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 *
“됐는데요.”
데일이 말했다. 자신의 심장을 중심으로 확실하게 고정된 마나의 고리를 느끼며.
“……방금 뭐라고 했지?”
“심장을 둘러싸고 각인된 마나 고리의 형태가 느껴져요.”
세피아는 일순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눈을 끔벅거렸다. 그러나 데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남의 일처럼 시치미를 뚝 떼며.
“이게 완성된 형태의 ‘서클’이 아닐까요?”
“한번 그 서클을 따라 마력을 방출해볼 수 있겠느냐?”
“예, 선생님.”
세피아의 말에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데일의 서클을 타고 회전한 마나가, 명백한 마력의 형태로 전환되어 혈관을 타고 뿜어져 나온다.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고 빛나는 무형의 기운.
그리고──.
“……!”
타앙!
그것은 응축된 마력 덩어리에서 그치지 않고, 창백한 서슬을 머금은 얼음 결정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데일의 손끝에서 방출된 마력이 결정화하며, 으슬으슬한 냉기와 함께 허공을 갈랐다.
기초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수 속성 계열의 마법, 아이스 볼트.
그 모습을 보고 세피아는 놀라서 쫑긋 귀를 세웠다.
데일 역시 방금 자신의 손에서 펼쳐진 마법을 보고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데일의 의도는, 시험 삼아 마력을 방출하는 동시에 냉기 원소를 살짝 가미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손끝에서 방출된 마력은 데일의 통제를 벗어나, 주위의 냉기를 흡수하고 완벽한 ‘아이스 볼트’를 구사했다.
‘이것은 대체……!’
물론 세피아는 엘프였다. 마나의 사랑을 받는 종족으로서, 그녀의 길었던 삶에 상식을 벗어나는 재능의 소유자를 목격한 게 결코 최초는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100%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 마법사가, 무의식적으로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아 마법을 영창한 행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특히나 흑색공의 아들처럼 넘치는 재능의 소유자는 더더욱 그러하리라.
그럼에도 세피아가 진정으로 경악한 것은 달리 있었다. 데일의 아이스 볼트가 보여준 ‘정교함의 형태’였다.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추가 수식이 투영되어 있다.’
회전 · 가속 · 밀집의 3개 수식.
마법사가 자신의 주문에 무의식적으로 ‘개성’을 투영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수식을 추가해, 마법의 특성을 개량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문제는 고작 8살 아이가 자신의 마법에 투영한 개성이, 살상력을 중시하는 ‘군용 마법’의 황금비를 완벽하게 체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당장 전쟁터 한복판에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의 정교함과 완성도…… 아니, 그 이상이란 점에 있었다.
완벽한 살상 마법.
무심코 소름이 등줄기를 훑었다.
“선생님?”
당황하는 세피아를 향해, 데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겁을 집어먹은 아이처럼 세피아의 눈치를 살피며.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피아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짓는다.
“흑색공께서 그토록 아쉬움을 드러내는 게 비로소 이해가 가는구나.”
세피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원석을 어느 마법사가 제자로 탐내지 않을까.”
“선생님…….”
그 말에 데일이 다시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려는 찰나.
“다들 이곳에 있었구나.”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일, 선생님에게 열심히 배우고 있니?”
“어머니!”
흐뭇한 듯 데일을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 엘레나.
“청색 마탑의 장로 세피아, 삼가 흑색공 각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데일의 아버지, 작센 공작이 그곳에 있었다.
* * *
공작 부부가 돌아온 직후, 그러나 흑색공이 곧장 공작성의 홀로 복귀하는 일은 없었다. 세피아가 그 무엇보다 시급하게, 그와의 독대를 요청한 까닭이다.
“공작 각하,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공작성 최상층에 있는 작센 공작의 집무실.
“현요 세피아 님.”
“공작 각하에게는 적지 않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세피아는 의례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서, 곧바로 입을 열었다.
“데일 공자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말씀은?”
흑색공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나의 운용을 가르쳐주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최초의 서클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흑색공의 표정에 일순 희미한 동요가 스쳤다.
흑색 마탑의 정점에 군림하는 자이자, 대륙 제일의 다섯 마법사 중 하나. 그렇기에 세피아가 한 말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아이스 볼트를 영창하는 데 성공했지요.”
세피아가 말을 잇는다.
“당장 전장 한복판에서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군사용 수식’이 투영된 아이스 볼트를.”
회전 · 가속 · 밀집.
투사계 마법의 살상력을 강화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추가 수식.
“그것도 완벽한 황금비였습니다. 제국의 군용 전투 마법 교리와 정확히 일치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다시금 흑색공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동요가 스쳤다.
“그 말씀은…….”
“저는 이 이상 공자님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침묵 끝에 세피아가 말했다. 불살(不殺)은 청색 마탑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교리다. 그렇기에 ‘살육의 재능’을 가진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내키지 않은 거겠지.
내심 그렇게 짐작한 흑색공이 입을 열었다.
“청탑의 교리에 어긋나는 재능을 가르칠 수 없다는 뜻입니까?”
“데일 공자님의 재능이 두려운 동시에,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탐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흑색공의 말에 세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에 제 손으로 데일 공자님을 올바르게 이끌고 싶다는 욕심 또한 느끼지요.”
“그럼 더더욱 데일을 가르치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제 욕심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흑색공의 되물음에, 세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자신의 제자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 그러나 제가 배우고 싶은 마법이 달리 있는 까닭에…….
