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65화 (65/100)

〈 65화 〉 손님

* * *

들고갔던 빨랫감들은 이미 빨래가 다 끝난 뒤였다.

오데트인지 다른 아이인지. 일단 류드밀라는 아니겠지.

지금 기절해서 오데트의 등에 업혀 있으니까.

범상찮은 근력의 아일린이 짱돌로 머리를 제대로 후려쳤는데 피는커녕 혹 하나 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데트의 등에 업힌 채 세상 모르고 고롱고롱 잘 자고 있다.

물론 아일린이 손속을 두긴 두었겠지만, 류드밀라도 역시 평범하진 않다고 할까.

나랑 똑같이 하얀 머리카락에 빨간 눈. 언뜻 보면 찌끄매서 토끼같다.

앞머리도 숱이 무척 많아서 토끼가 귀를 접고 있는 듯한 모양새고.

그런데 평범하지 않은 건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냅다 짱돌로 후려치는 건 교육상 좋지 않지 않을까?

“괜찮아?”

“응.......”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는데, 아일린이 와서 상냥한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어주었다.

아까 키스할 때 자리가 안 좋았는지 허리가 아팠다.

분명 몸은 튼튼한 편인데. 왜인지 바로 낫질 않네.

“빨래바구니 들어줘서 고마워요, 렐리아.”

“아냐. 안 무거워. 그리고 발을 삐어서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렐리아는 우리보다도 연상인 아가씨였다, 만.

너무 착하다. 발 삐었다고 거짓말 한 게 양심에 찔린다.

아니면 오데트처럼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집 밖에서 아이를 안고 산책 중인 마르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호숫가를 지났다.

온도라던가 먼지라던가. 아직 갓난아이에게 괜찮은걸까 싶긴 하지만.

현대도 아니니까.

그냥 잘 컸으면 좋겠네.

그리고 교회 앞.

어째서일까 마차가 몇 대씩이나 서있었다.

“윽.......”

하늘의 초승달과 달을 보며 울부짖는 늑대. 이클리시아 왕국의 문장이었다.

유르덴의 문장이러면 한 순간 놀라더라도 곧바로 다시 납득은 했겠지.

그런데 이클리시아라.

왜 저 문장이 여기에 있는 걸까.

내가 당황해서 발을 멈추자, 아일린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마차가 보여서.”

“마차가 왜?”

아일린은 마차가 있다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물론 말 냄새라던가, 말이 푸르릉거리는 소리 같은 걸 감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클리시아의 마차라는 것은 알 수 없겠지.

아일린에겐 보이지 않을 테니까.

“이클리시아 왕국에서 온 마차야.”

“아. 그거라면 오웨인일 거야. 왕자랑 세실리아가 사이가 좋을 적부터 왕자 대신 자주 찾아와서 우리 편의를 봐줬거든.”

먹을 걸 가져온다던가. 옷을 가져온다던가. 아일린이 덧붙였다.

익숙하다는 듯한 말투.

사이가 좋을 적부터­라고 굳이 말한 건, 그 둘이 불미스럽게 헤어진 이래로도 오웨인은 가끔 자의로 찾아왔다는 소리겠지.

그럼 뭐, 걱정할 필요는 없으려나.

어쩌면 오웨인에게 테레제의 소식을 들을 수도 있겠네.

나랑 테레제를 싫어하다못해 미워하는 것 같아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윌리엄보단 낫겠지.

나는 또 혹시나 윌리엄인가 싶어서 걱정했잖아.

“그래도, 으음. 마차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것 같긴 하네.”

불길한 소리 하지 마.

걱정되니까.

“쇠 냄새도 나고. 병사보단..., 기사인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

그렇게 말하더니, 아일린은 땅을 짚는 데 쓰던 지팡이를 자기 가슴께 언저리까지 올려 받쳐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위로. 쇄골 즈음에서 칼자루에.

왼손을 아래로. 명치 즈음에서 칼집에.

언뜻 보면 칼이라는 것도 알기 어려우니 무슨 자세일까 싶지만, 아일린 특유의 발도 자세이자 경계 태세였다.

그리고 잠시 정지.

앞서 나가던 아이들도 아일린의 발소리가 멈추자 소리를 죽이고 기다렸다.

쉬잇, 하고 어린아이들이 자기 입술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으음.”

