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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73화 (73/100)

〈 73화 〉 절망

* * *

좋은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쾅, 하고.

가까운 곳에서 폭발이 일었다.

땅을 뒤흔드는 진동. 창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폭연.

무슨 일이야, 하고 떠올릴 새도 없었다.

연이어서 폭발이 일어난다.

쾅, 쾅, 쾅. 하고.

누군가의 폭격? 누가? 오래 고민할 새도 없이 벽을 와르르 무너트리며 박격포탄 하나가 원장실에 날아들었다.

"적습입니다, 아가씨!!"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레랴였다. 몇 백 년간 최전선에서 굴렀던 소녀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이겠지.

레랴는 쿼터스태프를 뽑아들어, 불발인지 터지는 것이 늦은 것인지 아직 폭발하지 않은 박격포탄을 겨누어 결계 속에 가두어, 결계 째로 압축해서 파괴했다.

카틀레야는 재빨리 패닉에 빠져 목소리를 떨고 있는 테레제의 팔목을 붙잡아 일으켰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런 상황에선 전혀 테레제를 도울 수 없다.

내 체질이 테레제나 다른 사람들이 두른 수호 결계를 깨트릴 뿐이니까.

포격은 계속 이어진다.

이 교회, 여기의 아이들을 모조리 불로써 지워버리겠다는 듯이.

"안 돼......."

"언니, 나가면 위험해요!"

"여기 있어 봐야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칼을 뽑아든 아일린은 오데트의 손을 떨쳐내고 망설임 없이 박살난 벽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안 돼.

팔을 뻗었지만, 늦었다.

아무리 아일린이 초인이더라도, 선이나 점을 그리는 공격이라면 모를까 박격포탄의 폭발이나 흩날리는 파편처럼 면을 만드는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물며 마법이 전혀 섞이지 않은 폭격.

나는 패닉에 빠져 덜덜 떨고 있는 테레제를 한 번 뒤돌아보고, 그녀가 카틀레야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고, 다시 등을 돌렸다.

"가, 가지 마, 코넬리아."

"......죄송해요."

"제발 내 곁에 있으란 말이야. 왜 항상 내 곁에 있어달라는 명령은 하나같이 전부 다 듣지도 않고 무시하는 건데......!"

대답할 수 없다.

아일린과 테레제가 똑같이 소중할 뿐이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라고.

양 단 한 마리를 잃더라도 아쉬울 것을, 내게 있어선 아일린과 테레제가 각각 50마리의 양이며, 더군다나 또한 테레제는 지금 두 믿음직스러운 메이드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50마리의 양인 셈이다.

내 몸은 비록 반쯤 사람을 그만둔 몸이지만, 나는, 코넬리아는, 어디까지나 하나를 잃어도 전전긍긍하고, 하나를 되찾아도 기뻐 춤을 추는, 평범한 감성의 사람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붙잡는다 한들 더 잃을 것이 두려워서 뛰쳐나가지 않을 수가 있으랴.

"꼭 다시 돌아올게요."

나는 수호결계를 펼치고, 아일린의 뒤를 따라 포화가 춤을 추는 저편으로 힘껏 달렸다.

여기저기 낯익은 얼굴들이 땅을 구르며 흩어져 있었다.

렐리아, 아멜리, 토비.

아이샤 수녀. 유리네 수녀.

류드밀라.

류드밀라에겐, 어째선지 칼에 베인 상처가 남아있었다.

그래, 포격만이 전부가 아니겠지.

"젠, 장할."

쾅. 지상에 틀어박힌 박격포탄이 폭발해 불길과 파편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투둑투둑. 폭발과 함께 떠올랐던 자갈, 먼지, 잔해들이 내가 두른 마나 실드 위로 떨어지더니 실드를 타고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눈앞에서 피어오른 불길과 폭발의 섬광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떴더니, 쓰러져있던 작은 류드밀라의 형체가 검게 탄 자국만 남겨놓고 사라져 있었다.

이래서야, 시체조차 구할 수 없잖아.

"­­­­­­­­!!!"

목놓아 아일린을 불렀다.

폭발 탓에 귀가 먹먹해서 내 목소리를 내가 들을 수 없었다.

아일린은. 눈도 보이지 않는 그 애가 이 아비규환 속에서 과연 멀쩡할까.

아일린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비상식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언제인가, 나 역시도 스스로를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었고, 결국 기관총을 든 붉은 반룡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렸었다.

아일린이 마법과 전혀 연이 없는 화기로 무장한 적과 싸워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걱정이 눈물이 되어 눈가에서 자꾸만 흘러내렸다.

계속해서 아일린을 불렀다.

아일린, 아일린, 아일린, 하고.

"아­­씨. 누굴 ­­­­게 찾­­­?"

포화 사이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베어죽인 듯, 핏물로 번들번들한 검을 든 여성이었다.

두르고 있는 망토에는 마력 반응이 크게 나타나서, 마나 실드를 한층 더 두껍게 보조하는 마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포격으로 발을 묶고, 아군오사를 마음껏 당해도 상관 없을 정도의 방호력을 가진 병력을 투입해 마무리를 짓는다­인가.

"누가 이런 짓을 했지?"

검을 든 여성이 뭐라고 말한다.

들리지 않지만, 입모양은 말한다.

내­가­왜­그­걸­알­려­주­냐.

"이 멍청아."

"그건 잘만 들리네."

더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

빠르게 달려들어가, 여성의 손목을 붙잡아 비틀고 바로 업어치기로 내던졌다.

여성은 당황한 듯 내던져지면서도 똑바로 자세를 갖추었다.

상당히 훈련된 병사. 특수부대 같은 느낌일까.

