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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78화 (78/100)

〈 78화 〉 칼끝이 향할 때

* * *

종아리에 날카로운 격통이 느껴졌다.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살폈지만 적은커녕, 아일린 이외의 숨소리도 기척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나는 일어나 이불을 걷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내 종아리를 살펴보았다.

새벽. 해가 떠오르려 보랏빛이 사방에 만연했다.

눈은 금방 옅은 어둠에 적응하고, 내 종아리에는 분명하게 붉은 상처가 한 줄 남아 있었다.

마치 회초리 같은 것에 맞은 듯한 같은 상처.

그리고 다시 한 번, 상처가 내달린다.

아프다. 이번에는 붉게 핏방울이 맺혔다.

원격 공격...? 무엇인가의 저주?

또 다시 일격. 상처가 세 번 모두 정확히 같은 자리에 새겨진다.

살갗 위로 피가 새었다.

이상하네. 피가 날 정도의 공격인데, 크게 아프진 않아.

기껏해야 회초리 정도의 아픔이다.

여러모로 강화된 내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흐를 정도의 아픔은 결코 아니었다.

역시 저주 같은 건가? 하지만 왜 회초리.......

"무슨 일이야?"

맞은 편 침대에서 아일린이 일어났다.

감은 눈으로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피 냄새를 맡은 걸까.

민감하네.

"미안. 깨웠어?"

"지금 피가 나고 있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거야?"

"아마도......."

회복마법을 사용해봐도 전혀 낫지 않는다.

낫는 순간 다시 살이 갈라져서 원상복귀한다. 오히려 살이 갈라질 때 더 아프니 회복마법은 그만두기로 했다.

역시 저주인가­까지 생각했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테레제와 나는 상처를 공유한다.

아니, 다르지. 나는 테레제의 상처를 공유받는다.

이젠 테레제가 항상 몇 겹이나 되는 결계로 몸을 지키고 있는 탓에 상처 생길 일이 그다지 별로 없어 쉽게 잊곤 하지만, 하여간에 그렇다.

설마 테레제, 지금 회초리로 맞고 있는 건가?

"재판 받는다고 한 거 아니었었나......."

설마 고문이라도 받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한 번 회초리가 휘둘러진다.

피가 투둑투둑 튀었다.

"테레제를, 테레제를 구해야 해."

"진정해, 코넬리아. 그 상처랑 테레제가 무슨 연관이 있는...아. 테레제가 입은 상처가 네게 흘러들어온다고 했던가."

아일린이 침대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피로 젖어버린 종아리에 손을 뻗었다.

새벽 공기에 식어 살짝 차가운 손끝이 상처에 살짝 닿았다.

"읏......."

"회복마법 써 봐."

"응? 으응."

아일린의 손이 떨어진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충분히 멀찍히 떨어지자, 나는 내 상처에 마법을 사용했다.

회복이 듣는 듯했지만, 그 순간에 바로 다시 상처가 새겨졌다.

아프다.

"혼에 새겨진 마법은 역시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네."

온갖 마법을 깨트리는 칼날이라고는 해도, 혼을 벨 수는 없는 법이고.

아일린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 힘으로도 계약마법을 해제할 수 없는 건에 대해선 이미 확인했었지만, 으음.

역시 아일린도 깰 수 없나.

이제 와선, 뭐. 내 멋대로 계약마법을 깼다간 테레제 아가씨께서 아무래도 극대노하실테니 깨고 싶은 마음도 크게 들진 않지만.

"이, 이렇게 태연하게 있을 때가 아니야. 테레제가 고문이라도 받고 있으면 어떻게 해? 당장이라도 테, 테레제를 구해야 해."

"으음, 고문이라."

"아일린 어떡해.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난, 대체......."

"심정은 알겠지만, 코넬리아. 일단 진정해."

쿵쿵쿵.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거의 후려치고 있었다. 짜증의 감정이 팍팍 실려있는 게 딱 보였다.

아일린이 문을 한 번 노려보고는, 무기도 들지 않고 문으로 향했다.

"종자와 주인은 서로 닮는다더니, 그게 무슨 꼴이냐."

문 바깥엔 졸음과 짜증이 얼굴에 가득 새겨진 에드윈이 한심한 것을 보는 눈으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옆옆방이라던가. 루카와 다른 방을 쓰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던가.

