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0화 (10/301)

10화

* * *

“데일!”

그날 밤, 어머니 엘레나가 데일의 방을 찾은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어머니.”

데일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크 무리 토벌에 아버지와 함께 출정한다는 게 사실이니?”

“예.”

아무리 데일이 가진 재능이 찬란하다고 해도, 어머니 엘레나가 보기에 결국에는 아홉 살 어린아이다.

“네 아버지에게 다시 말을 해보자꾸나.”

그리고 어느 세계에서도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란 크게 다르지 않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잇는 엘레나를 향해, 데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훗날 이 공작 가를 짊어질 것이고.”

고개를 젓고 나서는, 조용히 결의를 다지며 말을 잇는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 ‘리제’를 위해서라도 더욱 강해져야 해요.”

지금의 데일은 잃을 것 없는 처량한 복수귀가 아니었다. 이제는 그에게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고, 그 사실은 결코 데일의 칼날을 무뎌지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들을 되새기는 그 순간, 데일의 칼날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와 헬무트 아저씨도 함께하고 계시니까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실 것 없어요, 어머니.”

데일은 조용히 엘레나를 포옹해주었다.

“부디 제가 어머니를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 말에 엘레나는 나직이 숨을 삼켰다. 삼키고 나서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 * *

작센 공작에게 봉토를 하사받은 휘하의 기사령(騎士領)에서 소집에 응한 기사 이백 명.

공작성에 상주하는 가신 기사(Household Knight)들 오십 명.

도합 이백오십 명의 기병 전력과 더불어, 하얀 산맥에 주둔하고 있는 정예 레인저 부대 ‘겨울 파수꾼’까지.

속전속결. 오크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공작이 소집한 것은 철저하게 기동전에 특화된 부대였다.

그리고 그날 밤, 작센 공작성의 회의실.

“오크 부족들이 ‘작센 강’ 상류에서 진지를 구축했다고 합니다.”

“병력의 정확한 숫자는 어떻게 되지?”

“얼추 일천이 조금 못 되는 숫자입니다.”

하얀 산맥에 주둔하고 있는 레인저 부대 ‘겨울 파수꾼’의 전령이 보고하자, 작센 공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여느 때처럼 헬무트 경을 필두로 공작 가에 충성을 바치는 가신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얀 산맥 너머 마왕령의 혹독한 환경은 몬스터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굶주림을 참지 못한 몬스터들의 대규모 이동, 다시 말해 공작령의 거주지 약탈 자체는 그다지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아마 놈들의 부족한 보급 상황을 고려할 때, 강의 도하는 시간문제일 테지요.”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며,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작센 공작 역시 달리 부정하지 않고,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의 도하 시기를 노려 급습을 준비할까요?”

“아니.”

그러나 이어지는 헬무트의 말에 작센 공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들이 전력을 정비하고 강을 넘기 전에, 우리 쪽에서 선수를 칠 것이다.”

“그렇다 하심은?”

“강의 하류에서 우리 측 기병대를 앞서 도하시키고, 레인저 부대와 합류해 기습을 감행한다.”

작센 공작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헬무트의 표정에, 일순 의아함이 서린다.

“하오나 공작 각하, 작센 강 하류에는 기병 전력을 도하시킬 정도의 여울목이…….”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헬무트 경의 걱정을 일축한 것은,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세피아였다.

“이 전투에는 특별히, 청탑의 장로 세피아 님께서 도움을 주기로 하셨다.”

작센 공작이 말을 잇는다.

“제 마법으로 강 하류에 기병대 전원을 도하시킬 ‘얼음의 다리’를 형성할 것입니다.”

그 말에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나하나가 수백 킬로그램에 가까운 말과 중장갑으로 무장한, 기병 수백 명이 일제히 강을 넘을 정도의 얼음 다리. 보통 마법사들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묘기이리라. 그러나 6서클의 수 속성 엘프 마법사는 결코 ‘보통의 마법사’가 아니었다.

