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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67화 (67/100)

〈 67화 〉 알비노

* * *

숲길을 내달리다가, 아일린과 나뉘었다.

밤의 장막이 고즈넉하게 내려앉은 숲속은 광원이라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그야말로 한끝 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별도 달도 무성하게 자라난 나뭇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음산한 안개마저 감돌고 있으니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다는 느낌.

아일린에게는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풍경일지도 모르겠네.

사실 아일린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고 오히려 내가 걱정 받아야 할 판이지.

“오데트! 들리면 대답해!!”

수색 마법에 잡히는 건 밤잠에 든 새들. 쥐들. 각종 야생 동물들.

오데트도 나와 같은 실험 및 개조를 받았으니, 아마 수색 마법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설령 잡힌다 한들, 쥐나 올빼미 이상으로 반응이 크게 돌아오진 않겠지.

차라리 나나 아일린을 찾는 게 빠를 거다. 우리들을 찾으려면 아예 그 어떤 것도 감지되지 않는 음영지역을 찾아가면 그만일 테니까.

오히려 우리랑 다르게 반응이 작게 돌아오기라도 한다는 게 더 문제다.

동물인지 오데트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어.

그리고 지금 마력 음영지역은 전혀 보이지 않않는다.

오데트는 아일린은 물론, 나 정도의 성공작조차도 아니다 이거지.

좋은 말이야. 사람에 가깝다는 뜻이니까.

“제길, 오데트!!”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내 고함 소리에 놀란 새들이 푸드덕 도망칠 뿐.

오데트는 물론, 유리카를 습격한 그 괴물이라는 녀석도 보이질 않았다. 감지되지도 않았다.

유리카는 아직 아이니까 혼자 다니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몇몇 아이가 더 당했을 터. 우리 아이들을 습격해서 사냥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소리인데, 그런 짐승이라면 필시 마수거나, 마수에 준하는 야수이리라.

그런데 그런 강대한 마수가 감지되지 않을 리가 없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마력 반응을 보여주면 보여주겠지.

“그렇다는 건, 아일린 쪽인가......?”

이쪽이 아니라면, 어서 지원하러 가야만­.

잠깐.

발을 돌리려다 말고,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서, 감지 범위를 더욱 넓혔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범위까지.

물론 이렇게까지 크게 확대해버리면 작은 음영구역마저 쓸데없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오데트를 찾는 데엔 별 쓸모가 없어지겠지만....

숲에는 균등하게 짐승들이 퍼져 있다.

하지만 나의 주변만큼은 지도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텅 비어 있었다.

물론 내가 감지되지 않는 체질이기에 그런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데트!!”

다시 한 번 소리 질렀다.

내가 아무 말 않고 있던 탓에 둥지로 되돌아왔던 작은 짐승들이 다시 도망치고, 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경계태세를 취한다.

그런 동물들이 그린 모양이 제법 고리처럼 보였다.

“...그럴싸, 한가.”

그런 뒤에 주변을 살폈다.

조금 먼 곳에 비슷한 곳이 하나 더 있다. 아일린이 있는 곳이 아니다.

확인을 마친 나는 곧바로 내달렸다.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 사이사이를 전력으로 달리는 건 꽤 스릴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속도로 부딪치면 어디 부러지는 걸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

“­­­­­­­­­­­­­­­­­!!”

겨우 멀리서 비명소리 같은 게 들렸다.

목소리가 아니다. 목청을 찢어내며 내지르는 한낱 울부짖음.

영혼의 비통과 육체의 고통이 동시에 담겨있었다.

오데트인지는 알 수 없다. 없지만, 발을 늦출 순 없다.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낡은 칼집에서 아밍 소드를 뽑아 들었다.

슬프지만, 테레제가 내게 주었던 소중한 선물, 아레이유와 검은 환도, 그리고 권총은 모두 교회에 압수되었다.

휘둘러 벨 수만 있다면 무기를 가리지는 않는다만, 그것도 사람 상대의 이야기.

마수가 상대라면 또 어떨지.

아레이유의 그립감이 그립긴 하네.

“오데트!!”

“코넬리아, 언니......?!”

가느다랗고 다 쉬어버린 목소리지만, 일단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직 살아있어. 나는 수풀을 뚫고, 나무 둥치를 짓밟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길을 막는 나무들 위를 지나쳐 나뭇가지를 뚫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크게 낙하했다.

“언니..., 어떻게....”

“Grrrrrr......?”

못생긴 괴물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갑작스레 자기 눈앞에 나타난 내 얼굴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살폈다.

덩치 큰 외눈박이 괴물이다. 사이클롭스?

아니. 그보다는 확연히 작다. 외눈박이 오우거라고 해야 할까.

의도치는 않았지만, 오데트와 오우거 사이에 딱 알맞게 착지했다.

“미안해. 늦었네 ”

오데트의 왼쪽 어깻죽지가 뜯겨나가 있었다.