아무래도 기사 정도는 아닌 것 같다만.

그래도 자신의 마도구가 기능을 잃었다는 사실은 몰랐는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세를 갖춘 그 순간, 그 자리로 날아들어온 박격포탄에 직격당해 형체도 없이 폭발사산한다.

"반대쪽인가......."

여자 병사가 나온 쪽의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아일린이 이쪽으로 향했더라면, 이딴 잡졸은 이미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반대방향이라면, 호수인가.

순간, 마르티나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거의 거대한 망치로 두들겨진 듯한 꼴이 된 정원을 지나쳐, 와르르 무너진 담장을 지나쳐 호수로 내달렸다.

서른 명 가량의 병사들을 모조리 썰어버리고 칼에 묻은 피를 터는 아일린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에 튄 피가 마치 피눈물처럼 보였다.

"아일린. 무사했구나."

"......나는 무사했어."

파리스가 포격에 맞아 타오르는 자기 통나무 집 벽에 등을 기댄 채 죽어 있었다.

몸에 총알구멍이 잔뜩 나있었다. 힘이 풀린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벌목용 도끼의 도끼날에는 누군가의 피가 질척질척하게 묻어 있었다.

그럼 마르티나는. 마리스는.

묻지 않았다. 알아채고 말았다.

아일린이 타오르는 오두막에 그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테레제가 오기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았어."

"아일린. 하지만, 이건."

"그래, 몰라.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아일린.......""

아일린이 칼을 뻗어 한 병사의 가슴팍에 칼끝을 대었다.

그리고 툭, 하고, 그가 목에 걸고 있던 인식표를 뜯어내어 내게 던졌다.

"알려줘. 누가 보냈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위장이라고."

"말해, 코넬리아!!"

아일린이 소리쳤다.

유르덴의 문장. 인정할 수 없고, 말할 수 있을 리도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아일린에게 답을 주는 꼴이다.

"이상해. 테레제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비켜, 코넬리아."

"그래. 윌리엄이야, 윌리엄. 그 새끼가 다 꾸민 거라고!"

"응, 맞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안 돼. 테레제에게 손을 대는 건 내가 용납하지 않아."

"괜찮아. 어떻게든 될 거야. 계약의 끈? 내가 잘라버릴게."

아일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교회 쪽으로 향한다.

나는 두 팔 벌려 그 앞을 막았지만, 아일린은 망설임 없이 나의 목을 향해 손날을 휘둘렀다.

"큭!"

"왜 막은 거야. 코넬리아는 그냥 잠이나 자고 있으라고!"

"오해일지도 모르잖아! 조금, 조금만 머리를 식히자, 우리. 응?!"

"오해라면 풀 거야. 칼날로 충분히 풀 수 있어. 그러니 비켜. 세 번째는 없어."

"절대 비킬 수 없어."

아일린이 시력을 잃어 텅 비어버린 눈을 크게 뜨고서,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투명한 눈물이 한 방울 흘러, 피를 닦아내린다.

실의에 빠진 얼굴.

아일린도 이해하고 있었을 터다. 지금 테레제에게 검을 휘두른다면, 그건 그야말로 분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패배한 개. 아일린의 그런 표정을 마주하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냐."

"그런데 왜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불행해지는 거야?"

"너만 그런 거 아냐. 마침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동병상련이네."

"왜 내 손은 이렇게 작은 건데?! 왜 전부 흘러내리고 마냐고!!"

한낱 사람이니까,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가가서 아일린을 잠시 끌어안아줄 뿐.

어느새 포격이 그쳐 있었다.

그리고 불이 타닥거리는 소리.

그것에 섞인 말발굽 소리.

병사들을 이끌고 힘차게 달려온 펠릭스 심문관이 우리를 보고도 지나친다.

마치 우리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듯이, 망설임 하나 없이 교회 쪽으로 내달린다.

"테레제를 잡으러 가는 모양인데."

아일린이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나를 툭, 밀어내었다.

테레제가 저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테레제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포격을 때린 건 누구인가.

포격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교회 병사들이 진입하는 이유는 또 뭔가.

전혀 모르겠다. 휘말렸을 뿐인 나나 아일린에겐 너무나도 얼토당토않는 일이라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시체들 사이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어디 가려고?"

"테레제를 구해야지."

"왜?"

"아직 테레제를 섬기고 있으니까."

"교회의 사람들이 테레제를 잡으러 간다면 유죄잖아. 너는 목줄이 걸려서 협박당한 것뿐이야. 교회 사람들이 네 저주를 풀어주고, 자유가 되는 것만 기다리면 되는 거 아냐?"

"나는 테레제를 믿어. 아일린 너를 믿는 만큼이나 테레제도 믿는다고."

"네 연인은 나야. 내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아일린이 눈물자국에 섞인 피를 닦아내었다.

"너는 테레제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

미안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물론 테레제의 얼굴을 보았더라면, 그 아이가 원흉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아일린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곧바로 미안해, 하고 말을 얼버무렸지만, 아일린에겐 상처가 되었으리라.

"마음대로 해."

"아일린......?"

"나는 아이들을 묻어줘야 해. 그러니 널 따라가진 않아."

"......알았어. 미안해."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았다만, 아일린에게 감히 같이 해달라고 부탁할 염치는 없었다.

아일린으로서도 최대한 양보한 셈이겠지.

나는 입술을 깨물고, 아일린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기다릴게."

아일린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래도 널 미워할 수 없는 모양이야."

"고마워."

"착각하지 마. 정말로 테레제가 원흉이 아니라는 걸 네가 증명하러 와 줘. 아니라면, 그 여자의 머리는 내 것이 될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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