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70화 (70/100)

〈 70화 〉 경고

* * *

아일린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교회의 정원을 거닐었다.

갑자기 웬 휠체어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오우거에게 밟혔을 때 아무래도 척추가 망가졌었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경이로운 실험체 회복력에 더불어 내가 나 자신에게 사용하는 회복마법 덕분에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하는데, 수녀들과 아일린이 내게 무리하는 걸 허가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렇게, 맹인 소녀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정상인(진)의 우스꽝스러운 꼴이다.

그런데 그냥 산책하는 것도 무리하는 거라고 봐야 하나?

보통 재활훈련도 하고 그러지 않나. 난 잘 모르겠다만.

수녀들만이라면 이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일린을 설득할 자신은 없었다.

“언니, 여기 계셨네요!!”

오데트의 활발한 목소리.

언뜻 보기엔 그냥 대형견이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것과 같은 모양새라서, 아무래도 무슨 큰일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팔 하나 잃고도 아직 충분히 씩씩한 오데트는 뭔가를 쥐고 있었다.

엉성하게 엮은 화관이 2개. 도대체 팔 하나로 어떻게 엮은 거야.

“선물이에요, 언니!”

“선물?”

“두 분이 같이 쓰시면 예쁠 것 같아요.”

“써?”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일린은 선물이라는 게 먹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더니 그렇게 기쁘다는 표정을 짓진 않았다.

꽃의 달콤한 냄새와 과자의 설탕 냄새가 비슷하긴 한가.

물론 오데트도 오데트 나름대로 아일린의 표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혼자 만족하고선 만면에 웃음을 띠고서 아일린의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었다만.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나에게도 화관을 씌워주었다.

“역시 예쁘다아.......”

“화관이구나. 고마워, 오데트.”

“천만에요. 두 분 모두 예쁘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잘 어울리니까 꾸미지 않으면 손해에요.”

“에헤헤. 코넬리아. 우리 잘 어울린대.”

아일린이 부끄러운 듯 풀어진 웃음을 흘렸다.

나도 덩달아 미소짓게 만드는 따뜻한 미소였다.

“전 이제 그만 가볼게요! 두 분 편히 쉬세요!”

“응. 나중에 봐, 오데트.”

그러더니 오데트가 뭐에 쫓긴다는 듯,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정원에서 사라졌다.

뭔가 의문이 들기도 전에, 정원 바깥에서 커다란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앗! 오데트 언니! 여기 있었네요!! 어서 내 화관을 돌려주는 거예요!!”

......류드밀라였다.

손 하나로 대체 어떻게 화관을 엮었나 했더니, 애들에게서 갈취한 거였냐.

“그건 나랑 파리스 오빠가 쓸 화관인 거예요!”

“바보야! 파리스 오빠는 이미 결혼했어! 화관 같은 걸 선물로 줘 봐야 파리스 오빠만 난처할 거라니까 왜 알아듣질 못하니?”

“싫어! 몰라! 언젠가 마르티나 언니를 죽여서라도 파리스 오빠를 되찾고야 말 거예요! 그러니 하여튼 간에 어서 내 화관 내놓으라는 거야아!”

“이게 진짜!”

으음.

누굴 죽인다던가, 뭔가 흉흉한 말이 섞여있던 것 같은데.

“아일린 언니랑 코넬리아 언니에게 이미 줘버렸으니까 새로 엮던가말던가 알아서 해!!”

“왜 내 걸 마음대로 막 줘요!? ...어라. 으음? 아일링 언니에게 줬어요?”

“그래.”

“어디 계세요? 저도 볼래요!!”

“쉬는 거 방해하지 말렴.”

“왜 오데트 언니만 좋은 거 싹 빼먹어요?! 나도 볼 거야아아아아아!!”

아일린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휠체어를 몰아 정원 바깥으로 향해, 오데트와 대치한 류드밀라의 앞에서 휠체어를 멈추었다.

“좋은 점심, 류드밀라. 네가 만든 화관인 줄은 몰랐어. 돌려줄게.”

“어.... 그게.”

아일린이 화관을 벗어 류드밀라에게 내밀었지만, 류드밀라는 받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한 번 써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아일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류드밀라의 부탁을 들어, 화관을 자기 머리에 썼다.

“와아..., 류드밀라도 저런 예쁜 신붓감이 되고 싶은 거예요.”

