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장례식
* * *
"내가 어릴 적에 납치당했었던 일, 네게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듀오토의 관 위로 꽃이 뿌려질 즈음에 테레제가 입을 열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테레제는 여전히 꽃다웠으나, 금방이라도 시들어버릴 듯 힘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테레제의 모습에 가슴이 쓰라렸다.
"아니요."
"내가 아직 자그마할 적의 이야기야. 가업을 잇기 위해서 숙부님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을 무렵. 그러니까 너를 만나기 3년에서 4년 정도 더 이전의 이야기려나."
테레제는 그 때 일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안 그래도 듀오토가 죽어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물론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당시엔 그다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거든. 어린애잖아? 그냥 따라오라고 하니까 따라갔고, 솔직히 숙부님이 다 했어. 당시의 나는 숙부님 옆자리에서 얼굴이나 비추고 다니는 인형이었지."
"잘 상상가지 않네요."
"사람이 처음부터 다 잘할 수는 없잖아? 하여간에."
말을 잠시 멈춘 테레제는 다른 고용인들의 무덤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듀오토에게로.
"하루는 곰 수인들에게서 떠맡은 약을 엘프에게 팔러 갔었어. 그런데 나는 그게 엘프 마을의 초행길이었었고, 역시 어린애처럼 금방 엘프 마을의 풍경에 홀려서 한눈을 팔고 다니다가 미아가 됐지."
"엘프의 마을은 아름다우니까요."
"아냐.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냥 환혹마법에 걸린 것 같더라고. 그땐 내 마법도 그렇게 견고하지 않았었고, 결국 그렇게 납치됐어. 약이 부족했던 친구들이 나와 약을 교환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랬었군요."
"그때 듀오토가 출격했지. 아. 듀오토가 예전에 기사들과 시합을 하다가 다 때려부순 이야기는 해주었던가?"
"네."
빠득.
갑작스레 테레제가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이빨을 갈았다.
듀오토의 무쌍 이야기는 듀오토를 존경하던 게일 말튼베리와 듀오토를 믿지 못하던 나를 위해서 테레제가 해주었던 이야기였다.
게일도 듀오토도 둘 다 이젠 모두 죽었다.
누군가는 그들이 스스로 죽을 곳을 찾은 것뿐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말을 듣는다 한들 테레제가 자책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날 납치한 약쟁이들과, 그 위에서 실을 조종한 조직까지, 듀오토가 모조리 다 죽였어. 온갖 파괴마법을 보란 듯이 신나게 휘두르면서 아주 완전히 분쇄해버렸지."
내 눈앞에서.
테레제가 힘없이 덧붙였다.
"아무래도 유약한 어린애에게는 자극이 크더라고. 그래서 그때 이후로 나는 겁쟁이가 되어버렸고, 듀오토도 더 이상 지켜야할 사람 앞에선 전력을 내지 못하게 되었어. 화려하게 죄다 부수고 터트려버리면 훨씬 강했을 테지. 그럴 수 있었더라면 오늘 이렇게 허망하게 죽진 않았을 거야."
"그런가요."
"물론 듀오토가 그랬었더라면, 안 그래도 심성이 많이 여리신 우리 어머니께서 나보다도 더 심한 겁쟁이가 되셨겠지만."
그래도,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았을지도라며, 테레제가 한숨을 쉬었다.
아침이 오자, 유르덴 공작부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고작 벽 하나 바깥의 싸움이었는데, 전혀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전혀 들리지 않도록 듀오토가 목숨을 건 덕분이겠지.
그러나 아침이 되어 방에서 나온 유르덴 공작부인은 저택의 참상을 보고 놀라 혼절해, 지금은 듀오토가 끝까지 지켜낸 그 방에서 휴식 중이다.
"자기 죽음이 더 큰 불충이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겠지. 그도 그 나름대로 내게 악영향을 미친 걸 평생 후회하고 있던 모양이야."
"저는."