하여간에.

"재판 결과가 나왔다."

"벌써......."

"'유르덴의 공녀 테레제에게 이번 고아원 학살의 죄를 물어 태형 스무 대에 처한다. 다만 유르덴 가문의 제국에 대한 헌신을 감안하여서 형구를 회초리로 감한다. 또한, 고아원의 주인인 메흐레니아 교단과 유르바덴 백작 빌헬름에게 각각 아이들의 목숨을 금화로써 배상하라.' 대강 이 정도라던데."

그 형 집행이 지금 진행된 모양이다.

스무 대. 지금은 피가 멎었다. 다시 회복 마법을 써보지만, 상처는 다시 새겨진다.

테레제가 회복마법으로 자기 자신의 상처를 지워야지 나도 지울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형벌이다보니 뭔가 길어지는 모양이다.

아니, 잠깐. 방금 에드윈이 뭐라 그랬더라.

"......잠깐만요. 고아원 학살의 죄를 물어? 그건 우리 아가씨 짓이 아니잖아요!"

"네가 그걸 반박해줘서 다행이군. 아무런 말도 없기에 정말로 테레제가 그런 짓을 저질렀나 생각하려던 참이다."

"아니, 아가씨도 같이 포격당했어요. 범인은 아마 그쪽 동생일 테고."

"그렇나......."

에드윈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했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침묵한 사이에 속으로 동생 욕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나도 테레제가 아무 생각 없이 고아원 아이들을 죽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 녀석에겐 고아원 아이들도 일종의 자원일 테니까. 다만, 아무래도 어차피 태형 정도로 끝날 거, 재판 길게 끌고 갈 생각 않고 내가 저지른 일이오, 하고 인정해버린 모양이지."

"그게 뭐야. 그냥 오명이잖아요!"

"......자랑은 아니지만, 공작가 따님의 신분쯤 되면 기소되어 주신 메흐렌의 이름이 새겨진 재판정에서 출두한 이상 , 구속 이하의 사소한 안건에 있어 이의를 제기하는 건 오히려 자기 명예를 더욱 더럽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차라리 오명이더라도 인정한다면 의인이라며 칭송받지. 우습지 않나?"

"사람을 죽인 게..., 사소한 안건이라고?"

내가 에드윈이 한 말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사이, 아일린이 대신 물었다.

그곳은,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아일린의 보금자리였다.

누군가가 언젠가 네 삶에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 묻는다면, 내 삶의 의미는 저기 호숫가에 다 있노라 당당히 대답할 수 있기를, 아일린은 그토록 바랬다.

그걸 모조리 앗아갔다.

그런데, 사소한 일. 사소한 안건.

아일린이 분노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미안하군. 말을 실수했다."

아일린이 이빨을 갈았다.

그리고 독기 가득한 목소리로 내뱉는 것이었다.

"너희 세계의 법도는 그런 모양이지. 괜찮아. 신경 안 써. 다만. 이번 일을 벌인 녀석 만큼은, 그 녀석이 누구건 간에 기쁘게 저 천상으로부터 끌어내려 내 법도로써 처벌해줄 테니까."

"그래도 학살이라고 표현한 것치고는 죗값이 적지. 피해자가 제국 신민이었더라면 아무리 공작 가문의 따님이라고 한들 태형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거야. 수인이나 마족, 반룡, 혹은 가능하다면­의 이야기지만, 엘프나 드워프까지. 인간이 아닌 종족이지만, 제국령에 속하여 외교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종에 대한 학살을 저질렀을 때나 받는 처벌 수준이군."

그 고아원에는 어떤 아이들이 있었지? 에드윈이 물었다.

나나 아일린이나 힘이 빠져서,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렇네요. 메흐레니아 교회가 우리를 보는 눈을 잘 알겠어요."

"실험체..., 인가."

한숨이 나왔다.

나는 뭘까. 꽤나 오랫동안, 그것도 아주 자주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었다.

"뭐, 됐다. 거의 무죄에 가까우니, 테레제도 곧 유르덴 령으로 돌아가겠지. 얼굴이라도 봐주고 오는 것이 어떻겠나."

"배려 고맙네요. 그쪽은 언제까지 여기 있을 생각인데요?"

"세실리아가 정식으로 이 파티에 들어올 때까지는 여기 머물러야지 않겠나."

