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7화 (7/301)

7화

* * *

몇 개월 후.

수계 마법과 더불어, 데일의 사령술 수행은 나날이 일취월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흑색 마탑주가 자기 아들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소식 역시, 발 없는 말이 되어 천 리를 내달렸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특히나 데일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은 더더욱 그러하리라.

마법과 검. 거기에 귀족의 예법과 승마, 장차 공작 가를 이끌어나가야 할 장남으로서 배워야 할 온갖 지식까지. 이듬해 9살이 된 데일의 재능을 일컬어, 사람들은 그 아이를 공작 가의 신동(神童)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 작센 공작의 아들이다.

대륙 제일의 사령술사이자 흑마법사, 흑색공의 유지를 잇는 후계자.

자기 자식에게는 어둠의 마법을 가르치지 않겠다던 아버지의 맹약. 바로 그 맹약의 파기는, 제국 전체에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말해 제국 전체가, 데일의 행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 * *

햇살이 금빛으로 부서지며 새하얀 평원에 흩날린다. 눈 내린 순백의 평원을 따라 두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졌고, 그 끝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대치하고 있다.

사파이어처럼 새파란 벽안을 가진 스노우 엘프, 세피아. 그리고 공작 가의 신동, 작센의 데일이었다.

“망설이지 말고 전력을 다해 덤비거라.”

6서클의 엘프 마법사, 세피아가 입을 열었다. 여느 때 이상으로 진중한 표정을 짓고서.

스승이 제자의 성취를 가장 쉽고 빠르게 파악하는 방법.

마법 결투.

그것은 제자가 전력을 싣고 휘몰아치는 마법을 직접 경험하고 받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작 아홉 살, 1서클 마스터 수준의 풋내기를 상대하는 세피아의 눈빛에는, 흡사 전장 한복판의 마법사와 같은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정적의 깃털이 새하얀 평원 위로 내려앉은 순간.

“일어나라, 「결합된」 얼음의 벽이여.”

데일이 비로소 주문의 구절을 입에 담는다.

마법사의 주문이란 것은 「이미지의 언어화」를 통해, 자신의 심상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자기암시의 과정이다. 그리고 데일은 통상적으로 애용되는 아이스 월의 주문에 「결합」의 수식을 추가하며 의식적 편향을 유도했다.

무의식적으로 새겨넣는 수식 이상으로 ‘언어화된 수식’이 갖는 암시의 힘은 강력하다.

쿠웅!

데일과 세피아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얼음의 벽이 우뚝 솟아올랐다.

아이스 월.

원소 마법은 주위의 기후 등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 초심자의 냉기 마법이라고 해도 이 같은 혹한의 동토에서 시전할 경우, 그 위력이 몇 배로 증폭되는 것이다. 세피아 역시 그 이치를 모를 리가 없다.

높이와 폭 5미터, 두께 1미터의 빙벽. 상황을 고려할 때, 보통의 마법사와 비교해 그다지 특출날 것 없는 통상 크기의 아이스 월이다.

‘그렇다고 해도…….’

세피아는 수계 속성의 6서클에 도달해 있는 고위 마법사다. 데일의 아이스 월에 숨겨진 이치를 간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얼음의 밀도가 극도로 높아져 있다.’

분자 결합.

얼음 분자 사이의 인력을 강화하는 결합의 수식을 추가해, 통상의 아이스 월의 몇 배에 해당하는 밀도를 확보했다. 아마 그 수식이 없었을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아이스 월이 형성됐겠지.

‘그러나 굳이 얼음의 벽을 세운 이유가 무엇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세피아가 경계의 고삐를 당기고 있자니.

쩌적, 쩍.

‘……!’

“유탄(榴彈)이여.”

얼음의 벽을 따라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갈라짐이 생겨났고, 데일이 다시금 「주문」을 영창했다.

주문이란 결국 이미지의 언어화, 다시 말해 심상을 확고히 하기 위한 자기암시의 과정이다.