“자, 이거 받아가. 소꿉놀이라면 지금도 할 수 있으니까.”

“돼, 됐어요! 괜찮은 거예요! 이 화관은 아일링 언니랑 코넬랴 언니가 쓰는 거예요!! 저는 더 예쁜 화관을 엮어서 펠릭스 오빠랑 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부디 제 화관을 받아주세요!”

그렇게 외치더니 다다다 달려서 도망가버렸다.

아일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머리에 쓴 화관을 벗진 않았다.

오히려 휠체어를 몰아서, 교회 바깥의 호숫가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게다가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어서 그다지 잔잔한 호수는 아니었다.

물론 아이들의 통제를 맡은 수녀가 죽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일린 자신은 그다지 시끌벅적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는 모양이었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곳은 싫어하지 않았다.

“어! 류드밀라의 화관이다!!”

“왜 언니들이 류드밀라 언니의 화관을 쓰고 있는 거야?”

“나도 써보고 싶어!”

“안 돼. 너한테는 안 어울려. 저런 건 아일린 언니 같은 미녀가 써야지 멋진 거야!”

“으아앙!! 마틸다 수녀님!! 빌리가 놀려!!”

혼란스럽네.

아일린은 그런 와중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고, 조용히 '잠시만 여기서 쉬자.'라고 말한 뒤에 휠체어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흙바닥에 앉아, 구름처럼 몰려들어온 아이들에게 예쁜 꽃을 가져오면 화관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죽고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수녀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나도 조금 걸어도 괜찮을까?”

“안 돼. 거기 앉아있어.”

“조금 정도는 괜찮잖아. 재활 운동도 좀 해야지.”

“......아플 땐 쉬는 게 제일이야. 아니면 내 곁에 있는 게 싫어?”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건 반칙이잖아.”

“코넬리아는 혼자 내버려두면 훌쩍 떠나버릴 것 같아서 반칙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어.”

"멀리 안 갈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아일린이 계속 휠체어를 타게 하는 데다가, 세 끼니 다 잘 나오고 곤란한 거 옆에서 누가 다 처리해주고 그러니, 뭔가 사람이 게을러지는 느낌이라 곤란하다.

혹시 아일린이 이걸 노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휠체어와 휠체어를 밀어주는 아일린에게 의존하게 되도록­

에이, 설마.

그런 것에 의존증을 보였다간 사람 실격이다.

“10분이야. 10분 안에 꼭 돌아와.”

“알았어, 알았어.”

솔직히 한 번쯤은 검을 휘둘러봐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10분은 아무래도 조금 짧네.

가슴이 폭풍 성장을 한 탓에 예전처럼 검을 휘두를 수나 있을지가 걱정이다.

험악한 세상인데다가, 여기서 계속 지낼 수도 없을 테니까.

그냥 내 발로 바람을 쐰다고 생각하니 그다지 나쁘지도 않네.

“코넬리아 언니. 오래간만이야.”

얼마 걷지 않아, 아기를 안은 마르티나가 아는 체를 해왔다.

6개월 만에 상당히 자란 아기가 체구가 작은 마르티나에겐 조금 버거워 보이기도 했는데, 실제로도 꽤 버겁다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아이의 무게나 덩치 탓은 아니다.

아직도 마르티나가 아직 어리고 미숙한 탓에, 먹여야 할 젖이 아기를 굶겨야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충분하게 먹일 수 있을 만큼 나오지는 않는다고.

나나 아일린을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아이이니 더 할 말이 더 있으랴.

“응, 오래간만.”

“몸은 좀 괜찮아?”

“다 나은 것 같긴 해. 아일린이 걱정하는 탓에 아직 휠체어 신세지만.”

“뭐야. 그럼 다 나은 게 아니잖아.”

“거의 다 나았다고 할게, 그럼.”

마르티나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더니, 나를 지이이 노려보았다.

왜 그러는 걸까 싶었더니, 시선이 내 가슴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르티나?”

“역시 언니는 훌륭한 엄마가 되겠어.”

“저기요.”

“기왕 만났는데, 마리스에게 젖 좀 물려주고 가지 않겠어? 코넬리아 언니의 모유라면 우리 애도 정말 좋아할 것 같은데.”

“농담이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순간 치한을 만난 여자애처럼 팔로 나의 가슴을 가리고 말았지만, 누가 뭐라 할 수 없으리라.

