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성녀 세실리아
* * *
2. 살린다.
세실리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요."
"굳이 제 손으로 처리할 필요도 없고, 저보다도 윌리엄에게 원한 가진 사람은 훨씬 많아요. 그리고 저는 이미 윌리엄을 아일린에게 맡겼어요."
"맡긴다니. 놓치면 어쩌려고, 아니. 테레제는. 테레제는요."
"뭐야. 내가 그 녀석을 꼭 죽여야만 한다는 말투잖아. 이것도 그 미래를 예지하는 꿈에서 본 거야?"
"네?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게, 그."
테레제는 눈에 띄게 당황한 세실리아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세실리아는 쭈뼛거리다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말한다.
"기사들, 고용인들. 전부 윌리엄이 죽였잖아요. 듀오토인가 뭔가 하는 기사도 죽었고, 유르덴 공작님도 지금 위험하고. 여, 여기서는 윌리엄을 죽여서 후환을 깔끔하게 자르는 편이 좋은 거 아닌가요?"
"물론 개인적인 복수심이 아주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는데, 코넬리아가 됐다면 나도 그걸로 됐어."
"만약 코넬리아가 틀렸다면요. 윌리엄이 풀려나서 더한 패악질을 부리면...."
"걱정 고맙지만, 코넬리아의 선택이 내 선택이야. 그리고 후환이라. 내가 믿는 메흐레니아 교의 신앙교리성은 메흐렌 신에게 대적하려는 대죄를 지은 사람이 두 번 다시 세상을 활보하도록 두진 않는 걸로 아는데."
"네? 네. 그, 그렇죠."
세실리아는 미약하고 미묘하게나마 긍정했다.
그리고는 자기 발밑에 쓰러진 윌리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정작 붙잡아온 세실리아가 저런 반응이면 조금 걱정되긴 하네.
재판했더니 막 풀려나거나 하면 곤란해질 것 같긴 하다.
......그냥 죽여두는 게 나았으려나.
"그럼 너희 규율과 법도대로 하지? 나의 칼인 코넬리아도 됐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성녀님 앞에서 한낱 신도가 주름잡을 순 없잖아."
"성녀.... 네."
테레제가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투로 말하자, 세실리아가 어딘가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저 성녀라는 자리가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테레제가 세실리아의 자리를 인정해준 게 마음에 들었겠지.
"정말로,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
"아일린은 어떤가요?"
내가 끼어들었다.
아일린이 죽이러 간 녀석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세실리아의 발밑에 누워있는 게 이상했다.
아일린이 놓친 걸까.
세실리아에게 붙잡힌 것도 모른 채 아직도 뒷골목을 뒤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조금 걱정됐다.
"아일린은 알고 있나요?"
"......네."
다행이야.
아일린이 윌리엄을 냅다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지 않은 건 의문스럽지만, 그렇게 깊은 복수심을 가지고 있던 아일린조차도 윌리엄을 죽이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나는 정말로 더 이상 끼어들 여지조차도 없다.
"금방 돌아올까요?"
"네. 아마도."
"다기 한 세트를 더 준비해야겠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 윌리엄은 무기징역이던가 사형이던가, 알아서 적절히 처리되겠지.
가능하다면 내 손을 직접 더럽히지 않는 편이 제일이다.
"아무래도 아일린은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네요."
"네?"
"친구를 위해서 복수를 포기할 줄도 알고."
문득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세실리아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테레제 쪽도 한 번 보았는데, 뭔가 테레제도 풀어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니, 딱히 나는 애초부터 그렇게까지 복수심이 깊지도 않았고.
있는 것도 아일린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포기할 수 있을 정도고.
"코넬리아. 표정 관리 좀 해. 연인이 돌아오는 게 그렇게 기쁜 거야?"
"아, 그게."
이제 포상 받을 게 있어서.
...라고 이 앞에선 말 못하지.
적당히 둘러대자.
"처음엔 못 믿었는데, 그런 표정을 하면 역시 믿을 수밖에 없으려나. 어떻게 사귀게 된 건가요?"
"앗. 그. 으게."
"그건 티 타임의 즐거움으로 남겨놓고."
테레제 아가씨의 지원사격이 훌륭했다.
"우선은 그 꼴보기 싫은 녀석이랑 저택 곳곳에 숨은 너희 신앙교리성 사람들이나 좀 치워주지? 지금 저택의 결계도 전부 깨졌고, 부상 없이 멀쩡한 사람들로는 아무래도 너희가 조사하겠다고 덤벼들면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무섭거든."
"어머."
"뭐. 심문관들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테레제가 말하다 말고 물끄러미 세실리아의 얼굴을 보았다.
잠재적인 적으로 보는 듯한 눈. 그 시선에 담긴 것을 이해한 세실리아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었다.
"제가 숨긴 거 아니에요. 제가 이 저택에서 한 번 죽었다고 하니 걱정이라도 된 건지 모두 제 발로 와주신 건데요."
"부디 부탁 좀 할게. 나는 집에 모르는 손님이 많이 방문하면 온몸에 오한이 오는 체질이야."
"뭐, 그럼 좋아요. 펠릭스 심문관만 남고 모두 해산해달라고 할게요. 어차피 윌리엄도 잡았고."
세실리아가 그렇게 대답하더니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 테레제가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게 기쁘다는 얼굴이었지만.
뭐. 사람이니까.
"마지막으로."
