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후일담 ~ 눈을 가리는 이야기 ~
* * *
~ 해피엔딩으로부터 4년 정도 전의 어느 날 ~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기 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밤
잘 자라 우리 아가
잘 자거라
"......후아아."
아기들의 볼은 어떻게 이렇게 찔러보고 싶게 생겼는지.
정신을 차려보면, 방금 잠에 든 아리아의 볼을 검지로 꾹꾹 눌러보며 괴상한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내 모습이 있었다.
일레이나, 아르네와 에이라까지 벌써 세 아이를 겪었지만, 아기들은 언제 보아도 귀엽기만 했다.
자다 깨서 울기 시작하면 조금 곤란하긴 하지만, 뭐.
하여간에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니까.
"코넬리아. 아리아 자고 있어?"
"네, 테레제. 천사처럼 잘 자고 있어요."
"아리아는 잘 먹고 잘 자니까."
"아르네와 에이라는요?"
"한참 전에 잠들었어. 에이라가 인형 놀이를 좋아하더라고."
인형놀이라.
테레제가 최근 인형술을 배우고 있었지. 그걸 응용한 게 아닐까.
확실히 테레제의 마력 조작 능력은 초월적인 수준이니, 인형술을 제대로 마스터하게 되면 분명 사람보다도 더 사람같은 움직임을 보여줄 거다.
테레제가 다가와 내 옆에 섰다.
그리고는 허리를 살짝 숙여, 아기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자그마한 아리아를 나와 함께 내려다보았다.
자그마한 두 주먹을 얼굴 앞에 모으고 곤히 잠에 빠져있는 아리아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아르네와 에이라는 이렇게 얌전하지 않았었지.
아르네가 울면 에이라도 울고, 그칠 때는 같이 그친다 싶었더니 5분도 되지 않아 에이라가 울어서 아르네도 같이 울었다.
실은 아직도 하나가 칭얼대면, 다른 하나가 그거에 감명받아 울고, 칭얼대던 다른 하나도 울음을 터트리고, 연쇄폭탄이나 다름없다.
테레제와 아일린은 그런 아르네와 에이라의 모습에 나를 스윽 보더니, 피는 못 속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는데..., 무슨 뜻이었었으려나, 그거.
오히려 겁쟁이인 아일린의 피가 많은 역할을 한 게 아닐까나?
"아일린 말대로, 얘는 정말 순한 맛 아일린이네."
"아하하......."
하여간에 일단 배부르게 먹여 재우기만 하면 밤새 깨는 일이 거의 없는 아리아는 쌍둥이들과 비교하자면 정말 천사나 다름없다.
......일레이나가 아기일 당시에는 제대로 된 너서리 메이드를 고용할 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레이나 본인마저도 혼자서 쌍둥이 둘과 아리아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폭탄 같았었다지만, 첫째라서 비교할 대상이 없었고 너서리 메이드도 없었으니 아이들은 다 그런가보다, 하고 악으로 깡으로 잘만 버텼으니 패스.
"우리도 그만 자러 가자."
"네, 테레제. 오늘 밤도 부탁할게요, 티네 양."
"좋은 밤 되십시오."
대기하고 있던 너서리 메이드에게 아리아를 맡기고 방을 나선다.
우리 집은 아일린도 테레제도, 물론 나도, 너서리 메이드를 고용하더라도 메이드에게 전부 맡길 수는 없다는 방침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 방의 문을 닫고, 달빛이 드는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두 걸음을 걷기도 전에, 테레제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테레제. 아직......."
"쉿. 티네가 들어."
그걸 아니까 그만하라는 거 아냐.
아일린이 나를 창문 쪽으로 밀어붙이고, 고운 얼굴을 내게 향했다.
서로의 눈을 맞추기를 겨우 몇 초. 당연하다는 듯 서로의 얼굴이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 , 입술이 겹쳐진다.
혀를 잇고, 서로의 입술을 깨물 듯 입질하며 타액을 얽는다.
진하게. 호흡을 엮으면서.
얼마간의 키스가 끝나고, 입술이 떨어져간다.
