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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59화 (59/100)

〈 59화 〉 소중한 선물

* * *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 수도원에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메흐레니아 교회에서 파견된, 학교 선생님 같은 느낌의 수녀님이 몇몇 분들 계셨고, 차분한 노신사의 느낌과 학교 수위의 느낌이 동시에 드는 할아버지 성기사가 한 분 계셨다.

이제 이틀 정도 머물렀지만, 아이들이 입은 옷이 수도복을 닮았다던가, 수녀님이 계신다던가, 종교 수업을 듣는다던가, 언뜻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약간 생전 미션스쿨 같은 느낌인데.

어쨌거나 아이들에게는 이끌어줄 어른이 필요한 법이지.

빌어먹을 시드니 자식이 했었던 말과 비틀어진 사상이 떠올라서 영 반발심리가 들긴 들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정말 당연한 자연의 섭리까지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유디트! 3반 아이들 좀 불러와주지 않겠니?!”

“네, 선생님!”

찌끄만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쁜 모양이다.

조금 자란 아이들까지 중간관리로 집어넣어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힘들겠네 싶었다.

그런데 딱히 나나 아일린을 터치하진 않았다.

아일린 성격이라면 잘 도와주었을 텐데.

아무래도 나를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려나.

“아일링 언니!! 아일링 언니!!”

“누가 널 찾는데.”

“......아마 마르티나 때문이려나.”

아니려나­하고 생각했더니, 바로 누가 아일린을 찾았다.

혀짧은 목소리. 수녀가 찾아오라고 시킨 걸까?

아일린은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가자, 코넬리아.”

“어차피 끌고 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잖아?”

금속실이 칭칭 묶인 팔을 아일린에게 굳이 보여주며 그렇게 말했다.

아일린은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도 다시 한 번 똑똑히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어서 움직이자.”

“내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게 그렇게나 많을까.”

“아일링 언니!!”

창밖에서 아일린을 찾으며 뛰어다니던 아이가 결국 우리 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용케도 찾아냈네.

아이는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으로, 입을 크게 벌려서 앞니 하나를 까치에게 던져준 모습으로 크게 소리쳤다.

“아일링 언니야아아아아!!! 아멜리가 왔어어어어어!!”

“그래, 아멜리. 아일링 언니야. 유리네 수녀님이 부르신 거야?”

“아냐! 유리네 선생님이 아니라! 마르티나 언니가! 아일링 언니를 보고 싶대!”

“그래.”

나는 아일린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일린을 따라 방에서 나섰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뛰노는 정원을 지나, 수도원 바깥으로 향했다.

“아멜리가 언니 손 잡아주까? 수도원 바깥은 길이 울퉁불퉁해!”

“괜찮아. 이것 보렴.”

“웅. 팔목에 실을 묶었네.”

“여기 코넬리아 언니의 팔과 이어져 있지? 언니가 넘어지지 않게 도와줄 거야.”

“그래?”

“응.”

어떻게 이 꼬맹이에게 대답할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아일린이 알아서 대답했다.

아이들 가운데에서 우리만큼 자란 아이들 몇몇은 수도원 바깥에서 산다더라.

수도원 바로 뒤의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을 만들고, 밭을 일구고 낚시를 하고 사냥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평범한 아이들이었더라면 혹여 야수나 마물이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겠지만, 아무래도 나이를 먹은 만큼 시설에서 나름대로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라서 안심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오히려 그 친구들이 수도원 바깥에 살며 주변의 야수나 마물을 주기적으로 사냥해준 덕분에 수도원의 아이들이 숲에서 약초나 버섯 같은 걸 안전하게 캐올 수 있다더라.

“꽤 많네.”

“응. 가족에게 되돌아간 걸 제외하고서 여태 수도원을 나간 사람이 총합 스무 명 정도였던가? 대충 절반 정도가 여기 남았어.”

“그리고 엄청 잘 지었어. 조금 놀랍네.”

“아멜리도 나중에 여기에 멋진 집을 지을 거야! 페트라랑 토비랑 같이 살래!”

처음 수도원에 끌려왔을 때 보지 못해서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의외로 번듯하게 지어진 아담한 통나무 오두막이 호숫가를 따라서 여섯 채 씩이나 지어져 있어서 조금 놀라고 말았다.

오두막 바깥의 생선을 말리는 틀과 그물, 그리고 작은 조각배까지도 전부 직접 만든 것 같고.

심지어 텃밭의 울타리는 마치 공장에서 뽑아낸 것처럼 규격적이었다.

하긴 집을 지을 정도면 뭘 짓지 못할까 싶지만.

근력도 체력도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날 테니까.

“마르티나는 조금 어때?”

“엄청 울고 있었어.”

“그래. 걱정되네.”

“그래두 아일링 언니의 얼굴을 보며는 다 나을 거야! 유리네 선생님이 그랬어!”

“내 생각엔 파리스의 얼굴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지만.”

“유리네 선생님이 남자는 들어오면 안 된댔어!”

세 번째 통나무집 앞에 한 소년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문 앞에서 좌우로 자꾸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한 살에서 두 살 정도 많을까.

많이 쳐줘봐야 고등학교 상급생 정도다.

나처럼 하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라서, 상당히 오래 실험받다 구출된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나랑 같은 시설 출신일지도 모르고.

“아일린!”

“안녕, 파리스. 좋은 아침.”

“마르티나는 괜찮지? 괜찮겠지?”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나는 계속 수도원에 있었고, 너는 여기에 있었고.”

“......윽.”

“우린 들어가 볼게. 가자, 코넬리아.”

“응? 으응.”

통나무집에 들어갔다.

