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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8화 (8/301)

8화

* * *

새벽녘 아침, 코앞에서 휘둘러지는 목검이 스산한 바람을 갈랐다.

작센 공작성에 있는 가신 기사들의 연무장.

데일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수행 기사의 칼날을 맞받아쳤다. 맞받아치기 무섭게 칼날을 중심의 바깥으로 비껴내고, 그대로 파고들며 칼자루 쪽으로 몸통을 내리꽂는다.

퍼억!

타격과 동시에 데일의 손에 들린 목검의 칼날이, 어느새 수행 기사의 목덜미를 향해 있었다.

고작 몇 차례의 합을 주고받기 무섭게 승패가 결정 나버린 것이다.

‘허어!’

그 모습을 보며 헬무트 경이 놀란 듯이 숨을 삼켰다. 그것은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공작 가의 기사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데일의 상대는 비록 정식으로 기사 서임을 받지 못한 수행 기사(Esquire)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데일의 승리가 갖는 가치는 조금도 폄하될 수 없었다.

올해 열아홉이 되는 상대는, 기사 가문에서 일평생 검의 길을 걸어온 자였다. 머지않아 작센 공작의 이름으로 정식 기사 서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어린 기사. 그가 고작 아홉 살 아이에게 패배한 것이다.

심지어 검의 길을 걸을 생각조차 없는 마법사에게!

“마일, 수고했다.”

그러나 헬무트를 포함해 누구도, 데일에게 패배한 수행 기사를 책망하지 않았다.

“너의 미숙함이 아니다. 자책하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패배한 수행 기사 역시, 가슴속의 씁쓸함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달리 억울하게 생각해도 별수 있을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공작 가의 신동, 작센의 데일은 바로 그 ‘불공평함’의 살아 있는 증명 그 자체였다.

8살 즈음부터 심상치 않은 검의 재능을 보여준 데일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로부터 해가 지나 아홉 살을 맞았을 즈음에는, 그 나름의 검식(劍式)마저 구사할 정도였으니.

어린 체구에 걸맞은 쾌검.

자신의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게 이해하고 있는 검이었다. 고도의 경지를 가진 검객이 어린아이의 몸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헬무트 아저씨, 다음 상대는 누구예요?”

목검을 고쳐 잡고 데일이 되물었다. 그 당돌함에 헬무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는 이 대륙 칠검이 어떠십니까!”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헬무트 경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였다.

“데일.”

백색의 대리석 회랑 너머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삼가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주위의 기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데일이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 있는 것은 데일의 아버지, 작센 공작이었다.

“아버지?”

“이곳에서 검의 수행을 하고 있었느냐.”

회랑의 기둥을 가로지르며 흑색공이 물었다.

“예.”

데일이 마도를 걷는 것과 별개로, 검의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었다.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구나.”

그 모습을 보며 흑색공은 아버지의 흐뭇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검의 수행은 이 정도로 하자꾸나.”

말하고 나서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알겠어요, 아버지.”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감스럽게도 헬무트 아저씨와의 대결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네요.”

“하하, 그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데일이 아쉽다는 듯 손에 쥔 목검을 놓는다. 헬무트는 여느 때처럼 호탕하게 웃고 나서, 멀어지는 두 부자를 향해 조용히 예를 표했다.

* * *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데일의 아버지가 향한 장소는 공작성 지하의 마도 공방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뜻밖의 얼굴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왔느냐, 데일.”

“세피아 선생님?”

데일의 가정교사이자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청색 마탑의 장로 세피아였다.

“따라오거라.”

그대로 공방을 가로지르는 두 스승을 보며, 데일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느닷없이 무슨 일이지?’

흑색공이 향한 곳은 공방의 끝자락, 나아가 끝자락의 지하에서 더더욱 깊고 어두운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데일은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통로 너머로 걸음을 내디디기 무섭게, 무심코 불길한 오한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보통의 마법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엄중한 결계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비밀의 방이었다.

사방에 가득 늘어서 있는 것은, 마치 병기고처럼 넘쳐나는 장비들이다.

그것을 보자마자 데일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것들은 결코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비 따위가 아니란 사실을.

하나같이 강력한 마력이, 그것도 아주 어둡고 불길한 성질의 마력을 품고 있는 장비들.

‘마왕령의 아티팩트……!’

데일이 흥미를 감추지 못하고 걸음을 내디디려는 바로 그때.

“함부로 손을 대지 말아라.”

날카롭게 데일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력한 어둠의 힘이 깃들어 있는 장비들이다.”

방을 가로지르며, 흑색공이 말을 이었다.

“우리 작센 가는 대대로 이 저주받은 힘을 다루고 통제해 왔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경외를 받는 금기의 힘.

“우리의 적들에게서, 우리의 땅과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사령술과 흑마법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공작 가의 장남으로서, 네가 짊어져야 할 힘이기도 하지.”

“그 말씀은?”

“얼마 후, 마왕령에서 준동한 오크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병력을 소집할 것이다.”

흑색공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그 일전에, 너 역시 나와 함께할 것이다.”

“……!”