팔로 다 가려지지도 않네, 빌어먹을.

“으음. 마리스, 마리스. 코넬리아 이모의 우유를 마셔보고 싶진 않니?”

이모냐....

“가우 갸아아 갸우우.”

“마시고 싶다는데? 우리 마리스는 농담할 줄 몰라.”

“말을 할 줄 모르는 거겠지.”

젖동냥, 이라고 하던가?

생명은, 아기의 건강은 물론 소중하니까, 꼭 반드시 필요하다면..., 치욕을 감수..., 아니. 치욕까지 가야 하는 건가?

생명은 소중하니까?

백보 양보해서, 정말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필요하다면 어떻게 젖을 물려줄 수도 있기야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애초에 임신도 안 했는데 젖이 나올 수가 있나?

“장난이야, 언니. 우리 마리스는 이상하게 내 젖이 아니면 안 먹으려 하더라고. 그렇다고 또 양이 적다고 울면서 투정을 부리지는 않으니 신기해.”

“착한 아이네.”

“아빠 닮아서 나쁜 아이인 걸지도 몰라. 그게 아니면 커다란 가슴들을 다 무시하고 내 젖만 먹으려 하겠어?”

“그래, 고생하는 구나.”

“맞아, 언니! 파리스 오빠 이야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내 말 좀 들어줘! 아니 있잖아, 아직 마리스의 돌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있잖아, 이틀 전인가 밤에 갑자기 나한테 마리스도 그만 자고 있으니까 둘째 만들기를 하자는 거야!”

왜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 걸까.

조언도 뭣도 못 줄 거 같은데.

“아, 그래.”

“하긴 했었지만..., 우리 오빠 좀 너무 생각 없는 것 같지 않아?”

으음.

생각이 없긴 없나...?

그냥 신혼부부 사이에서 깨가 쏟아지는 거라고 생각하자.

이런 이야기는, 글쎄. 내 상식으로 재단할 수가 없으니 힘들다.

내가 살던 곳의 상식대로라면 파리스는 이미 감옥에 갔겠지.

“다음에 만나면 무릎을 걷어차 줄게”

“꼭 부탁할게, 언니!”

“그래, 그래. 뭣하면 지금 잡으러 갈까나.”

나는 마르티나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그 자리를 뒤로 했다.

여기 계속 있었다간 마르티나의 수다에 말려들 것 같아서. 음.

그렇게 아예 호숫가에서 빠져나와 숲속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더 걷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얼굴. 하프엘프. 메이드복.

아니, 처음 보는 얼굴이긴 하지만, 무척이나 누군가가 떠오르는 얼굴.

길을 걷다 마주쳤다고 하기에는, 나를 너무 지그시 노려보고 있었다.

애초에 이 근처까지 오는 마을 사람도 없고.

분명 나랑 관련이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당신이 코넬리아입니까?”

“네? 뭐어. 제가 코넬리아에요.”

“저는 카틀레야. 당신을 대신해 테레제 아가씨의 시녀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대신해서? 나를 대신했다고?

눈치채보면, 나는 이미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가씨께선 어제 당신의 위치를 특정했어요.”

“아가씨가­.”

“아마 내일 즈음에 찾아오시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내일, 이라고요? 어서 준비해야겠네요.”

“아뇨.”

카틀레야가 칼처럼 내 말을 잘랐다.

“여길 떠나, 부디 아가씨와 만나지 말아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야.”

카틀레야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말에 감정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어디서 나타난 누구일지 모를 사람이 갑자기 내게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제 고조모이자 유르덴의 하우스 키퍼이신 글로리아 님이 하신 말씀에 따르면, 당신은 테레제 아가씨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가씨는 당신에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하마터면 당신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더라고.”

“.......테레제는 강한 아이야. 의존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누가 누구를.”

문득 떠올려 본다.

혼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발작하던 아이.

물론 원인은 내가 아니지만, 내가 그 증세를 더 심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고.

가능성은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흘러갔었을 수도 있다.

“글쎄요. 저는 그 당시에는 유르덴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부디 곰곰히 생각해주세요. 저는 지금 돌아가 오늘과 내일 아가씨를 최대한 붙잡아놓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떠나려면 부디 그 안에.”

꾸벅, 하고 스르르.

인사를 마친 카틀레야가 나타났을 때처럼 모습을 감춘다.

나는 망연히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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