왼쪽 발목은 오우거의 억센 손아귀에 붙잡혀 세게 쥐여진 듯 피투성이었고, 부러진 뼈가 옷과 살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가 힘겹게 숨을 한 번 몰아쉴 때마다, 팔이 뜯겨나간 상처와 발목의 부러져 튀어나온 뼈로부터 피가 마치 분수처럼 펑펑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은 아직 도끼를 굳세게 쥐고 있었고, 부러진 다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타고난 정신력이건, 약물 탓이건, 어찌 되었던 간에.

“괜찮아요, 언니. 저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여태 잘 버텼어. 그만 쉬고 있어.”

“안 돼요. 언니가 싸우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쉬겠어요?”

“방해밖에 안 되니까 물러나 있어!”

“방해라니. 그럼 더더욱 제 가치를 증명해야겠네요!!”

창백한 얼굴의 오데트가 힘찬 목소리로 허리를 펴더니, 손에 쥔 도끼를 오우거에게 겨누었다.

큰 목소리로 기합까지 넣었다. 피가 픽픽 쏟아지고 있는데.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도대체 뭘 당하면 저런 상처로도 행복하다는 듯한 얼굴을 할 수 있냐고.

전쟁병기.

나도, 너도.

내가 그 시설에서 조금 더 약을 맞았더라면, 너처럼 되었을까.

과거와 기억, 이름마저 잃어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죽음 앞으로 내몰려져도 저렇듯 백치처럼 웃게 되었을까.

“빌어먹을, 윌리엄......!”

“네? 윌리엄?”

“됐어. 저거 죽이고 어서 돌아가자.”

칼끝을 오우거에게 겨누었다.

그러자 오우거는 우물거리는 것을 멈추고 입에 있던 걸 퉤, 하고 뱉고는 씨익 웃었다.

뱉은 것은 새빨간 덩어리. 박살난 뼈 같은 게 섞였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들을 흔들었다.

달빛이 새어들고, 나무 그림자 아래서 짙은 회색만을 갖고 있던 오우거가 자기 본연의 색깔을 그대로 내보였다.

하얀 체모.

핏빛을 그대로 투영해내는 새빨간 외눈.

알비노의 형질이 심각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리고 아까 수색 마법을 사용했을 때에도, 마력을 전혀 감지해낼 수 없었지.

“......우리는 도대체 뭘까.”

“언니. 왜 그러세요?”

“아냐, 됐어.”

별 생각이 없다면 됐다.

몸도 성치 않아 보이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오데트. 역시 넌 빠져있는 편이 낫겠어.”

“언니!”

“아니, 말을 잘못했네. 숲 어딘가에 아일린이 있어. 찾아서 데려와줘.”

“아일린 언니가요...?”

오데트가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절뚝거리면서도 무척 빠르게 전장에서 빠져나간다.

저런 상처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Grrr......aaaaa!!”

오우거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뽑아 오데트에게 내던졌다.

“윽. 위험해, 오데....”

“흐랴아아아압!!”

달려나가던 오데트가 한 바퀴 빙글 돌면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매섭게 날아드는 아름드리 나무에게 도끼를 내던졌다.

쾅. 나무가 분쇄된다.

“괜찮아요, 언니!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GRRAAAAAAA!!!”

오우거가 높게 뛰었다.

오데트에게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하늘에서 격추당해 박살난 나무로부터 눈을 빨리 떼고, 내게 정면으로 짓쳐들어오는 오우거를 마주했다.

박력 넘치네.

아무리 내가 탈인간급 능력치를 갖고 있다 해도 이건 좀 위험하겠어.

아무래도 저 녀석도 탈오우거급 근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니까­

짧은 생각.

오우거의 돌진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놈의 발목을 베었다.

벤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단단하네.”

“Kirrrrr.......”

그래도 느낌은 있었는지, 나무 몇 개를 분쇄하며 돌진을 겨우 멈춘 오우거가 무턱대고 내 쪽으로 다시 돌진하려 하진 않았다.

조용히, 경계심 가득한 모습으로 이쪽을 살폈다.

이렇게 시간을 버는 것도 나쁘진 않나.

어려운 상대는 아닌 것 같은데, 오우거의 발목를 베었던.

아니, 두들겼던 검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야수 정도라면 모를까, 이런 괴물을 상대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어.

“약점은 역시 눈이려나.”

마법은 통하지 않겠지.

그러는 사이, 오우거의 신체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도약했나?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장난 아니게 빠르잖아.

굼뜨고 멍청한 오우거라기보다는, 지상 최강의 남자 쪽 아닌가 싶을 정도야.

“큭......?!”

검으로 주먹을 받아냈지만, 힘에서 밀렸다.

아일린 이후로 두 번째. 듀오토도 나를 힘으로 어떻게 할 순 없었으니까.

겨우 검을 옆으로 흘려, 어렵사리 오우거의 일격을 견뎌내었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빠르고, 상처 하나 없지.