아직 한참 부족한 듯 아쉬운 얼굴의 테레제. 나도 아마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그런 테레제에게 다시 입술을 맞추려다가, 테레제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대었다.
"......하아, 코넬리아.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테레제. 이 다음은 방에 가서 해요."
"응......."
그래도, 라며 테레제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한껏 포옹했다.
오늘 영지 일이 힘들었던 모양이네. 나는 테레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다른 팔로 찬란하고 부드러운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테레제의 응석을 잔뜩 받아주었다.
"코넬리아. 부탁이 있어."
"네? 부탁이요?"
"먼저 들어주겠다고 말하면 말할게. 어려운 건 아니야."
"으음. 좋아요. 들어드릴게요."
"......정말?"
"물론이죠. 테레제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어요."
뭐, 테레제도 어려운 게 아니라고 말했으니까.
테레제는 내게서 살짝 떨어지더니, 뭔가를 소환했다.
나는 그걸 재빨리 두 손으로 받았다.
의복? 메이드 복이다. 똑같은 디자인이지만, 내가 언젠가 입던 것과는 달리 방탄 같은 게 될 리 없는 그냥 평범한 천으로 지은 평범한 메이드 복이다.
이걸 왜. 의문을 담아 테레제를 보았다.
"그거 입고 와줘. 기다릴게."
"네? 아아. 음. 네에......."
음. 그런 플레이?
그으래도, 뭐어어. 이 정도면 괜찮으려나.
다짜고짜 가죽 본디지에 깃털 가면이랑 채찍이랑 털 달린 수갑에 쇠사슬 같은 거 안 가져온 게 어디야.
...만약 테레제가 그런 걸 가져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
무서워진다.
"좋아! 가서 아일린이랑 준비하고 있을게."
테레제는 신난 듯 빠른 보폭으로 걸어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마지막으로 입고 벗어던진 게 10년은 더 된 느낌이 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숙함이 드는 메이드복을 든 채 남겨진 나는, 아무래도 오묘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내 방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준비라......."
방으로 돌아가 연미복을 벗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때 무척 익숙했던 옷으로 갈아입는다.
최근 오랫동안 스커트를 입지 않았던 탓에 아래가 조금 휑한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나도 '이제 와서 겨우?' 싶은 느낌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러고 보니, 메이드일 때엔 테레제랑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구나."
아일린과 했을 때에도, 비록 신분은 메이드였을지언정,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더 꼼꼼하게, 예법에 맞추어 입었다.
어차피 벗겨질 건데, 같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기왕 망가질 거면, 정숙하면 정숙할수록, 예스러우면 예스러울수록, 더욱 더 망가지는 모습에 맛이 있다고, 테레제가 아일린을 마구마구 흐트러뜨리며 장난스레 말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공감한다. 이번엔 내가 그 대상인게 조금 그렇지만.
테레제가 바라니까 어울려주는 거야.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까.
메이드복을 차려입은 뒤에,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본다. 새빨간 얼굴.
기대하고 있는 걸까.
뭘.
아무리 오랫동안 살을 섞어왔다 해도,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이 식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하면 할 수록 더 행복하고 좋기만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오늘은 유독 신선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있긴 있는데.
"그럼, 가볼까나......."
"에잇."
등 뒤에서 귀여운 목소리.
마법 하나 없이도 이 완벽한 기척 감추는 솜씨.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아일, 리...?"
의문을 가지는 순간, 손수건이 내 코와 입을 막았다.
이거, 언젠가 당했었던 기억이.
하지만, 이런 게 통할 리가 없ㄴ........
/
통했습니다.
어딘지 모르겠다. 안대인지 붕대인지를 쓰고 있어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린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도 움직이는 거야.
두 팔이 쇠사슬에 묶여 높게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조금 힘을 주었더니, 사슬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당장이라도 부수려면 충분히 부술 수 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이런 일을 꾸민 이유가 있겠지.
설마 아일린이랑 테레제가 내게 나쁜 짓을 하려 하겠어, 같은 믿음도 있고.