한 번 발을 멈춘 아일린은 마치 레이더처럼 사방 만물을 감지한다.

만물, 이라 말하면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리고 간격 안쪽으로 다가오는 뭔가가 한 번 감지되면, 그대로 뽑혀나간 칼날이 CIWS처럼 요격한다.

이것도 조금 과장 같지만 내 체감상으로는 비교할 만한 게 그런 거밖에 없다.

“살짝 훔쳐들었는데, 아무래도 별 거 아닌 모양이야.”

대체 어떻게 들은 거야

아직 교회는 조금 먼 데다가, 설마 들을 수 있다 해도 교회 안에 사람이 한둘이겠냐고.

마법도 안 썼잖아. 사람 맞아?

“그래? 다행이다.”

“먹을 걸 가져왔나봐. 어서 돌아가자.”

“먹을 거?!”

오데트의 등 위에서 류드밀라가 마치 그물에 붙잡힌 물고기처럼 펄떡 고개를 들었다.

물론 아래에 있던 오데트는 깜짝 놀라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류드밀라는 먹을 거라는 소리에 정신이 팔려, 여태까지 업고 돌아와 준 오데트에게 감사 인사조차 않고 그녀의 등에서 휙 내려와 바람 같이 교회로 내달렸다.

“언니. 이래도 회초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들이 다 저렇지 뭐.”

...간식 시간에 제일 먼저 뛰어갔던 게 141번 아가씨다.

그게 지금 누구더라.

“왜 날 봐, 코넬리아?”

“그래.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왜. 불만 있어?”

“아뇨.......”

하긴.

이젠 나나 아일린이나, 아이라고 말하기엔 여러 의미로 곤란하긴 하려나.

응?

뭐.

딱히 미성년자 개념도 없는 동네잖아.

16살 지나서 머리 굵으면 다 어른이야.

그리고 나는 잘 모르긴 몰라도 16살은 훌쩍 넘었으니까.

“와아아아! 사탕이다, 사탕! 사탕은 처음 봐!”

류드밀라가 크게 외치는 소리.

오데트의 미간 주름이 깊어져만 간다.

교회 안뜰에서 깔끔한 정복과 망토를 입은 세 명의 기사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커다란 나무 상자에서 여러 형태의 사탕을 퍼주듯 나눠주고 있었다.

사탕 상자가 어째 공장에서 막 나온 탄약 상자처럼 생긴 게 아이러니하네.

그런데, 오웨인이 없네.

“사탕, 이라고?”

아일린은 신경 안 쓰는 거 같다.

오히려 사탕에 정신이 팔린 듯한 목소리다.

그러더니 아일린은 소리 없이 오데트에게 다가갔다.

“오데트.”

“네, 언니.”

“나 대신 사탕 좀 받아와줄래? 대신 내가 네 몫까지 빨래바구니 들어줄게.”

“아뇨!! 언니!! 제가!! 바구니까지 들고!! 다녀올게요!!”

그러더니 오데트가 빨래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아이들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뭔가 아이돌을 만난 열성팬 같은 느낌?

짬도 찼고, 열성팬도 생기고. 편하겠네, 이 말년병장 아가씨야.

“달콤한 건 좋아해.”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아일린이 뭔가 찔린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굳이 입을 열길래 지그시 쳐다봐 주었더니, 입가가 풀어져선 헤실헤실 웃었다.

“그런데 사탕이라니. 오웨인 월급으로는 비쌀 텐데.”

아무리 오웨인이 왕자의 전속기사라고 하더라도, 사탕과 설탕은 아직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적어도 월급 갖고서 이렇게 막 퍼줄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이 정도 양이면 가문의 사비를 끌어오던가 해야할 정도겠지.

아마 고기가 훨씬 싸게 먹히겠지. 더 배부르고.

그런데 굳이 사탕이라면.

“오웨인이 아닌 건가?”

“아까 들어보니까 별 거 아니라면서.”

“과자 준다는 건 들었지. 오웨인 목소리는 아까도 못 들었어. 그래서 교회 안쪽에 있는 건가 싶었었지.”

아일린이 으음, 하고 짧은 신음 소리를 흘리는 사이, 한 수녀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용건이 있어 보이는 쪽은 우리 같네.

“아일린.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단다. 손님께서 널 기다려.”

“네? 저를, 기다려요?”

