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76화 (76/100)

〈 76화 〉 재회

* * *

뒤늦게 찾아온 기사가 하나 있었다.

험한 길을 달려오느라 만신창이가 된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듯 내려서, 흔적만 남은 담장을 지나쳤다.

폐허가 되어버린 교회, 다치고 상한 채, 기사가 만든 맛없는 스프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두돈반 트럭 위 아이들의 얼굴에는 암운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허겁지겁 자신이 아는 얼굴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없다면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며 아이들 틈바구니와 폐허가 된 교회 사이를 헤매었다.

유르덴의 기사들은 소속이 다른 그를 제지하지 않았으니, 그만큼 그의 표정이 절박하고 슬픔과 두려움이 흘러내리고 있던 까닭이다.

결국 무덤을 찾았다.

아렌트. 빌리. 류드밀라. 카렌. 비벨. 제인. 아이레스.

오데트가 기사 옆에 서서, 그가 묘비에 아이들의 이름을 새기는 걸 돕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산적의 습격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마수인가?

기사가 파리스와 마르티나, 그리고 마리스의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바빠서 자주 오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아마 마르티나가 아이를 가졌다고 들었을 무렵부터 줄곧 찾아오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자주 찾아왔었더라면.

혹여 이 습격 때 내가 여기에 있었더라면, 아이들을 더 구해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

"오웨인 경."

한 묘비 앞에 무릎을 꿇은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다 불타버린 잿더미가 쌓여있는 것처럼 무릎꿇고 있던 기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한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다 타버린 잿더미 같은 얼굴이 되어선 미안하다는 듯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었습니다."

"무슨 약속?"

"너희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내가 보살펴주겠다고."

오웨인이 주먹을 땅에 내려찍었다.

쿵. 주체할 수 없는 감정 탓에 피어오른 마력이 가득 담긴 탓에 흙이 잔뜩 튀었다.

오데트와 비석에 이름을 새기던 기사가 언짢은 듯한 얼굴로 오웨인을 노려보았다가, 혀를 한 번 차고는 다시 자기 일로 되돌아갔다.

"기사 실격이로군요."

"저기 두돈반에 탄 아이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어."

아일린이 내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다시 오웨인에게 돌려주었다.

오웨인은 아일린의 말을 듣더니, 그랬군요­하고 힘없이 중얼거리고는, 무릎 꿇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일린을 마주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왕자 윌리엄이 유르덴 병사로 위장한 용병단을 보냈다고 하더라. 나와 유르덴의 공녀 테레제를 제거하려고 했던 모양이야."

"......그랬습니까."

오웨인이 원망스레 나를 보았다.

그렇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국 남탓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리라.

"오웨인 경."

아일린이 나지막히 오웨인을 불렀다.

오웨인이 왜 그러느냐는 듯 나로부터 아일린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나는 아일린과 함께 윌리엄을 죽일 거야."

"복수...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도와줘. 안 그래도 네 주인이 윌리엄 때문에 곤란하잖아?"

"아. 에드윈 왕자님 이미 이클리시아의 장자로써 내려받은 정당한 계승권을 내려놓았습니다.

"어? 설마......."

"아, 아뇨. 딱히 윌리엄 왕자님이 뭔가 한 건 아니고, 단지 에드윈 왕자님이 용사의 동료가 되어서 세상을 구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며 전하와 심각한 언쟁을 나눈 끝에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만."

뭔가, 그거.

내가 아는 에드윈이 아닌 듯한데.

어. 아닌가? 내가 아는 에드윈 그 자체인가?

생각해보면 생각이 짧고 좀 답답해보이긴 해도, 뭔가 명예나 정의나 그런 걸 추구하는 스타일, 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세실리아를 덮쳤다가 미수로 끝난 게 있으니 자랑스럽진 못하지만.

"세실리아 양이 성녀가 되면 자연스레 용사의 파티에 들어갈 테니, 아무래도 그걸 노린 모양입니다."

"그 사랑이 테레제에게 향하기만 했어도......."

"정말 그렇습니다. 이제 와서 세실리아 양이 왕자님을 다시 보아줄 것 같지도 않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나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아니, 물론 지금이야 그 인간이 테레제 가까이 가는 것조차 용납해주지 못하겠지만, 옛날에 그랬었더라면­, 의 이야기다.

지금은 절대 안 된다. 그 자식이 다시 테레제에게 집적대면 내가 그 새끼 때려죽이고 자살할 거다.

차라리 세실리아를 향한 순애­가 맞나 모르겠다만­에 뚝심과 줏대가 있어서 오히려 이런 한탄이 나온 거지, 딱히 테레제랑 에드윈을 다시 이어주겠다는 생각따위 결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는 이클리시아에 속한 기사. 설령 제가 새 세자 저하을 싫어하고, 그대들에게 어떤 무거운 빚이 있다 하더라도, 그대들을 제 손으로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에드윈에게 우릴 데려다 줘."

"......무슨 짓을 할 생각입니까?"

"나도 이클리시아라는 나라 전체와 홀로­, 아니지. 아일린과 둘이서라도, 한 나라와 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아. 그러니까 동료를 구해야지."

"하지만."

"응? 아일린. 우리가 이클리시아를 무너트리겠다는 소리 했었어? 그냥 용사랑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을 뿐이잖아."

끼어들어서 한 마디 한다.

오웨인은 고민스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고.

"그래, 오웨인 경. 당신은 오늘 슬픔에 겨워서 우리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마디도 듣지 못한 거야."