근데 채찍 수갑 이런 거 아니라고 다행이라 생각했더니, 바로 그런 게 튀어나오는 이유가 뭘까.
"어머, 코넬리아. 깨어났어?"
"사악한 엘프 할머니의 말이 맞았어. 정확히 10분만 기절했다 깨어날 거라더니, 정말 1초도 늦지 않았네."
"아일린? 테레제?"
목소리가 울린다.
지하실인가?
그런데 아일린과 테레제는 내 물음에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목소리는 둘이 맞는데.
"크흠. 나, 나는 악의 조직의 행동대장, E다. 아일린 같은 사람 몰라."
"나는 T야. 테레제라니, 그런 사람 몰라."
연기?
너무 발연기인데.
일단..., 그런 설정이라는 거지?
어울려주는 편이 좋겠지...?
나는 손목에 걸린 쇠사슬 소리가 챙챙 잘 울리도록 몸을 비틀면서, 최대한 울먹이는 소리를 짜내어서 외쳤다.
"E? T? 여, 여긴 어딘가요?! 아일린은, 테레제는요?! 절 풀어주세요!"
......정적. 적막.
반응이 없으니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그 순간이었다.
손가락이 다가와, 등허리를 끈적하게 훑고 지나간다.
아일린. 아마도. 하지만, 시야가 막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의 공격에, 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나를 묶은 쇠사슬을 부숴버릴 뻔 했다.
"읏으...?!"
"참을 필요 없어, 코넬리아. 금방 쾌락에 울게 해줄 테니까. 안 그러니, T?"
"......그렇지."
등 뒤에서 인기척.
그리고 손이 뻗어와 내 메이드 복의 옷깃을 붙잡고, 그대로 앞으로 밀어 상반신과 허리를 숙이게 만들었다.
팔목에 묶인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겼다. 버티고 서있으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위로 들린, 그런 자세가 되어버렸다.
후배위를 받는, 그런 부끄러운 자세다.
이번이는 아마, 테레제. 우악스럽게 움직인다고 억지로 내 몸에 힘을 주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냥한 편이었다.
아일린이 비슷한 짓을 했으면 쇠사슬이 끊어졌을 테니까.
그리고 허리를 숙인 내게, 인기척이 점점 가까워진다.
내 귓가에서, 테레제가 속삭인다.
"어떻게 해주길 바래?"
"저, 저는."
"안 들어줄 거지만."
테레제가 장난스럽게 귓가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귓볼을 살짝 깨물고 핥기 시작한다. 옷깃을 짓누르던 손가락은 등골을 타고 엉덩이 쪽으로 쓸어내린다.
나는 침대 위에서 할 때처럼 몸을 마음껏 가누지도 못하고 테레제의 애무를 감내해야만 했다.
쇠사슬이 끊어지면 흥이 깨질 테니까, 읏.
그러는 사이, 아일린이 발목에 붙었다.
나는 팽팽한 쇠사슬이 내 팔목을 속박하고, 테레제의 손가락이 허리를 짓누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까치발을 하고 있었다.
번쩍 들린 발등에 아일린의 혀가 닿는 순간, 쇠사슬이 요동쳤다.
그리고 천천히 개미가 기듯이, 아일린이 발목을 타고 천천히 올라온다.
스타킹 위를 천천히.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살짝살짝 올려가며, 발등부터 발목, 종아리. 마치 녹여먹듯이.
"흐긋, 흐윽....... 어...."
손이, 하나 더.
왜. 이미 나의 살갗 위를 헤엄치던 손이 네 개였었다.
테레제 둘. 아일린 둘. 손이 더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한 쌍의 손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일린과 테레제의 틈바구니로 끼어들어, 메이드 복 위의 내 가슴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자, 잠깐만요. 아일린. 테레제. 이, 이상해요. 뭔가 이상하잖아요?!"
"으으응."
"햐윽?!"
테레제가 키스를 멈추고, 그 두 손이 내 묶인 팔목을 붙잡았다.
반항하지 말라는 듯, 그럼에도 살며시.
"괜찮아, 코넬리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할 건 없어."
