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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98화 (98/100)

〈 98화 〉 해피엔딩 ~ 사랑하는 너희들과 함께

* * *

저택 2층의 창문에서, 정원 중앙의 안뜰을 내려다본다.

우리 장녀.

까만 머리카락의 일레이나 공주님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소녀였다.

아일린을 쏙 빼닮아서 아직 아홉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칼솜씨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력 보유량도 제어력도 세실리아나 테레제 정도는 아닐지언정 천재라고 부르기엔 충분한 정도였다.

"이겼다! 이긴 거지?!"

"어..., 어라."

당혹의 표정. 쿼터스태프가 하늘을 날았다.

9살인데 레라를 이겼다. 일레이나는 전력을 다한 반면에 레라는 손속을 두었다던가, 전력의 반의 반도 쓰지 않았다던가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설령 레라가 봐주었더라도, 고작 아홉살이 그 틈을 노렸다는 게 대단한 거지.

말할 것도 없지만, 레라는 수 백 년 가까이 경험을 쌓아왔는데도.

"......졌습니다."

"드디어 레라를 이겼어!!"

일레이나가 무척 신나선 자기 목검을 던져버리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기 손목을 만지고 있는 레라에게 달려가 뛰어들었다.

레라는 그런 일레이나를 품에 안아들고선 아이의 어리광을 다 받아주었다. 어쩔 수 없나, 하는 표정이다.

모험가가 되겠다더라.

테레제가 어쨌거나 장녀이니 가문을 물려주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유분방한 일레이나 아가씨는 무조건 모험가가 되어서 레라와 함께 레라의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었다.

레라를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닐까 모르겠지만, 아직 아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다음에는 엄마를 이길 거야!! 그리고 아빠를 빼앗아오는 거야!!"

"장하셔요, 아가씨. 응. 아가씨라면 분명 언젠가 아일린 님을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에헤헤헤......."

아직 아이라니까.

그거잖아, 그거.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라는 그거.

......아빠가 아니라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 것뿐이지만.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 아빠란 뭘까? 아빠가 보통 임신도 하던가?

그것도 쌍둥이를?

몰라. 하여튼 간에.

깜찍하네.

일레이나를 볼 때엔 찌끄마할 적의 아일린을 보는 것 같아서 그립다는 느낌도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

"도전하겠다면 물론 마구 두들겨 패서 그 마음을 꺾어줄 거야."

"그게 엄마가 할 소리냐......."

"너를 내게서 빼앗아가겠다고 선언한 이상, 그 누구라도 손대중하지 않아."

그렇죠. 네.

제 부인님은 이런 녀석이었습니다.

나도 농담이겠거니 생각은 하지만, 미소에 어려있는 살의 비스무리한 뭔가를 보고 나면, 다시 '농담이 맞나?' 싶어져 버린단 말이지.

"일레이나. 오늘 훈련은 끝났나요?"

일레이나와 레라의 대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지, 테레제가 세 아이를 이끌고,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서 카틀레야와 함께 정원에 나타났다.

카틀레야는 도시락통을 들고 있었다.

바깥에서 피크닉 느낌이라도 내려는 걸까.

"어머니! 마침 잘 오셨어요! 저, 드디어 레라한테 이겼어요!"

"어머나."

일레이나가 테레제의 치마폭에 안겨들었다.

테레제는 그런 일레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도 슬쩍 머쓱한 표정을 지은 레라의 얼굴을 보았다.

오랜 부하가 너무 상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겠지.

"잘했어요, 일레이나. 그 전에, 레라에게 오늘 훈련을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잊진 않았나요?"

"앗!"

일레이나가 달려가 레라에게 너무 들뜬 것 같아 미안하다는 인사를 한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아이다.

착하기도 하고, 테레제에게도 낯가리지 않고 어머니로 생각해주는 게 정말 다행이였다.

우리 장녀 공주님이 모범이 되어준 덕분에, 다른 아이들도 우리집의 분위기에 잘 융화될 수 있었던 것 같아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카틀레야. 내가 도와줄게."

"어, 언니. 나도."

넷째, 아리아가 쪼르르 달려가 카틀레야를 돕는 일레이나를 돕는다.

아직 다섯살. 고사리손으로는 별 도움도 되지 않지만, 마음이 중요하겠지.

뒤를 이어서 둘째와 셋째도 카틀레야를 돕는다.

아니, 셋째는 카틀레야의 도시락이 궁금할 뿐이려나.

화사한 금발의 두 쌍둥이의 이름은 아르네와 에이라로, 아르네가 고작 몇 초 차이로 오빠가 되었고, 역시 몇 초 차이로 에이라가 동생이였다.

이제 여섯살. 고생 좀 했었지.......

테레제가 안고 있는 아이는 코르네아. 영지가 조금 안정되자 테레제가 직접 낳은 아이였다.

이제 다음달이면 두살이 된다.

다섯 남매 모두 튼튼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울 뿐이다.

"거기 둘! 계속 보고만 있을 거야?!"

들켰네. 테레제의 외침에, 나는 아일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함께 계단을 걸어내려가 정원으로 나선다.

샌드위치에 샐러드. 버섯 스프.

적당한 점심이네.

식빵이 갈색으로 구워진 게, 딱 봐도 바삭바삭해 보였다.

"아르네. 피망도 먹어."

"누나도 버섯 싫어하잖아. 사람이라면 다 싫어하는 게 있는 법이야."