"그래. 멋대로 죽어버리면 곤란해. 그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게 얼마든지 민폐를 끼쳐도 좋으니까, 꼭 살아서 돌아오기만 해줘."
"굳이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죽을 생각 따윈 없어요."
테레제에게도, 아일린에게도, 누구도 슬프게 하고 싶진 않다.
굳이 연애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친한 사람을 잃는다는 건 아프잖아.
빌어먹을 듀오토도 일단 죽고 나니 이렇게나 기분이 더러운데, 테레제나 아일린이 죽었더라면의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절망해버릴 것만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테레제나 아일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물며 아일린은 최근 들어 소중한 것을 너무 많이 잃었다.
나까지 없어졌다간, 정말로 외로워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고독사건, 자살이건.
"미쳤어?!"
옆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일린과 오데트. 아일린이 오데트의 하나 남은 손목을 붙잡고 크게 비틀고 있었다.
오데트의 발치에는 날카로운 나이프가 한 자루.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었나.
하늘은 왜 이렇게 칙칙한 걸까.
카틀레야의 말대로, 왜 저렇게 쉽게 목숨을 내버리려 하는 걸까.
오데트가 울고, 아일린이 훈계한다. 아일린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모양이다만,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고.
그냥 듀오토의 관 위에다가 꽃을 하나 던졌다.
동물들이 싫어하는 향의 꽃이라더라. 그 하얀 꽃을 금방 흙이 덮었다.
"늦지 않게 왔네."
멀리서 마차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해, 천천히 가까워진다.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왔다.
"비켜! 비켜!!"
에드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에, 복장도 모험가 다운 복장이나 정돈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아서 한량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울고 있는 조문객들 사이를 헤집었다. 그러다가 이미 매장이 끝나 묘비까지 세운 세실리아의 묘비 앞에서 멈추었다.
"안녕하세요, 코넬리아. 그리고 그쪽이 테레제? 유르덴의 공녀시죠?"
"안녕하신가요, 용사 루카."
"아. 제대로 온 모양이네요."
에드윈이 묘비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동안, 이미 사정을 다 들은 루카가 조용히, 그리고 몰래 우리에게 찾아와 인사를 했다.
에드윈에겐 세실리아가 죽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세실리아가 정식으로 인가를 받아 성녀가 되고 나면 에드윈도 다 알게 되겠지만, 그 전까지만이라도 써먹을 건 써먹어야지.
루카도 '왕자님이 싫다는 이유로 죽은 척 도망쳤던 여자라면, 아무리 왕자님이라도 싫증이 나겠죠!'라며 순순히 도와주기로 했다.
"오는 길에 모험가 길드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유르덴 공작님과 그 아드님도 습격을 받긴 받았다는 모양이에요."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연락선이 끊겨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습격을 받긴 받았다'는 말은, 지금은 멀쩡하다는 뜻인가요?"
"들은 바로는 그렇네요. 두 분은 멀쩡하신 것 같아요."
호위가 다 죽었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인질이 되었다던가 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윌리엄의 단독행동이려나. 이클리시아 왕국이 움직일 생각이었더라면 결코 도망칠 수 없었겠죠."
"에드윈 왕자님도 동생 분의 만행에 크게 실망하신 모양이에요."
"어흑, 아흐으으그극, 세실리아아. 세실리아아아!!"
"부러워라."
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루카는 남자다.
테레제는 홀린 듯 에드윈을 바라보는 루카의 눈을 슬쩍 보더니, 에휴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쨌거나, 에드윈은 테레제가 한때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등짝을 노려지는 걸 멀찍이서 보고 있으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뭘 어때. 그냥 한심한 거 보는 눈이지.
어떻게 보던지 관심도 없는 루카는 천천히 에드윈에게 다가가 그의 뒤에 섰다.
울부짖던 에드윈은 칙칙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윌리엄! 윌리엄!!"
"왕자님. 이러다 몸 상하세요. 마지막으로 성녀님께 인사만 하고 그만 숙소로 돌아가죠."