2층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뿐인데,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라기보단 고통을 참는 듯한, 고함소리.

“아일린?”

“올라가자.”

“마르티나 언니이이!!”

계속 옆에서 따라오고 있었던 꼬맹이가 비명소리를 듣더니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며 계단따라 위로 타다닥 소리를 내며 단숨에 올라가버렸다.

아일린은 지팡이로 톡톡 앞길을 두들기며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조용히 아일린의 뒤를 따를 뿐이다.

간호사처럼 하얀 옷을 입은 수녀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 간호사는 냅다 올라온 꼬마 아멜리를 붙잡아서 방 구석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뭔가 수술 중인 걸까.

“아멜리! 가까이 오면 안 된다고 말했잖니!”

“하, 하지만 아일링 언니가 왔는 걸!”

“안녕하세요, 린네 수녀님.”

“어머, 그래. 어서 오렴. 마르티나가 널 보고 싶어하더라. 그리고 이쪽은.......”

“코넬리아라고 해요. 꼭 같이 있으라고 펠릭스 심문관이 신신당부를 한 탓에.”

“으음, 어쩔 수 없지.”

침대 머리맡, 얼굴 쪽에 있던 수녀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제야 틈이 생긴 나는 침대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물. 수술이 아니다.

우리보다도 더 어린 얼굴을 한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었고, 어디서 따로 데려온 듯한 초면의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마르티나의 다리 사이에서 아이를 받고 있었다.

아일린은 마르티나의 머리맡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마르티나. 여기 언니가 왔어.”

“아일린 언니이이.”

진이 다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힘든 모양이네.

......이거, 나는 왜 데려온 걸까.

저 바깥에 있는 파르시인가 파리스인가 하는 친구 옆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나 괜찮을까? 괜찮은 걸까아으으으.......”

“괜찮을 거야.”

마르티나가 울먹이며 물었고, 아일린은 마르티나를 달랬다.

나는 옆에서 망부석처럼 서서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나나 에일린보다 훨씬 어려보이는데, 괜찮은 걸까.

몰라. 괜찮겠지. 조혼 풍습은 세계 어디서나 보이는 풍습이니까, 뭐어.

범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면야, 뭐어어. 서로 나이 차이가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런 곳이라면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르...나?

내가 알던 세상이랑은 다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길 30분 정도.

마르티나의 숨 끊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산파가 ‘다 됐다!’하고 외쳤다.

수녀들이 분주히 움직여 따뜻한 물로 막 출산한 핏덩어리를 닦아주었고, 산파는 린네 수녀가 마법으로 피운 불로 날을 한 번 달궈서 건네준 가위로 탯줄을 끊었다.

“저, 저기 아기가 안 우는데요.”

“네...? 안 돼요, 아이샤 선생님.... 우리 아기.”

“뭐어!? 하여간에 애도 안 낳아본 수녀가 뭘 알겠어! 아기 이리 줘!”

산파는 피는 닦아냈어도 아직 피부가 쪼글쪼글한 아기를 받아서 등을 톡톡 두들겼다.

한 번, 두 번, 콜록. 작은 기침소리.

그리고 작은 아기가 우렁차게 울었다. 으앙. 응애, 으앙.

“허. 고놈 참 못생겼네. 그래도 튼실한 남자애야.”

“할머니. 저, 얼굴. 얼굴 보게 해주세요.”

마르티나가 무척 지친 얼굴로 산파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산파는 아기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마르티나의 부탁을 거절헀다.

“아직 쭈글쭈글해서 무척 못났다. 조금 있다 보는 게 좋을 게야. 어련히 때 되면 보여줄 테니 숨이나 좀 고르고 있으려무나.”

“머리카락. 머리카락 색깔이라도 알려주세요.”

“응? 뭐여. 갓 태어난 애기가 머리카락이 어디 있어.”

“그러면 눈동자 색깔이라도......”

“그럼 애들이 주먹 꾹 쥐고 눈 꽉 감고 울지. 애기 눈동자 색깔을 내가 어떻게 알어?”

“잠깐만요, 할머니.”

린네 수녀가 슬쩍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산파가 씌운 포대기를 살짝 들어서 아기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솜털처럼 짧게 자라난 머리카락의 색깔은 분명 검은색이었다.

적어도 하얗지는 않았다.

“예쁜 검은색 머리카락이란다. 안심하렴.”

“으, 아아. 아아아. 메흐렌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녀들도 하나같이 울며 무릎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를 안고 있는 산파는 대체 무슨 지럴이여 하고 중얼거렸지만, 아이의 머리카락 색이 검다는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일이었는지, 사정을 몰라서야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마르티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산모의 마음이 아니라.

......같은 고생을 한 동질감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

“마르티나!!”

“야이 씨, 옘병. 남정네는 내가 들어오라고 하기 전까지 들어오지 말라니께! 부정 타! 그렇지 않아도 이 찌그만 어린애가 대체 몇 시간 동안 고생했는 줄 알어? 전부 네눔 새끼 탓이여!”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다행히 오르베리우스 님과 메흐렌 님의 보우하심이 있었는지 조산에 산모도 어리지만 아기는 건강혀. 산모도 굉장히 건강한 편이고. 그러니까 당장 기어나가!”

“윽.”

산파의 호통에 뛰어들어온 파리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러는 사이 아일린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다행이다. 그치?”

“......그러게.”

“부럽기도 하고.”

아일린은 마르티나가 산파에게서 아들을 받는 모습만 보고,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갔다.

조용히.

짚은 지팡이에 소리도 나지 않게 조용히, 아래층 의자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다리를 떨고 있는 파리스까지도 뒤로 하고서 오두막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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