“물론 제가 공작 각하에게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이 정도입니다.”

청색 마탑의 교리는 불살과 조화. 그럼에도 그녀가 논란의 여지를 무릅쓰고 전투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세피아의 시선이 조용히 작센 공작의 옆자리를 향했다. 그곳에는 묵묵히 가신들의 회의를 경청하고 있는 아홉 살 아이가 있었다.

“고마워요, 세피아 선생님.”

진중하게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데일이, 비로소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 * *

새벽녘 햇살이 미처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출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머니 엘레나의 염려와 별개로, 그것은 엄밀히 말해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조차 아니었다.

작센 공작령은 끝없이 몬스터들의 위협에 노출되었고, 또 그때마다 그들을 토벌해 왔다. 심지어 흑색공 자신이 헬무트 경과 함께 직접 부하들을 이끌고 나가는 그 시점에서, 어느 오크 따위가 감히 데일을 상처 입힐 수 있을까.

‘그럼에도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결국 어머니의 마음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웃고 나서는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이백오십 명의 기사들이, 흑색 갑주 위로 잿빛의 서코트를 걸치고 있다. 서코트에는 작센 공작 가를 상징하는 밤까마귀 문장(紋章)이 수놓아져 있었다.

소드 벨트에는 기사 검(아밍 소드)과 스틸레토를 비스듬히 교차해서 매달고, 등에는 커다란 방패를 배낭처럼 찼다. 손에는 족히 수 미터 가까운 랜스를 쥐고 있다.

끝으로 흑색의 말 갑옷을 휘감아 무장을 마친 북부 전투마들까지.

그야말로 작센 공작 가가 자랑하는 ‘검은 기병대’가, 출정을 마치고 명령을 기다린다.

“공작 각하, 부디 출정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전신을 중장갑으로 감싸고 있는 기사,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 입을 열었다.

“데일.”

그 말에, 작센 공작이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예, 아버지.”

“우리 공작 가가 자랑하는 이 기병대는, 곧 훗날의 네가 이끌게 될 전력이기도 하다.”

검은 기병대. 제국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에 꼽히는 전장의 파괴자들.

“다시 말해, 이들은 곧 너의 기사들이다.”

데일의 기사들.

‘……나의 기사들이라.’

전생의 자신에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었던 군세(軍勢).

“나를 대신하여 출정의 명령을 내리거라.”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에 데일이 조용히 숨을 삼켰다. 숨을 삼키고 나서는, 결의를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센 가의 자랑스러운 검들이여.”

아홉 살 아이라고 볼 수 없는 진중하고 무거운 울림을 담아서.

“출정의 때가 왔다.”

데일의 말에, 기사들이 일제히 손에 쥔 기병창을 들어 올렸다.

“공자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공자님을 위하여!”

“작센 가를 위하여!”

랜스 끄트머리에 달린 제비 꼬리 모양의 창기(槍旗)가, 새벽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 * *

냉기가 강물 위를 내달린다.

지평 끝자락이 되어서야 겨우 뭍이 보이는 강물 일대가, 질주하는 냉기를 따라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역시 선생님이다.’

그저 얼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중장갑으로 전신을 무장한 기병 수백 명이 일제히 도하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 게다가 얼음 위에서 말들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한 마찰력의 증가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규모와 정교함에 있어 나무랄 데가 없는 수계 마법. 지금의 데일로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신기였다.

“세피아 님에게는 늘 이루 말할 수 없는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강물을 내려다보며, 작센 공작이 묵묵히 예를 표했다.

“고마워요, 선생님.”

공작의 곁을 지키고 있던 데일이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해맑은 미소라.’

그것이 곧 오크 무리와 일전을 앞둔 아이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일까. 데일의 모습을 지켜보는 세피아의 심정은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청탑의 마법사로서,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여기까지입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얼음의 다리를 뒤로하고, 세피아가 고개를 숙였다. 새벽녘의 어둠 속에서 얼어붙은 강이 유리처럼 빛을 내뿜었고, 그 위로 기병들이 일제히 도하를 시작했다.