"윌리엄, 나는 네놈을 죽이겠다!! 너는 이제 내 동생이 아니야... 권력에 미친 괴물이다!!"
".....괴물."
에드윈은 하늘에다 대고 다시 한 번 괴성을 질렀다.
권력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에드윈은 윌리엄이 자기 왕 자리를 더 공고히 하려고 굳이 세실리아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뭐.
멋대로 생각하라지.
그리고 루카도 무릎을 꿇고 악을 쓰는 에드윈을 품에 안았다.
"도와드릴게요, 괴물을 죽이는 게 용사 일이잖아요."
그런 말을 하는 루카의 눈이 괴물처럼 보였다만.
어딘가 광기가 어린 것이, 영 좋진 않았다.
사실 근데 그거 내 알 바 아니지. 전부 다 업보다 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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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이 책상을 주먹을 내려찍었다.
제대로 된 성과가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버려도 되는 실험체들을 버리기에 적절한 임무에 투입한 것뿐이고, 잃기에 아까운 지휘관들인 '하얀 기사'들은 한 명을 제외하면 다 살아서 돌아왔으니 손실도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실패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뿐이다.
"아버지는 대체 왜 유르덴의 축출을 반대하시는 거지?"
전쟁을 일으켜 유르덴을 밀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윌리엄은 아직 왕이 아니었다.
그리고 현 국왕은 전쟁을 반대했다.
'네 장난감이 유용한 건 확인했으나, 전쟁은 결코 소수의 정예병만으로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걸 증명해보일 생각으로 유르덴의 심장부를 찔렀는데.
대패했다.
고작 기사 하나에게 열이나 되는 작품을 잃지 않았나.
죽이면 안 될 성녀까지 죽여버려서, 그야말로 벌통을 쑤신 꼴이다.
"내 대가 오기 전에. 아니, 적어도 내 아들이 왕이 되기 전엔 유르덴을 잘라야만 해. 잘라내어야만 한다고......."
윌리엄은 이를 갈았다.
조급한 마음이라는 걸 스스로도 이해하고 있지만, 모험가가 되어서 금방 죽어버릴 줄 알았던 형이 정말로 용사와 접선하고, 용사 파티의 일원이 된 것이 그에게 타격을 주었다.
이어서 정말로 무슨 공이라도 세웠다간, 만에 하나 정말로 성녀와 이어져 성녀의 피가 섞인 아들이라도 낳았다간.
"젠장! 젠장!!"
"침착하시지요, 왕자님. 그래도 제가 성녀 후보를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닥쳐! 오히려 성녀 후보는 죽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오히려 세실리아는 에드윈 그 얼간이를 싫어하니까 차라리 그 년이 성녀가 되는 게 낫다고, 내가 분명 말했잖아! 어째서 내 말을 곧이 곧대로 이행하지 않는 거지? 대체 왜!?"
"왜? 꼬우면 처분하시지요? 우리 목숨 값이 아까워서 버튼도 못 누르면서."
"듀오토 그 남자가 강했던 것뿐입니다. 우리가 못난 게 아니라."
윌리엄이 눈앞의 반항심 가득한 하얀 기사들을 보며 이빨을 갈았다.
확실히, 여기서 손발을 다 처분할 수는 없다.
되는 일이 없다. 빌어먹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윌리엄은 결국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욕지기를 뱉으며 집무실에 하얀 기사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치듯 나갔다.
아마 첩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까. 하얀 기사들은 생각했다.
이내 그들도 다 자기 멋대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노기사는 자조와 함께 말한다.
"당신은 사람을 다루면서도 우리를 병기 다루듯 다루었고, 유르덴의 공녀는 병기를 다루면서도 자기 사람을 사람 다루듯 다루었지요. 승패는 거기서 난 겁니다. 어찌 아직도 모르시는 겁니까?"
한탄한다 한들 들어줄 사람 없다.
죽을 때까지 장기말처럼 쓰이다 죽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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