그제야 비로소 데일은 상황을 깨달았다.

“저도 아버지와 함께 전투에……!”

작센 공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출정에 앞서, 우선 이곳에 있는 어둠의 힘을 통제하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곳에 있는 것들은 데일을 위해 준비한 무장들이다.

“아티팩트의 힘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데일.”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세피아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전력을 다해 도와줄 것이니.”

무척이나 상냥한 목소리로.

“…….”

데일의 시선이 이내 아티팩트의 진열대로 향했다. 검과 수상쩍은 책, 투구와 갑옷, 온갖 형태의 장비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그곳에서.

‘이것은!’

일순, 데일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무엇. 얼핏 보기에는 달리 특징이 없는 흑색 망토였다. 그러나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망토 밑으로 드리워져 있어야 할 그림자들이, 흡사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그림자 망토.’

그것은 과거 이계의 용사로서, 데일이 맞섰던 고위 마족의 장비였다.

마왕령의 마장군(魔將軍)이자 환영공작 베르카. 그가 애용한, 그림자에 실체를 부여해 공수일체의 기예를 펼치는 최고위 등급의 아티팩트.

마법과 검, 두 가지를 다루는 데일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최적의 장비였다.

‘생각지도 못한 대어가 걸려들었다.’

그렇기에 데일은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대로 손을 뻗어 그림자 망토를 낚아챘다.

그저 순수하게, 힘을 향한 갈망 그 자체에 이끌려서. 그야말로 앞뒤 생각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데일!”

낚아채는 동시에, 흑색공의 경악이 이어졌다.

아티팩트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갖고 있고, 동시에 사용자에게 막대한 부담을 준다. 특히나 어둠의 힘을 동력으로 삼는 것들은, 손을 대는 것으로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위험하다.

아무리 작센 공작이라고 해도 아홉 살 아이에게 그토록 가혹한 고통을 요구하지는 않으리라.

아마 당초 흑색공이 주려고 한 것은, 데일의 천재성을 고려해도 ‘아홉 살 아이의 수준’에 걸맞은 무엇이겠지. 고작해야 여차할 때 자신을 지켜줄 하급 암령(暗靈)을 소환하는 정도의 레벨로.

그러나 데일이 선택한 것은 ‘하급 암령’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고위 아티팩트였고, 주저 없이 그림자 망토를 낚아채 자신의 몸에 휘감았다.

어둠이 휘감겼다.

휘감기 무섭게, 망토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이 재차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피라냐 떼처럼.

그것은 결코 ‘보통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악의를 가진 살아 있는 그림자. 굶주린 그림자들의 먹잇감이 되어 육골조차 남지 않는 결말.

그것이 일순, 흑색공과 세피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끔찍한 미래였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데일을 지키기 위해 급히 마법을 펼치려는 찰나. 데일은 침착하게 손을 뻗어, 두 사람을 제지했다. 자신의 귓가에서 끝없이 울려 퍼지는 그림자들의 환청을 뒤로하고.

“걱정할 것 없어요.”

데일이 말했다. 일말의 주저나 동요조차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바로 직전까지 자신의 발밑에서 미친 듯이 날뛰던 그림자들을 복종시키며.

그렇다. 바로 직전까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던 그림자들이, 미동조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존재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듯이.

“저는 멀쩡해요.”

데일의 말에, 일순 두 사람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흑색공이 놀란 듯 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와 비교할 바 없는 경악 어린 표정을 하고서.

“고, 고통스럽지 않으냐?”

조심스럽게 자신을 걱정하는 세피아의 물음에, 데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조금요.”

망토를 두르기 무섭게 자신을 향해 엄습하는 강렬한 악의.

이것이 바로 작센 가가 짊어져야 할 어둠의 힘이다. 그리고 이 악의를 감당하며, 그 힘을 올바르게 통제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작센 가의 숙명이리라.

보통의 정신으로는 감당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악의에 굴복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사용자는 이 그림자들의 먹잇감이 되겠지.

아티팩트는 마치 탐욕스러운 생물과 같아서, 절대 대가 없이 힘을 주지 않는다. 특히나 어둠의 힘을 동력으로 삼는 성질의 것들은 더더욱 그 질이 나쁘다. 그러나 결국 그 정도였다.

“아주 조금, 따끔하기는 하네요.”

그럼에도 발밑에 일렁이는 그림자들이, 마치 새로운 주인을 알현하는 것처럼 광희(狂喜)하고 있다.

“그래도 저는 멀쩡해요.”

여느 때처럼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데일이 대답했다.

고작 이 정도다.

인류를 위해 일평생을 포화가 휘몰아치는 전장에서 괴수와 싸워왔다. 그다음에는 제국의 사냥개로서 사육되며 헤아릴 수 없는 이형의 존재들과 ‘제국의 적’을 도륙했다.

데일의 삶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악의에 비해, 이 그림자들의 악의는 그저 바늘을 찌르는 것조차 되지 않는다.

“여기 있는 것들, 더 입어 봐도 돼요?”

데일이 아이처럼 천진하게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여전히 시착해봐야 할 장비들은 끝도 없이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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