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돌아와야만 할 이유
* * *
"놈에겐 일곱 명의 하얀 기사가 있어."
에드윈이 입을 열었다.
세실리아는 다섯 명 정도라고 했었지만 애초에 세실리아는 비전투요원이고, 정보 쪽은 아무래도 에드윈이 더 밝을 지도 모른다.
물론 다섯 명 정도라고 했으니, 일곱 명도 그다지 멀리 벗어난 건 아니고.
"한 명은 시체를 확인했다."
"제가 개미처럼 짓밟아 죽였죠."
글로리아의 말이었다.
아무래도 듀오토 근처에서 죽어있던 곤죽이 된 시체, 그 녀석이 하얀 기사라는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글로리아의 마법이 통했다는 걸 보면, 딱히 아일린 정도의 내성을 갖고 있진 않은 건지.
"나머지 다섯은, 필두에 디트리히 마른. 그리고 제라드 길데, 베거트 비르덴, 마가릿 유디트, 길베르트...."
"됐어요. 이름 따위 별로 중요하지 않고."
아일린이 지루하다는 듯 에드윈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다만 나는 그 이름들 가운데에서 어딘가 낯선 듯한 이름이 들렸기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비르덴. 어디서 들었더라. 기억이 나질 않네.
그다지 중요한 이름이 아니었던 걸지도 모르지, 뭐.
"강한가요?"
불평을 뱉었던 아일린의 물음이었다.
아무래도 호전적이기 짝이 없는 말투다.
하나를 이미 죽인 글로리아가 그런 아일린이 재미있다는 듯 에드윈 대신에 대답해주었다.
"글쎄요. 그냥 짓눌러 죽여서."
"녀석들에겐 마법이 통해. 초창기 실험의 결과물이라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세실리아의 눈가림 마법에 낚이기도 하더군. 그래도 나나 오웨인의 마법은 전혀 통하지 않았으니 별 의미는 없을 거다."
"전 마법을 어차피 쓰지 못하니 상관 없지만."
아마 내 마법은 통하지 않겠지.
에드윈은 저래 보여도 왕족이라 상당히 많은 마력량을 보유하고 있고, 그 자신도 노른데아셀과 모이라이아에서 오래 수학한 마법사다.
확실하진 않아도, 글로리아나 세실리아, 아마도 테레제 정도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이 아닌 이상에야 전혀 통하지 않을 거다.
통하더라도 효과가 미미하거나.
"저는 갈 수 없어요. 여기서 저택을 지켜야 하거든요."
글로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글로리아와 테레제는 전력으로 셀 수 없다. 듀오토가 죽어버린 이상,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를 빈집털이를 막기 위해서 누군가는 남아야만 했다.
테레제는 애초에 전투 인원이 아니고, 오히려 글로리아의 보호를 받아야할 대상이니까.
"카틀레야. 레라. 너희들 중 한 명만 남아. 다른 한 명은 에드윈과 코넬리아를 따라가도록 하고."
"그럼 제가."
"선배님, 괜찮겠어요? 두 명도 겨우 상대하다 반파 되었으면서."
"너도 겨우 한 명 잡고 주름 잡으면 곤란해. 내가 부끄럽단다."
"아이, '언니'. 저는 생포하려다가 오래 걸린 거고요."
"카틀레야."
"아, 저 꼰대......."
카틀레야가 한숨을 쉬더니, 레라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는 '죄송합니다, 선배'라고, 레라에게 사과했다.
레라는 무척 익숙하다는 듯, 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카틀레야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자기 말을 이어 했다.
"저는 조금 망가진다 한들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독도 통하지 않지요. 또한 총을 사용하는 카틀레야는 그다지 전장을 가리지 않겠지만, 저는 기왕이면 지킬 것 없이 마음껏 사방을 박살낼 수 있는 전장이 편한지라."
"그럼 레라가 가도록 해. 하지만 기억해둬. 너 비싸. 이번에 오데트랑 너랑 급속수리 맡기느라 엄청 깨졌어. 이해해?"
"......죄송합니다."
"실은 내가 너를 아끼니 너도 네 몸을 아끼라던가 뭐라던가, 그런 덕담을 하고 싶긴 한데, 내가 그런 말 해봐야 들어먹지도 않을 거잖아? 그러니까 아낌받고 있으니 이 몸을 버려서라도 아가씨를 위해따위의 생각이 들 것 같으면 너희들의 몸값을 떠올려."
"아가씨의 넓으신 마음에 대해선 깊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된 거야."
아일린과 나. 그리고 레라와 오데트.
그리고 에드윈. 용사 루카. 아직도 이름조차 모르는 엘프 하나.
일단 숫자로는 여섯 대 여섯. 이젠 정확하게 1:1이 가능하긴 한데. 미묘하네.
