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1화 (11/301)

11화

* * *

아이스 볼트를 내리꽂고 나서, 데일은 그대로 능선 아래를 향해 말을 몰았다.

“데, 데일 공자님!”

급히 고삐를 당기려는 헬무트 경을 저지하며, 작센 공작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대로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겠다.”

“공작 각하!”

당황하는 헬무트 경의 말을 일축하며, 데일의 뒷모습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일의 손끝에서 방출된 그 아이스 볼트. 그것은 아버지에게 자신을 믿어달라는 일종의 증명이자 메시지였다.

그 어느 볼트와도 비교할 수 없는 사거리와 살상력을 가진 그것을, 애초에 볼트라고 부를 수는 있는 걸까?

게다가 데일이 자신의 주문에 추가한 그 수식들.

「Barrett M98B」, 「8.58x70mm」.

평생을 이 세계의 사람으로 살아온 작센 공작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계의 발음. 그렇기에 그가 이성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해답은 오직 하나였다.

‘설마 그 나이에 벌써 고유 수식을…….’

초보 마법사들이, 자신의 주문에 자기밖에 알아들을 수 없는 수식을 추가해봐야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수행에 수행을 거듭하여 자신의 심상을 확고히 구축한 고위 마법사는, 경우가 다르다. 정교하게 구축된 자신의 심상 세계에서, 그 세계의 이미지를 끌어내는 고도의 경지.

그것이 바로 「고유 수식(Original Modification)」이다.

‘고작 1서클 수준의 마법사가 그 정도의 완성된 심상 세계를 가진다는 것인가?’

서클 수준을 운운하기 이전에 데일은 고작 아홉 살 아이다. 그것은 신동이니 천재라는 말조차 부족한 경지였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데일이 구사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고유 수식이 아니었다. 적어도 데일이 읊조리는 주문에는, 그에 대응하는 명백한 실체가 존재했으므로.

철갑(鐵甲)으로 이루어진 전폭기들이 하늘을 비상하며 내리꽂는 폭격. 끝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과 포화 세례.

이 세계의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그러나 명백하게 실체를 갖고 존재하는 이계의 병기들.

‘도대체 저 아이는…….’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작센 공작은, 그저 데일을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 오히려 데일이 보여줄 활약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조바심마저 일 지경이었다.

자식의 활약상을 기대하는 철부지 아버지의 마음이 되어서.

게다가 설령 아무리 거리가 멀다고 해도, 작센 공작은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다. 아무리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여차할 때 데일 하나를 지키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퇴각하는 기병들을 가로질러, 데일은 어느덧 능선 밑을 질주하고 있었다.

저 멀리 낙오된 기사와 오크 검병들, 그리고 그 뒤에서 여전히 방진을 구축하고 있는 오크 무리가 보였다.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고, 그들을 바라보는 데일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했다.

‘주문의 추가 수식이 너무 거추장스럽다.’

저격용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으나, 코앞에 적을 둔 상황에서 발음하기에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지구에 존재하는 병기들의 이미지를 무의식 레벨에서 투영하기에는, 그 암시가 너무나도 약하다.

그렇기에 조금 더 효율적으로, 즉석에서 7할 정도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대체어’가 필요하다.

수식의 경량화.

‘……!’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데일은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이깟 이유로 직전까지 고뇌하고 있는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아이스 볼트(얼음의 쇠뇌살). 그것이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얼음 투사체를 떠올리기 위한 주문으로 애용하는 마법 이름이다.

그리고 데일은 그 마법명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저격 소총의 이미지를 ‘수식’으로 추가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필요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그어어어!”

데일이 최초로 날린 저격용 아이스 볼트에 오크 검병 하나가 즉사했고, 나머지 오크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데일은 말 위에서 다시금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겨누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이스 불릿(Ice Bullet).”

──타앙!

펜이 정말로 칼보다 강할지 어떨지는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총은 활이나 석궁보다 강하다. 총알과 화살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얼음의 총알이 오크 검병 하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눈동자 바로 밑을 뚫고 안와(眼窩) 너머의 두개골을 관통하며 쏘아지는 일격.

“고, 공자님!”

바닥에 널브러져 죽음을 직감했던 기사가, 고개를 돌리며 경악을 감추지 못한다.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어서──.”