"그건 맞지만, 아르네. 누나는 앞으로 쭉쭉 계속 강해질 거라서 버섯 같은 것도 이젠 한 입에 먹을 수 있어! 안 남길 거라구."

"나는 버섯이 좋아!"

"......아리아. 언니 버섯 다 먹을래?"

"방금 강해질 거라고 말했으면서."

역시 가슴이 치유된다.

물론, 마냥 이렇게 천사같을 때만 있는 건 결코 아니지만.

실은 아이들 감정 그래프라는 게 기본적으로 바닥과 천장을 넘나드는 만큼, 지금도 어쩌면 싸우기 일발직전일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보고 있으면 치유된다.

"남기거나 아리아 주면, 엄마는 절대 못 이겨."

"흐, 흥! 버섯 다 먹을 거야! 버섯 따위, 엄마랑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걸!"

"버섯 맛있는데......."

아리아가 혀 짧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엄마를 닮아서 먹을 거라면 덮어놓고 좋아한다. 먹성이 몹시 좋은 편이었다.

아직 네 발로 여기저기 기어다닐 시절에는, 눈 떠보면 어떻게 벌이나 파리 같은 걸 낚아채서 입에 집어넣고 있거나, 에이라가 좋아하는 유리구슬을 먹고는 목에 걸려선 하마터면 엘류드니르로 떠날 뻔 한다던가, 많은 일이 있었지.

"괜찮아, 언니. 에이라도 버섯 싫어해."

"역시 언니를 이해해주는 건 우리 에이라밖에 없어."

일레이나가 밥먹다 말고 팔을 뻗어 에이라를 끌어안았다.

에이라는 일레이나가 그러는 틈에 무표정인 채로 포크를 재빨리 움직여, 자기 버섯 스프 속에 담긴 버섯들을 몰래 일레이나의 스프 속에 숨겼다.

꽤 약삭빠르단 말이지.

"버섯이 늘었어!"

얼굴을 돌린 일레이나가 울상이 되었다.

아르네는 나이에 한참 걸맞지 않게 한숨을 뱉더니, 포크를 뻗어 말없이 일레이나의 그릇에 쌓인 버섯 대부분을 챙겨갔다.

그리고는 자기 오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영악한 여우처럼 웃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 누이를 한 번 찌릿 노려보고는, 버섯을 입에 넣었다.

"잘 했어, 아르네."

"뭘요......."

나도 모르게 아르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래, 네가 고생이 많다.

다섯 남매 중 혼자 남자애니까.

뿐만 아니라 엄마도 아빠도 어머니도 주변의 메이드도 전부 여자.

그래서 그런가, 뭔가 조숙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엄마가 에이라를 오냐오냐 해주니까 그러잖아요."

"그, 그랬나...?"

예상 외의 반격.

아, 아니. 나는 모두 평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 알 것 같아."

"테레제? 뭐 말하시는...."

"아르네가 남자애라서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조금 엄격하게 구는 거 같긴 해. 딱히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는 아니고, 평소에도 말이지. 응."

"아, 아일린도?"

"아르네. 이리 오렴. 네 어머니가 안아줄게."

아르네가 아일린에게 휙 가버리더니 품에 푹 안겨버린다.

삐진 듯 부루퉁한 얼굴.

그, 그랬었나.

딱히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미안해, 아르네."

"알면 됐어요."

­ 여섯살의 공격은 강력했다.

­ 코넬리아는 멘탈에 데미지를 받았다!

으으으.

내가 그러면 안 되는데.

"잠깐. 그런 거 다 받아주면 아르네가 응석쟁이가 된다구요!"

일레이나가 아일린에게 지적했다.

장녀는 아빠 편이구나. 장해라, 장해.

......아니, 설마 그냥 아일린을 공격하고 싶은 것뿐인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요즘은 검술 단련도 안 하는데!"

"그건 누나가 너무 강해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탓이잖아!!"

"에에."

"누나랑 칼싸움을 하느니 차라리 엄마랑 칼싸움을 하는 편이 더 나아!"

"엄마랑 비교하면 좀 편한 편이긴 해도, 아빠도 잘 안 봐주는 편인데."

"누나는 그냥 안 봐주잖아!!"

"안 봐줘야하는 거 아냐?"

옆에서 레라가 움찔했다.

아까 진 게 그렇게 가슴에 남았느냐.

"돼, 됐어! 난 마법사가 될 거니까 칼 같은 거 조금만 알면 돼!"

"그건 편견입니다, 도련님."

카틀레야가 쏘아붙였다.

물렁물렁하기 그지없는 우리 집안의 유일한 참스승이다.

......그런가?

하여간에 카틀레야는 사진기를 들고 있었다.

카틀레야가 출가하는 테레제를 따라갈 때 글로리아에게서 받은 물건이었다.

사진 2장을 찍어서, 자기도 보내달라면서.

"일단 사진 찍죠?"

"식사 중인데?"

"음식까지 나오게 찍으면 더 풍치있겠네요. 어서 자리 잡아요, 모두."

자연스럽게, 테레제와 아일린이 내 옆에 와서 섰다.

아이들이 아래에 옹기종기 모인다.

카틀레야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띤 미소와 내가 지금 띤 미소가 그다지 다르진 않으리라.

"모두 웃으세요."

나는,

코넬리아 유라시아는.

차에 치여 죽고 지구를 떠나와, 이상한 별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러니 웃지 않으면 곤란하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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