하얀 기사가 아니더라도, 이번에 대거 동원된 암살자, 특히 내가 잡은 테르나 같은 일반 실험체라던가, 어쩌면 저번에 숲에서 잡은 오우거 같은 괴물들도 충분히 전장에 풀어놓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윌리엄도 윌리엄 나름대로 전력으로 취급해줘야 할 지도 모르고.
그 때, 이름 모를 남자 엘프가 자기 긴 귀에 손을 얹었다.
"오웨인에게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도울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다지 기대도 안 했어."
역시 숫자가 부족한데.
아무리 일레인이 압도적이고, 루카도 싸우는 걸 본 적은 없다만 용사라고 하니 나름대로 잘 싸우겠지만, 음.
"이럴 때 세실이 있었더라면......."
에드윈이 중얼거렸다.
하긴 파티의 중심은 힐러지.
"괜찮아요."
루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아밍 소드를 뽑아내었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운 형태의 검이었는데, 루카가 마력을 더하자 용사의 마력을 집어먹고 크기를 불려 최종적으로 거대한 대검의 모습으로 변했다.
츠바이핸더. 용사가 뽑아낸 아밍 소드의 손잡이 부분이 츠바이핸더의 리카소 부분이 되는 형태였다.
그것을 쿵, 하고 바닥에 꽂고는 선언했다.
"인류의 칼끝이 여기에서 보장합니다. 우린 모두 살아서 돌아올 거예요."
"거 말은 쉽죠."
카틀레야가 딴죽을 넣었다.
쓸데없이 냉소적인 녀석이다.
아니 뭐, 음. 용사란 인간의 용사니까?
어중간하게 엘프가 섞인 카틀레야에겐 그다지 좋은 눈길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
"애초에 용사가 가서 여기 용사 출두요, 하면 윌리엄 왕자가 허겁지겁 뛰어나와 제 목만으로 용서해주십시오, 용사니이임 하고 끝나는 거 아닌가요?"
"아하하..., 그게."
"용사가 할 일이 아니니 그러지요. 카틀레야 양."
이름 모를 엘프가 대신 카틀레야에게 대답했다.
"그냥 저는 에드윈 왕자님을 돕고 싶을 뿐이니까."
"하아. 저는 용사가 인간 세계의 왕위계승권 싸움에 손을 대었다는 소문이 퍼지지만 않길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에드윈 왕자님은 왕위계승권을 내려놓았다구요!"
"세간은 어떻게 생각할지 항상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만."
"또 잔소리! 호노리아스는 항상 잔소리만 하죠!"
"그게 제 일입니다만."
엘프의 이름은 호노리아스인 모양이다.
글로리아는 호노리아스의 이름을 듣더니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호노리아스 피니아레? 아버지 성함이 혹시...."
"......저를 아십니까?"
"아뇨. 몰라요."
"어머, '언니'. 할머니 소리 듣기 싫다면서요? 왜 건장한 엘프 청년을 보고 아는 체를 한으겍."
카틀레야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바닥에 짜부라졌다.
아프지, 저거.
준비 안 하고 있다가 바닥에 얼굴부터 박으면 무척 아프다. 당해봐서 안다.
글로리아는 웃는 낯이었다.
"자자, 내일을 위해서라도 모두 쉬도록 해요. 여기서 더 머리 굴려봐야 의미도 없을 테고. 용사님을 믿도록 하자고요."
"그래. 그 편이 낫겠지."
글로리아가 해산하자고 부추기자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선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답니다. 글로리아가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카틀레야는 여전히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만.
/
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무장을 정비중이었다.
환도의 날을 세운다던가, 권총을 손질한다던가.
아무래도 내일도 입고 나갈 메이드복에 탄창을 채워두고, 옷의 방호력에 문제가 갈 만한 흠집은 없는지...etc.
그러다가, 문득 방 바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암살자의 습격 떄와는 다르다. 뭐라고 해야 좋을까.
어딘가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듯한 느낌.
"아가씨?"
목소리를 흘리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자신감 없어 보이는 노크 소리였다.
왜 그러시는 걸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코넬리아. 나, 들어가도 괜찮을까......?"
"물론이죠."
그런데 목소리가 조금 쉰 것 같은데.
쉬었다기보단. 음.
나는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반갑게 문을 열어주었다.
"에."
"어, 어떨까, 나."
키가 꽤 크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길지만, 어깨는 넓다.
뭐라고 해야 할까. 미소년?
루카가 여자 그려놓고 남자라고 우기기라면, 이쪽은 확실히 남자의 모습이지만, 절세의 미남이라는 느낌...일까.
나는 당황하지 않고 테레제의 팔목을 보았다.
팔찌는 없다. 뭐지.
"...그러니까? 어, 으음. 도련님?"
"노른데아셀에서 포, 폴리모프를 배웠던 게 기억이 나서."