머지않아 홀로 남겨진 세피아는, 차마 데일의 앞에서 내뱉을 수 없었던 말을 중얼거린다.

“데일, 부디 무사히 돌아오거라.”

대륙 제일의 사령술사, 그리고 칠검의 일좌가 그 아이를 지켜주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데일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그러나 아이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제자를 걱정하는 스승의 마음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 * *

빛이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 하늘을 갈랐다. 야습(夜襲)의 개시를 알리는 불화살이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의 세례.

사전에 매복한 레인저 부대 ‘겨울 파수꾼’들이 일제히 불화살을 날렸고, 하늘을 수놓은 불꽃 무리가 오크들의 진지를 향해 내리꽂혔다.

화르륵!

“그어어어어!”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오크들이 소리를 높였다. 그야말로 짐승의 포효가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제1, 제2, 제3기병대대(Squadron), 쐐기꼴 대형으로 돌격하라!”

그에 질세라 휘하 기사들을 지휘하는 헬무트 경의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50명 편제로 나눠진 3개 대대의 기사들 백오십 명이, 일제히 기병창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질주를 시작한다.

카우치드 랜스(Couched Lance). 당황하며 방진을 갖추기 급급한 오크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꽂히는 중장기병대의 질주.

기사와 말, 그리고 그들이 걸치고 있는 갑주의 무게는 합계 800킬로그램 남짓. 그 무게에 더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말들의 가속력을 싣고 내리꽂히는 기병용 창까지.

랜스 차징.

그것은 싸움조차 아니었다. 제아무리 오크라 할지라도, 중장갑으로 무장한 기사와 말의 충격력 앞에서는 종잇장과 같을 테니까.

강철의 트럭이 눈앞의 것들을 모조리 파쇄하고 나아가는 파괴의 행진.

그리고 공세가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 능선 위에서 전황을 조감하고 있던 헬무트 경이 다시금 소리를 높였다.

“신호를 날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제4, 제5기병대대에 돌격을 명령하라.”

“예!”

그 말에 곁을 지키고 있던 전령이, 하늘을 향해 무엇을 쏘아 올린다.

퍼엉!

폭죽 같은 무엇이 새벽녘 하늘에 청색의 빛을 흩뿌린다. 마법 신호탄.

“차징!”

신호와 동시에, 오크 진지의 우방으로 우회해 잠복하고 있던 기병 분견대(分遣隊)가 돌격을 시작했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강철의 폭풍.

“잘 지켜보아라.”

마찬가지로 능선 위에서 전황을 지켜보며, 작센 공작이 덤덤히 입을 열었다.

“이것이 우리 공작 가가 자랑하는 기병대의 힘이다.”

끝없이 기병 돌격이 교차하고 축차 투입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결코 대오를 흩뜨리지 않는다.

기사들의 진정한 힘은 그저 한 자루 오러 블레이드에서 뿜어지는 무위가 아니라, 철저한 조직력에서 비롯되는 전술적 파괴력에 있다.

‘참으로 압도적이다.’

데일이 조용히 숨을 삼켰다. 순수하게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일방적이네요.”

“아직 방심하기는 이릅니다, 공자님.”

그러나 데일의 감탄과 달리, 헬무트 경은 여전히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

‘그야 그렇겠지.’

기병들의 축차 돌격에 쑥대밭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다시금 짐승이 내지르는 것 같은 포효가 이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크 무리의 숫자는 이쪽의 네 배 이상. 하물며 상대는 태어날 때부터 전사의 기질을 가진 전투 종족들이다.

게다가 아무리 기병 돌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갖는다고 해도, 끝없이 공세를 거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병들의 돌격이 주춤해질 즈음, 살아남은 오크들의 역습이 시작했다.

