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9화 (9/301)

9화

* * *

흑색의 망토를 둘러 입고, 시험 삼아 망토 자락을 따라 일렁이는 그림자들을 움직였다. 심장의 서클을 따라서 회전하는 자신의 흑색 마력을 주입하며.

발밑의 그림자여야 할 것들이, 명백하게 실체를 갖고 지상을 향해 솟아났다. 칠흑의 칼날처럼 시퍼런 서슬을 머금고서. 그야말로 발밑에서 칠흑의 꼬챙이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풍경이다.

‘이런 느낌이었군.’

시험 삼아 그림자의 칼날을 움직이며, 그날의 광경을 떠올린다.

과거 이 아티팩트를 다루었던 존재는, 일대에 흡사 해일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그림자의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그림자 그 자체를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일마저 가능케 했다.

그림자 피조물(Shadow Creature)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비해 데일이 조종하는 그림자 칼날 따위는, 실로 애들 놀이에 불과하리라.

아티팩트의 성능을 끌어내는 것은 장비의 이해도, 그리고 주입하는 마력의 양에 비례하는 것이 철칙이다.

‘익숙해지는 데는 조금 더 걸리겠지.’

그렇기에 내심 아쉬움을 삼키는 데일과 달리.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냐?”

흑색공과 세피아는 경악하듯 숨을 삼킬 따름이다. 특히나 흑색공의 경악은 더욱 각별했다.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이자 사령술사, 그리고 흑색 마탑의 정점에 서 있는 자.

어둠의 힘에 있어 그가 가지는 조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가 보기에, 적어도 데일의 모습에서 아티팩트의 ‘악의’에 굴복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역으로 아티팩트의 악의를 압도하고 발밑에 굴복시켰다.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그림자 망토.

과거 ‘이계의 용사’에게 패배한, 마왕령의 고위 마족이 즐겨 쓰던 애장(愛裝).

망토에 깃들어 있는 악의로 가득 찬 그림자들이, 고작 아홉 살 아이의 발밑에 복종하고 있다.

‘완벽하게 힘을 통제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아티팩트는 그 자체로 강력한 사념이 깃들어 있는 물품이다. 그리고 그 악의에 맞서서 평정을 유지할 정도의 의지는, 보통의 정신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아홉 살 아이가 감당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애초에 흑색공이 생각한 것은, 하급 암령을 소환하는 정도의 것에서 차츰 허들을 높여가는 일이었다. 그마저 하루 이틀이 아니라, 데일이 성년이 되어가는 과정에 발을 맞추어.

‘이 아이는 도대체…….’

세피아 역시 같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념을 뒤로하고, 데일은 아이처럼 눈을 빛낼 따름이다. 그야말로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제 또래 아이들처럼.

‘하나로는 부족하다.’

욕심에 따라 최소 두 피스에서 세 피스 가량을 고려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비로소 자신을 향하는 두 사람의 시선을 깨닫는다.

‘……!’

아차 싶었다. 아주 일순이나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욕심을 부렸다. 그 정도로 마왕령의 아티팩트에는 데일의 욕망을 자극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것은 알기 쉬운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힘을 줄게! 힘, 힘이 필요하지?! 나를 입어줘!」

아티팩트는 그 자체로 강력한 사념을 가진 물품이다. 그렇기에 데일의 가슴속에 숨겨진 어두운 감정을 깨닫고, 공명을 일으키며 유혹하는 것이다.

제국을 향해 차갑게 벼려진 증오와 악의에──.

「나를 골라줘! 어서 이 칼자루를 집어! 함께 놈들을 도륙하자!」

「복수하고 싶은 놈들이 있는 거지? 증오가 느껴져, 느낄 수 있어!」

「나랑 같이 놈들을 없애버리자! 어서 나를 골라줘!」

「이 겁쟁이 새끼야! 어서 나를 입어! 함께 놈들을 죽여버리자!」

생명을 흡수하는 마검. 불사자의 갑주. 포식자의 서. 자아를 가진 목걸이.

용사로서 자신이 쓰러뜨린 이들의 전리품, 내지는 독자적으로 공작 가에서 수집한 것들까지.

그리고 데일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방의 저 너머에 마법으로 숨겨진 또 하나의 통로.

