의 총알이──.

타앙!

샷셸 역할을 하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파편으로 쪼개지며, 산탄의 형태로 8개의 얼음 구슬이 흩뿌려진다.

“아이스 불릿, 「Barrett M82」, 「.416 Barrett(10.6×83mm)」.”

타앙!

다음에는 대물 저격용 대구경 총탄.

두말할 것 없이 총알의 종류는 하나가 아니다. 제압이나 살상 · 비살상 등의 용도, 상황에 따라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형태의 것들이 존재한다.

.22 Long Rifle부터 12.7×99mm NATO(.50 BMG).

새를 상대로, 사람이나 짐승을 상대로, 경장갑 따위의 대물부터 대전차, 심지어는 대괴수(對怪獸) 전용까지.

그렇기에 목적에 따라 발사하는 총도, 총알도 달라져야 한다.

딱히 공학자나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세계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으로 족하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수식을 추가하며, 데일은 아이스 월을 표적 삼아 자신의 능력을 시험했다.

2서클 마법사. 그러나 고작 서클 하나가 추가되는 것으로, 이 세계에 투영할 수 있는 ‘데일의 세계’는 몇 배로 넓어졌다.

화가로서의 데일은 이미 완전무결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렇기에 남은 것은 그저 다룰 수 있는 화구(畫具)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다.

이 나라, 제국의 심장에. 일말의 가감조차 없이, 자신이 겪은 지옥 같은 전장의 화폭을 덧씌우기 위해서.

바로 그때였다.

“데일?”

멀찍이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샬롯이 있었다.

손에 한 자루의 레이피어를 쥐고서.

호흡이 거칠고, 뺨이 붉었다. 몸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다. 보아하니 모두가 잠들어 있는 이 시각까지, 홀로 검의 수행에 몰두한 모양이다.

“여기서 마법의 수행을 하고 있었구나.”

“응.”

데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저어 우뚝 솟은 아이스 월을 소멸시켰다.

“샬롯 양도 검의 수행을?”

“맞아.”

샬롯이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피어를 검집에 넣는다.

“헬무트 경이 가르쳐준 스텝을 익히고 있었어.”

그날 이후, 헬무트 경에게 검을 배우는 샬롯의 검술 실력은 하루가 멀다고 성장 중이다. 순수하게 검을 맞붙는 승부에서, 데일이 패배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검을 배우는 일은 즐거워?”

“아, 응.”

데일의 물음에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저기, 있잖아…….”

끄덕이고 나서 샬롯이 무엇을 깨달은 듯 머뭇거린다. 머뭇거린 끝에, 샬롯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는다.

“……멋대로 굴어서 죄송해요.”

그야말로 잘못을 고백하는 어린아이처럼.

“그, 데일 공자님 앞에서……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도 않고 무례하게 굴어서…….”

“보통 무례가 아니었지.”

샬롯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데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말을 잇는다.

“좋아, 특별히 용서해 줄게.”

“저, 정말로요……?”

“그리고 엄청 어색하니까, 그렇게 딱딱하게 굴 것 없어.”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척 스스럼없는 웃음이었고, 그 웃음에 비로소 샬롯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새벽녘 달빛이 아스라했다.

“……여기 날씨가 무척 마음에 들어.”

달을 보며 샬롯이 입을 열었다. 뜻밖의 말에 데일이 의외란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추위가?”

작센 공작령의 동토(凍土)가 자랑하는 추위는, 제국 사람들이 치를 떨 정도로 악명이 높다.

“늦게까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도, 뜨거워진 몸을 금방 식혀주잖아.”

그러나 그 덕에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식히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이곳의 추위가 주는 딱 하나의 장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을 줄이야.”

데일 역시 그 점을 내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던 터라, 조금 기뻤다.

두 사람 사이의 벽이 아주 조금 낮아진 기분이 들었다.

* * *

그즈음.

모두가 잠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한 데일과 달리, 흑색공은 공작성의 침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정에서 홀로 아이스 월을 쌓아 올리고, 그 아이스 월을 향해 자신의 마법을 투사하는 아들을 지켜보며.

데일의 손끝에서는 온갖 형태의 아이스 볼트가 가감 없이 뿜어져 나온다.

처음 세피아의 입에서 ‘생명을 빼앗는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것이 엘프 특유의 호들갑이라고 넘겨짚었다.

아니었다.

──과거, 흑색 마탑의 선조들이 쌓아 올린 깊은 어둠을 떠올린다.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이념 아래 자행된 용서받을 수 없는 업보들. 대다수 사람이 흑마법사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란 결코 이유 없는 공포가 아니었다.

뿌리 깊은 구시대의 어둠.

지금의 흑색공조차 그 같은 어둠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어둠이 데일의 ‘재능’과 결합했을 때, 데일의 손끝으로 덧씌워질 심연을 떠올린다.

천하의 흑색 마탑주조차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을.

바로 그때였다.

“당신, 뭘 그렇게 바라보고 있나요?”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 엘레나가, 남편의 곁으로 다가선다. 물기에 젖은 나이트가운 차림을 하고서.

검의 수행을 마친 샬롯이 데일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어머나!”

그 모습을 보고 엘레나가 놀란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새벽 깊은 시각. 공작성의 중정에 나와 있는 소년과 소녀.

“우리 아들도 참,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네요.”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엘레나가 보기에, 그것이 뜻하는 바는 오직 하나일 테니까.

작센 공작은 굳이 그녀의 오해를 정정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오르하르트 가의 영애를 받아달라고, 데일이 앞서 당신에게 부탁을 해왔다죠?”

엘레나가 즐겁다는 듯이 키득거린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요.”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소?”

작센 공작이 되물었다. 정말로 별생각 없이.

