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이어지는 날
* * *
여관에 도착하고, 사흘이 지났다.
여관에 도착한 첫날 밤은 어쩌다저쩌다 보니 온천 속에서 아일린과 해버렸고, 아일린에게 잔뜩 귀여움 받았고, 열기 탓에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함께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나 혼자만 귀여움 받다가 먼저 가버린 것이다.
그 즈음에서 나는 필름이 끊어졌다만, 아일린의 말로는 5분 정도 지나지 않아 겨우 깨어나선 화사한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계속 얼굴을 붉히고 있다가 돌아와선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는 듯하다.
많이 피곤했었나봐, 라더라.
그 다음 날에 새근새근 잘 주무시고 계신 우리 아일린 양 옆에서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일어난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파묻었던 걸로 기억난다.
아마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패배자의 모습이었으리라.
......아니, 그래도 정말 좋았단 말이야.
그러고 10분 정도 패닉 상태였다가, 오기가 들었다.
그래서 자고 있는 아일린을 덮쳤다.
별 일도 없는데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건 개인적으로 죄악이라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떻게든 아일린에게 복수..., 아니지. 보답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일린이 내게 했던 걸 그대로 돌려주려고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일린이 우는 소리는 신선하더라.
내게 매달려오는 것도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만.
젖어버린 내 손가락과, 하얀 이불과 뒤섞여 마구 흐트러져선 달뜬 얼굴을 두 팔로 가리고 있는 아일린을 보며 짧은 승리감과 흥분에 도취되어 있기를 고작 십 수초.
나도 이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하는 작은 자괴감, 그리고.
비록 아일린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주긴 했으나 어쨌거나 멋대로 덮쳐버리고 만 셈이니, 뒤늦게 따라온 죄책감까지, 두 감각 탓에 뒷목이 약간 싸늘해지려던 그 순간이었다.
두 팔 틈새로 언뜻 보이는, 아일린의 감겨있지 않은 눈과 마주쳤다.
분명 우연히 마주쳤겠지만.
눈이 멀어서 텅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쪽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타오르는 듯한 호승심에, 나는 그제야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도.
순식간에 얼굴을 붙잡혀 끌여내려지고, 키스당하고, 역전당했다.
그리고 다섯 번 정도 가볍게 절정했다. 마지막에 가선 '망가져버릴지도 모르니 이제 그만해줘'라고 부탁까지 했던 것 같은데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어젯밤에 힘들어 보여서 그냥 자게 두었더니 건방지다, 라고 했던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 때에는 다행히, 나와 거의 비슷한 빈도로 절정해준 아일린과 함께, 동시에 소리를 뱉으며 쓰러지듯 포개져서 동시에 잠들었다.
정말 다행히도, 마지막까지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지쳐 잠들고 일어났더니 또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빨간 머리 종업원 아가씨가 오늘부터 축제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셔서, 축제를 보러 나갔다.
나무 수인들이 하얀 고룡의 딸에게서 노르리카엘 성채를 돌려받은 날을 기념하는 축제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축제 내용이 뭐가 중요하랴.
그저 잘 알지 못하는 축제를 즐겼다.
무대의 연극, 잘 모를 의식과, 장엄한 노래, 노점상의 간식, 시끌벅적한 사람의 소리. 열기.
그 모든 걸 즐겼다.
불꽃놀이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아일린에겐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 의미는 없었겠다 싶었다.
연극이야 대사도 있고, 노래도 있으니까. 어렴풋이라면 배우의 움직임도 아일린에겐 보이고 있었을 거고.
무엇보다 아일린이 계속 듣고 싶다고 했다.
하여간에.
여관으로 돌아오니, 처음 보는 여자애가 의욕 없고 시큰둥한 태도로 카운터를 맡고 있었었지.
이쪽도 마족이었다. 파란 머리카락에, 빨간 눈동자.
뭔가의 결계로 가린 듯한 작은 박쥐 날개와 송곳니. 흡혈귀인가 싶었다.
흡혈귀는 좀 위험하지 않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좋으려나.
축제니까.
아일린도 별 신경은 쓰지 않았고.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키스를 했다.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고서, 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의자 위에 앉은 내게 아일린이 올라타, 겹쳐지고, 서로를 깊게 탐했다.
그나마 전날들과 다른 게 있었다면, 갑자기 없던 배려심이라도 생긴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더욱 더 깊게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들기를 바랬다는 것일까.
이성의 끈이 불타 끊어지지 않도록 페이스를 조절했다. 한 순간 조금 거칠었다면, 다음 순간에는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기쁘게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칼끝 위를 뛰넘듯이 아슬아슬한 선에서, 오랫동안 깊게. 달콤하게.
아일린은 목덜미가 약했다.
감은 눈 위를 키스하면, 단번에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엉덩뼈 바로 위. 허리를 잡겠다고 손을 뻗으면 자연스레 붙잡게 되는 그 자리. 부드럽고 가느다란 허리와 골반이 본격적으로 이어지며 넓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자리가 천연의 약점이었다.