"하, 하지만, 흑. 테레, 제에......."
"지금은 아가씨, 겠지?"
"아가씨이......."
설정, 어디 간 건데.
그래도 이젠 낯설어진 호칭을 입에 담는 것에 그리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내 가슴을 애무하던 정체 모를 손가락들이 끝내 유두를 자극했다.
아직 옷감 위로 매만질 뿐인데도 자극에 놀라 허리가 크게 튕겼다. 테레제가 내 손목을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번에야말로 쇠사슬을 끊어버렸을 것이다.
"햐앗?!"
"그래, 코넬리아. 으응. 하아."
테레제도 달뜬 숨을 내 귓가에 직접 뱉어내며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어딘가 외롭게 느껴지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언뜻 귓가에 울렸다.
내 몸은 아니야. 아직은 거기까지 침범당하지 않았다.
그럼 아일린일까, 테레제일까. 혼자 위로할 필요는 전혀 없을 텐데도.
"흑, 응읏."
덜덜 떨리는 쇠사슬을 통해, 내 몸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가슴을 잔뜩 범해지고 있는데도, 입으로는 단내를 뱉어내며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어느새 쾌감이 불쾌감을 앞지른 모양이었다.
시각 하나가 제 일을 못하고 있을 뿐인데, 벌써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아.
"아가, 씨. 아가씨이. 히윽. 힉."
"그 호칭, 뭔가 치사해."
아일린의 목소리.
언뜻 듣기엔 싸늘한 어조지만,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부럽다는 느낌이고, 이젠 아예 내 스커트 속에 들어가 숨었는지 목소리가 막혀 잘 들리지 않는 게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아일린의 귀여운 목소리에도 분홍빛인 입김이 잔뜩 섞여, 내 허벅지를 간질이고 있었다.
"치사하니까, 손해 본 만큼 잔뜩 괴롭혀도 되지?"
"아일, 힉."
아일린이 내 스커트 뒷자락을 붙잡고, 엉덩이 위로 넘겨버렸다.
발목까지 내려올 만큼 긴 스커트인 만큼, 뒷자락을 넘겨도 앞자락은 허벅지를 가리고 있었다.
차가운 밤 공기에 노출된 뒷허벅지만 작게 떨렸다.
나는 비부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스타킹을 잔뜩 적시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식어버린 액체가 몹시 차갑게 느껴졌다.
그 차가움을 달래겠다는 듯, 아일린의 혓바닥이 허벅지에 닿았다. 그리고 엉덩이, 다음으로는 스커트가 넘겨지고 허리를 숙이고 있느라 완전히 드러나 보이고 있을 다리 사이의 균열까지.
저릿저릿한 자극에 몸이 떨렸다.
아일린은 내 팬티스타킹을 붙잡고 반쯤 찢듯이 끌어내렸다.
그리고 팬티도 허벅지까지 내려버렸다.
마지막 방어선까지 전부 간단히 함락시킨 아일린은 망설이지 않고 혀를 뻗어 내 비부를 사랑스럽게 핥기 시작했다.
"학, 흐윽. 아일, 린. 흐앙."
"어쩐 일이야, 츄릅. 코넬리아. 벌써 아가씨를 잊어버리고서 발정하고 있잖아."
"그건, 하윽. 아일린이, 기분, 응, 좋아지는 부위만 노리고, 있, 햑!"
계속 목덜미와 귓가를 핥고 있던 테레제가 내 넥타이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그리고 키스를 해왔다. 아까 복도에서 했던 것보다도 더욱 질척질척하게. 마치 서로의 타액을 서로에게 넘겨주려 작정한 것처럼 혀를 얽고 휘젓는다.
"파하."
"테레제...."
한 번 더 키스를 하려 했지만, 테레제는 이미 얼굴을 뗀 뒤였다.
왜. 왜애에. 사랑하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좀 더 이어져있고 싶어.
그 대신 테레제는, 내 넥타이를 풀어버리고, 앞치마도 벗겨버리고, 단추를 끌러 갑갑한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는 내 목덜미를 물었다.