"정말 후회스러운 하루가 되겠군요."

오웨인이 중얼거렸다.

뒤에서 푸르릉, 하고 말이 콧김을 뱉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뭔가 싶어서 고개를 홱 돌렸더니, 듀오토가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걸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듀오토 경."

"심려치 마시지요, 오웨인 경. 아, 아니군. 깊게 심려하십시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저 역시 그리할 터이니."

어느새 나타난 듀오토가 말 두 마리를 남겨놓고 떠나간다.

그런데 왜 하필 말일까. 오토바이도 좋잖아.

하여간에.

"곤란하군요. 저는 빨리 오느라 기계를 타고 왔습니다. 발을 맞추긴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말과 교감해 마력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체질로는 무리겠지요, 라고 오웨인이 덧붙인다.

알아, 이 자식아.

느그 오토바이 배기통 소리 우렁차더라.

"......이렇게 하죠. 이 말은 제가 챙길 테니. 그대들은 제 기계를 타고 가십시오. 용사 루카 페르디온과 제 옛 주인은 지금쯤 정체를 감추고 제도 드라킬라이나의 모험가 길드에서 동료를 찾고 있을 겁니다."

"루카 페르디온이라."

"정체를 감추고 있을 테니, 우르 반 라파트라는 이름도 기억해두십시오. 용사의 가명입니다."

"좋아. 고마워, 오웨인."

오웨인은 그냥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나와 아일린은 자리를 떠나, 쓰러져 있는 강철의 기계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역시 판타지라는 건지, 일반적인 바이크보다는 SF에나 나올 법한 날렵한 호버 바이크의 디자인을 더 닮아 있었다.

물론 호버 바이크가 아니라 바퀴가 제대로 달린 바이크지만.

아일린을 뒷자리에 앉게 하고, 자리에 올라타 운전대를 붙잡았다.

쿠르릉. 배기통 소리가 우렁차다.

이 세상에 떨어지고 바이크 소리를 들을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건지, 이 숲이 고요해서 그런 건지, 유난히도 더 소리가 컸다.

"코넬리아. 이런 거 좋아해? 굉장히 흥분한 것 같은데."

"아마 마음에 들 거야."

기계가 달리기 시작한다.

속도감이­. 음.

내가 전력으로 달리는 거랑 비슷한 거 같지 않아?

/

깊은 밤. 겨우 도착했다.

정말 간만에 제국 수도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노른데아셀과 모이라이아의 높은 첨탑은 여전하고, 제도 어디서도 보이는 황궁의 웅장함 역시도 여전했다.

그리고 모험가 길드.

여느 매체에서 그렇듯, 1층은 주점으로 개조되어 왁자지껄했다.

에드윈을 찾으려 수색 마법을 쓰려다가, 그다지 모험가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건 좋지 않겠다 싶어서 얌전히 게시판으로 향했다.

"있어?"

"우르 반 라파트. 있네."

금방 찾았다.

제국령 외곽에서 발생한 마왕을 사냥하러 갈 동료 구함.

마왕을 같이 토벌하자는 공고를 무슨 마을 바깥에서 출몰한 오크나 고블린 잡을 사람 구함, 같은 식으로 붙여놓았다.

이걸 뜯어서 길드 접수원에게 넘겨주면 금방 접선하는 걸 도와주겠지만, 나나 아일린은 모험가가 아니다.

모험가증­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다만­이라도 내놓으라고 말하면 곤란해지니 어쩔 수가 없었다.

"에드윈 찾았어."

"응? 어떻게."

"2층. 안쪽이야. 목소리가 들리는 걸."

믿음직스럽네.

2층으로 곧바로 올라가, 안쪽 테이블을 찾았다.

"저는 에드윈 님이 너무 좋아서 어쩔 수가 없는 걸요!!"

"자, 잠깐. 루카!!"

뭐야 또.

안쪽 테이블을 둘러보려고 눈을 굴린 그 순간에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그리고 한 소녀가 눈물이라도 닦는 듯 팔뚝으로 눈을 가린 채 우리를 지나쳐 길드에서 뛰쳐나간다.

어느새 인상이 많이 변한 에드윈이 사라져버린 루카에게 팔을 뻗었다가, 우리를 눈치 챈듯 더더욱 얼굴이 굳었다.

"어, 너, 너희들은 여기 왜."

"여기 있었네요, 왕자님."

아일린이 앞서나가 에드윈의 맞은 편에 앉았다.

에드윈의 옆에는 이미 술에 절어서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엘프 청년이 한 명. 지팡이가 그의 옆에 기대어 있는 걸 보면 마법사로 보였다.

무시해도 괜찮겠네.

"잠깐, 왕자인 거 비밀이라고!"

"아, 그거 우리 알 바 아니고요."

"이야. 신수가 훤칠하시네요. 모험가 일이 좀 체질에 맞으셨나봐요? 벌써 여자도 하나 후리시는 걸 보면."

나도 아일린의 옆에 앉았다.

"여자? 아니, 잠깐."

"세실리아가 들으면 좋아하겠어요."

"너희들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 방금 그거 여자 아니야. 남자라고. 여자같이 생긴 남자라고. 나는 말해두지만, 그 자식에겐 동료 정도의 정 밖에 없단 말이다!"

뭐 어쩌라고.

내 알 바인가. 거 다 업보에요, 업보.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봐요, 왕자님. 우리 일 좀 하나 같이 합시다."

조금 하드보일드 했으려나?

아님 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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