“글쎄요. 그저…….”

엘레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흐렸다.

“아들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어머니의 의무니까요.”

말하고 나서는, 그대로 작센 공작의 목덜미를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동시에 낭군님의 행복을 바라는, 아내의 의무이기도 하고요.”

그 뜻을 헤아린 작센 공작이 몸을 돌려 입맞춤을 한다. 입맞춤 끝에 작센 공작이 입을 열었다. 애써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늘 사랑하고 있소, 엘레나.”

“후후, 당신도 참.”

엘레나가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바라듯, 작센 공작 역시 ‘남편의 의무’를 수행할 때였다.

* * *

아들과 샬롯의 밀회(?)를 목격한 엘레나의 결정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 * *

얼마 후, 작센시 외곽. 부랑자와 거지, 오물과 동물 내장 따위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도시의 슬럼가.

그러나 그곳은 얼마 전부터 시작된 도시 구제사업 덕에, 적지 않은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바로 작센 공작의 아내, 엘레나의 이름으로.

공작령의 치중대(輜重隊)를 이끌고 거리로 나와,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을 위해 생필품을 베푸는 일.

매주 슬럼가로 몸소 행차해서, 아이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누어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모포를 제공한다. 아울러 거리의 부랑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길드의 사람을 찾아 교섭을 주선해준다.

──그리고 그날, 슬럼가를 찾은 공작 가의 사람은 엘레나 혼자가 아니었다.

엘레나를 보필하는 시녀나 공작 가의 호위 기사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데일, 샬롯 양을 잘 에스코트해주렴.”

레이디를 배려하는 것은 귀족의 의무라며, 자신의 시녀 샬롯을 데일이 직접 챙기도록 명령했으니까.

“예, 어머니.”

자신의 일과를 핑계 삼아, 두 사람이 함께 행동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엮어준 것이다.

“늘 감사합니다! 마님!”

“마님, 여느 때처럼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오시는 길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엘레나 님 덕에 겨울을 따듯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엘레나를 대하는 슬럼가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성모의 자애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이다.

‘이것이 어머니의 일이구나.’

데일 역시 어머니를 따라 솔선수범하기 위해 앞장선다.

“아이고, 고, 공자님!”

자신의 손으로 굶주린 부랑자들의 손을 맞잡고, 그들이 다시금 일어설 방법을 고심하며.

샬롯 또한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온정의 손길을 내뻗는다.

“아이고, 귀하신 아가씨가 어찌 이런 놈을…….”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이윽고 두 사람이 조금씩 엘레나의 시선이 닿는 장소에서 멀어지기 시작할 무렵.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온 것은,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고작 네다섯 살은 되었을까 싶은 아이.

“무슨 일이니?”

울지 말고 말해보렴, 하고 샬롯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도와줘요, 누나!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하며 다급히 샬롯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슬럼의 뒤쪽, 조금 더 으슥하게 숨겨진 거리의 끝자락을 향해서.

“어, 어쩌지.”

샬롯이 당황하며 숨을 삼켰다.

“우선 저기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그럴 때가 아니에요! 빨리, 빨리 와서 우리 엄마를 봐주세요!”

샬롯을 재촉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

그러나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샬롯과 달리, 데일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냉정했다.

‘수상한데.’

공작 가의 의전을 수행하는 호위 기사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 그 으슥한 거리의 끝자락을 상상하며, 데일이 일순 눈을 가늘게 떴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의 정체에 대해 고심하는 바로 그 순간.

“……!”

한 가지 불길한 가능성이 데일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 숨죽이고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을 깨닫고 나서, 가능성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시프 길드의 상급 조직원.’

전생에 비해 무뎌지기는 했으나, 일평생에 걸쳐 갈고 닦아온 전장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필시 신검의 딸을 노리고, 성검사의 손에 고용된 조직원이겠지.’

그렇기에 데일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모처럼 능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다.’

기사들끼리 정정당당하게 검을 맞대는 모의 수행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크 같은 녹색 피의 괴물을 상대로 맞서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란 미명으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100%의 전력을 발휘할 기회.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자신의 진짜 재능을 갈고닦기 위한 기회의 장.

승패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 압도할 수 있을까.’

그저 그게 궁금했다. 2서클을 이루고 나서, 실전 특화로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자신의 몇 가지 마법들. 아울러 주위에 알리지 않은, 그림자 망토의 ‘제2형태’로 확장된 새로운 기술까지.

공작 가의 기사들을 대동하고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기사 하나 없이 무방비하게, 아이의 순진함에 이끌린 소년 소녀 둘이 가게 될 경우, 상대는 확실하게 자신의 미끼를 물 것이다.

자신이 거미줄을 치는 거미라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가자, 샬롯.”

데일이, 망설이고 있는 샬롯의 손을 잡아끌었다.

* * *

‘걸려들었구나!’

엘레나의 구제사업 덕에 공작 가의 사람들이 슬럼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라 할 수 있으리라.

시프 길드 ‘컬라이더스코프’의 상급 조직원, 제이드는 암기를 빙글 돌리며 역수로 고쳐 잡았다.

“작센 가의 장남에게는 절대로 생채기 하나 내지 말아라.”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데일이 아니라, 작센 가의 일개 시녀였으므로.

공작 가, 그것도 작센 공작 가의 사람을 손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지는 그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대가로 주어질 천금의 액수 앞에서, 사람의 이성이 꼭 합리적 결정을 내리란 법은 없다.

“꼬마 계집을 제압하고, 신속하게 공작령을 빠져나간다.”

꼬드김에 넘어가, 슬럼의 수렁을 향해 다가오는 먹잇감을 기다린다.

자신이 거미줄을 치는 거미라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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