아까부터 계속 내 가슴만을 희롱하던 두 팔이 다시 다가와, 브래지어 아래 맨가슴을 움켜쥐고 다시 희롱하기 시작했다.
분하게도 나를 잘 아는 손길이었다. 그런 듯 하면서도 어딘가 서투른 손길이라는 게 또 이상했다.
누구지? 카틀레야? 레라? 그 둘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대체.
"걱정할 것 없다니까."
"흐윽?!"
허리 위에 아일린의 목소리와 가슴이 닿는다.
유두가 아직 채 벗겨지지 않은 옷감 위에서 헤엄친다.
내 위에 거의 걸터앉은 자세로, 팔을 길게 내려 손가락을 질구에 찔렀다.
흩어지는 신음. 하지만, 아일린은 이젠 찔러넣으면 찔러넣는 대로 손가락이 질육 속을 쑥 파고들 텐데도 굳이 입구에서만 놀았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단, 말이야.
손가락 움직임에, 어쩔 수 없이 뱉어지는 신음소리를 다시 한 번 테레제의 입이 막았다. 그런 테레제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아일린의 손가락이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질벽을 쉬지 않고 자극한다.
"흐앙, 흑, 하으윽......."
"자자, 코넬리아. 가버려. 어서 가버려."
"안 돼, 코넬리아. 아직이야. 기다려."
"히끅, 하응읏...."
중간에 끼여서, 쾌락에 뇌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데도 참아낸다.
오히려 이젠 테레제의 명령을 받으며 절정을 참는 그 복종의 행위조차도 나를 흥분시키는 미약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 이렇게 희롱당하다간 정말로 망가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 안 돼요. 아, 가씨. 아가씨. 제발, 부탁드릴, 게요."
"뭐를? 말해보렴."
"아, 아일린의 손에, 가버리게, 갈 수 있게. 히약?! 하으윽. 응큿, 으."
"아가씨 앞에서 다른 여자 이름을 말하다니, 음란하고 죄 많은 메이드네."
가버릴 것만 같은 그 순간에, 아일린이 떨어진다.
왜. 왜?
그리고 가슴을 애무하던 정체 모를 손도 떨어져 천천히 뒤로 가더니, 내 엉덩이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뭔가가.
"자, 잠깐. 히극!?"
"괘씸죄야."
뭔가가.
손가락과는 분명 다른 뭔가가 질을 꿰뚫고, 단번에 자궁구 앞까지 파고 들어왔다.
하반신이 내 엉덩이에 꾹 밀어붙여져 있다. 내 허벅지가 누군가의 허벅지와 맞닿아 있었다.
움켜쥔 손가락. 시, 싫어.
내 아랫배 속에서 움찔거리는 봉. 누구야.
누구의..., 체온...?
체온
체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가슴을 희롱당할 때도 체온은.
"뭘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코넬리아는 아기 새처럼 울기나 하란 말이야."
"네, 아가씨. 아가씨이. 향!? 하윽, 학, 하악, 흑, 저를, 저를. 흐극."
팡, 팡, 팡, 팡.
'그것'이 나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사정없이 박아댄다.
완전히 범해지는 꼴이다만, 살이 맞닿는 소리와도 다르다.
하지만 체온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일린과 테레제가 아니라서. 그래서 그런 걸까, 행위는 이전보다 몇 배나 더 격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녹아내리던 뇌는 제 정신을 차렸다.
아일린이 한숨을 쉬었다.
"알아차린 모양이네."
아일린이 천장과 내 손목을 잇던 쇠사슬을 끊고, 다만 여전히 묶여있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걸어와, 내 손목을 조종해서 나의 음핵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아일린 자신의 부드러운 배에 붙였다.
나는 어정쩡해진 자세로, 마치 사막에 표류해 며칠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순례자처럼 아일린의 아랫배를, 그리고 그 아래를 애무했다.
"진짜, 맛있는 부분만 다 빼먹기는!"
옆에서 테레제가 볼멘소리를 냈다.