허리와 골반 사이를 붙잡으면, 마치 뒷목을 붙잡힌 아기 고양이처럼 되어버린다. 갸날픈 목소리로 울어주는 것까지도 똑같았다.
그렇게 함께 이어진 채, 동시에 절정을 맞이했다.
그게 어젯밤의 일. 사흘째가 지나가고, 이제 나흘째다.
휴가 전체로 따지면, 닷새가 지났다. 오는 데 이틀하고 반나절이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앞으로 일주일 정도가 더 남은 셈이다.
"......오늘은 바로 안 덮치네."
"일어났어?"
"응. 좋은 아침."
아일린이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난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침대 위에 흘러내린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아일린에게 키스했다. 아직 졸음이 남은 표정이었지만, 아일린은 기쁘게 내 키스에 어울려주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타액이 늘어진다.
......나는 인사 대용으로 소프트하게 하려 했는데.
아침 키스로는 너무 끈적한 게 아닐까 싶었다만, 아일린은 헤헤헤, 하고 순수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오늘은 뭐 할까?"
"축제는 사흘간 이어진다더라."
"좋아. 놀러가자."
아일린이 방긋 웃었다.
적당히 씻고, 온천물로 한 번 삶고 구워내었다는 오리 요리로 배를 채운 뒤, 여관에서 나서려고 했다.
"손님."
카운터의 하얀 반룡 소녀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왜 우릴 부른 걸까. 카운터로 가자, 소녀는 단아한 미소를 짓고서 무엇인가를 꺼내 우리에게 넘겼다.
"오늘 새벽에 어떤 엘프가 와선 전해달라더라고요."
작은 나무 상자였다.
엘프라면 글로리아일까. 뭔가 싶어서 바로 열었더니, 웬 편지 한 장이 있었다.
그리고 편지 아래에 뭔가 목화 같은 포장재로 감싸여 있는 게.
슬쩍 보였.
바로 뚜껑을 닫았다. 고개를 돌리니, 반룡 소녀는 이미 슬쩍 보아버린 듯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야?"
"아니, 아일린. 아니야.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편지를 펼쳐서 읽었다.
익숙한 글로리아의 필체로 유려하게 적혀있다.
* 나무 마물의 잔해를 엘프가 안전하게 가공한 것을 드워프가 재가공한 것.
* 기본적으로 마법, 마력과는 연이 거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린 양이 착용했다간 정자 생성 기관이 파괴될 위험성이 있으니, 반드시 코넬리아만 착용할 것.
* 유통기한 7일.
"......맙소사."
"뭐냐니까?"
"오늘부터 식단은 고열량에 아연 가득한 식품으로 준비해드릴게요."
"아아아아아아니, 그런 배려는 필요 없, 아니 감사하긴 하네."
여관 주인이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다.
"아일린."
"응? 도대체 뭔데 그러는 거야?"
"외출 계획 취소야."
"어? 왜?"
일단 여관 주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당황한 아일린의 손을 붙잡고서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상자에서 물건을 꺼냈다. 색깔이나 나이테 같은 게 보여서 목제라는 건 알겠는데, 마물의 잔해로 만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질감이 사람의 것이나 거의 다름없었다.
그, 뭐라고 할까.
스트랩 온 딜도라고 하던가? 그거 비슷한 거다.
다만 딱히 벨트 같은 게 부착되어있진 않고, 내쪽으로 뭔가 가느다란 뿌리 같은 게 몇 가닥 자라나 있었다.
아무래도 생김새가 영, 좀 그런데.
편지에는 정자 생성 기관이라던가 하는, 상당히 불온한 글귀가 적혀 있었지.
유전자를 얻어야 할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일단 내쪽으로도 들어가야하는 건 맞는 것 같긴 한데.
"언제쯤 나한테 알려줄 거야?"
나는 될대로 되라는 듯 상자에서 기구를 꺼내 아일린의 눈앞에서 덜렁덜렁 흔들었다.
대충 움직임이 느껴졌겠지. 아일린은 내 손에서 흔들리는 그것이 뭔지 알아보려 잠시 집중하다가, 끝내 잘 모르겠다는 듯 고운 아미를 좁혔다.
"뭐야, 그게?"
"......남성."
"응?"
"남성 성기, 닮은 도구..., 야. 내 유전자를 추출해서 정자까지 만들 수 있는 고성능 도구라고, 그. 편지에 적혀 있더라."
아일린이 말이 없어졌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서 그것의 대를 붙잡았다.
멀어버린 눈 대신 손가락으로 감촉을 느끼며,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이렇게 크다고...? 라고.
"네가 착용하면 망가질 수도 있다더라."
"......."
목걸이 때가 생각났는지, 곧바로 내게 넘겨줬다.
딱히 나도 쥐고 있고 싶진 않았다만.
아일린은 자기 손에 남은 감각이 생소한지, 그 손을 자기 코 가까이에 대어서 냄새를 맡았다.