이곳에 있는 아티팩트 따위는 감히 명함조차 내밀 정도의, 한없이 깊은 심연(深淵)이 꿈틀거리는 비밀의 방이.

“……죄송해요.”

그것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데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느껴져서…… 이 망토가 저를 입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5할의 진실’을 이야기했다. 소유자를 택하고자 하는 아티팩트의 의지에 대해서는, 두 사람 역시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설마 ‘아티팩트의 부름’을 받을 줄이야.”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듯, 흑색공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데일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설마하니 아홉 살 아이가 ‘그림자 망토’의 부름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데일은 이 이상 자신을 유혹하는 아티팩트들의 외침을 뿌리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그림자 망토의 힘을 통제하는 것도 벅차겠지.’

어차피 공작령의 재물은 곧 데일의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흑색공의 보구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데일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망토는 이제부터 너의 것이다.”

흑색공이 말했다. 세피아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데일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 망토가 가진 힘을 통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네.”

그 말에 비로소 데일은 결의를 굳히고 나서,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밑을 따라 요동치는 그림자 무리를 가볍게 복종시키며.

* * *

작센 공작은 공식적으로 공작령 내에 침입한 오크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휘하 기사들의 소집을 시작했다.

그사이 데일에게 아티팩트의 힘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오롯이 엘프 마법사 세피아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새벽녘 아침.

스승 세피아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아티팩트를 올바르게 통제하는 법에 대해서였다. 따라서 이 그림자 망토가 가진 힘 그 자체를 활용하게 해줄 스승은 달리 있었다.

“헬무트 아저씨!”

작센 공작성의 가신 기사를 위한 연무장. 데일이 그림자 망토를 두르고 헬무트 경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너무나 기겁한 나머지 얼굴빛을 시퍼렇게 바꿀 지경이었다.

“데일 공자님! 그 망토는 설마!”

“맞아요.”

경악하는 헬무트의 얼굴을 보고, 데일이 개구쟁이처럼 짓궂게 미소 지었다.

“공작 각하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헬무트 경이 말을 잇는다.

“저도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니까요.”

참으로 어린아이 같은 말이었다.

“아버지께서 오크 무리의 토벌에 저를 대동하기로 하셨어요.”

“그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헬무트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기에 이 헬무트, 목숨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자님의 안위를 지켜드릴 것입니다!”

“고마워요, 아저씨.”

데일이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설마 잊으신 거는 아니겠죠?”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 대결하기로 했잖아요.”

그날, 아버지의 등장으로 성사되지 못한 두 사람의 대결.

“전장에 나가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육체의 수행을 게을리할 수는 없죠.”

스릉.

데일이 자신의 발밑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를 과시하듯 일으켰다.

“진검 승부, 어때요?”

발밑을 중심으로 그림자 칼날들을 빙글빙글 공전시키며, 헬무트를 향해 당돌하게 도전을 걸어왔다.

손에는 칼자루 하나 쥐지 않고.

그 모습을 보며 헬무트는 일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것으로 공자님이 가진 검술의 재능을 살릴 수 있겠구나!’

설령 검을 배운다고 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행의 일종이며, 전장에서 데일이 검을 쥘 일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 펼쳐져 있는 그림자의 검. 바로 지금, 설령 오러를 쓰지 못하더라도 데일은 평생을 함께할 자신의 애검(愛劍)을 손에 넣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데일의 재능을 향한 ‘스승으로서의 욕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하!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공자님!”

헬무트가 씩 웃으며 허리춤의 검대에 손을 올린다.

스릉.

시퍼런 날이 서 있는 진검이, 새벽 햇살에 비치며 창백한 서슬을 흩뿌렸다.

* * *

바람은 불지 않는다. 일말의 미풍조차 없는 얼어붙은 공기.

그러나 데일이 두르고 있는 그림자 망토는, 마치 휘몰아치는 강풍 속에서 나부끼는 것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그 자체가 살아 있는 하나의 생물처럼.

그리고 나부끼는 망토 자락의 음영을 따라, 무수한 그림자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칼날을 다루는 것은 검을 다루는 이치와 같다.’