“걱정하실 것 없어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그를 향해, 그러나 말에서 내린 데일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리 작센 가는, 절대로 충성하는 검을 버리지 않습니다.”

도저히 아홉 살 아이라고 믿을 수 없는 무거운 울림을 담아서.

“공자님…….”

그 역시 공작성에서 몇 차례고 데일의 수행을 지켜본 가신 기사의 하나였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이 아이는 그 부조리한 세상의 증명과도 같다.

그렇기에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데일을 볼 때마다, 충성과는 별개로 불공평한 세상의 현실에 쓴웃음 지어야 했다. 내심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어두운 감정을 뒤로하고.

그러나 바로 그 아이가, 자신을 위해 홀로 오크 무리와 맞서주고 있다.

살아남은 몇 마리의 오크 검병을 향해, 데일이 시선을 돌렸다.

새벽 공기가 무척이나 서늘했고, 그러나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럼에도 데일이 걸치고 있는 흑색의 망토 자락이, 강풍 속에 있는 것처럼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아아아!”

쇄도하는 오크 검병들의 칼날을 향해, 데일의 그림자들이 발밑에서 꼬챙이처럼 솟아났다.

아티팩트 ‘그림자 망토’의 제1형태.

그림자 칼날(Shadow Blade).

카앙!

그대로 그림자 칼날이 오크들의 검을 튕겨냈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먹어치워라.’

그림자들이 살아 있는 촉수처럼 오크들의 검을 휘감고, 그들의 손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촤아악!

그림자의 검신으로 이루어진 몇 마리의 검고 어두운 뱀들이, 오크의 손목을 휘감아 자르고 몸통을 향해 쇄도했다.

팔목에서 시작해 어깻죽지와 몸통, 끝으로 목이 뎅강 잘려나갔다. 잘린 곳에서 녹색 피가 울컥울컥 솟아났다.

데일이 보여주고 있는 살육의 검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공작성에서 검을 휘두를 때의 그 아이가 정말로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검도(劍道)를 추구하는 기사의 검이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의 목숨을 빼앗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가득한, 암살자의 살검이다.

“아이스 불릿.”

그림자 망토를 조종해 쇄도하는 오크들을 도륙하고 나서, 데일이 손가락을 뻗었다.

타앙!

그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것은, 최후의 오크 검병이었다.

한 사람의 낙오 기사를 사냥하기 위해 투입된 오크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데일이 고개를 돌린다. 저 멀찍이서, 기병들의 돌격에 대응하기 위해 장창 방진을 유지하고 있는 오크 부대를 향해.

전열에 있는 몇 마리의 오크들이, 다시금 장창을 고쳐 쥐고 투창의 자세를 다잡는다. 그러나 장창 세례 따위가, 데일을 향해 쏟아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무엇을 보고 놀란 듯 황급히 창자루를 고쳐 잡을 따름이다.

데일은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헤아리고, 나직이 미소 지었다. 자신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전 기병대대, 일제 돌격!”

미소 짓는 동시에, 귀를 찢을 듯 우렁찬 헬무트 경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등 뒤에서 전마들의 육중한 말발굽 소리가 이어졌다.

두 사람을 가로지르며, 다시금 작센 공작 가가 자랑하는 ‘검은 기병대’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아울러 기병창을 고쳐 잡고 질주하는 기사들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었다.

한 사람의 기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내달린 공작 가의 장남. 그것은 ‘귀족의 의무’라는 말로도 오롯이 형용하기 어려운 경이이자, 전설 같은 무용담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데일의 행위는 그들의 가슴에, 작센 가를 향한 충성의 불씨에, 그야말로 기름을 붓는 것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작센 가를 위하여!”

“데일 공자님을 위하여!”

“오크 놈들을 쓸어버리자!”

“차징!”

강철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부서지기 일보 직전의 방패에 쐐기를 박는 것 같은 일격이었다.

* * *

동녘 능선을 따라 새벽 햇살이 솟아올랐다.

“어찌하여 홀로 무모하게 적진으로 향하였느냐.”