나도 대충 상자를 열었더니 냄새가 맡아져서 어쩔 수 없이 맡아보긴 했지만, 나무 냄새밖에 안 났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있으면 된다는 거지?"
"응?"
아일린이 갑작스럽게 냅다 내 발목을 걷어찼다.
비틀, 하고 시야가 흔들린다. 정신을 차려보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마물 나뭇가지로 만든 도구가 내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윽..., 뭐하는 거야, 아일린."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둔중한 아픔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아일린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발등에 키스한다.
천천히 혓바닥이 발목을, 종아리를, 타고 오른다.
"읏."
"일단, 할짝. 코넬리아. 한 번 머리 비우자."
감은 눈을 뜨고 있었다.
텅 빈 눈동자를 치켜뜨고서, 정확하게 내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짐승의 눈이었다.
"자, 잠깐. 아일린. 기다려봐. 힉!?"
기다릴 시간 없어. 그렇게 말하는 듯이, 아일린의 손길과 혀가 순식간에 내 몸을 유린해간다.
어젯밤과 같은 배려심은 하나도 없이, 둘째 날 아침의 내가 그랬듯 무식하게 핥고, 물고, 비벼온다.
마치 범해지는 듯한 기분일까.
그런데 그게 또 싫지가 않단 게.
"아일, 힉. 으, 응흣. 조금만, 천천"
아일린이 내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온다.
이곳저곳을 자극하다가, 지나치듯 약점을 슬쩍슬쩍 애무해주는 편이, 나로서는 조금 더 좋았지만,
아일린이 귓바퀴와 목덜미에 침을 치덕치덕하게 바르며 키스를 퍼부었다.
나도 모른 사이에 허벅지를 넘어 내 속에 벌써부터 깊게 파고든 아일린의 중지와 검지가, 마구 날뛰었다.
미친 듯이 날뛰면서도, 기분 좋아지는 곳만 정확하게 찔러오는 게 또 아일린다워서.
이대로, 는. 곤란. 해. 머리가. 녹아.
"가버려. 응? 코넬리아. 가버려. 어서. 어서?"
"흐앗, 윽. 헤으극. 아이, 리이인."
"그래, 코넬리아. 코넬리아아. 어서, 가자? 어서어서 가버리자?"
쾌락의 폭력.
두둥실 떠버려서, 떨어지면 정말로 망가져버릴 것만 같아.
아일린의 속삭임에 세뇌되어버리기라도 한 듯, 입술은
"좋아, 응, 큿. 아일린. 앙, 읏. 아일린. 아일린. 아일리이인."
견디지 못한 허리가 비틀린다.
아일린의 손가락이 떨어진다. 내게서 길게 이어지다 금방 끊어진 애액이 아일린의 손가락 끝에서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게 만약 흰색이라면.
아일린을 잔뜩 잔뜩 더럽힐 수 있다면.
"가, 각오해."
아무래도 편한 몸이다. 금방 회복하고 마니까.
금방 정신을 차린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일린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회복이 살짝 더딘, 힘 빠진 손가락으로 땅에 떨어진 기구를 들었다.
나무 뿌리 같은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와서 살짝 망설였지만, 내 냄새라도 맡았는지 곧바로 뿌리를 뻗어 내게 침입해 알아서 장착되었다.
"흑?! 헤윽!?"
"어..., 코넬리아?"
"됐어. 견딜 수 있어..., 그러니까 아일린."
"......마음껏, 얼마든지."
아일린의 옷을 걷어올리고, 속옷을 벗겼다.
이미 적셔질 대로 적셔진 아래. 꿀이 잔뜩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허벅지를 밀어 올렸다. 몇 번이나 보았지만, 언제나 사랑스럽게 앙 다물고 있는, 지금도 계속 애액을 뱉어내면서도 여전히 아일린답게 일자를 그리며 닫혀있으려 하는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왼손으로 아일린의 허리를 제압한다. 엉덩이 뼈의 바로 위. 허리와 골반이 이어지는 그 자리. 손이 닿았고, 그냥 살짝 붙잡기만 했을 뿐인데, 아일린은 벌써 힉, 하고 작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진짜 각오해."
"어서. 흐윽. 어서 와줘, 코넬리아."
"이 사랑스러운 게 더 이상 닫히지 않을 때까지 쏟아부을 테니까."
/
"......지금쯤 좋은 시간 보내고 있으려나."
"뭐, 그렇겠지요."
"흐음......."
테레제가 한숨을 뱉었다.
아일린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는 시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자제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코넬리아를 5달 정도 독점하고, 폴리모프 마법을 써서 마지막에 코넬리아를 임신시키면 다시 몇 달 정도 독점할 수 있겠지요, 라고.
글로리아가 말했었지.
또 뭐라더라. 아일린은 아이를 갖고 싶은 거지 아이를 갖게 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코넬리아의 처음을 가져가는 것도 문제 없을 거라고 그랬던가.
말은 했는데.
"좋겠네."
역시 신경쓰여.
테레제가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