아일린이 왜 하필 나를 찾느냐는 듯한 말투로 되묻자, 수녀는 쉽게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짓으로 나를 슬쩍슬쩍 흘겨보았다.

물론 아일린에게 그런 비언어적 대화수단이 닿을 리가 없고, 결국 한숨과 함께 자기 입으로 말했다.

“네가 감시하고 있는 그 아가씨를 뵙고 싶다고 하더구나.”

“직접 말하면 될 텐데. 일단 알겠어요, 피비 수녀님.”

“그래. 원장실에서 기다리고 계실 게야.”

딱히 원장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다만, 예전에 쓰던 게 그대로 남아있으니.

아일린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미련이 남은 듯 사탕 상자 쪽으로 한 번 고개를 돌렸다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심란해할 건 없지 않을까.

오데트가 챙겨온 사탕 먹으면 되잖아.

“지금 먹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손님 쪽을 우선하기로 한 이상, 두 번 다시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이 사탕 받으러 다 나가버린 탓에 텅텅 비어버린 복도를 지나, 1층 가장 안쪽의 방에 한 번 노크를 한 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아가씨들.”

윌리엄의 목소리.

빌어먹을. 역시 윌리엄이었잖아.

나쁜 예감은 틀리질 않는다더니.

“누구세요?”

아일린이 물었다.

의외였다. 실험의 원흉을 윌리엄으로 확정하고 계속 추격하고 있었으면서, 아직 윌리엄의 목소리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론 왕자는 왕자니까 모를 법도 하지만.

이 개자식은 아일린에 대해 알면서, 왜 여기에 기어들어온 거야.

도망친 노예라도 되찾겠다 이거냐.

“저는 빌헬름입니다. 코넬리아 아가씨는 구면이었죠?”

“아. 처음 뵙겠습니다. 아일린이라고 해요.”

“아아. 더블린 아가씨의 시녀로 잠시 계셨던가요. 기억나네요.”

윌리엄의 등 뒤에는 운디네가 서있었다.

그것은 일렁이면서, 지신의 몸 일부. 즉, 물로 글자를 만들어서 자기 등 뒤에 띄워놓고 있었다.

‘조용히 하세요. 입을 열면 죽입니다.’ 라고.

누구를? 아일린을? 그건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금속실 탓에 만족스레 움직이지도 못하고, 무기 하나 없는 나조차도 쉽게 죽이지 못할 거다.

하물며 아일린의 곁에 있으니, 내 신변도 걱정이 되진 않는다.

그럼 아마, 바깥의 아이들을 말하는 것일까.

역시 그렇겠지.

“안녕하세요. 아일린. 이렇게 인사하게 되어서 기쁘네요. 아무튼,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려 하는데..., 혹시 아일린 양은 옆에 계신 코넬리아 양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여기 뭣하러 오셨나요.”

아일린이 싸늘하게 대답한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글자의 형태를 하고 있던 운디네가 아일린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전투 태세를 갖추고, 윌리엄도 웃는 낯을 그만두고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침묵. 윌리엄은 뭔가 계산한 것 같다.

원흉이 자신이라는 걸 아일린이 알고 있어서 이렇게 싸늘하게 말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본 교회의 후원자가 되려는 사람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본심은 숨겼군.

아무래도 그 시설이 함락된 것에 내가 한 몫 했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인데.

아니면 알면서도 삭히고 있다던가.

여긴 대체 어떻게 찾아온 거야?

“펠릭스 사제님이 코넬리아의 신변을 제게 전적으로 맡기셨습니다. 이 교회의 후원자가 되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셨는데, 혹 사제님께 연락을 받지 못하신 건가요? 저로서는 빌헬름 씨께서 왜 코넬리아에 대해 캐묻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만.”

“그 아가씨가 제 친우인 유르덴의 공녀 테레제의 메이드이기 때문이죠. 세간엔 실종되었다고 알려졌는데 교회에서 억지로 감금하고 있는 것이라면, 저는 후원할 명분이 사라지기에.”

“......사연이 있어 현재 교회에서 보호 중입니다.”

“기억은 있으십니까? 아까부터 말씀이 없으십니다만.”

대답해도 좋다. 운디네가 그렇게 형상을 이루었다.

나는 치를 떨며 윌리엄에게 대답했다.

“비교적 정상입니다만.”