내가 검을 흘려낸 순간, 마치 자기가 무투가라도 된다는 양 몸을 빙글 돌리며 킥을 날려왔다.

내 몸의 절반보다 거대한 발바닥이 덮쳐온다.

그래도, 순발력으로는 내가 조금 더 빠른 모양인지.

“Grru??”

창끝처럼 깊숙하게 내질러진 오우거의 다리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뒤늦게 내 위치를 알아챈 오우거가 나를 떨쳐내려 하기 전에 재빠르게 한 걸음을 밟아, 쭉 뻗은 다리 위를 단번에 내달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순간에서 크게 일보 도약.

무방비하게 뜨인 커다란 외눈에다 대고 매섭게 칼을 내질렀다.

캉.

칼날이 중간 언저리에서 부러진다.

무방비가 아니다. 애초에 막을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다.

“빌어먹을 메흐레니아.”

아레이유였더라면 분명 눈을 꿰었을 것이고, 환도였더라면 눈 뒤의 작은 뇌를 헤집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눈을 노릴 필요조차도 없었겠지.

하지만, 이런 조잡한 검으로는, 무리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유리판 위에 수묵화를 그려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Graaaaaaaa!!!!”

“카흑......!”

그나마 타격적인 데미지는 주었는지, 오우거가 눈을 질끈 감고 팔을 사방으로 마구 휘둘렀다.

그거에 얻어걸려서 한 대 후려맞았다.

실린 힘이 어찌나 무식한지 라켓에 맞은 테니스 공처럼 날아가 땅을 데굴데굴 굴렀는데, 어디 한 쪽 부러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더럽게 아프네.

“Graaa. Graaaa!!”

비틀비틀 일어나고 있자니, 오우거가 눈물을 흘리며 다가왔다.

다가오다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정면.

이번에는 막을 수 없어. 식은땀이 흐르기도 전에, 주먹이 복부를 강타했다.

워낙에 큰 주먹이라서, 상반신 전체가 두들겨맞은 기분이다.

아니.

허리로부터 그 위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숨 뱉는 소리도, 비명 소리도 흘리지 못하고 땅을 굴렀다.

다행히 허리가 진짜 찢어지진 않았다만.

“Grruia!! Graaa!!!”

오우거가 다가온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다 이겼다는 듯 느긋하다.

이대로 있다간 잡아먹히겠지. 그건 싫거든.

아일린에게 포상을 받아야 한단 말이야.

다가온 오우거가 발로 내 배를 짓눌렀다.

반항하지 않고 짓누르게 두었다, 만.

비명을 지르기엔 너무 지쳤는데도, 나지막한 비명이 내 가슴 속에서 저절로 튀어나갔다.

참지 못하고 눈물마저 주르륵 흘리고 말았가.

내장이 입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다행히 내 결정을 후회해야 할 만큼 오래 짓밟진 않았다.

그래.

먹어야 할 부위를 다 터트려버리면 아깝겠지.

“Grrrrr......”

그러더니 허리를 숙이고, 내 가슴 언저리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래.

기껏 해봐야 짐승이지.

나는 부서질 것만 같은 몸을 채찍질해, 바로 옆에 떨어져 있던 오데트의 도끼를 주워들었다.

아까 내던져서 오우거가 던진 나무를 격추시켰던 그거.

그리고 오우거의 외눈에다가 냅다 내려찍었다.

아까 검을 내지르면서 새긴 작은 흠집에다가, 정확하게.

“Graaaaaaaaaaaaa!!!!”

분노한 오우거가 발을 들어 쿵쿵 땅을 짓밟는다.

난 이미 몸을 굴려 그 언저리에서 빠져나왔고, 오우거의 눈알에 박힌 도끼는 도낏날이 다 박혀들어가서 상당한 치명상이었다.

저 도끼자루를 한 번 걷어차면,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어?”

그럴 생각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는데 몸이 비틀, 하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몸 상태가 최악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데트 이상으로 망가지진 않았다.

아직 움직일 만 한데, 왜.

문득, 가슴에 질척질척하게 묻은 침의 냄새가 무진장 고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냄새가 나쁜 게 아니라, 실험실 화학기구의 냄새를 닮아 있었다.

이거 혹시, 마비독... 같은 건가?

나름 머리 썼는걸, 윌리엄.

마법이 통하지 않으면 독으로 발을 묶고 죽인다.

나름 타당한 신체 개조였어.

하지만 아일린에겐 통하지 않을 거야.

이런 더러운 액체 따위는 아일린의 옷자락에조차 닿지 못할 테니.

물론 너도 그걸 알면서도 일단 풀어놓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겠지만.

“Graaaaa!!!”

“여기구나.”

오우거가 사방에 파괴를 불러오며 내게 점점 다가온다.

다행인 점은, 그 파괴가 내게 닿기 전에 뛰어내린 아일린이 오우거를 깍뚝썰기하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일까.

그 직후에, 나는 곧장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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