세실리아가 테레제의 공간마법을 응용한 듯한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에서 떨어진 것은 한 서류다발.
불에 살짝 탄 흔적이 있었다.
"이건 윌리엄이 유르덴에 대해서 이것저것 캔 서류에요."
"우리 주님이 싫어서 새로운 신을 만들려던 사람이 쓴 서류잖아. 그거 분명 조작된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음. 이거 드릴까요? 필요하세요?"
테레제가 세실리아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더니 뭐가 그렇게 신난걸까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한숨을 뱉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전에 먼저, 네게 사과해야할 게 있었어."
"뭘까요."
"......엘자 타레이아는 네 친구였었지."
짧은 침묵이 맴돈다.
세실리아의 얼굴이 굳는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흘러간다.
나는 곧바로 끼어들어 목소리를 높였다.
"자, 잠깐만요, 아가씨! 그건 오데트의 돌발행동을 막지 못한 제 잘못......."
"네 잘못은 내 잘못이야. 네 과실과 업보는 내가 다 짊어지기로 했어. 그러니 물러나 있어, 코넬리아."
"엘자는."
세실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쉽게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을 감는다.
"......당신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겠지요. 이미 용사가 궁전을 날려버리며 사람들을 학살한 시점에서, 전부 부차적인 거라면서 용사에게 떠넘겨질 테니까."
"세실리아. 나는 네 용서를 구하고 있는 거야."
"알아요! 안다고요!"
세실리아는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말한다.
"엘자가 당신에게 결투 신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엔, 필시 당신이 죽였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설마. 아무나 막 죽이진 않아. 혹시 그것도 꿈에서 본 거야?"
"됐어요. 그 꿈은 오를레베트가 죽은 이래로 죄다 꼬여서 세세한 건 하나도 맞아 떨어지는 게 없었으니까."
내 탓이네. 세실리아도 나를 한 번 슬쩍 흘겨보았다.
주변에 다른 동료 이단심문관들이 있어서인지 굳이 누가 죽였다고 말해주진 않았는데, 나름의 배려일까 싶었다.
아마도 세실리아의 꿈속에선 오를레베트가 몹시 큰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던 모양이었다.
"당신 앞에 당당히 서서 선전포고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오를레베트는 정말 허망하게 죽고, 엘자도 죽은 줄 알았고, 제가 뭐라고 생각했겠어요? 이건 경고니 더 이상 기어오르지 마라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냥 불운이 겹쳤을 뿐이야."
"그런데 죽이진 않았더라고요. 더 이상 저와 만나주지도 않았고 뜬금없이 윌리엄과 결혼한다고 해서 놀라긴 했지만."
세실리아가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선 무슨 변덕인지, 저를 에드윈으로부터 구해주시더라고요."
"정말 변덕이었을 뿐이야. 에드윈이 그런 짓거리를 하는 것도 싫었고."
"네. 이젠 이해해요. 테레제 양은 처음부터 제가 안중에도 없었다는걸. 그 꿈 때문에 엄청 많은 걸 혼자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미안하게 되었어. 마음에 안 들었니?"
"대체 이게 뭐야. 나 혼자 무서워하고, 혼자 벌벌 떨었던 것뿐이잖아."
세실리아는 자조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의 부하가 엘자를 죽인 건에 대해선, 저는 개인적으로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가. 곤란하네."
"그러니 그 죄를 가슴에 깊게 새기고, 평생 성녀의 이름을 들을 떄마다 벌벌 떨면서 살아가주세요. 아무래도 그게 제가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내릴 수 있는 처벌의 한계인 것 같으니까."
여기서 뭘 하려 해도 펠릭스 심문관이 되려 사적 처벌은 안 된다며 절 막으려 들 것 같고.
세실리아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딘가 내겐 그 말이 나도 네가 무섭고, 너도 내가 무서우니 우리 모두 두 번 다시 연관되지 말자는 말로 들렸다만.
"세실리아 성녀님."
"......감사히 받을게요. 향이 좋네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세실리아에게 찻잔을 건네었다.
그 사이, 테레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아일린이 윌리엄을 일단 살려두는 것에 동의한 게 맞아?"
"네?"
세실리아의 반응이 미묘했다.
그러자 테레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짙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성녀님, 만약 네가 내게 자랑 좀 하고 싶어서 윌리엄을 중간에서 낚아챈 거라면, 아일린이 많이 삐지지 않았기만을 비는 편이 좋을 거야."
"아, 아니. 그게. 그렇긴 하지만, 아일린은 분명 착한 아이니까, 메흐레니아의 법도에도 따라줄......"
"그럴 아이였다면 연구소를 몇 개나 박살내진 않았겠지."
"윽."
세실리아가 한숨을 뱉었다.
"확실히 저도 잘못했네요. 가서 사과해야겠어요. 들어주긴 하려나."
"코넬리아. 우리 서투른 성녀님 좀 거들어줘. 정으로 호소해."
"네, 아가씨."
"......제가 지금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나요?"
"글쎄. 그 종이다발이나 좀 주면 될 것 같아."
세실리아는 못 이기겠다는 듯 자기 손의 서류를 테레제에게 넘겼다.
테레제는 그것을 바로 불태우지 않고, 공간마법으로 지웠다.
아마 분석해서 정보가 샐 만한 곳이 어디 있었는가 알아낼 생각이겠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 혹시 묻는 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윌리엄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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