'그것'이 내 엉덩이에서 손을 떼,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일으켜 세웠다. 그 틈을 테레제가 파고들어와, 내 허리에 자기 허리를 딱 붙이고, 자기 가슴을 내 가슴에 맞닿도록 했다.
그리고 비비면서, 목과 귀에 계속 뜨거운 신음소리와 입김을 뱉어낸다.
물러난 아일린도 포기하지 않고 내 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겹쳐, 음핵을 애무하는 걸 그리지 않았다.
등 뒤에선 '그것', 아니.
속시원하게 말해서, 테레제가 조종하는 '인형'이 계속해서 허리를 흔들어 하반신을 내게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그 따위 장난감보다야 내게 달라붙은 아일린과 테레제의 자극이 몇 배는 더 강렬하고, 사랑스러웠으며, 진심를 담아서 나를 귀여워하고 있었다.
이미 테레제에게 처녀막도 뚫려봤고, 임신도 해봤다.
그러니까 알아. 자지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며, 같이 흥분을 나누고, 함께 쾌락에 녹아내리는 게 더욱 좋다.
"흐응, 학. 읏윽."
"아응, 흑. 코넬리아. 너무 그러지, 마. 그것도 내 손이라고 생각해. 체온은, 아흑, 없지만서도......!"
어....
그렇게, 되는 건가?
한 순간, 박히고 있던 질육이 요동치는 걸, 나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기관은 아니겠지만, 그 장난감에 미친 듯이 달라붙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테레제의 말을 들었다지만, 사랑스러운 아내 둘을 두고, 서.
이상한 배덕감이 뇌를 마비시킨다.
"아흑, 아으으으윽......."
허리가 뒤틀린다.
절정이 가깝다는 걸.
테레제가 내 목덜미를 살짝 물며, 두 가슴을 맞닿게 하며 나를 힘껏 안았다.
분명 힘껏 안았겠지만, 내겐 너무나도 가벼웠다. 목을 깨문 턱의 힘도 똑같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 가벼움에, 나는 결국 절정하고 말았다.
백열하는 시야.
눈을 가린 천 때문이 아니라.
잠시 뒤, 테레제가 내 천을 뒤늦게 벗겨줬다.
다홍빛 피부. 달콤한 냄새. 나는 테레제의 몸 위로 무너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말 혹시나 해서, 몽롱한 눈으로 뒤를 보았지만, 역시 인형이었다.
마력사가 테레제의 어깨에서 돋아난 드워프제 연장 기계팔의 손끝에서 뻗어져, 이제 가동을 정지한 인형의 사지말단에 닿아 있었다.
다만 인형극을 할 때와는 달리, 머리가 뜯어내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기 카펫 언저리에서 구르고 있는 걸 보면 아일린이 시작하기 직전에 손날로 치기라도 한 듯한 꼴이었다.
고작 장난감에 질투한 걸까나.
"......어땠어?"
"최악."
테레제의 물음에, 장난스레 중얼거렸다.
그리고 팔에 힘을 줘서, 나를 묶은 사슬을 깨트렸다.
"그러니까 조금 거칠게 할게요."
"응? 어어."
"옷 좀 찢을게요, 테레제."
"아, 아직은 아가씨잖, 햑!?"
이미 반쯤 벗고 있던 테레제의 옷을 찢어버리며, 그대로 카펫 위에 넘어뜨렸다.
어느새 쫄쫄쫄 다가온 알몸의 아일린이 버둥거리려던 테레제의 어깨를 꽉 움켜쥐어 붙잡아, 땅에 고정시켰다.
연약한 테레제로서는 딱 알맞도록 무섭게 느껴질 정도의 힘이려나.
"잘 했어, 아일린."
"응, 코넬리아. 그러니까."
"테레제를 혼낸 다음에, 너도 잔뜩 괴롭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일린과 테레제의 얼굴이 동시에 붉게 물든다.
나도 똑같겠지.
이런 천박한 꼴이지만, 오히려 이런 꼴이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일단 사랑한다고 말할게요, 테레제."
"으, 으응. 나도 사랑하고 있"
끝까지 듣지 않고 덮쳐버렸다.
밤은 아직 길...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