“한 사람의 마법사가 마도(魔道)를 걷는 일을, 주위의 압력으로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모의 바람에 따라서 바라지도 않는 마법을 배우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곧 바라지도 않는 정신을 이어받게 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 같은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 결말을 초래할지는, 흑색공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세피아는 자신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었다.
“──엘레나 님을 향한 공작 각하의 언약은 존중하고 있습니다.”
작센 공작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약속이 자식의 장래를 결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타의에 의해 주입된 이념. 세피아는 그 행위가 가지는 위험성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 설령 그게 선의로 포장된 길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나 공자님처럼 거대한 재능을 가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재능.
천재와 괴물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리고 세피아는 일찍이 그와 같은 ‘괴물’을 본 적이 있었다.
살육의 괴물.
아주 일순이나마, 데일의 모습에서 그 괴물의 그림자가 겹쳐 보이는 착각마저 일었을 정도니.
“…….”
흑색공은 무거운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현명한 엘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 * *
세피아가 흑색공과 독대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데일은 어머니 엘레나와 함께, 공작성의 대회당에서 8살 생일을 축하받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의 축하를 받는 경사스러운 자리임에도, 데일의 마음은 조금도 편치 않았다.
‘미숙했다.’
오히려 데일은 자신의 미숙함을 탓하며 후회를 삼킬 따름이다.
세피아의 앞에서 구사한 아이스 볼트는, 애초에 데일이 상정한 위력을 몇 배나 아득히 웃돌고 있었다. 위력을 감소시켜 펼치려 했던 마법이 통제를 벗어나 버린 것이다.
거기에 평생을 제국의 사냥개로 살아온 그의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전투용 개량 수식까지 투영했다.
‘설마하니 첫 서클을 각인한 직후 펼친 마법이 이 정도의 위력일 줄이야.’
자신의 ‘그릇’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데일이 흑색 마탑주의 피를 잇는 혈육이란 사실을.
‘이 몸에 깃들어 있는 재능이 내 상상을 아득히 웃돌고 있다.’
하물며 세피아는 마탑의 장로다. 가감 없이 펼쳐진 데일의 마법을 간파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테지. 자신의 마법을 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하던 세피아를, 데일은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데일 공자님!”
호탕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2미터를 넘는 장신에 곰 같은 거구의 남자였다.
모처럼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한창임에도, 물 샐 틈 없는 흑색 갑주로 전신을 휘감은 기사.
“헬무트 아저씨!”
그제야 비로소 데일의 얼굴에 8살 아이다운 표정이 감돌았다.
헬무트 블랙베어 경. 작센 공작 가 직속의 밤까마귀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
헬무트 경은 작센 공작령을 비롯해 제국령 북부를 통틀어, 감히 견줄 자가 없다는 검사였다.
북부 최강의 기사이자 대륙 칠검(七劍)의 일좌. 동시에 작센 가를 향한 충성으로 이름 높은 가신 기사.
어느덧 헬무트 경은 휘하 기사들과 함께, 출정을 위한 완전 무장을 마친 채였다.
“마왕령 쪽에 생성된 던전을 공략하러 가시는 건가요?”
아니나 다를까, 데일의 곁에 있던 엘레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이 세계에서 괴물의 범람이나 던전 출현은 늘 영지의 중대사다. 특히나 작센 공작령의 경우는 그 상황이 곱절로 심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리고 나서는, 마왕령 전체를 봉토로 하사받아 제국의 땅으로 개간하란 황령(皇令)이 부여된 상태였다.
말이 좋아 봉토 수여지, 사실상의 짬 처리다.
마왕이 죽었다고 마왕령 전체가 인간의 손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왕령에는 공략되지 않은 던전들이 우글거리고, 각종 몬스터와 고위 마족들이 득실거린다. 거기에 마왕령까지 갈 것도 없이, 영지 내에서 범람하는 괴물들은 공작령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부디 공자님의 생일을 지키지 못하는 불충을 용서해 주십시오!”
“몸조심하세요, 헬무트 아저씨!”
“하하, 공자님! 설마하니 이 헬무트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헬무트 경이, 자신을 염려하는 데일을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바로 그때.
“공작 각하 납시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수행원 하나가 소리를 높였다. 대회당 일대에 감돌던 소요가 일순 정지했다.
침묵이 내려앉았고, 핏빛 카펫이 깔린 복도 너머에서 흑색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탑의 장로 세피아, 작센 가의 집사장과 시종들, 그리고 흑색공을 보좌하는 흑색 마탑의 장로 몇 명과 함께.
“삼가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헬무트 경과 휘하 기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철컹! 리벳을 잇대 고정한 갑주의 강판들이 절그럭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작센 공작은 곧장 대회당을 가로질러, 데일과 엘레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회당 끝자락에 우뚝 솟은 공작의 옥좌로.
“데일. 여덟 살이 된 것을 축하한다.”
“예, 아버지.”
짤막한 의례가 끝나고, 홀에 다시금 악사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부자의 모습을 보며 엘레나가 흐뭇한 듯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엘레나, 항상 많은 것들이 고맙소.”
“데일, 어서 아버지에게 갖고 싶은 것들을 말해보렴.”
이내 엘레나는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데일을 향해 급히 화제를 돌린다.
‘갖고 싶은 것이라.’
많은 것들이 있었다. 자신을 이 꼴로 몰아넣은 자들의 수급(首級). 황제의 목. 그러나 데일은 무엇 하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데일은 그저, 지금 순수하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말했다.
“여동생이 갖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