대기병용 장창 방진을 이용한 밀집 대형. 비로소 대형이 갖춰지자, 이어지는 기병들의 돌격은 이전 같은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습이 제법 유효하기는 했으나, 괴멸시킬 정도의 피해는 아니군요.”

헬무트 경은 능선 위에서 전황을 살피며, 덤덤하게 상황을 헤아린다.

“우선 부대를 물려 전열을 정비하고, 축차 돌격으로 방진을 무너뜨리겠습니다.”

말하기 무섭게, 곁에 있던 전령이 퇴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그와 동시에 오크들의 방진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기병들이, 일제히 말머리를 돌린다.

신속하고 빠르게 부대를 물린 후, 다시금 대오를 정렬하고 기병 돌격을 꽂아 넣는다. 제아무리 오크들의 방진이 강력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승패가 명확한 싸움이다.

바로 그때였다.

“그어어어!”

후웅!

기수를 돌린 채 물러나는 기병대를 향해, 오크들의 전력을 실은 투창이 쇄도한다.

중장갑으로 무장하고 있는 기사들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아주 운이 좋은 몇 자루의 창들은, 조밀하지 못한 말 갑옷의 틈새로 내리꽂히는 데 성공했다.

히이잉!

그중에서 급소를 꿰뚫린 말 한 마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고꾸라진다. 덩달아 말에 타고 있던 기사 역시 충격에 휘말려 낙마한다.

퇴각하는 이백오십 명의 기사 중에서 고작 한 명. 그야말로 운이 없었다.

그리고 말에서 고꾸라진 한 명의 낙오자를 처치하기 위해, 몇 마리의 오크 검병들이 다가서기 시작한다.

낙마의 충격으로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사냥감을 향해서.

“전사자 하나.”

그럼에도 작센 공작이나 헬무트 경은, 그저 예상한 범위 이내였다는 듯 덤덤히 평정을 지킬 따름이다. 기사의 죽음을 그저 지켜볼 따름이란 듯이.

‘전사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것은 전장이다. 일말의 피해도 없이 승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데일 역시 그 이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이 되물었다.

“작센 가의 자랑스러운 검이 적들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는데, 우리는 어째서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까?”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묻고 나서, 데일은 망설이지 않고 말의 고삐를 당겼다.

두 사람의 친절한 대답을 기다릴 정도로 느긋한 여유 따위는 없었으므로.

그와 동시에.

“──아이스 볼트, 「Barrett M98B」, 「8.58x70mm」.”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볼트류 마법의 경우는 육성으로 주문을 읊조리는 일이 거의 없다. 마탑의 풋내기 마법사들이 배우는 첫 수업이, 볼트의 무영창 시전일 정도니까.

하물며 그 뒤에 추가한 데일의 수식은, 이 세계의 사람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Barrett M98B.

8.58x70mm ─ .338 Lapua Magnum(라푸아 매그넘).

장거리 대인 저격에 특화된 볼트액션 저격 소총과 총탄.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호의 나열처럼 보이리라.

그렇기에 데일이 추가한 수식을 보고, 흑색공은 그저 철없는 아이의 치기라 넘겨짚었다.

주문을 ‘자신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이라고 착각하고, 자기 혼자서밖에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멋대로 집어넣는 초보 마법사들의 실수.

아무리 마법이 심상의 구체화라고 하나, 마법의 주문(呪文)이 되기 위해서는 시대와 문화를 통틀어 공유하는 아주 확실한 상징이 필요하다.

그 정도의 강력한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고서야, 주문으로서 자기암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까닭에.

그랬어야 했다.

──타앙!

손끝에서 방출된 아이스 볼트가, 터무니없는 거리를 내달리며 오크 검병의 골통에 내리꽂혔다.

‘아이스 볼트? 아니, 아니다.’

그 모습을 보고 흑색공은 그저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데일의 손끝에서 쏘아진 살상의 정수는, 이미 볼트(쇠뇌 화살)란 말을 붙일 수조차 없는 무엇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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