개인적 의식의 차원을 넘어 민족이나 국가, 문화와 시대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심상(아키타입).

마법의 주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정도로 강력한 상징과 자기암시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적어도 데일의 원래 세계에서, 그 말은 ‘아주 확실한 형태의 이미지’가 존재했다.

카앙!

빙벽의 전방이 산산이 조각나며, 흡사 수류탄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얼음 파편들이 흩뿌려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시퍼런 서슬을 머금은 파편들. 빙결류탄.

‘……!’

그제야 세피아는 데일이 어째서 빙벽의 밀도를 높였는지 깨닫고,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결합과 파편화.’

극도로 압축된 얼음덩어리에, 외피를 잘게 찢어 파편 효과를 극대화한 빙결 폭발을 일으킬 경우. 흩뿌려지는 얼음 조각 하나하나는, 경지에 이르러 있는 암살자의 칼날에 필적하리라.

어디까지나 유탄(Grenade)이라고 하는, 현대 무기의 심상을 가진 데일이기에 가능한 기술.

아마 이 세계의 그 누구도 데일이 떠올린 주문에서, 그 같은 이미지를 끌어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세계에 그런 언어화로 끌어낼 실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데일에게는 존재했다. 이 세계의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계의 병기’들이, 그리고 그것의 이미지가.

사냥꾼와 괴수의 싸움에서 극도로 발달한 현대 병기가 갖는 역할은 절대 적지 않았다. 나아가 인류 결사대의 총사령관이었던 그가 가진 군사적 지식 역시, 결코 민간인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마법이란 결국 심상의 구현화,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이니까.

그리고 데일이 구현하는 심상은, 이 세계의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총과 미사일, 폭발 화약, 온갖 형태의 열병기(熱兵器)들이 끝없이 포화를 뿜어내는 지옥 같은 전장. 이 세계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살육의 풍경. 데일의 주문이 끌어내는 이미지는 바로 그 지옥 같았던 전쟁터의 편린이었다.

세피아를 향해 고위 살수들의 그것처럼 벼려진 칼날이 쇄도했다.

심지어 그 칼날은 너무나도 작고 미세해서, 일일이 쳐낼 수조차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말 그대로 수류탄이었으니까.

‘도저히 어린아이의 발상이 아니다.’

일찍이 무영창으로 빙결 폭발을 시전했을 때와는 궤를 달리하는 파괴력. 흩뿌려지는 수류탄 파편에 세피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얼음의 칼날이, 세피아의 육신을 갈가리 도륙하기 시작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져, 그 시체를 구별할 수조차 없이.

“선생님!”

데일이 일순 숨을 삼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데일의 빙결류탄에 직격을 맞은 세피아의 육체가 피나 내장을 흩뿌리는 일은 없었다.

정교한 얼음의 조각상이 부서진 것 같은 파괴의 흔적이 있을 뿐. 그제야 데일은 깨닫는다.

‘환영!’

깨닫고 나서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데일.”

세피아는 어느새 데일의 등 뒤에서, 신중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다. 데일이 그대로 숨을 삼켰다.

세피아의 새하얀 뺨을 따라 그어져 있는, 한 줄기의 혈선(血線). 바로 그 상처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

“그 상처는…….”

“내가 죽었을까 겁이라도 났느냐?”

세피아가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의 의미는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저는 절대로 선생님을 죽이려는 게 아니었어요.”

데일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결코 선의에서 우러나온 거짓말도, 가식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마법에 깃들어 있는 것은, 전력을 다해 세피아를 도륙하기 위한 살육의 기술이었다. 데일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수 속성 마법을 아주 능숙하게 다루었지. 그토록 능숙하게 마법을 펼쳐놓고, 어째서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이냐?”

세피아는 다시금 자신의 미숙함을 자조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나는 너의 스승으로서 네가 진심으로 마법을 펼쳐온 것이, 무척이나 기쁘구나.”

세피아가 말을 잇는다. 뜻밖의 말에 데일이 일순 눈을 끔벅거린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냈지.”