쭈뼛거리는 테레제가 나름, 으음. 귀엽긴 한가.
원래 모습이 훨씬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그다지 감흥이 없다고 해야할까.
왜 이런 모습으로 온 걸까.
"어떄?"
"미남이네요."
"그게 다야?"
"폴리모프가 꽤 정교한 것 같아요."
"......그래."
테레제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응? 으응."
폴리모프 마법이라면, 나도 쓸 수 있을지도.
내가 나 자신에게 쓰는 건, 나의 내부에만 작용한다면 어떻게든 사용이 되니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만, 어차피 아일린에게 닿았다간 바로 해제될 테니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짧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 테레제는 어딘가 얼굴이 새빨갛다던가, 미묘한 표정으로 내 방을 둘러보다가, 내 침대에 앉았다.
"이젠, 으응.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잠깐 기다려주세요. 가서 차를 준비할게요."
"아니, 여기 있어줘."
"네? 네에."
테레제는 스읍, 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중요한 이야기인 모양이다.
"윌리엄이 그러더라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물론 아가씨...도련님...윽, 께서는 저를 사랑하고 계셔요."
"아무래도, 응. 조금 달라. 확실히 달라. 윌리엄이 그걸 지적했었고."
"다르다니......."
"이젠 알 것 같아. 내가 코넬리아를 단순히 좋아하고 동경하고 있던 게 아니라, 진정으로 연모하고 있었다는 걸."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
지금은 폴리모프한 탓에 몸에 끌려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긴 한데.
물론 아가씨가 내게 애정이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올 그런 건 아니었잖아.
아니면, 나만 착각하고 있었, 다던가?
"코넬리아는, 어때?"
"저는 아가씨가 좋아요. 유르덴의 공녀 테레제를 사랑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조금 갑작, 스럽다고 할까...요. 그게."
"......아일린 때문이야?"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대답 잘 해야한다. 나는
"그게에. 신분차이가, 있으니까."
"그런가."
테레제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가왔다. 뭔가 불길해서 한 발자국 뒤로 빠졌는데 벽이었다.
테레제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테레제의 폴리모프가 깨지지 않았다. 슬쩍 보니, 테레제가 목에 건 목걸이 형태의 마도구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자기 마법에 더해 마도구까지 썼나...!
아무래도 꼴이 오래 갈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글로리아처럼 출력으로 때려눕힐 생각이다.
"그럼 지금 임신하자. 일단 사생아라도 만들면 알아서 될 거야."
"노, 농담이시죠?"
"농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거야?"
순간 또 다시 숨이 멈췄다.
이번에는 물리적으로 멈췄다. 테레제에게 맞닿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뒤늦게 다시금 깨달았다.
테레제는 내게 움직이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크, 큰일이다.
테레제, 나를 보는 눈이 확실하게 이상해.
누가 약이라도 먹인 거 아닌가. 기습인가? 구해줄 사람은?
윽.
"강, 제로, 하실... 건가요?"
"......."
"사랑, 하신다면서......."
테레제가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주먹을 꾸욱 말아쥐더니, 자기 얼굴을 후려쳤다.
말릴 새도 없었다. 테레제는 거기에 더해 자기 목걸이를 풀어던졌다.
폴리모프가 풀린다.
"미안, 코넬리아. 미안해. 미안해......."
"아, 아뇨. 아가씨. 제가 그냥 매력적인 것뿐...."
아니지.
이건 한 잔소리 해줘야 한다.
"맞아요. 아가씨가 잘못했어요."
"......미안해."
"아가씨가 그렇게 싫어하던 에드윈 왕자 같은 짓을 하려던 거라고요."
테레제는 말이 없어졌다.
그러더니 조용히, 기는 개미 목소리로 말한다.
"용서, 받을..., 수 있을까?"
"네. 용서할게요. 대신 그 마법은 제대로 제어가 될 때까지 금지에요. 아무래도 뭔가 마법에 문제가 있어서 머리에 열병이라도 오신 것 같은데"
"너를 사랑하는 건 진심이야. 이건, 이제, 변하지 않아......!"
테레제가 나를 보았다.
눈물이 가득 맺힌 눈동자.
그러더니, 내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부탁이 있어."
"네, 아가씨."
"돌아오면 청혼해줘. 신분 차이? 성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아일린을 첩으로 들여도 괜찮아. 그러니 제발, 죽지 말고 돌아와서, 날 안아줘."
아마 중요한 부분은, 죽지 말고...겠지.
친인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심적 부담이 커졌을 뿐일 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응.
"네. 꼭 다시 돌아올게요."
일단 당면한 일부터 처리하고, 천천히 생각하자.
머리 아플 일만 늘어나는 것 같아서 곤란하기만 하다.
"그리고 전 여자인 아가씨 쪽이 더 좋아요."
"밝히기는."
테레제가 웅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