발밑을 중심으로 일렁이는 그림자들이, 실체를 갖고 칼날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저 칼자루를 쥐는 손이, 자신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손’이란 점이 다를 뿐. 그 점에서는 실제의 검을 다루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마냥 불리함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형성할 수 있는 칼날의 숫자에는 제약이 없다는 점. 육체의 제약을 초월해, 흡사 어검술(馭劍術)처럼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데일의 심장에 있는 서클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동차의 RPM이 급격하게 상승하듯이.

RPM(revolution per minute - 회전체의 분당 회전수).

그것은 결코 비유가 아니었다.

통상적으로 마법사들이 가지는 서클 회전률의 수치는 300rpm 남짓. 다시 말해 1분 사이 300차례 회전시켜서 마력을 생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데일의 경우에는.

──1,500rpm.

서클의 회전률을 통해, 통상 마법사가 가진 서클 하나에서 ‘다섯 배’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클의 고속회전.

마법사의 능력은 서클의 숫자 이상으로, 서클 그 자체의 회전률도 중요한 척도가 된다.

데일의 경우, 하나의 서클에서 순수하게 생성하는 마력량 그 자체는 3서클 마법사의 그것에 필적하리라.

서클의 회전을 통해 생성되는 대량의 마력이, 데일의 그림자 망토를 향해 스며들기 시작했다.

“갑니다.”

그 말과 함께 데일이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쇄도하는 동시에 발밑에서 솟은 그림자 칼날들이, 일제히 헬무트 경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흡사 무수한 암기들을 부채꼴로 흩뿌리는 암살자의 일격처럼.

일말의 가감도 없이, 보통 기사는 감히 대적조차 하기 어려울 일격.

그러나 상대는 북부 제일의 기사다.

전생의 자신과 전력으로 검을 맞대도 일방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강자.

후웅!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그림자 칼날을 향해, 헬무트 경의 일섬이 휘둘러졌다.

빨랐다.

그리고 그 검이, 마치 고기잡이 그물처럼 무수한 칼날의 파편으로 쪼개진다. 흡사 데일의 일격을 모조리 낚아채듯이.

카앙!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일격 끝에, 칼자루를 고쳐 잡은 헬무트 경이 역습을 넣기 시작했다.

타앗!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는 바로 그때. 다시금 데일의 망토 자락이 나부꼈다.

나부꼈고, 데일의 발밑에서 칠흑의 꼬챙이들이 날카롭게 솟아났다. 거리를 좁혀 일격을 휘두르려는 헬무트의 움직임이 우뚝 정지했다.

‘호오!’

비록 스승과 제자의 승부라고 하나, 그것은 엄연하게 진검을 다루는 싸움이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공작 가의 기사들은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밤까마귀 기사단을 이끄는 헬무트 블랙베어 경의 무위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맞서고 있는 저 공자는, 고작 아홉 살의 어린아이다.

공작 가의 장남이 괴물 같은 재능의 신동이란 점은, 물론 제국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실제로 데일은 검을 쥐고 공작 가의 정식 기사들과 맞서 조금도 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오러(Aura)를 사용하지 않는 모의 승부라는 점에서, 기사들도 100% 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지금의 헬무트 경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데일과 헬무트 경이 맞서는 모습 앞에서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게 고위 마족이 벼린 아티팩트의 힘을 빌린 것이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아홉 살 아이가 저런 어둠의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더더욱 기이하지 않은가?

재능의 영역을 넘어 꺼림칙한 불길함마저 들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불길함조차 잊게 할 정도의 경이가, 데일에게는 존재했다. 그것은 데일의 가족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역시 흑색공의 아들이다.’

카앙!

데일의 발밑에서 셀 수 없는 그림자 칼날들이 솟아나 휘몰아쳤고, 그때마다 헬무트 경은 흡족한 듯 검에 박차를 가했다.

데일의 재능이 가진 가장 무서운 점은, 굳이 가르쳐야 할 것을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채울 수 있는지. 그저 검을 맞대고 경험하는 것으로 냉철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분석한다.

마치 자신에게는 ‘완전무결한 이론’이 존재하고, 남은 것은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뿐이라는 듯.

그렇기에 헬무트 경이 스승으로서 해주어야 할 역할은 오직 하나였다.

칼날을 맞부딪치며 데일의 경험을 쌓아주는 것.

훗날 이 아이가 자신이 가진 재능의 날개를 펼치고 비상할 때를 고대하며, 헬무트 경은 그 날개의 일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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