오크 무리와의 일전이 끝나고 나서, 그것이 데일을 향한 아버지의 첫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질책의 어조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한 물음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그렇기에 데일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곳에 있는 작센 가의 기사들은, 훗날의 제가 이끌 사람들이라 하셨습니다.”

“…….”

“고귀한 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고귀한 의무가 있는 법입니다.”

데일이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저는 훗날 이들을 이끌게 될 자로서, 그러한 의무를 수행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너무 무모했다.”

“정말로 무모한 행위였을 경우, 아버지께서 저를 막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겠죠.”

데일이 대답했다. 참으로 당돌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아버지에게 저들 오크 무리를 토벌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테니까요.”

“호오.”

그 당돌함에, 아버지 작센 공작이 즐겁다는 듯 미소 지었다. 데일의 말대로다. 흑색공에게 있어 천 마리 오크를 일소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짓 하나로 족할 테니까.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네 말처럼 정말로 그럴 마음을 먹을 경우, 눈앞의 오크들을 일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그럼 어찌하여 자신의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계시는 겁니까?”

다음에는 데일이 되물을 차례였다.

“내가 손짓 하나로 오크 무리를 일소하길 바란 것이냐?”

“적어도 아버지를 위해 충성하는 기사를 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전장에서 자신이 구해지길 바라며 검을 쥐는 것이 아니다.”

그 말에, 작센 공작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부하들이 위협에 처할 때마다 앞으로 나서 그들을 구하고 전황을 뒤집는 것이, 네가 생각하는 귀족의 의무란 것이냐?”

“그렇습니다.”

데일의 대답에, 싸늘한 조소가 돌아왔다. 자신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고작 아홉 살 어린아이란 사실조차 잊고.

“우리의 영지는 해마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그것은 데일마저도 낯선, 냉혹하기 그지없는 대귀족의 얼굴이었다.

“그 위협이 닥쳐올 때마다 나의 힘을 사용하고, 그 힘을 통해 공작령의 평화를 유지해서, 다음에는 어쩔 셈이냐?”

다음에는.

“내 뒤를 이어 공작이 될 너 하나의 힘으로 이 영지를 지켜낼 것이냐?”

그리고 다시 그다음에는.

“그럼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어 작센 가에 충성하는 기사들을 육성하는 것이냐?”

“그것은…….”

“그들이 전장의 감각을 잊고 칼날이 무뎌지는 것에 대해, 너는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차가운 현실론 앞에서 데일은 일순 말을 잃고 침묵을 지켰다.

“영지의 위협에 맞서 우리 작센 가의 기사들은 끝없이 그들의 검을 갈고닦는다.”

작센 공작이 말했다.

“비로소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 닥쳐올 때는, 내가 그 위협을 막아내겠지.”

제국 제일의 대제후로 손꼽히는 작센 가의 가주(家主)로서.

“그것이 바로 작센 가의 이들이 짊어져야 할 ‘귀족의 의무’다.”

“…….”

그것은 데일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말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정론이었던 까닭에 정곡을 찔린 것이다.

당장 전생의 자신조차 결사대의 총사령관이라는 직함을 갖고 그처럼 행동하지 않았나.

‘그럼 어째서 나는 그 기사를 구하려 한 거지?’

거기까지 이르고 나자, 오히려 데일 자신도 알 수 없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그저 훗날 자신의 부하가 될 기사들의 충성을 얻기 위해서?

바로 그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까지의 차가운 표정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작센 공작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너는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가 믿는 ‘귀족의 의무’를 끝까지 관철했다.”

그 말에 데일이 나직이 숨을 삼켰다.

“훗날의 네가 이 공작 가를 물려받고, 작센 공작의 이름으로 ‘귀족의 의무’에 대해 돌이키게 되었을 때.”

지금의 데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래의 일.

“우리 중 어느 쪽의 믿음이 옳았을지는, 훗날의 네가 깨닫게 될 일이겠지.”

“아버지…….”

“성으로 돌아가자꾸나.”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길이 있다. 그렇게 말하려는 듯,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작센 공작은 묵묵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흑색공이 등을 돌린 그곳에는, 작센 가의 두 부자를 기다리는 ‘이백오십 명’의 기사들이 있었다.

작센 공작 가…… 아니, ‘작센의 데일’을 향해 북받쳐 오르는 충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리라 맹세를 거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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