“그건 다행이네요. 하지만 테레제가 매우 걱정하고 있답니다.”

유르덴 양이다.

함부러 우리 아가씨 이름 막 부르지마. 이 자식아.

“아가씨에겐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한낱 메이드가 메흐레니아 교회의 압력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설령 할 수 있다 한들, 할 수 있다 하여서 저질러 버리면 그 역시도 유르덴 가문에 먹칠을 하는 일이 될 터인지라.”

“좋아요. 그렇게 전해드리지요.”

“성은이 망극하네요.”

윌리엄이 나를 노려보았다.

윌리엄인 것도 알리면 안 된다 이거지.

“자. 다음 안건입니다만. 잠시 죄송한데, 이 방에 잠시 코넬리아 아가씨와 단 둘이서만 남도록 해주시겠습니까?”

“왜죠?”

윌리엄이 짜증 난다는 듯 아일린을 노려보았다.

잠시 그렇게 노려보더니, 다시 생글생글 웃음을 가장한 역겨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테레제 아가씨에게 보낼 편지라도 쓰는 게 좋지 않겠나요. 편지 쓰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더라고요.”

“그럼 반대로 빌헬름 씨가 퇴실해야겠네요. 저는 보지 못하니까.”

“이거 참.”

운디네가 조금 격한 글씨체로 문장을 만들었다.

저 여자를 나가게 해라. 아니면 죽는다.

자꾸 누굴 죽인다는 거야.

“조금만 부탁할게, 아일린. 테레제 관련해서 할 말이 있나 봐.”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그러시던가.”

아일린은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는다는 듯 불퉁한 말투로 툭 내뱉더니, 원장실에서 나가 문을 닫았다.

금속실이 문틈에 끼였다. 멀리 가진 못하겠지.

아일린 정도 청력이라면 밖에서 다 듣고 있을 거다.

결계를 쳐도 그냥 무시하겠지.

윌리엄도 그것을 보았는지, 입을 열며 동시에 운디네를 시켜 허공에 글씨를 썼다.

“테레제, 요즘 엄청 울고 있었어요.”

­ 물의 요정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걱정되지만, 구속된 탓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에.”

“역시 제가 와서 다행인 것 같네요.”

­ 물가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요.

“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펜과 종이는 어디 있나요?”

“잠깐만요. 챙겨온 게 있거든요.”

­ 1시간 전. 동굴 호수. 다 보였어요.

­ 게다가 제 운디네라면 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할 수도 있답니다.

글자에 마침표가 찍히기 무섭게, 운디네가 둘로 분열하더니, 나와 아일린의 형태가 되어선, 서로 얽혀 진하게 키스하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이, 이 미친놈이.

하지만 윌리엄은 이미 자기가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지, 싱글싱글 역겨운 웃음으로 내 시선을 받아쳤다.

그러다가, 품속에서 꺼내어 내게 주려던 펜을 다시 자기 품속으로 되돌렸다.

그래. 너도 펜에 찔려 죽고 싶진 않겠지.

“테레제가 알면 좋아하겠어요.”

“......네, 아가씨가. 참.”

­ 사랑하는 종자가 죽은 줄 알았더니, 얼굴 모를 여자랑 태평하게 얽혀있다니.

­ 테레제가 꽤 복잡한 성격이잖아요. 재밌어질 것 같지 않나요?

거기에 더불어서, 소리 없이 입만 움직여서­

'무능한 주제에.'라고.

내가 시설 박살낸 건 확실히 모르는 모양이네요.

그쪽도 그다지 날더러 무능하다고 말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그죠?

“그래서, 제가 어쩔까요?”

“그냥 이대로 있어 주세요.”

아일린을 그 몸으로 묶어 놓아라.

그거면 된다.

운디네가 그렇게 알렸다.

이야아, 정말 다행이네요.

내가 몸을 바쳐야 하는 사람이 어딘가의 귀축귀족이나 인외 괴물이 아니라 우리 귀엽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일린이라서.

사실 이딴 놈의 명령 같은 건 듣고 싶지 않다.

그러니 다만 이건 윌리엄의 명령을 듣는 게 아니라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뿐이다.

변명 끝.

“때가 되면 데리러 올 테니까.”

안 와도 돼, 이 쓰레기야.

내 위치가 네게 흘러나갔더라면, 언젠가 곧 테레제도 날 찾아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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