"......뭐, 알았어요. 이번에 가서 세실리아 좀 데려오라 이거죠?"

"이해력이 빨라서 아주 좋아."

/

테레제는 하얀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녀 옆에 선 레랴도. 의자에 묶인 채 기절한 누군가를 꺠우기 위해 그의 뺨을 신나게 때리고 있는 카틀레야도, 모두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내려진 형벌이다. 낫는 그 순간까지 감내해야만 한다.

약을 바르는 것은 허가되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하다.

유르체피아의 모든 것은 메흐렌의 보우하심 아래에 자기 운명을 내려받는다. 한낱 약초에게도 메흐렌 신이 내린 운명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약은 괜찮다.

마법은 안 된다. 모든 마법은 여신 리튜아의 의인화이기에.

신에게 받은 형벌을 다른 신의 이름으로 지운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여, 여긴."

"안녕, 유르바덴의 빌헬름."

카틀레야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빌헬름이 눈을 떴다.

윌리엄은 아니다. 어제 재판에 윌리엄의 대타로 출석한 남자로, 솔직히 말해 테레제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너, 너는 유르덴의 공녀."

"그래. 네게­아니지. 네 주인에게 정말 커다란 선물을 받은 사람이야."

테레제는 종아리가 욱신거리는 것을 참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프다.

스무 대라고는 했지만, 테레제는 레랴나 카틀레야, 그리고 코넬리아와는 다르게 몸의 단련이 거의 되지 않은 소녀였다.

당연하지만, 언제나 달팽이처럼 결계로 몸을 감싼 채 살아왔으니, 아픔을 참는 법도 잘 알지 못한다.

본디 구형된 80대를 혼자 다 맞았더라면 지금쯤 걷지도 못하고 있을 거다.

아니,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앓아 누웠겠지.

형벌도 종자들과 나눌 수 있는 건 귀족의 특권이니까.

"똑똑히 한 번만 말할 테니까, 꼬리 말고 토끼굴에 숨어버린 네 주인에게 가서 전해. 내가 네 가족을 인질로 삼았었던 탓에 심기가 상한 건 아주 잘 알겠는데, 그래도 물어뜯을 생각이었더라면 이 하얀 목덜미에 송곳니를 깊게 박아넣어, 단번에 죽여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각오는 가졌어야만 했다고. 안일하게 덤벼선 안 되었다고."

"저, 저는 모릅니다. 아무것도."

"닥치고 듣고 기억이나 하세요. 우리 아가씨의 옥음을 여기 딱 한 번만 들려주는 거니까."

"잘 들어, 윌리엄. 애초에 싸움을 걸어온 건 너야. 네가 무슨 생각을 했었고 네가 어떤 짓을 하려던 건지, 알 바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다만, 내 사람과 나를 건드린 이상 그 대가는 치러야지."

테레제가 웃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아, 맞아. 재판. 인상적이었어. 심문관이 뭐라고 그랬더라?"

"타국에 제국의 무기를 팔아 제국에 불화를 일으키고, 신민이 죽도록 방치했다, 라고 말했었지요."

"윌리엄. 유르덴을 집어삼키고 싶으면 소집령을 내리고 선전포고를 해. 이런 재판놀이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저, 전쟁의 암캐."

유르바덴의 빌헬름으로 이용된 남성이 자기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렸다.

테레제는 싱긋 웃었다.

"너는 네가 사랑하는 아내를 암캐라고 부르는 못된 성벽이 있는 걸까?"

"히, 히익."

"내 입으로 직접 말하는 건 부끄럽지만, 나는 사랑받고 있어. 애완당하는 게 아니라 사랑받고 있다고. 왜냐하면, 전쟁이 가져다주는 돈 맛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모두 개가 되어 주인님의 손길에 배를 보이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의무다.

......영지민들을 위한 의무다.

스스로 입에 담으면서도 속으로는 이거 궤변이잖아­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레제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어딘가, 윌리엄 같은 놈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품은 자기 사람에게 포격을 때리는, 그런 사람 만큼은.

"내가 손익을 따질 때는 오직 모두 내 품 속의 사람들을 위해서 따질 때 뿐이야. 그리고 너는 선을 넘었어."

"그렇게 전하랍니다."

카틀레야가 남자를 풀어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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