일말의 가감조차 없는 전력으로.

“선생님…….”

“그 이상으로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느냐.”

믿고 있다. 그렇게 말하며, 세피아는 조용히 어린 데일을 포옹해주었다.

“너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나의 제자다.”

세피아가 말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정말이요?”

“이처럼 훌륭한 제자를 둔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스승이구나.”

“세피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덕이에요.”

세피아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비로소 데일이 미소 짓는다. 제 나이 또래에 걸맞은 미소를.

아주 활짝.

세피아 역시 같은 미소로 화답했다.

수(水) · 암(暗)의 양대 속성을 구사하며 2서클 완성의 도달을 코앞에 둔 마법사.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이중의 속성을 다루는 것은, 그저 두 배가 아니라 제곱의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세피아는 깨달을 수 있었다. 데일이 가진 진정한 무서움은 성취의 속도 따위가 아니란 것을.

마법이란 결국 심상 세계의 구체화, 상상을 현실에 덧씌우는 힘이니까.

그렇담 훗날 이 아이가 이 세계에서 펼치게 될 완전한 형태의 심상은, 도대체 무슨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아가 이 세계에 덮어 씌워질 ‘데일의 세계’란 도대체 무슨 풍경을 하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세피아는 그저 제자의 성장을 축복해 주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불길함을 애써 모르는 체하며.

* * *

그날 밤, 작센 공작의 집무실.

여느 때처럼 데일의 성과를 보고하는 그 자리에서, 흑색공은 뜻밖의 모습에 숨을 삼켰다.

“현요님, 뺨의 상처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엘프 마법사의 뺨을 타고 벌어진 한 줄기의 상처. 청색 마탑의 수계 마법은 자신의 몸을 지키고 상대를 교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청마법사의 몸에 상처가 났다는 것은, 절대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자상이라 할지라도.

“혹시 ‘산의 암살자(Hashishin)’가…….”

산의 암살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는 흑색공의 말에, 그러나 세피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데일 공자님과 마법의 결투를 치르는 와중, 제 미숙함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

세피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데일. 그 이름에 흑색공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동요가 일렁였다.

“청탑에는 공작령의 체류가 예정보다 길어질 것 같다는 서신을 보내두었습니다.”

“세피아 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신세라니요. 재능 있는 제자를 가르치는 것은 제게 있어서도 즐거운 일이랍니다.”

세피아는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데일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흑색공이 덤덤히 말을 잇는다.

“그렇기에 참으로 염치 불고하고, 데일에 관해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라 하심은?”

“──얼마 전, 마왕령 쪽의 오크 무리가 하얀 산맥을 넘기 시작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세피아가 조용히 숨을 삼켰다.

“오크들의 위협 자체는 대수롭지 않은 수준입니다. 아마 소수의 기병대를 소집하는 수준에서 처리할 수 있겠지요.”

“그 말씀은?”

“그렇기에 저는 이 전투에 데일을 참전시키고 싶습니다.”

“하오나 데일 공자님께서는 아직!”

“데일에게 전장에서의 ‘커다란 활약’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작센 공작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가로막는다.

“영지에 범람하는 괴물을 토벌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작센 가의 의무입니다. 데일 역시 공작 가를 짊어지게 될 장남으로서, 그 의무를 이해할 필요는 있겠지요.”

‘너무나도 가혹하구나.’

그러나 세피아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아들을 아끼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 남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것이 공작 가의 피를 잇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숙명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제게 부탁하실 일은 무엇입니까?”

“제가 출정을 준비하는 사이, 여차할 때를 위해 제가 가진 아티팩트 중 하나를 데일에게 전수하고 싶습니다.”

흑색공의 아티팩트. 그 의미를 헤아린 세피아가 조용히 숨을 삼켰다.

“어둠의 아티팩트를…….”

“데일이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도록, 부디 세피아 님께서 지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향한 흑색공의 부탁에 세피아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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